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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복고 음식 3 [옛날 돈까스]

| 조회수 : 10,563 | 추천수 : 85
작성일 : 2006-09-17 19:30:46


제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중후반, 데이트 하면서 먹는 음식중 돈까스는 거의 고급 음식에 속했었습니다.
허긴, 제 친구 중 하나는 그때도 남자친구와 곱창전골이니 징기스칸이니 하는 걸 먹으러 다녔지만, 그건 있는 집 애들 얘기고...

보통 아르바이트(과외 선생)를 해서 번 돈으로 데이트하는 경우 고작해야, 돈까스, 조금 더 쓰면 함박스텍...
옛날 먹던 돈까스는 지금의 도톰한 것이 아니라, 아주 얇고 아주 넓은 것,
곁들임으로는 채썬 양배추가 나오고, 밥은 다른 접시에 따로 얇게 펴져서 나오고, 그리고 멀건 크림스프가 나왔었어요.
지금 돈까스에 미소된장국이 나오는 것과는 딴판이었죠.

암튼...이 얇은 돈까스에 추억이 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인지, 3학년 때인지..기억은 잘 안나는데..와..벌써 30년도 더 전의 일이군요...
누구가 주선했는지, 왜 소개팅을 했는 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소개팅에서 서울대 상대 다니던 남학생 하나를 만났습니다.

당시 제 이상형은,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177㎝ 이상),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얼굴은 총명해보이고, 말이나 행동이 시원시원한 사람이었습니다. 말은 사투리없는 서울말을 써야 하고, 피부에는 여드름이나 여드름 자국이 없어야 하고, 또 곱슬머리가 아니어야 하고..^^;;

그런데 워낙 소개팅이나 미팅 복(福)은 없는 지라...
키는 제 키 정도에다가, 남자니까 아마도 165~168㎝ 였을 듯,
안경을 쓰기는 썼는데...얼굴이 좀 멀멀하게 생긴 남학생 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애가 서울대 사회계열에는 어떻게 합격했을까 싶을 정도로 좀 어벙하고...

절대로 제 이상형이 아니었습니다만, 주선자의 체면 때문에 소개팅 후 애프터를 한번 했었습니다.
그리고 여름방학을 맞게 됐는데...어찌나 끈질기게 연락을 해대는 지....

당시, 제가 어찌나 속물이었는지..키 작은 남자, 얼굴 못생긴 남자랑은 차도 한잔 마시면 안된다고 버틸 때였는데,
방학이라 좀 심심하기도 하고 또 끈질기게 전화하는 것도 귀찮고 해서, 만나 주기로 했습니다.

종로 2가의 한 경양식 집에서 만난 시간은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어요.
뭘 먹겠냐고 해서, '돈까스'를 주문했습니다. 그쪽은 맥주를 한병 시키대요.
"그쪽은 안먹냐"고 하니까, 집에서 점심을 먹고나와서 배가 안고프다는 거에요.

서먹서먹,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어느덧 주문한 돈까스가 나왔습니다.
한쪽 베어 물었는데...거의 토할뻔했어요. 완전 돼지비계인거에요.
지금도 돼지비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때는 비계란 비계는 모두 떼어놓고 먹을 때였어요.
한면이 비계이면 그 반대편은 비계가 아닐거다 싶어서,
접시를 돌려 반대편을 잘라봤는데..이게 웬 일입니까? 거기도 비계인거에요.
어째 이럴 수가 있나 싶어서 또 다른 면을 잘랐는데도 비계.
결국 세점 잘라먹고 포크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랬는데..얘기는 지금부터입니다.
그 남학생, "돈까스 안먹을거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 앞으로 접시를 가져가더니, 그 완전비계 까스를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먹는 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니...학생들 돈 없는 거는 당연하고, 돈이 없어서 돈까스를 하나만 시킬 수도 있는 건데...
그때는 그게 왜 그리 창피하고 싫던지...

그날 이후....방학이 끝날 때까지...저는 집에 항상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초절정 복고풍의 넓고 얇은 돈까스를 하고 싶었는데...맘에 드는 고기를 구하지 못했었어요.
등심 덩어리를 사면서 얇고 넓게 포를 떠달라고 했는데..제가 원하는 사이즈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부위가 등심인만큼, 아주 맛있었습니다.

요즘은 돈까스용 돼지고기를 우유에 담근다고도 하고, 양파를 묻히기도 한다고 하는데...
제 지론은..'돈까스가 돈까스 다워야 돈까스지~~'입니다.
돼지고기의 냄새를 100% 잡겠다고 이 방법 저 방법 쓰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찬동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오늘 돈까스도 돼지고기에 소금 후추 생강가루 뿌려서 1시간 정도 재워뒀다가 밀가루 → 달걀물 → 빵가루 입혀서,
170℃에서 튀겼습니다.
소스는 시판 돈까스 소스 썼구요, 가니시는 돈까스의 고전 사우전 아일랜드 드레싱을 얹은 양배추 뿐이었습니다.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장세희
    '06.9.17 7:35 PM

    일등!!! ^-^ 돈까스 먹고 싶어요.

  • 2. 또뚤맘
    '06.9.17 7:47 PM

    세상에 2등!!!
    등수안에 들다니

  • 3. 또뚤맘
    '06.9.17 7:51 PM

    저도 어릴때 부산 남포동 빨간 모자 아줌마의 돈까스를 처음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한참동안 먹으러 다녔어요. 얇고 바싹바싹한 고기와 양배추뿐인
    샐러드였지만 정말 맛있었답니다...

