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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짤 고소한 김혜경의 사는 이야기, 요리이야기.

비오는 밤의 詩 한편

| 조회수 : 5,436 | 추천수 : 325
작성일 : 2003-04-22 22:39:24
오늘은 제가 제일 좋아했던 詩 한편 소개할게요.

대학교 일학년 때 우리 학교에서 늘 고양이라 부르던 대학교 의대 남학생하고 미팅을 했는데...
철 모를 때는 키작은 남자가 왜그리 싫었는지...
감히 "남자 키 작은 건 죄악이야!!"하고 내뱉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홧홧해지는데...
하여간 그 남학생도 너무 키가 작아서 싫었어요. 저보다 2~3㎝나 컸으려나, 애프터 신청을 탁탁 사정없이 털어버리고 발딱 일어서서 돌아왔는데 그 남학생이 주선자를 통해서 보낸 책한권, 그게 바로 강은교 시인의 시집이었어요. 시집 제목이 '풀잎'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아, 풀잎은 휘트먼의 시집인가...
그게 일천 구백 칠십 오년의 일...
하여간 그 시집을 선물한 사람은 별로 였지만 그 속의 시들을 제가 너무 좋아했는데, 오늘은 자꾸 강시인의 싯구절이 생각나네요.

특히
'...우리의 적은
저 끊어지지 않는 희망과
매일밤 고쳐 꾸는 꿈과
不死의 길...'
이 대목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아요.

왜냐구요? 그건요, 담에, 끊어지지 않는 희망이 실현됐을 때 그때가서 다 얘기해드릴게요.
날도 꿀꿀한데 시 감상하는 시간 가져보죠?!



우리의 적은

         강은교


우리의 적은
일 센티미터의 먼지와
스무 시간의 소음과
그리고 다시 밝는 하늘이다.


몇 번이라도 되아무는 상처와
서른 번의 숨소리와
뜨거운 손톱.


우리의 적은
전쟁이 아니다
부자유가 아니다
어둠 속에서도 너무 깊이 보이는
그대와 나의 눈.


십리 밖에 온 가을도
우리의 눈을 벗을 수는 없다
가을이 일으키는 혁명도
아아, 실오라기 연기 하나도.


어젯밤은 좋은 꿈을 꾸고
오늘 길을 떠난 아버지여
그대 없이도 꿈 이야기는 살아서
즐겁게 저문 하늘을 날아다니다.


그렇다, 우리의 적은
저 끊어지지 않는 희망과
매일밤 고쳐 꾸는 꿈과
不死의 길.
그리고 아직 살아 있음.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jasmine
    '03.4.22 11:45 PM

    저 그 시집 무지 좋아하거든요. 그 시는 79쪽에 있네요.74년 9월 25일판인데, 제건 82년거네요.제가 좋아하는 건 그 중 [사랑법]90페이지. 찾아보세요.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운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뒤에 있다

    정말 반갑습니다.

  • 2. 야옹버스
    '03.4.22 11:49 PM

    시 참 좋네요.. 날씨도 참 꾸리꾸리하구...

    저는요 결혼전엔 (시쳇말로)범생이가 싫었어요. 제가 넘 바른생활우먼이라..ㅎㅎ

    지금 같이사는 사람이요? 물론 범생이 아니예요.
    근데요 결혼할때 그사람의 가장 좋은 면이 결혼후에는
    가장 싫은 점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딱 거기에 걸린....
    제 후배는 결혼전 남편의 박학다식함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런게 영감같고 너무 싫대요.
    이 무슨 오묘한 장난인지.. ....흑

  • 3. 김혜경
    '03.4.23 12:16 AM

    자스민님 그 시,저도 무쟈게 좋아합니다.

  • 4. 새있네!
    '03.4.23 12:24 AM

    jasmine님 감사해요. 이시 정말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보니 눈물이 다 나네요. 사실 제가 좀 고지식한 편인데 또 센티한 면이 있어서 대학때까진 김소월,서정윤류의 시집이랑 칼린지브란류의 에세이 많이 읽었거든요. 결혼하고 2년있다 첫사랑 오빨 결혼식갔다와서 한달을 꼬박 신랑 출근하면 시집읽으며 울고 퇴근해 올때쯤이면 맑간 얼굴로 같이 밥먹고 놀고 그러다 정신분열증걸릴것같아 다신 시집 에세이 읽지 않고 일기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이날까지. 참 웃기죠? 그아주머닌 아주 적극적으로 저희 어머닌 반대는 안할 정도로 호의적이고 그오빠와 저는 서로 좋아했지만 사귀지도 않다 어느날 제가 먼저 결혼해서 그집을 발칵 뒤집어놓고선 2년있다 유학중에 알고지내던
    친구동생중 하나랑 대충 결혼했다는데 왜 마치 제가 배신당한것같은 기분이 들었던지... 백년전쯤 일같네요.

    각설하고 혜경선배의 '끊어지지 않는 희망'이 하루빨리 실현되시길 기원할께요. (사실 쬐끔 알것도 같네요.) 저포함 82가족 모두의 희망도요. 옛날 이외수씨 책에서 보니 가난한 자 가난한 이유는
    '돈이 웬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네요. 희망을 우리의 좋은 친구로 여겨서 빨리 다같이
    바라는 바를 이뤘으면 좋겠네요.

