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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아름답다???
뿐만이 아니죠. 외국영화나 미드를 볼 때도 우리말 자막이 입혀진 것을 다운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제가 미드 베스트5로 꼽는 것을 다운받았습니다. <프렌즈> 한글판, <위기의 주부들> 한글판, <보스턴 리갈> 한글판, <섹스 앤 더 시티> 한글판, <하우스> 한글판.
또 요즘 배용준이 책을 펴냈는데 그와 관련해서 이런 기사도 심심찮게 마주칠 수가 있더라구요?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9월 23일 ‘한글판’이 발간된 데 이어 같은 달 28일에 ‘일본어판’으로도 발간이 되었다. <한국의....>는 한일 양국에서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고 그 인기에 힘입어 ‘영어판’에 대한 문의도 줄을 잇고 있다.”
이쯤 되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채셨나요?^^ 물론 맞는 말입니다. 우리말로 번역이 되었다면 당연히 한글로 표기되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글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한국어판’이라고 해야 한답니다.
현재 주한 미대사인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젊은 시절에 충남 예산에서 교편을 잡았었다고도 하구요. 아무튼 그런 스티븐스 대사가 좋아하는 한국문학 작품으로 <백범일지>와 김소월 시집을 꼽았던 신문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1975년이었던가, 그 즈음에 한국어와 영어로 된 김소월 시집을 접하고 김소월을 좋아하게 됐대요.
그 말은 김소월 시집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 적어도 1975년 이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김소월 시집은 언제 최초로 영어판이 나왔을까. 저는 1959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단, 중국문학과 일본문학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 영어로 번역을 한 것에 비해 김소월 시집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이 영어로 옮겼죠. (그간 한국문학은 한국인이 직접 외국어로 옮긴 사례가 많았답니다)
어쨌든 비유를 하자면 포토샵 한글판, 프렌즈 한글판, 배용준 책 한글판이라고 하는 것은 영어로 옮겨진 김소월 시집을 ‘알파벳판’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인가요, 최근에 한글을 표기수단으로 삼기로 한 소수민족이? 바로 그 찌아찌아족의 경우를 생각하면 저 사실을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그들이 ‘동일한 표기수단 체계’를 사용한다고 해도 찌아찌아족 언어와 한국어는 근본적으로 다른 언어입니다. 그래서 한글로 쓰인 찌아찌아족의 책을 우리가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게 될지는 몰라도 뜻은 전~~~혀 해석할 수가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셰익스피어 작품을 찌아찌아어로 번역을 했다, 그런데 찌아찌아어의 표기수단도 한글이다.... 그랬을 때 그것은 ‘찌아찌아어판’이 되는 것이지 ‘한글판’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어쨌거나 문자를 가지게 된 것을 계기로 찌아찌아족이 앞으로 마구마구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일본어로 번역된 셰익스피어 작품을 마찬가지로 ‘가나판’이라고 하지는 않죠. 일본어판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오늘은 또 유인촌 장관님께서 이런 인터뷰를 하셨더군요. 한글을 국가브랜드로 육성시키겠다... 우리의 완장 장관님께서 말씀하시길 “한글은 물론 영어도 배워야 하는 글로벌 세상이 됐다, 청소년들이 차라리 두 개의 언어 외에 중국어와 일본어도 배워서 아시아의 리더가 될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하셨답니다. 덧붙여 “다만 아쉬운 것은 한글을 배우는 청소년들이 언어를 구사하는 훈련이 안 돼 있다. 꾸준히 글 쓰고, 말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하셨대구요.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시구요. 완장 장관님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니까. 뭐 아주 틀린 소리도 아니구요.--; 저는 다만 저런 것도 우리가 자주 범하는 실수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TV 자막이 한글을 파괴한다, ‘꽃, 달, 별’과 같은 단어들을 접할 때마다 한글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된다, 아나운서라고 해서 모두 한글을 제대로 발음하는 것은 아니다 등등처럼. 그때도 ‘꿀벅지에 뻑가는 남자 출연자들, 맛있는 새우젖’과 같은 자막 때문에 파괴당하는 것은 한국어이고 우리를 감동에 젖게 하는 단어들도 한국어 단어들입니다. 아나운서들이 수습 때 훈련받는 것도 ‘한국어 발음’ 훈련이죠.