  • 4. 소박한 밥상
    '06.9.17 8:07 PM

    종로 반즐의 징기스칸이 유명하지 않았나요 ??
    까만 뿔테를 선호하셨다니 ㅎㅎ 선생님은 지적이셨나봐요 ~~~~
    그 무렵 금테안경이 막 유행할때였고 뿔테는 좀......
    해서 저는 단연 금테였었죠 ^ ^*
    요즘 남학생은 180은 넘어야 키 좀 제대루다 하나본데
    그땐 175면 훌륭했었죠
    까만 교복 입은 S대 피하고 싶었죠

    덕택에 타임머신을 타고 밝은 동네 명동을 거닐고 있답니다 ^0^

  • 5. amenti
    '06.9.17 8:33 PM

    tv에서 옛날 돈까스집 주방보여주는 걸 보니까, 어른 손바닥(손가락빼고요)만한 고기를 고기 망치로 꽝꽝 두들겨서 A4 size의 얇고 넓적한 고기로 변신시키던데요.
    그냥 얇게 포뜨기만해서는 그 두께가 나올수 없는 것같아요.

  • 6. 키티맘
    '06.9.17 9:00 PM

    저도 며칠전 신랑이랑 옛날 돈까스 이야기 했는데... 일식 두툼한 돈가스 말구요. 손바닥보다 더 덥적하고 얇은 돈까스 말이죠. 요즘은 그런거 파는데는 없는지...
    선생님보다 연배는 적지만 저희 대학때도 거의 최고 음식 이었어요.
    옛날생각나고 너무 먹고 싶네요.

  • 7. okbudget
    '06.9.17 9:05 PM

    저도 종로의 반즐을 기억합니다~
    데이트는 써는(양식)남자와하고,결혼은 국수만사주는 남자와했습니다
    국수사주던남자 유머있고,재치있고,머리좋고~
    지금도 넘재미있어 후회안하고 잘살고있습니다~

  • 8. Terry
    '06.9.17 9:29 PM

    "밥으로 하실까요, 빵으로 하실까요?"
    "슾은 야채슾으로 하실래요, 크림슾으로 하실래요?" ㅋㅋㅋㅋ

    저희 때 유명했던 경양식 까페로는 피가로, 찰리채플린, 맥 등이 있었습니다.^^

    연대앞으로 가서는 라포레를 많이 갔었죠. 저는 돈까스 말고 여러가지 나오는 정식을 주로 먹었답니다.
    어쨌든 거의 다 4000원에 커피까지 다 나왔었죠.

    요새도 그런 메뉴 나오는 까페 있나요?

  • 9. 파워맘
    '06.9.17 9:34 PM

    저도 어린시절 아버지의 월급날이나 먹을 수 있었던 돈까스 생각이 나네요. 20년이 조금 넘었지만 그 시절도 선생님의 경험과 비슷하게 멀건 스프랑 양배추 샐러드. 얇게 편 밥이었네요^^
    추억의 돈까스...그래도 그 시절엔 없어서 못먹었는데 요즘 흔한게 돈까스네요. 추억이 더 맛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10. teresah
    '06.9.17 9:47 PM

    예전에 초등학교 졸업식날 엄마가 경양식집에서 사주신 돈까스 생각나요

  • 11. 초롱꽃
    '06.9.18 9:01 AM

    공감이 가는 내용들... 읽을때마다 좋아요~^^
    요즘엔 성북구 쪽에 왕 돈까스이던가?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곳이 있긴있더라구요.....^^

  • 12. 해바라기 아내
    '06.9.18 9:03 AM

    추억의 돈까스를 상시 접하다보니 세월이 흐른 것을 몰랐어요.
    대학 식당이나 대학 근처 식당에는 추억의 돈까스 많이 팔아요.
    그러니까 레스토랑 말고, 그냥 식당이요.
    큰 접시에 일단 얇고, 넙적한 돈까스, 양배추 샐러드, 밥, 빵 있구요, 당연히 크림스프도 주고요.

    나이 40이 되도록 학교를 끈질기게 다니고, 또 끈질기게 학교 근처에서 돌다보니 남들은 추억인데
    저는 현실이었습니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학교 식당에서 돈까스 먹거든요.
    예전에는 싹싹 긁어 먹었지만 요즘은 빵정도는 조금 남기고 있지요 ^^

  • 13. ilovehahaha
    '06.9.18 11:12 AM

    아직..명동에 '서호돈까스' 있는지.. 갑자기 언니따라,나중엔 남자친구데꾸갔던 그집이 생각나네요..

  • 14. 뷰티플소니아
    '06.9.18 8:13 PM

    로그인을 안할수가 없네요
    옜날 그 돈까스...얇고 넙적하고 정체불면의 소스가 뿌려진... 그 돈까스
    양상추 샐러드에 밀가루 듬뿍 들어간 크림 스프~(가운데 후추 가루)
    냅킨에 스픈 포크 나이프 돌돌 말아서...
    아직 배달해 주는곳이 있더라구요...이름도 **양식당 입니다^^

    서호돈까스도 먹고 싶다...

  • 15. 솜사탕
    '06.10.5 12:56 AM

    종로의 반줄!
    이름만 들어도 반가우네 대학생때 친구들하고 찡은사진 아직 잘보는데...
    약간 동굴같은 분위기의 방에서....
    저는 재수때 좋아하던 남자애가 서울상대가서 한번 만났는데 검정 바지에 고무신 기억으론 검정 고무신.....
    우와 그다음은 기억 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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