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식 3찬 이상은 힘에 부쳐서 국없이 낸 밥상도 부지기수.
그냥 애만 붙잡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하긴 그 전에도 키톡에는 엄두를 못 냈었지요.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 있어요.
사실 따로 따로 만나던 친구들인데 하나씩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함께 선물해줄 일도 많고 하다보니 5명이 모임처럼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정작 고등학교 때는 친하지 않았는데 요즘 친해진 친구도 있구요.
암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라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연들이죠.
다들 바쁘니까 계절 바뀔때 한번씩이라도 만나자 하는데, 둘씩은 어쩌다 만나져도
다섯이 총출동하는 날은 한참 전에 날짜 잡느라 분주하지요.
제가 이사하고 나서 남편들까지 함께 모이자고 7월 16일로 날짜를 잡았지요.
신혼 집들이도 아니고 내집 장만한 것도 아닌데 친구들이 과일 사가도 이만큼은 든다면서 스테인레스 웍을 주문해주었어요.
섹시한 그 광에 가슴 떨려하면서 손님맞이 채비를 서두르는데,
엄청나게 비가 퍼붓더라구요.
어쩌나 걱정이 되는지 한참 전화를 돌리고,
결국 몸이 아픈 친구와 강원도의 부모님이 길이 끊겨서 못 가시게 된 집안 행사에 대신 참석해야 하는 친구는 오지 못하게 되었구요.
그 와중에도 퍼붓는 비를 뚫고 2쌍의 부부가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와 주었어요.
남편이 "와, 우정의 무대로구만. 여기 오신 분들이 진정한 당신 친구들이야." 해서 한바탕 웃었어요.
아무래도 다른 초대만큼 긴장하게 되지 않아서 늦장부리고 있다가 오신 손님들 동원해서 음식했답니다.

손님들 손을 빌려 곱게 만 <무쌈말이> 해파리냉채 소스에 생크림 섞어서 냈어요.

남편에게 맡겼더니 오징어에 칼집 넣는 예의도 상실, 접시에 담아준 친구와도 의사 소통이 잘 되지 않아 대략 어이없는 모양새의 <냉우동 샐러드>. 소스는 joanne님 레시피대로 만들었어요.

inblue님의 <데리야끼 치킨>. 인기 좋았습니다.

매콤한 <소고기 토마토 소스 볶음>. jasmine님 레서피는 실패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건 사람 적은 쪽에 놓은 거라서 보기 별로 안 좋은데 왜 이걸 찍었는지 원. 쌈직한 고기로 했는데도 맛있었어요.
사진엔 없지만, 밥부터 같이 먹자고 해서 먹고 튀겨낸 annieyoon님의 <새우 마요네즈 탕수육>도 반응 좋았습니다.
근데 튀기는 게 두 가지니까 좀 번거로웠어요. 평소엔 전혀 안 하는데 웍 산 기념으로 기름 쓰는 김에 튀기는 메뉴를 많이 넣어봤어요.

어수선하지만 대충 이런 모습의 상을 차려서 먹었습니다.
국은 annieyoon님의 <중국풍 에그 드랍 스프>. 제가 치킨 브로스나 스톡 맛을 별로 안 좋아해서 삼계탕 끓이면서 닭 육수 냉동해놓았던 걸로 했더니 날씨랑도 잘 어울리고 좋더라구요. 옥수수만 캔 제품 쓰고 나머지는 그냥 생 야채랑 콩으로 했어요.
다들 좋아하는 메뉴였네요.
그리고 역시 사진엔 없지만 후식으로는 여러 과일 잘게 썰어서 시럽에 재 두었다가 자몽 주스와 탄산수 섞어서 <과일 화채> 했네요.
이번달 레몬트리에서 보고 한건데 화채가 너무 달아서 싫었는데 제 입엔 아주 좋더라구요.
이렇게 먹고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 (어쩌다 보니 남편들도 다 수다쟁이입니다) 놀다가, 부루마블 게임도 하고, 주인은 주책맞게도 도서반납이 오늘까지라고 도서관도 잠깐 갔다 오고 어쩌고 하다
저녁도 먹고 가라고 잡고 급하게 국수를 삶았습니다.

왜 저는 여기서 보던 그 얌전하고 정갈한 그런 상을 못 차리는 걸까요.
아마 평생 불가능할 것 같아서 좌절입니다.

먹던 반찬 담아서 내고, 역시 손님들 시켜 부추 계란만두 빚어서 함께 먹었습니다. 사진엔 없어요.
큰 냄비가 하나밖에 없어서 국수 육수 냄비를 다 비우고야 찔 수 있어서 말이죠.
국수 먹고 한참 더 놀다가, 9시가 가까워서야 집으로 돌아들갔고 비 때문에 차들이 안 다녀서 평소보다 빠르게 도착들했다고 전화 왔더군요.
걱정했는데 다행이었어요.

9인분 새우를 6명이 먹느라, 새우가 많이 남아서 어제 저희 식구 저녁도 새우였습니다.
가운데 레몬소스구이는 22개월 아들 녀석이 먹구요, 저희는 그 구이 위에 남은 마요네즈 소스 얹어서 좀 더 구워 먹었어요. 튀기는 것보다 이게 더 간단하네요.
고추기름이랑 와인 식초가 들어가서 느끼하지도 않구요.
오랫만에 친구들이랑 즐거운 휴일을 보내서인지 이번 주는 기분좋게 시작했습니다.
신혼때만 해도 틈만 나면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술마시고 주말이면 집으로 못 불러 안달하던 남편 때문에 잔소리도 많이 했었고 제 친구들은 잘 못 만났었는데
이제 세 번의 이사와 두 번의 이직을 겪은 남편은 친구가 없다고 울상이고,
제 친구들과는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임신한 친구에게 돌아가며 멘토가 되어주고
서로서로 힘이 되어주는 아주 바람직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 할수록 판이 아내 쪽으로 재편된다고 언니들이 얘기할 때는 몰랐었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아무튼 비 오는 요즘, 모두 비 피해 없으시길 빌면서
이번에도 저의 초대상을 책임져주신 82에 넙죽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특히 best5 올려주셨던 유진마미님, 정말 감사드려요.
제가 생각 못했던 메뉴들을 돌아보게 해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