그리고 한 가지 덧붙여, 최근에 어떤 분이 한글전용론을 비판하는 글을 자주 퍼 나르시던데 먼저, 저는 그 주장들이 아주 일리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어는 싫건 좋건 간에 한자를 영양분 삼아 발전을 해왔죠. 따라서 한자를 잘 아는 것은 한국어를 ‘잘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한국어를 잘하면 비판적 사고력도 더 쑥쑥 키울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시키는 것에 찬성하는 쪽입니다. ‘상용 2000자’ 식으로 해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죠.
요네하라 마리라는 일본 작가가 그런 말을 했어요. (이 분은 작가면서 아주 유능한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외국어 습득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려면 ‘개성적 기본’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요. ‘개성적 기본’이 확실하게 잡혀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언어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 외국어를 배우는 데에서도 유리한데, ‘개성적 기본’이라는 것은 어렸을 때 외국어보다는 모국어를 확실하게 익히게 하고 모국어에서도 표준어보다는 사투리를 사용할 때 더 확실하게 잡힌다나 어쩐다나... (일본의 유명한 언어학자가 한 말인데, 요네하라 마리가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인용했더라구요. 자기도 우선은 일본어를 잘 했기에 러시아어, 영어 등을 빠른 시간 내에, 정확히 습득할 수 있었다면서....)
그녀의 말처럼 저는 한자를 잘 알면 한국어를 더 잘 할 수 있게 되고, 한국어를 잘하면 아이들의 ‘개성적 기본’이 그만큼 더 단단히 확립되기 때문에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랍니다. 제가 굳이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제 생각에, 현재 한글전용론에서 논란이 될 것은 그 점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글전용론’이란 공적인 문서를 작성할 때 표기를 한글로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발표하는 문서에서는 콩글리쉬를 쓰든 한자 혼용을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출판이라는 공적인 창구를 거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뜻이 한자 혼용을 하고 싶으면, 하면 됩니다. 한글전용론이 법적 효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본론>을 번역한 김수행 교수도 그래서 번역본 초판을 낼 때는 한자 혼용을 했더랬어요.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資本主義的 生産樣式이 지배하는 사회의 富는 “商品의 방대한 集積”으로서 나타나며,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富의 基本形態로서 나타난다...식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초판 발간 이후 그러한 한자 혼용이 그렇잖아도 어렵다고 생각되는 <자본론>을 더욱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노동자 계급에는 더더욱), 결과적으로 독자들이 <자본론>을 이해하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하여 그 다음부터는 한자 혼용 방식을 폐기하고 정히 한자 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는 괄호 속에다 한자를 병기하는 방식을 채택했죠.
저 고백, 저 깨달음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김수행 교수가 <자본론>을 번역할 때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저 불후의 고전을 읽기를 바랐죠. 그러면서 동시에 마르크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채택한 표기방식이 한자혼용인데, 그 시도가 많은 사람들이 그 책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말았다는 것.
저는 그것을 한자가 민주적 속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입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자를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문자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글이 뛰어난 문자이고 탁월한 표기체계라는 사실과는 별개의 문제죠. 한자를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한글의 우수성이 훼손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한글은 진실로, 우리가 아무리 자부해도 지나치치 않을 만큼 충분히 훌륭한 문자이고 표기수단입니다. 한글이 왜 뛰어난 문자인가? 그것은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 그것만큼 적절한 체계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 데다 찌아찌아족의 사례나 컴퓨터 입력의 용이성에서 알 수 있듯이 ‘활용’이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배우기도 쉽죠. 그것들은 한글이 처음 고안될 때 ‘초, 중, 종성’의 결합이라는 한자적 세계관을 차용함으로써 기본적으로 맞춤법이 난해해질 수밖에 없게 한 결점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습니다. 더구나, 한글이 지니고 있는 저 특성들은 한글이 그 어떤 문자보다 ‘민주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에 비해 한자는 확실히 엘리트적인 문자입니다. 제 생각에 대체로 표의문자는 엘리트적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서도 한자는 더더욱 그렇지 않나 싶어요. 엘리트성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드러냄으로써 위대해질 수 있었던 문자, 그것이 저는 한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고종석이 지적한 대로 개화기 때 한글전용이 제일 먼저 시도된 분야가 소설창작과 성서번역이었습니다. ‘읽을 거리’에서 가장 미천한 자들이 가장 ‘만만하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에서부터 한글전용이 시도되어 왔던 거죠. (한자혼용이 가장 늦게 폐지된 분야는 대학의 법학 교재입니다.^^) 그 이후 우리의 근대화와 민주화는 한글전용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습니다.
