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예전 명절 추억하시는 분 보고 쓰는 글이에요.
2-30년이니 벌써라고 해야할지 고작이라고 해야할지. 그 시절만에 명절 풍경이 참 많이도 바뀌었죠.
지지리도 가난한 형제 둘이 한도시에 살았죠.
큰집에 애가 셋, 작은집엔 애가 넷. 저는 작은집 중간아이. 평생이 백수 한량이었던 큰아버지가 본인의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세울수 있는 유일한 때가 명절과 제사였죠. 분수에 넘치게 상다리를 차려내게 하고 자정제사를 고수하고 그걸로 양반입네 하고 싶으셨던. 큰엄마가 평생 먹는 장사를 하셨던 분이라 워낙 손이크고 일도 잘하니 (또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백수남편을 너무 사랑하셨어요. ㅎㅎ) 큰아버지의 그 말도 안되는 (지금보면 말도 안되는) 요구에 순종하며 따라주셨죠.
할머니가 살아계셨고, 평생 큰아들집에 사셨기에 명절엔 당연히 큰집을 갔죠.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 성묘를 갔다가 산소가 있는 근처에 사는 큰고모댁을 들러 아버지의 조카들을 만나고 좀 있다 큰집 근처에 사는 둘째 고모댁까지 들러서 오는게 명절의 루틴이었어요. 그럼 저녁나절이 되어 엄마도 챙겨 역시 멀지 않은 곳의 외삼촌댁(외할머니가 같이 사셨거든요)을 가면 2시간 거리 대구에 살던 이모가 오고. 생각해 보면 너무 잔인했죠. 평생을 시모를 모시고 산 큰외숙모는 시누이들 맞이 하느라 친정도 못가고 있고. 어린애가 뭘 아나요. 외가에 가면 늘 순하게 웃음짓는 외숙모가 무슨 지박령처럼 있으면서 명절 상차림을 떡하니 차려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거죠. 그저 부유했던 외가의 명절음식은 푸지고 맛있기만 했단 기억. 또래의 외사촌을 만날수 있어 너무 즐거운 명절이었죠 저는. 작은 외숙모는 드문드문 만났던 기억만(작은 외숙모는 종종 친정가셨거든요. 작은 아들을 편애했던 외할머니의 만행이었죠. 하 참.)
이게 불합리하다 느끼는 건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이 그 입장이 되어봐야만 아는 거죠.
그렇게.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큰집 사촌오빠가 결혼을 했고 올케언니가 들어왔어요.
올케언니 입장에선 명절이라 시댁을 가서 그 산더미같은 음식을 하느라 기진맥진, 잠자리도 화장실도 불편한 가난한 시댁에서 자고 명절 당일이 되니 화사하게 꽃단장하고 한복을 떨쳐입고(즉, 일은 전혀 돕지 못할 차림) 오는 세명의 사촌시누이에 숙부가 나타나는 거죠. 숙모도 없이. 저희집은 작은집이었는데 제사가 하나 있어 엄마는 매번의 명절에 우리집 제사 준비 하느라 큰집에 안갔거든요.
이 머리에 꽃단 미친 사촌 시누들 셋이(큰언니는 시집간 뒤 ㅎㅎ) 안방에 자리 차지하고 앉아(지가 무슨 양반댁 영애라고 한복을 얼마나 화려하게 처려입고 두루마가에 복주머니에 꽃신까지 신고...;;; 울 엄만 딸들 그리 꾸며 내 보내고 너무나 뿌듯해 하셨죠...;;;) 차례지내고 밥상받고 밥먹다가 일어서려하면 큰엄마가 앉아 있으라고 손 내저으며 물주랴 국주랴 과일주랴...;;; 올케를 그리도 부려먹은. ㅠㅠ 그나마 큰 인심 써서 과일이랑 접시 칼 쟁반에 담아 대령해주면 과일깍는 걸로 온갖 생색은 다 내고 동네 칭찬 다 받고..... 지금 생각하니 우리 올케언니 그 미친 사촌 시누년들 머리채 안잡은 것만도 감사할지경.
할머니 장례를 포함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몇년이 흘렀고 제가 결혼을 했죠. 작은집 셋째인 제가. (둘째는 비혼) 제 결혼식이 올케언니 시집오고 6년차였나 7년차였나 그때였는데... 그래도 울 올케언니 똑똑한 사람이라 이 집구석엔 답이 없구나를 캐치 했나봐요. 제 결혼식 참석이 올케언니의 마지막 시댁 행사 참석이었어요. 그 뒤로 명절이고 나발이고 시댁에 완전 발을 뚝 끊음.
그리고 20년이 지났죠.
희한하게도 이 집구석 딸년들은 저 포함 모두가 시누이 없는 집안 둘째 이하의 아들들에게만 시집을 가거나 장남에게 갔으나 시부모가 없는 집안 으로만 시집을 가서 올케언니의 울분을 풀어줄 길이 없고...;;;
제가 결혼한지 20년이니 언니를 못본 것도 20년이지만
늦게나마 말씀드려요.
언니 그땐 제가 철이 없어 너무 죄송했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진심으로 사과드려요. 죄송합니다.
Ps. 평생을 시집살이 하며 남편을 섬기고 시댁을 섬기고 산 큰엄마와 우리 엄마는...;;; 아시죠, 뭔지? 올케언니가 발을 끊은 뒤로도 참 많은 얘기가 있습니다만 위에 쓴 건 저의 만행이라, 제 이야기라 쓴 거고 언니 발 끊은 이후의 얘기는 언니 얘기라 안씁니다. 그저 큰엄마와 울 엄마는 본인들의 잘못을 전혀 인지 못하고 특히 큰엄마는 본인은 평생 시어머니 수발을 다 했는데(큰며느리란 이유로 단 하루도 우리집에 맡기지 않음) 정작 본인은 큰며느리에게 버림받은 게 너무 서럽고 분해서...;;; 울 엄마도 마찬가지. 시집 안 간 딸이 명절에 꽃단장하고 큰집간게 뭐가 잘못이냐...;;; 인지가 없으니 반성이 없고 반성이 없으니 화해는 요원한 일. (비혼 울 언니도 비슷 ㅎㅎ)
그저. 며느리가 되어본 저와 제 동생은 좀 그랬다, 우리가...;;; 하죠. (올케언니와 명절에 만날일이 없어 만행을 저지를 일이 없었던 큰언니도 음;;; 비혼인 둘째언니와 비슷한 마인드이긴 해요)
그냥, 올케 언니가 그 이후로는 행복하시길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