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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만난 개념찬 어르신

어르신, 내내 건강하? 조회수 : 1,929
작성일 : 2010-06-28 16:54:15
어제, 결혼식장에 갔다가 오는 길이었어요.
일요일 오후라 어지간한 지하철은 한산하지만, 9호선만큼은 어지간해서는 자리가 잘 나질 않는 터라 우리집 10살짜리 꼬맹이는 노약자석에 앉혔습니다.
7-8살때만해도 별 고민없이 앉혔는데 10살이나 되다보니 아무리 키와 몸집이 작아도(아직 120도 안 되니) 앉혀야하나마나  좀 고민이 되긴 됩니다. 저는 키가 컸던 편이라 2학년때부터는 자리에 안 앉았었는데요... 게다가 딸아이는 요즘 추세에 맞는 동안의 작디작은 하얀 얼굴(한 6살-7살쯤으로 보인다고.. 그러더라구요-.-)에 호리낭창한지라, 자리양보가 물리적 나이더냐, 신체적으로 열등하면 앉아야지..  어르신들 오면 자리를 비켜드리자 싶어서 앉혔어요.
근데.. 저도 참 맺힌 게 있어서요..... 할머니들께는 자리를 곧잘 내드립니다. 제 어머니 생각도 나고 할머니 생각도 나고.... 그런데 그게 할아버지들한테는 인심이 야주 야박해집니다. 지하철에서 재향군인회출신(아마 어버이연합도 그 부류일 것 같은데) 할아버지들한테 7칸짜리 자리에 앉아서 졸다가 들고 계시던 작대기로 아주 세게(정말 머리 터지는 줄 알았어요. 게다가 자다가 맞으니 2배...힝) 두 번이나 맞은 적이 몇 번 있었던 데다가 지하철에서 변태노인네들한테 몇 번 데인 터라 아주 호호할아버지 혹은 술취해서 비틀거리는 노인(이때는 양보가 아니라 피하는 거죠-.-) 아닌 다음엔 자리양보를 잘 안하곤 합니다. 이 대원칙은 울 딸래미를 노약자석에 앉혔을 경우에도 마찬가지고요.
하여간, 노약자석에 아이를 앉히고 수다를 떨고 있는데 혈색좋고 덩치 큰 할아버지가 등산가방을 메고 타시더니  노약자석을 휘 둘러보더니만 우리 딸내미한테 "너 일어나! 거기 왜 앉아있어!"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같이 탄 할머니한테 여기 앉으라고 손짓했어요.

참고로, 자리 배치가

4-50대 추정 아저씨          70세추청 할머니       60세추정 할머니

                    통                            로

70세 추정 할아버지       빈 자리                     우리 딸

이랬습니다. 이 할아버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맞은 편에 계시던 할머니 두 분이 벌떡 일어나시며 울 딸에게 "애기야, 여기 와서 앉아라"하셨고 그 모습을 보고는 도저히 앉아있기가 민망했던 50대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할머니께 모자란 자리를 양보하며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 했습니다.
(솔직히 당시 제 마음은 왜 우리 딸이 일어나야 되냐는 거 였습니다. 엄청 젊어보이는 스타일이 아닌 담에야 60으론 절-대 안 보이는 아저씨에겐 아뭇소리 못하더니 왜 어린 여자아이를 일으켜세워야 했는지.. 그 할아버지는.. 참 거시기했습니다. 제 머리를 때렸던 그 할아버지들도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멀쩡한 양복입은 젊은이들 사이에 앉아 꾸벅거리던 저를 내리쳤던 것이었더라고요...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이런 젠장)