제가 볼 때 한자혼용론자들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한자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그런 한자와 한국어의 밀착성을 지나치게 내세우고 있죠. 그 과정에서 나온 웃지 못할 주장이 서구문학에서 생산된 추리소설과 SF장르의 질이 낮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 이유가 그쪽 사람들이 논증이나 추론 등의 사고력을 ‘전혀’ 요하지 않는 알파벳이라는 표음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나요? 그래서 영미, 프랑스, 스웨덴(이 나라도 은근히 추리소설 강국입니다), 이탈리아 등에서 작품들이 수준이 형편없을뿐더러 그마저도 점점 퇴보하고 있다는 괴이한 주장을 하던데 정말 저희 집 개가 ‘
1. ..
'09.10.9 8:02 AM (219.251.xxx.108)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감사합니다.
늘 많이 배우는 82cook입니다2. 잘읽었습니다
'09.10.9 9:16 AM (203.247.xxx.172)감염된 언어를 읽으면서 제 인생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난생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었는데...
이 둘을 혼동하게 하는 게 정부 방침 아니었을까...싶을 정도로 띵했었어요...
최근 며칠 KBS 누들로드 봤는데요...
음식이나 국어나...로드 위의 감염...그게 그들의 속성 혹은 본질 아닐까 싶습니다...3. 하늘을 날자
'09.10.9 10:20 AM (121.65.xxx.253)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한글전용에 관해서 꼭 지켜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댄서님 말씀하신 대로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입니다. 좀더 길게 쓰고 싶은데, 지금은 시간이 좀 없어서 오후에(아니면, 더 나중에;;;) 좀더 길게 쓰겠습니다.
아무튼 프리댄서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4. dma
'09.10.9 10:39 AM (173.77.xxx.210)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나 프리댄서님의 필력은 여전하시군요.
고백하건대 저도 고등학교 시절 하나의 극단으로 치우친 적이 있더랬습니다.
제가 가입한 동아리가 우리말 찾기 모임이었거든요.
'이화여자대학교'를 '배꽃계집큰배움터(계집이란 부분에서 갑자기 헛갈리기 시작)'라고
하자셨던 외솔의 큰(?) 가르침에 감명방아 사라진 우리말을 되살리려 동분서주했었죠.
지금 생각나는 단어들은,
시나브로, 머드러기, 길라잡이, 뒷갈망 등등인데.........
한자말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경멸감을 느끼곤 했더랬으니, 나름 심각했던거 맞죠?
재미난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당시 '내일 또 내일'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는데, 원제는 '하제 또 하제'였답니다.
어제, 그제 등은 순 우리말인데 내일만 한자어라 그걸 대체할 것을 찾던차에,
고려말 송나라에서 온 사신(지금은 이름도 그 저서명도 생각이 안나네요)이 기록한 책에서
하제라는 말을 발견하곤, 내일 대신 하제라는 말을 쓰려했던 거지요.
근데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한 감동멜로에 '하제 또 하제'는 왠지 에로 분위기가 물씬?!
결국 '내일 또 내일'일 수밖에 없었다는 슬프고도 슬픈(?) 에피소드요. ㅎㅎ
근데 돌이켜보면 당시 제가 그토록 우리말찾기 운동에 매진했던 게,
비단 한글전용론을 펼치고자 한 것 같진 않고 어떤 소박한 민족의식이었지 싶습니다.
당시 제가 주목했던 건 한자전용론이 아니라 무분별한 영어사용과 만연한 일본어의 잔해였거든요.
한겨레가 창간되었을 때 전 고2였는데요.
어떤 애들이 학교에 한겨레를 가져오면 이리저리 돌려보고 저도 흘깃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창피하게도 전 조선일보에 심취해 있었구요.
논술이니 뭐니가 논의되다 슬그머니 꼬리를 사렸지만 선생들의 권유가 큰 영향을......
이런 이야기 좀 이상할 지 모르지만,
한겨레를 날랐던 친구들은 반에서 흔히 논다하는 애들이었습니다.
살아있는 훈장같으셨던 한문 선생의 시간엔 그저 졸기 바쁜 그런 친구들.......
이율배반적이게도 우리맞찾기 모임 으뜸빛(회장)이었던 저는
그런 까닭이었는지는 몰랐지만, 왠지 모르게 한겨레를 깔보았구요.
'흠 그런 신문도 있구나' 정도로 새침하게 흘깃거리기만 했더랬죠.
6.10때 그 친구들 중 몇몇은 거리에도 나가고 그랬던 모양이더라구요.
