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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아니면 입 다물고 있으라고?

이준구 조회수 : 259
작성일 : 2010-12-14 20:40:06
전문가가 아니면 입 다물고 있으라고?

이준구

“4대강 문제는 토목공사 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다룰 문제지 종교인들의 영역은 아니
다.”라는 한 종교 지도자의 발언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바로 그 종단 안에서도 그 발
언이 나오자마자 강력하게 반박하는 성명서가 발표되는 등 이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양상
으로 치닫고 있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위계질서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명서가 발표되었다는
것은 그 발언으로 인해 종단 안에 얼마나 깊은 골이 패이게 되었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이 사태를 지켜보던 한 보수언론은 ‘4대강 문제가 인권, 정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의 영역
에 속한 문제가 아니라 치수와 개발 같은 과학적, 기술적, 세속적 문제’라는 사설을 통해 그
종교 지도자의 편을 들고 나섰다.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세속의 전문가들도 어느
방향이 옳은지 판단하기 힘든 터에 종교가 이런 문제에 발을 디디면 길을 잃게 된다는 점잖
은 충고까지 곁들이고 있다.

종교계의 4대강사업 반대를 늘 껄끄럽게 느껴왔을 정부로서는 “이게 웬 떡이냐?”라고 쾌
재를 부를 만도 하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었으니 이만저만 고마
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 동안 정부가 해온 말들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런 논리로
종교계의 반대를 무력화하려 했던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종교 지도자의 발언이나
그 보수언론의 사설이 아무리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이 미묘한 상황에서
명백하게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편향성을 가졌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전문가가 아니면 입을 다물라는 말은 반대하는 사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불순한 의도
가 그 밑에 깔려 있다. 어떤 이슈에 대해 그 방면의 전문가만이 발언할 수 있다고 하면 정
부가 무슨 일을 하든 99%의 국민은 언제나 입을 꼭 닫고 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경
제에 대해서만 발언할 수 있을 뿐, 정치에 대해 발언해도 안 되고, 교육에 관해 발언해도
안 될 뿐더러, 환경에 대해 발언해도 안 된다. 이렇게 모든 언로가 꽁꽁 막힌 비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독주를 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만약 4대강사업에 관해 전문가들이 제 몫을 다해줬다면 구태여 종교인이 나설 필요가 없
었을 것이다. 아무리 사전 준비가 철저하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 완벽한 계획이라는 것은 있
을 수 없다. 하물며 4대강사업처럼 불과 몇 달 동안 번개에 콩 구워 먹듯 작성된 계획이라
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게 졸속으로 만들어진 계획에 숱한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을 것
임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그러나 전문가를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와는 아무 상
관이 없는 일이라는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문제점을 지적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자기검열의 철옹성을 쌓고 그 속에 숨어버리는 통에 정부는 그 어떤 견
제도 받지 않고 위험한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 4대강사업 문제를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이 구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정부의 일방적 독주를 방조하고 있는 셈이다.

4대강사업에 대해 전문가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데는 전문가가 개입할 여지를 막아버
린 정부의 교묘한 책략도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이 사업에 기술적 측면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 측면 역시 이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갖고 있다. 22조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이만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
제학자인 내가 4대강사업에 대해 발언을 하면 왜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발언을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진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4대강사업을 비경제적 사업으로 둔갑시킨 정부
의 책략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정부는 이 사업이 재해예방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5
백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 공공사업에 적용되는 예비타당성조사 의무에서 해방시켰다.
그 결과 변변한 비용편익분석조차 없이 단군 이래 최대라고 하는 초대형 토목공사가 시작되
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비용편익분석이 없으니 경제적 측면에서 이 사업에
대해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어졌고, 이에 따라 경제적 측면이 가장 중시되어야 할 사업이 비
경제적 사업으로 둔갑되어 버렸다.

이 정부는 출범 초 한반도대운하사업에서 예상되는 편익이 비용의 2.3배나 된다는 허황된
비용편익분석으로 여론의 포화를 맞은 적이 있다. 그런 쓰라린 추억이 아예 비용편익분석
없이 공사를 강행하는 무리수를 두게 만든 직접적 원인이 되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또한 아
무리 편익을 부풀려 보았자 그 어마어마한 비용을 정당화시킬 수 없음을 잘 알기에 그런 무
리수를 둔 점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비경제적 사업으로 둔갑시킴으로써 정부가 얻은 가장 큰 이득은 경제적 평가가 개
입할 여지를 없앴다는 데 있다. 어떤 공공사업을 실행에 옮길 가치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가
장 객관적인 잣대는 경제적 타당성이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판정은 곧바로 그 사업을
수행할 가치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비경제적 사업으로 둔갑한 4대강사
업의 경우에는 경제적 평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고, 따라서 사업 수행의 타당성 여부를 평가
할 객관적 근거가 없어졌다.

비경제적 사업으로서의 4대강사업 관련 논의는 영혼을 팔아버린 사이비 전문가들의 무대
가 되어 버렸다.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이 똑같은 오염도를 가진 물을 두 배로 늘리면 오염
도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해괴망칙한 논리로 4대강사업을 두둔하고 있는 것을 본다. 보를 쌓
아 가두어둔 물의 양을 늘리면 저절로 수질이 정화된다는 정부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문가라는 사람이 초등학생에게 비웃음을 살 만한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전문가라는 사람이 TV
에 출연해 작년에 전국적으로 제한급수의 대상이 된 가정이 무려 150만호나 된다는 통계수
치를 제시한다. 그러나 제한급수의 대상이 된 지역이 4대강사업 지역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밀집해 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아 버린다. 진정성이 없는 헛된 통계수치로 국민을 현
혹시키려는 사람을 어찌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사이비 전문가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사실 모든 전문가가 4대강사업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거나 정부 편을 들고 있는 것은 아
니다. 수많은 깨어 있는 전문가들이 그 사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지
적에 대해 정부가 성의 있는 답변이나 해명을 내놓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사이비 전문가
들을 동원해 엉터리 논리로 물타기작전이나 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의
논의에 맡기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기술적 측면에 대해 거의 문외한에 가깝다. 그러나 전문가라고 하는 사
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린지를 분별할 능력 정도는 갖고 있
다. 신부님도, 목사님도, 스님도, 교무님도 모두 나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즉
4대강사업과 관련한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분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4대강사업을 반대했을 리 없다. 널리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해 경청하고 오랜 고심 끝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분
들에게 입 다물고 전문가들에게 맡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되었든, 언론이 되었든, 종교 지도자가 되었든 어느 누구도 그렇게 이치에 닿지 않는 요구
를 할 권리가 없다.

따지고 보면 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대화와 소통의 부족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정부가 귀를 열고 반대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경청하지 않는 한 4대강사업 문제의
합리적 해결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 많은 반대 의견에 귀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반대파의
입을 막아 버린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의 싹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여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토목공사의 끝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IP : 121.162.xxx.111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이준구 교수
    '10.12.15 12:24 AM (210.121.xxx.67)

    이 분, 양심있고 반듯한 학자라 좋아합니다. 학문에도 충실하고요.

    저도 한때,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가만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언론의 자유 좋다는 게 뭔가요..내 수준에서, 내 입장에서 의견 표명을 해야

    아는 사람이 알려주고, 바로잡아 주고 하는 거지요..사람들이 틀렸다고 손가락질 받을까봐

    쪽팔려서 아예 입을 다무는데..그게 민주주의가 발전 못하는 가장 큰 이유죠.

    잘난 척하고는 다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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