그 어버이연합 혹은 재향군인회(제 머리를 때리 두 분 모두 이 뱃지를 달고 있었거든요) 스타일의 할아버지는 옆에 앉아계시던 얌전한 학자풍의 할아버지와 '작금의 사태'에 대해 담소라도 나누고 싶으셨던가 봅니다.
"내가 나이가 84인데......웅얼웅얼(풍채는 저엉말 좋으신데 발음은 엉성하더이다)....여기 좌석 그림을 보면 애기가 있지 이렇게 큰 애는 없고.... 우리 어렸을 때는 이만할 때 밭도 매고 나무도 하고....웅얼웅얼..... 전쟁터에 나가서... 웅얼웅얼..... 좌익이 10년동안 정권을 잡아서.... 둥얼웅얼... 내 또래가 이 나라를 다 일궈놨더니 빨갱이들이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둥얼웅얼..... 그래도 지금이라도 바로 잡으려고 하니 다행...웅얼웅얼....."
하도 입으로 웅얼웅얼 하시기에 다 들을 수는 없었는데 저 내용을 한 3번쯤 반복하셨지요, 아마?
이 할아버지가 3번이나 같은 내용을  반복한 이유는 듣고 계시던 옆자리의 할아버지가 동조하시기는커녕 '글쎄요' 하시거나 '다 그렇진 않지요', '그게 다 젊은이들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김수환 추기경께서는..'하시며 자꾸 엇박자를 놓으셨기 때문이었어요.
4번째로 어버이연합 회원께서 말씀하시던 순간, 학자풍 할아버지가 내리실 역이었는지 벌떡 일어나시며
"자꾸 그렇게 생각하며 살면 젊은 사람들한테 욕먹습니다. 김수환추기경께서 다 내탓이라고 하신 말씀 기억 안나십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그렇게 맘에 들지 않는다면, 그걸 그렇게 교육시킨 건 우리들이고 선생님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선생님 말씀대로 '세상이 이렇게 잘못'된 게 선생님 잘못이겠군요?"하시며 살짝 짜증섞인 말씀을 하시며 내리시더군요.
'동지인 줄로만 알았던 노인네'에게 제대로 한 방 잡수신 연합회원께선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다고... 나는 하나도 잘못한 거 없어..."를 중얼거리시다가 약간 어벙벙한 얼굴로 다음 역에서 내리셨고요.
당시 제 심정으로는 그 먼저 내리신 분께 '멋지십니다!'하고 인사라도 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사고가 경직되고 내가 하는 것, 내가 아는 것만이 최선임을 부르짖게 되는 게 사실임을 제가 나이가 슬슬 먹어가면서 인식하거든요. 친구들이 변해가고 선후배가 기상화되고 저 역시 그렇게 보이겠지요 아마.
학자 할아버지가 멋진 건 '모든 것이 내 탓'임을 아시기 때문 아닐까 싶은 하루였습니다. 더불어 모든 걸 좌익정권 탓으로 돌리지 않으시던 것도 신선했고요.

뱀발 1. 참... 울 딸이 5살때인가? 오늘같은 일이 있긴 했군요. '여긴 내 자리야'를 외치며 애를 꺼내고(이 표현이 맞을 듯) 털석 앉던 혈색좋은 할아버지(어쩌면... 딸과 엄마는 같은 운명이라던가요..? 몹쓸 재향군인회)한테 자리를 내드리던-.- 그 때는 제 뒤에 있던 학생들이 돈내기를 했는지 거봐 내 말이 맞지? 쟤 일어났잖아하며 돈을 주고 받더군요. 참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인가 봅니다. 울 아버지께서 저런 황당한 할아버지가 아니고 저런 시아버지가 내 시아버지가 아님을 감사해했던 날...

뱀발2. 학동역 화장실 앞 자판기에 콘돔과 아이들 캬라멜이 함께 들어가 있더군요. 아이가 풍선부는 캐릭터(전   제대로 못 봐서 그게 콘돔 캐릭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얘길하며 콘돔이 뭐야? 하기에 그럼 여기서 큰 목소리로 설명해도 될까? 했더니 어.. 어? 응.. 하다가 아냐 됐어, 뭔지 짐작이 가... 하며 난감한 표정을 하더군요. 그러더니 "왜 그런 걸 애들 거랑 같이 놨지?" 하더라구요. 아 이 귀신같은 눈치....(넌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니??? 그래도 제대로 된 성교육은 해 줘야 하는데..) 근데 왜 정말 그 자판기는 제품을 그렇게 구성해 놨을까요?
IP : 119.196.xxx.20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할말이..
    '10.6.28 5:07 PM (122.37.xxx.51)