  • 5. champlain
    '03.4.23 3:18 AM

    한국도 오늘 날씨가 꿀꿀한가요?
    캐나다도 오늘 비가 내리네요.
    애들 데리고 학교 가기 힘들게...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이정도 비에 우산도 잘 않 써요.
    저는 비 맞고 젖는 거 넘 싫은데 둘째 녀석은 캐나다에서 낳다고 비 맞으면서도 우우 거리면서 좋아하네요.
    시를 보니 예~~전 글 쓰고 시 읽고 감상에 젖던 그 때가 생각나서 참 좋네요.
    사랑법..좋은 시는 누구에게나 다 좋은가 봐요..
    명랑소녀 혜경언니가 이렇게 분위기까지 있다니...

  • 6. 우렁각시
    '03.4.23 7:38 AM

    champlain님, 캐나다 어디신지?
    제가 있는 곳은 오늘 눈왔어요...얇은 바지 사이로 찬 바람이 숭숭...
    길에 서서...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있다...
    유치환님의 시 한구절을 읊조리게 됩니다...
    제 학창시절엔 예쁜 편지지나 낙엽에 시를 써서 코팅하는게 유행이었는데..
    친한 친구한테 꼭 편지 끝에 시를 써보낸곤 했는데...
    요즘엔 그런걸 못 본 듯해요...
    우리 세대는 다들 외우지 않나요?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 행복하나니..
    사랑하는 이여 그럼 안녕...(좀 다른가..암튼.)

    저부텀도 전형적인 이공계랑 살다보니... 시를 잊은듯합니다...
    교과서에 나온 시만 아는 이 남자랑 가끔은 정서의 공유가 힘들답니다..휴~

    시인 강은교 님을 가까이서 뵌 적 있는데요...
    아..저런 사람들이 시인이 되는구나~ 했답니다.

  • 7. champlain
    '03.4.23 9:41 AM

    어쩜 그렇게 우리 남편이랑 똑같을까??
    우리 남편은 문과인데도 적성은 이과이다 보니..
    말씀하신 시 보니 정말 옛생각이 막 나네요.

    저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사가에 살아요.
    밴쿠버에도 살다와서 여기 날씨가 너무 힘드네요.
    근데 우렁각시님은 더 추운곳에 사시나요?

  • 8. 사과국수
    '03.4.23 10:22 AM

    좋은시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중고생때만 해도 시를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는데.... 요즘들어 시를 읽으면 마음이 저려오기까지 하니... 제가 나이를 먹고 있음이 틀림없지요?...^^ 저는 가끔 류시화가 엮은 잠언시집이나 천상병시인의 시를 읽는데.. 며칠전 sbs 드라마에서 고두심이 읊은 황지우시인의 늙어가는 아내에게 를 들으면서.... ㅠㅠ 울었어여... 저희 아빠도 같은 병환으로 세상 떠난지 2년이 되었거든요. 그 드라마 보면서... 아빠생각에... 눈이 붓도록 울었답니다...

  • 9. 세실리아
    '03.4.23 11:24 AM

    오늘은 날씨때문인지 다들 센티해지시는거 같아요 ^^ 저도 마찬가지...
    그럼 저도 제가 좋아하는 시한편 올릴께요...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시이긴 하지만요.

    사모
                           -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잊어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다가 지쳐 멍든 눈홀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그리고 한잔은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 10. 옥시크린
    '03.4.23 11:49 AM

    시 감상 잘 했습니다.. ^^
    아~~ 저도 한땐 시 꽤나 읽은 편이였는데.. 시는 안 떠오르고.. 부침개만 생각이 나네용^^

  • 11. 이진원
    '03.4.23 2:51 PM

    세실리아 님,
    사모란 시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나이 들어 새로 읽으니 그 의미가 더 절절하게 다가오네요.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12. 클레오파트라
    '03.4.23 5:31 PM

    오늘은 전부 시인이 되셨네요.
    저도 우렁각시님이 쓰신 그 시를 외운적이 있는것 같아요.
    그리고 고등학교때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해서
    편지 보낸다고 시집을 뒤적이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걸 보면 저도 감상적인 남자를 좋아하는것 같은데
    저의 남편은 무뚝뚝하고 감정에 변화가 없는 사람이죠.
    화도 잘 안내고 잘 웃지도 않는답니다.
    한결같은 사람이죠.제가 그것 땜에 살아요.

  • 13. 서권희
    '03.4.23 6:24 PM

    저는요. 이 시를 좋아해서 지금두 외우고 있지요
    정말루 옛날 생각 나네요.
    다같이 즐감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14. 이진원
    '03.4.23 7:38 PM

    저도 다시 좋아하는 시 한편 올립니다.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15. d
    '03.4.24 11:04 PM

    감상좋았어요

  • 16. 아이스크림
    '03.4.25 10:27 AM

    우와~ 하루가 멀다하고 내리는 비가 이렇게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다들 가슴에 하나씩 품고 계시던 시를 내놓으니깐 분위기 너무 좋네요. 저는 그 중에서도, 거절당했으면서도 굳이 시집 한 권을 선물로 건넨 그 키 작은 남자분의 마음이 너무 예쁘게 느껴져서, 괜히 덩달아 제 맘까지 설레었답니다.ㅎㅎㅎ... 선생님, 아주 고운 추억 풀어놓으셨네요~

  • 17. 유승연
    '04.6.12 7:05 PM

    저두 강은교님 좋아합니다. 기형도님두 좋아하구요....희망과 절망을 소스라칠 정도로 날카롭게 표현한 것이....

  • 18. 잠비
    '06.11.17 10:07 PM

    강은교 시를 무척 좋아해서 많이 읽었는데 외우지는 못해요.

    기형도는 요즘도 읽고 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시인이 좋아해서 덩달아 읽다가
    그 서늘함 때문에 자주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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