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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19금)시적순간, 이것도 실화입니다.

| 조회수 : 17,972 | 추천수 : 5
작성일 : 2013-10-25 14:14:35

#1

어젯밤일이다. H씨 퇴근이 늦었다.

9시 뉴스 보고 있는데, ‘세대차량이 도착했습니다.’는 인터폰의 알림이 들렸다.

잠시 후,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현관 앞에 섰다. 두 팔 활짝 벌리고 빙그레 웃으며.

 

“어서 와요. 수고했어요.” H씨를 맞았다.

현관 들어서며 켜진 불과 함께 내 모습을 본 H씨.

 

“피터 팬 같아, 아저씨 피터 팬” 하며 웃기에 살짝 안으며,

“왠 피터 팬?” 하니.

 

“좋네, 그렇게 활짝 웃어주는 게. 환한 게 피터 팬 같았어.” 하며 날 꼭 안는다. ^^&




 

<요즘 자주 해먹는 고구마줄기 음식들>

고추장 풀어 고구마 줄기 지짐을 하려다가 먹다 남은 김치 꼭 짜서 넣고 함께 찌개로 끊였다.

고구마줄기 볶음, 들기름이나 올리브유 두르고 통마늘과 껍질 벗겨 데쳐놓은 고구마 줄기 넣고 볶는다.

마늘향이 퍼질 때쯤 대추,양파, 아몬드 같은 것 더 넣고 소금과 간장으로 간했다.

세 번째 사진은 마지막에 복분자효소를 넣어 색과 단맛을 더한 거다.

맛은? 심심한 듯 식감도 다르고 고구마순은 사실 별 맛없었다. 하지만 중독성 있는 뭣처럼 계속해서 손이 간다.

 

#2

  H씨 출근이 나보다 30여분 빠르다.

그래서 출근 준비로 바쁜 H씨와 달리 나는 30여분 더 단잠에 빠져 있는 편이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침대서 뒹굴 거리며 가물가물 게으름 피우다가 H씨 인기척에,

“운전 조심해요, 나 한 번 안아주고 가지?”라고 했더니. H씨 누워있는 내게와 한 번 토닥이더니,

“게으른 아저씨 같으니라고. 그래서 안 늙나봐. 늙는 것도 부지런해야하는데. 게으른 피터팬!”하며 나갔다.

 

시적순간이다. 아니 시적순간인 것 같았다.

 

그런데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까무룩 하던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뭐야! 어제부터 피터팬 얘기하더니 결국은 게으르고 철없다는 거였어.’하는 생각에 후다닥 일어났다.

덕분에 시간이 좀 있어 집 좀 치우고나오려다가 그냥 출근했다. 소심한 복수로.

 


 
<무청과 묵은 총각김치 된장 지짐>

무청 겉잎 뜯어다가 우거지로 지졌다. 김장철이 다가왔지만 작년 총각김치가 아직 한통이나 남아있다.

적당히 물에 씻어 된장 풀고 우거지처럼 지졌다. 갓 뜯어온 무청우거지와는 다른 맛이 있다.

----------------------------------------------------------------------------------------------- 

K에게

 

세상을 보는 (괄호)에 대한 답은 찾았니?

감기 기운 있다던데, 좀 어때?

주말까지 기온이 내려간다고 하니 옷 든든히 챙겨라.

 

‘나는 세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하는 물음의 끝에

‘그럼 세상은 날 뭐로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덧붙였다가 부질없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세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든 세상이 날 뭐로 보고 취급하든, 결국 내 삶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겐 꿈이 있다.

나이 들수록 근사한 사람이 되자는. 근사한 삶이지. 담담하며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

어떻게 무엇으로 그런 삶에 도달할지 아직 정해진 바 없다.

 

다만, ‘이기적, 개인적, 제한적 생각들이 불러오는 어리석음을 놓아 버린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 것, 나 아닌 타자의 고통 앞에서 내 이해관계를 따지고 행동하는 것.

그것으로 나(우리)와 남을 구분하는 것.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어때?’ 하는 생각들로 ‘배려’를 잊은 행동들.

시간이든 공간이든 스스로 제한하고 나아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들도 제약하는 생각들.

이런 것들이 어리석음이고 현재라는 시공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까닭이 아닌지 묻는 것으로

나의 (괄호)를 채워보아야겠다.

 

K야

부디 너의 (괄호)를 채우는 일을 미루지 말거라. 치열하게 채워보길 바란다.

