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로 도시농부 10년차입니다.
밭은 무려 다섯군데를 메뚜기처럼 옮겨다니며 곁방살이를 하고 있습죠.
내 밭, 내 마당 가지고 편안하고 여유로와서 하는 농사가 아니라는 거죠.
농사 시작 전에는 화분 하나 키워보지 않은 완전한 도시녀자였습니다.
그런데 10년전 시작한 주말농장이 제 인생을 이렇게 바꿔놨네요.
배추벌레만 봐도 도망치던 제가, 이젠 뭐~ 배추 뽑고 김장하고 이런 거는
'혼자서도 잘해요~' 이렇게 되었으니 '이 인간이 이렇게 달라졌어요'에 나와야할 정도입니다.
11월 10일 배추 수확하면서부터 김장까지 가는 이야기입니다~
좀 일찍 서둘러서 밭에 나갔습니다.
오늘, 내일 이틀에 걸쳐 김장할 겁니다.
친구가 도와주러오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는데 걱정마라 했습니다.
친구는 절임배추를 사는데도 제가 가서 김장을 도와주거든요.
하지만 저는 배추 수확에서부터 절임, 완성까지 다 혼자할 겁니다.
그래야 다른 분들도 용기를 내겠지요?
친구에게 "내가 원래 먹는 거 안 좋아했잖니. 요리하는 것두 안 좋아하고...
그런 사람이 김장도 하고 요리도 하고, 이렇게 변했다는 것에 오히려
사람들이 더 용기도 얻고 자극도 받는 것 같다" 했습니다.
피곤해서 어떻게 하냐고 하길래 "난 빨리 하기보다는, 남들보다 두 배 시간
들여서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한다는 전략을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에서 내일까지 혼자서 배추 15포기 김장하기를 보여드립니다.
걱정 마시고 '천천히 느긋하게'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하세요.
그러면 큰 무리없이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시간대를 다 기록할테니 참고로 하십시오.
2012.11.10. 오후 3:21분
밭에 도착했습니다. 식칼과 큰 김장비닐을 준비해서 갔습니다.
배추 포기수는 15포기입니다.
20포기 심어서 5포기는 이미 겉절이 담가먹었습니다.
자... 제 배추를 소개합니다.
8월 23일 배추모종을 정식했습니다.
그뒤 비가 사흘 왔고, 다시 강한 태풍이 세번 지나갔습니다.
영하로 내려간 때가 있지만 굳이 묶어주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조금 배게 심었습니다.
포기를 크게 키울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너무 잘 자랐네요.
작년에 이 밭에 처음 와서 지은 배추농사는 그야말로 점수미달...
밭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서 작년에 농사도 힘들고 결과도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겨울에서 봄까지 토질개선에 힘쓴 결과...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토질개선의 결과를 확인하는데는 배추 같은 잎채소가 가장 확실합니다.
저는 배추를 크게 키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작고 단단해서 맛있는 배추가 제 목표인데, 예상보다 너무 자랐습니다.
그래서 김장도 조금 앞당겼습니다.
뭐... 예년에 비하면 앞당긴 것도 아니고 조금 늦었지만, 날씨가 푹한 11월 초에
남들보다 일찍하는 셈이죠.
오후 3:24분 자르기 시작!
식칼 대령했습니다~~
도마는 안챙겼어요~
얼마전 칼가는 분에게서 식칼과 작두를 갈았어요!
흙 묻은 부분을 싹둑 자르고 시든 잎 다 제거합니다.
최대한 정리해서 집에 가져가면 집에 흙도 안 떨어지고 음식물쓰레기도 거의 안 나옵니다.
밭작물을 수확할 때는 대부분 밭에서 거의 90%를 정리하고 가져갑니다.
도저히 들고 옮기기 힘들어서 차를 코 앞까지 대령했어요.
제 차는 완전 농사전용차입니다.
요것이 바로 낱장들입니다.
이것도 절여서 김치통 밑에 깔거나 위에 덮어주면 나중에 묵은지로 먹을 때
아주 맛있습니다.
원래 찌개나 찜을 할 때는 이렇게 질긴 겉잎으로 해야 제맛이 납니다.
배춧잎은 속잎과 겉잎의 쓰임새가 다른데요, 속잎은 부드러워서 생김치로
먹으면 좋고,
겉잎은 섬유질이 많아서 질긴데 오래 익혀서 묵은지가 되면 찜을 하면 기가막힌 맛을 냅니다~
그래서 절대로 버리지 말고 지저분한 부분은 제거하고 다 챙겨오세요.
