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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제자들에게 보내는 글

| 조회수 : 6,542 | 추천수 : 4
작성일 : 2025-09-05 13:10:14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에게 보내는 글

그 해는 4월까지 너무 추웠습니다.
내복에 코트까지 껴입었지만

허허벌판에 학교 건물만

달랑 서 있는

그 곳까지 가려면

몸이 떨렸습니다.

 

 

 서울 변두리

남자 고등학교

국어강사로 교직에

첫발을 내딛은 나.

 5월까지 내내 긴장했고

열띤 수업의 여파로

목까지 쉰채, 몸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교실에 들어서면

맨 끝에 있는 아이들까지

나를 주목하고 바라봐야

신이 났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수업,

하나라도 남는 것이 있는

수업을 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았습니다 

 

 

 어떤 때는 인생을

몇년 쯤 미리 살고 있는 선배로,
어떤 때는 개그맨

같은 위트와 장난으로 

아이들과 호흡을 같이 했습니다.


고입 연합고사가 있던 때였는데
특수지 학교로

연합고사 성적과는 상관없이 입학한
나의 제자들은

마음은 착했지만

애시당초 공부는
마음에도 없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랬던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눈을 반짝이며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가출한 어머니,

바람난 아버지,

아이들은
병든 가정의 문제들로

가슴 아파했습니다.

나를 누나로 생각하고

가출하기 전에
한번 내게 상담을

해보고 싶었노라고
고백하며 우는 제자들.

 

그때 나는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 있고
너희에게는 너희의 인생이 있다고

충고했습니다.


나 역시 부모님이

화목하게 산 것은 아니었기에
부모님 문제로 너의 인생을
망쳐서는 안 되지 않느냐?
그럴수록 더 멋지게 살아야 한다고

내 체험까지
들려주며 그들을 다독였습니다.

 

그해 봄부터  가을까지 
아이들과 나는 하나였습니다.

사립공채를 준비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나오던 날

아이들은 울면서

교문 끝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그해 사립공채에서
여자 국어교사는 1명만 뽑았고
나는 그 시험을 거부하면서

교사의 길을 접었습니다.

 

올해초 이사를 하기위해
서랍을 정리하다
그때 제자들이 
내게 보낸 한 뭉치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이 학교에 와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고

국어라는 과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갔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구요.

수업시간마다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선생님과

저희 악동들이 이루는

국어 시간은 언제나 재미있고

활기차기만 하지는 않았죠.

상황을 망각한 채

계속 지저귀는 저희들

때문에 속도 많이 상하시고

흰 머리도 늘어난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누나 같고 또 친구 같아요.

언제나 박력을 최고로 삼으시고

수업시간을

사나이 못지 않는

여성의 박력으로

꽉 잡아 놓으시는 선생님!

그 박력 

패기 잊지 마세요. 」

「선생님이 가시고 난 뒤

국어시간이 너무 심심해졌어요.

목이 쉬도록 열심히

우리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이 자꾸 보고 싶어요.

선생님 꼭 시험에 붙으셔서

저희 학교로 돌아와 주세요.」


아이들의 편지를
읽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힘들기만
했던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 때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준것은

너무 작은 것이었는데
아이들은 내게 그들의
마음을 다 주었음을
수십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선생에게

한 없는 사랑을 주었던
제자들에게 늦게나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은하수
    '25.9.5 1:13 PM

    저는 지금 베트남 한달 살기중입니다.
    어제 현지식당에서 오크라 볶음을 3만5천동에
    먹었습니다. 1800원 남짓에 몸에 좋고 맛좋은 야채볶음을 먹었네요. 옆에 있는 접시엔 맛조개 모닝글로리 볶음이 담겨 있네요. 3천원밖에 안합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다 잠깐 힐링하고 있어요.

  • 2. 요리보고
    '25.9.5 1:53 PM

    그시절 힘든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크라는 가끔 마트에서 보이긴 하는데, 어떻게 요리해야 될지 엄두가 안나서 보기만 했어요.
    그 맛이 궁금합니다.
    모처럼 여유있는 시간 보내시는데, 내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은하수
    '25.9.6 6:24 AM

    시절인연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수학여행도 같이 가서 즐겁게 노래 부르고 함께 잘 지냈던 기억. 하루 하루 수업이
    너무 꽉차고 행복했었습니다.
    오크라는 마처럼 진액이 나오는데 먹고나면 속이 편안했어요. 자주 먹어야겠습니다. 베트남 있는동안...
    1바구니 만동 밖에 안해요.

  • 3. 샤방이
    '25.9.5 6:10 PM - 삭제된댓글

    어려운 시기 , 그 시기를 잘 보내고 어찌 될지 모르는 인생의 멘토는 만나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더군요, 그들에겐 영원히 기억되실 샘이 되시겠네요

  • 4. 샤방이
    '25.9.5 6:14 PM

    어려운 시기 , 인정받고 사랑받고 인생의 전환점 멘토를 만난 그 제자들은 축복 받았네요. 영원히 기억되는 샘이 되시겠네요
    인천을 배경으로 제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내용의 소설이 떠오르네요

  • 은하수
    '25.9.6 6:28 AM

    지나고 보니 좀더 아이들곁에 머물러야 했는데 아쉽기만 합니다.
    그런데 제가 몸이 약해서 2시간 출근거리에 수업하고 나면 감기몸살로 약을 계속 먹어야했어요. 그래도 아이들과의 추억은 평생 즐거운 기억입니다.

  • 5. 그리피스
    '25.9.5 10:30 PM

    베트남어디서하시는건가요
    저도베트남좋아요

  • 은하수
    '25.9.6 6:25 AM

    작년에도 한달살기하고 올해도 한달살기 하고 있어요. 다낭.호이안 보름씩 살고 있습니다.

  • 6. 꽃피고새울면
    '25.9.6 3:04 PM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님 이셨을지 충분히 짐작이 돼요
    더구나 남학생들에게 누나 같은 선생님으로
    자리 잡기까지 힘듦도 많았겠지요
    그 아이들도 문득문득 훌륭한 스승님 안부를
    궁금해 할테지요
    멋진 은하수님의 삶의 편린들 늘 감동입니다

  • 은하수
    '25.9.6 4:04 PM

    댓글이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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