    잘 읽었습니다
    두가진데요 개념꽉찬 할아버님껜 저도 존경심이 우러나구요
    노약자석이 어르신만의 공간인지, 거동이 불편하거나 아주 어린아이들, 임신부들 기타 꼭앉아가야할 사람들의 공간 아니겠어요 지하철안 출퇴근시간때외에도 평소 자리가 텅텅비는경우는 많지않더군요 그러면 쫌 나눠앉도록 해야지 나이 많으신 어른신네들의 특별석인듯 자리확보하려는 분들 (일부) 넓은 맘을 가지셨으면합니다
    버스안에서 많이 맞아본 경험이 떠오릅니다 연약한 몸인데도요

  • 2. 너그럽게
    '10.6.28 5:12 PM (121.128.xxx.151)

    노인분들이 큰소리 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여 있습니다. 그래서
    전철만 타시면 기세등등 해지시는 겁니다. 벼슬자리에요. 저는 그런 꼴 보기 싫어
    노약자 석은 근처도 안 갑니다.

  • 3. 저도
    '10.6.28 5:28 PM (61.84.xxx.74)

    임신6,7개월인가... 텅빈 노약자석에 한번 앉았다가 옴팡지게 욕얻어 먹은 기억이납니다. 어쩜 그렇게 몰상식한지... 임산부한테 별별소리를 다 하더군요. 일어나서 다른 자리로 옮기는데도 제 뒤통수에 대고 계속... 진짜 평소 제성격대로 한판 하고 싶었으나 뱃속 아기를 생각해서 대꾸도 안하고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았지요. 진짜 노약자석이 노인지정석인가붑니다.

  • 4. ...
    '10.6.28 5:58 PM (122.43.xxx.99)

    세상에는 어르신과 노인네와 늙은이가 함께 살아가지요.

  • 5. 다른내용이지만..
    '10.6.28 6:15 PM (218.159.xxx.125)

    제가 타는 마을버스에도 이상한 늙은이(?)가 계시는데요..
    그분은 마을버스만 오면 정말 미친듯이 달려오십니다..외모는 안경안쓴 KFC할아버지 같은.
    인상도 나뻐보이지는 않지만...항상 달려오셔서 일번으로 타십니다..정말 언제나..
    누가 있으면 밀쳐내고 꼭..일번으로 타셔야 직성이 풀리시는지..
    그런데..그날 버스 일번을 노치신거죠..그래서 뒷문으로 타시더라고요..
    뒷문으로 타셔서..신문을 꺼내드시더라고요.(그래서..영자신문 읽으시더라고요.)
    버스기사님이..한말씀하시더라고요."아저씨..카드찍으세요"
    못들으신건지..안들으신척하신지..한번더 말씀하고 난뒤에야...아~C발 말을 고따위로 해...
    부터 시작..육두문자들이오 가더라고요..
    걍 찍으시면 될일을 (자신이 잘못해하셔 놓구서는)강아지..송아지 찾으시고..
    결국 다른 승객도 한두명 아저씨가 잘못했다고 하닌깐...쪽(?)팔린지..육두문자 난발하시며
    내리더라고요..
    아~~꽉막힌 영감들은...지하철에만 존재하는거 아닙니다..
    (참고로 저 그분 부인 봤는데...완전 깡말랐습니다...불쌍해보였어요..)

  • 6. 혹시
    '10.6.28 6:17 PM (122.36.xxx.11)

    말예요. 저렇게 지팡이로 머리를 때리는 만행을 저지를때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경찰에 전화하면 어떨까요?
    같이 경찰에 가서 시비를 가리자고요.
    노약자석에 앉은 것과 남의 머리를 함부로 때린 것 중
    누구 죄가 더 큰지 가리자고...계속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저 역시 저런 노인네들 보기도 싫습니다만
    젊은이와 '공존'해야 하는 예의를 가르치고 싶군요.
    노인만 사는 세상이 아닌데 어째서 저런 만행을 노인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것일까요?
    물론 경찰서 안가고 욕은 더 먹겠지만
    젊은이들이 저렇게 나오는 걸 두어번 경험하고 나면
    그들도 조심하지 않을까요? 아닌가? 구제불능일까?
    암튼 전 경찰서 갈일이라고 생각되는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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