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이나 키워줬으면 이제 엄마를 도와줘야지 (사실은 '밥값을 해야지?' 란 표현이었습니다만^^;)?
김치도 담그고, 청소도 하렴."

그래서 열심히 깍두기를 버무리고,

부직포 밀대도 밀었지요. 우리집 청소기는 어찌나 장판에 달라붙는지 아직은 제 힘으로는 못 당한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 생일잔치를 한다지 뭡니까.
엄마가 무슨 케이크를 먹고 싶냐고 다정하게 물으시기에 전 기뻐서
"토마스 케이크요!"라고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기대에 부풀어서요.
꼭 토마스여야 하냐고 다시 한 번 물으시기에 다시 한 번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지요.
마음 졸이면서 두 밤을 자고 나서 드디어 제 생일날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창문에 종이 등불과 꽃이 줄줄이 달려있는 유치한 줄을 거시고는 상차림을 시작하셨어요.
아빠와 저는 떡을 사오고요.
수수팥떡 만들어 주라고 외할머니께서 전화를 하신 것을 듣긴 했지만 전 알고 있었지요.
우리 엄마가 그 말씀대로 하실 리가 없다는 걸.
뭐 제 입장에서도 떡 만들면서 허둥대다 짜증까지 내는 엄마를 보느니 이쪽이 좋아요.
게다가 제게는 토,마,스 케이크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점심상을 차리기도 전에, 엄마 친구 잠잠이 아줌마 부부가 오셨습니다.
제가 전에 "이모"라고 부르니까 엄마가 "네가 이모가 어딨어? 엄마는 남동생만 하난데."하셨더랬죠.
까칠한 우리 엄마.
게다가 제 생일인데 왜 제 친구가 아닌 엄마 친구를 초대하는 건지.
그리고 저는 고기 좋아하는데 아줌마가 고기를 안 드신다고 왜 저까지 고기반찬을 못 먹어야 하는지.
사실 저는 그 답을 알고 있지요.
저 상에 차려진 그릇 중에 세 개만 빼고 다 아줌마가 선물해주신 거라더군요.
역시 물량 공세에 약한 우리 엄마. 고등학교 때부터 쭈욱 친구라던데, 아줌마가 불쌍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줌마가 좋아요. 엄마와는 달리 얼마나 재밌게 온몸으로 놀아주시는데요.
아줌마랑 아저씨가 상차림을 칭찬하자 엄마가
"응, 1년 내내 구박하다가 오늘만 잘해주는 거야." 라고 대답하셔서 다들 웃었지만
저는 엄마가 솔직한 분이신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찰밥에 홍합 미역국,
제가 버무린 깍뚜기에 (역시 김치도 손맛이지요)
깻잎 절임,오이무침, 말린 죽순나물, 연근조림, (제가 좋아하는 건 없나요)
새우를 넣은 오리엔탈 냉파스타,
콩고기 가지볶음, (그래도 고기랑 비슷한 것이 맛있었어요)
사진엔 없지만 양송이 구이
이렇게 점심을 냠냠 맛있게 먹고
드디어 케이크가 등장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두근두근~~

어라~ 이게 무슨 토마스?
엄마는 생크림이 오버휘핑되어서 어쩌고 변명을 하셨지만
케이크도 안 굽고 우리가 잘가는 빵집에서 카스테라 사다가 크림 장식만 하신 건데 그 장식도 이 모양이니 정말 실망이었어요.
백일때만 해도 안 그랬는데 우리 엄마가 저를 덜 사랑하시는 걸까요.
저는 약간 시무룩해졌지만 생일날 혼날까봐 촛불을 끄고 박수도 쳤습니다.
사실 정말 좋았던 건 아빠가 주신 선물상자였어요.
나중에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아빠 회사분이 사주신 거라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세트. 말도 하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멋진 녀석들이에요.
그 다음날은 엄마가 뭐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하셔서
택시도 타고 버스도 타고 기차도 타고 토끼도 보고 회전 목마도 타고 잔디밭에서 뛰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고 꿈틀이도 가고 까만 국수도 먹고 아주 즐겁게 보냈습니다.
내년 생일에는 제가 받고 싶은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요?
토마스 기차세트! 아마도...힘들겠죠?
엄마가 그런 걸 하나씩 들여놓기 시작하면 집안이 망한다고, 지금 있는 자동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아빠한테 말씀하시는걸 들었어요. 정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