오늘도 행복하렴.

 

 

 
<마지막 가을 상추 따다 부추김치와 두부찌개.

냉장고 구석에서 색이 바래가고 있던 숙주와 양파, 마늘볶음을 곤드레밥과 함께.>

 
<K가 왔던 시월 초, 팥 칼국수와 깻잎 전>


<베란다서 얌전히 곶감이 되고 있는 청도반시,

희한하게 내가 맛보면 떫은데 H씨 맛 본건 단맛이 제법 들어 곶감이 되고 있더라는…….>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후추
    '13.10.25 2:37 PM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행복할 k도..

  • 오후에
    '13.10.25 2:47 PM

    아름답긴요. 주책이죠.

    오늘도 우리 모두 행복하길 ^ ^ *

  • 2. 햇살mom
    '13.10.25 3:56 PM

    행복이 묻어나네요

  • 오후에
    '13.10.25 5:18 PM

    좋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 3. 프레디맘
    '13.10.25 4:02 PM

    오후에 님이 저번에 올린 포스팅 외국인친구
    보여주니 나물 보고 자꾸 파스타 같데요 ^^
    참 아이디어 좋다 너도 좀 해봐봐 그러고 갔어요.
    전 나물 하기 힘들거 같아 못하는 데 참 부지런 하신 거 같아요~

  • 오후에
    '13.10.25 5:20 PM

    나물 보고 파스타 같다.... 어떤 나물였을까요?

    나물이 그리 힘든건 아닌데요. 오히려 간단하고 쉬울수도 있답니다.

    곧 해가 지겠네요. 좋은 주말 되시길...

  • 4. 내이름은룰라
    '13.10.25 6:21 PM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현관 앞에 섰다. 두 팔 활짝 벌리고 빙그레 웃으며.



    “어서 와요. 수고했어요.” H씨를 맞았다.

    ...................................................

    저도 이거 남편오면 해줄려구요^^



    오후에님 늘 읽고 가는 아줌마에요

  • 오후에
    '13.10.29 10:41 AM

    해보셨습니까?

    가끔 저도 잊을만 하면 한번씩 해보려고 합니다.
    노력대비 반응이 너무 좋더군요. ^^

  • 5. 백세만세
    '13.10.25 8:56 PM

    19)금, 실화. 제목에 이런 말 들어있는 것 보고 "이상한 글이 올라왔나보네."하며(어떨 때 정신나간 사람들이 이상한 거 올리기도 하잖아요.) 클릭 안하려고 하다가 작성자가 오후에님인 거 보고 클릭해서 읽었어요.ㅎㅎ

  • 오후에
    '13.10.29 10:42 AM

    ㅎㅎ 낚이신건가요?

    그냥 좀 오글거리는 것 같아 19금)을 달았습니다. 이해하시길....

  • 6. 예쁜솔
    '13.10.25 10:51 PM

    #1...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가을에 보면 좋을 진한 멜로영화의 한 장면...
    아~~다음 장면은...

  • 오후에
    '13.10.29 10:43 AM

    다음 장면은 상상 금지입니다. ㅎㅎ

  • 7. 진진달래
    '13.10.26 2:56 PM

    삶의 마인드가 좋으시네요..근사한사람이 돼자는게..저도 반성하네요..맬 아무 생각엄시 살아가고 베풀기보단 받으려하고..날 되돌아 볼께요..

  • 오후에
    '13.10.29 10:44 AM

    나이들수록 인간저으로 근사해지는 것....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꿈이라도 꿔보자 하고 있습니다.

  • 8. 소연
    '13.10.26 10:44 PM

    ㅎㅎ 우리집 피터팬은 벌써 코를 골고 있을뿐이고...
    담주에 알타리지짐 찜..해요

  • 오후에
    '13.10.29 10:46 AM

    앗~ 다음주 메뉴가지 미리 가지고 계시다니
    부러울따름이고....

    저흰 한끼 앞을 내다보지 못할만큼 그때그때 대충대충이라서요. ㅋ

  • 9. 웃음보
    '13.10.27 11:25 AM

    남편이랑 다투고 나왔는데 이글 보고 하미터면 "미안해 "하고 먼저 사과 잔화 할 뻔 했어요 ㅎㅎㅎ

  • 오후에
    '13.10.29 10:49 AM

    제 경험으로는 사과는 빨리할수록 좋더군요.
    저야 뭐 주로 제가 잘못한일이 많았던지라.... 경우가 다를수 있지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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