겉잎 낱장만도 이렇게 큰 비닐에 하나가득 찹니다.
배추 두 포기분량은 되는 듯해요.
집에 도착해서 올려오고... 한숨 돌리고.... 그랬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세번을 타고 올려왔어요~
배추 통이 커서 겨우 15포기인데도 너무 힘들었네요....
오후 7:29분 자르기 시작! 배추절임 시작합니다~
두구두구두구.............................
자.... 이제 배추 성적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에잇!! 잘라보는 거야!!!!
첫번째 배추입니다!
허걱!!!!!!!!!!!!!!!!!!!!!!!!
속이 빼곡~~~~~~~해요!!!!!!!!!!!
앗싸!!!!!!!!!!!!!!!!!!!!!!!!
중륵도 그리 두껍지 않아요!!
중륵이 아주 두꺼우면 맛이 떨어지거든요.
질소 많이 줘서 키우면 중륵이 두꺼워집니다.
쪼개는 배추마다 다 속이 꽉 찼어요~
너무 좋아서 실실 웃음이 나왔습니다. ^^
안찬 놈이 없네...
이러니 15포기지만 더 많은 걸로 예상해야겠네요.
양념 모자라면 어쩌지...
저녁 8:59분. 이제 비닐에 넣습니다!
저는 비닐봉투에 배추를 절입니다.
요즘 공동주택에 사는 분들, 절이기에 적당한 통도 별로 없고
욕조 사용하자니 꺼림칙한 분들은 비닐을 이용해서 해보세요.
제가 이렇게 한지 몇년 되었고 블러그에도 공개했는데, 많은 분들이
아주 좋다고들 하시네요.
9:28분. 소금물 붓기 시작하다.
천일염1 : 물 5의 비율로 소금물을 만듭니다.
좀 따뜻한 물이어야 소금이 빨리 녹습니다.
이 물을 비닐 속에 계속 부어줍니다.
천일염 10kg 짜리를 샀는데 비닐봉지가 4개다 보니 소금이 부족할까봐
조마조마하네요~
케이블타이는 필수입니다. 비닐봉지를 밀봉할 때 쓰죠.
그냥 묶으면 자칫 풀어집니다. 풀어지면 난리나는 거죠.
비닐 안에 배추를 넣을 때, 절임물에 한번 푸욱 담그고 넣으세요.
배추 안에 기포도 빠지고 소금물도 스며드는 효과입니다.
그리고 가급적 큰 배추는 네 토막으로 잘라서 차곡차곡 넣으세요.
배추에 소금물을 다 붓고 비닐 속의 공기를 최대한 뺍니다.
안그래도 절여지면서 배추가 줄어들어 공간이 남습니다.
그러면 그 공간 때문에 배추가 덜 절여지니 공기는 최대한 뺍니다.
그래도 절이다보면 공기가 안에 찹니다.
그럴 때는 저는 타이를 잘라서 비닐을 열고 공기를 한번 빼줍니다.
소금물은 꼭대기까지 채우는 게 아니라 1/3 지점까지만 채웁니다.
많이 부으면 좋겠지만 나중에 물이 나와서 다 찹니다.
너무 촘촘한 배추면 위에 약간 소금을 뿌려줘도 됩니다만 안그래도 됩니다.
빨리 절이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고요.
이제 기다긴 절임대장정을 시작합니다.
저는 절일 때 느긋하게 14시간 이상 절입니다.
전날 저녁에 저렇게 해놓고 자기 전에 비닐 굴려서 뒤집어줍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서 확인해봅니다.
제 배추같이 빼곡한 배추는 16시간 절여야 푸욱 절여지더군요.
속이 안찬 배추는 10시간 정도면 되기도 합니다.
소처럼 튼튼할 거란 예상과 달리 저는 체력이 그리 좋지 못해서 일을 할 때 '천천히 조금씩 꾸준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남들보다 좀 느리지만 결국은 다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원래 지구력이 떨어지고 인내심도 별로인 제가 농사를 하면서 터득한 최고의 깨달음입니다.
'혼자서 어떻게...'이런 생각을 지금은 안합니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이젠 그런 치기를 보일 나이가 아니니까요...
그대신 천천히 꾸준히만 하면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저를 보며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사진이 20장 이상 못 올라가서 요기까지만 올립니다...
간만에 글을 올리려니
참... 낯설어요.......
밀린 숙제를 확 해치운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