전 그건 학생 본분에 어긋난 거라며 같이 나가자는 제의를 가슴벅차게(?) 거부했고요.
나름 학교 선생의 비리 사실에 맞서 학내 시위도 주동했고,
학생회 회의에 감독교사가 자리를 비워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 나름 민주(?)학생이었는데도요.
서교협(전교조의 전신이기도 한) 소속 선생님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도 가졌고,
그 선생이 몰래 회람하라고 준 창작과 비평에 실린 리영희 선생의 남북한 군사력 비교글을
읽고 또 읽고, 다른 친구에게도 돌리기까지 한 주범이라면 주범인 제가 왜 그토록 모순덩어리?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였던가요?
저에게 있어 우리말 찾기는 선민의식의 발로였고,
역시나 조선일보 기사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도 동전의 양면에 불과했던 거죠.
표기체계로서의 한글처럼, 원글님 말씀마따나, 민주적인 건 없습니다.
누구나 조금만 교육받으면 알 수 있는 아주 쉬운 체계이기 때문이지요.
구분컨대 한국어는 그 안에 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융합되어 한층 풍부화되었죠.
그 중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한자어가 있고, 영어, 일본어 등등.......
제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한 극단을 택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비민주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이율배반은 말할 것도 없고요.
프리댄서님의 뱀발과 관련하여,
문맹퇴치를 위해 노력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유네스코가 수여하는 상이
바로 '세종대왕상'이잖아요.
주변의 조력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세종은 그러고보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며, 다른 좋은 글도 부탁드릴게요.
횡설수설 댓글에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시고.......5. faye
'09.10.9 11:56 AM (216.183.xxx.138)낮선 그녀에게서 고종석의 향기가 난다....^^
한글과 한국어 - 글 과 말 - 을 유독 한국사람이 많이 혼동하는것 같아요. 잘은 모르겠는데, 단일민족, 단일언어, 단일 문화의 습관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알파벳 처럼 여러 언어에서 사용하는 글과 달리 한글은 한국어 전용이잖아요. (며칠전부터 아니지만... ㅎ)
한글의 우수한 표기성때문에 한국어가 훨씬 풍부해 졌다는 말도 하더군요. 푸른, 푸르른, 퍼런, 시퍼런, 푸르퉁퉁, 푸르스름.... 같은 변화나, 다른 언어에서 상상도 못하는 의태, 의성어의 발달이 한글의 우수한 표기능력 없인 불가능 했을 겁니다.
민족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언어'를 뽑는 사람들이 좀 있었던거 같아요.
저도 전에는 그런 생각이었지만, 요즘은 오락가락 합니다. 여러 민족의 잡탕인 미국에서 '영어'로 미국 시민의 정체성이 규정되는 현상에 익숙한 사람들이 흔히 갖게 되는 생각인데요...
과연 '핏줄'을 무시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한때 지역감정의 정체는 '사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읍니다. 쟤하고, 나하고 생긴것도 똑같고, 입는 옷도 똑같고, 머리 스타일도 똑같고 한데.... 쟤와 나를 구분시키는 '언어'라는 괴물....
한자에 대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을 시키는게 맞는것 같아요. (최근 생각)
제가 한글세대였기 때문에 한자에 잼병인데, 할 수 없는게 너무 많더군요.
한글전용으로 이 사회가 굴러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전혀, 눈꼽만치도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러기에는 우리 조상들이 한자로 이룩한 문화의 성과가 너무 큰 것 같아요.
(물론 한자만 안다고, 그것을 해석할리 만무하지만...)
딴지 아닌 딴지,
개화기때 이루어진 한글화 작업으로 성서번역을 꼽는다는 고종석의 말은 말 그대로 한글화 작업이지 '한국어 번역' 작업이 아니었잖아요. 성서의 경우 '한국어 판' 이라는 말 보다 '한글판'이라는 말이 훨씬 정확하지 않을까요?
마태오 릿치의 '중국어 번역' 성서를 한국어도 아닌, 중국어도 아닌, '한자'와 '한글', 중국어의 한글표기와 약간의 한국어를 삽입한 단지'한글'이라서 아무나 읽을 수는 있도록 만들었다는 말이 맞죠. '아이 멤어 보이' 하고, '나는 소년입니다.' 중간정도....
'한글판' 이란 말도 혼동이라기 보단 이러 저러한 역사와 이유가 있는듯... ^^
아, 하나더.... 외솔 최현배 선생님에 대해서 다들 한글 학자로만 알고 계시는 데요...
최현배 선생은 일본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일본어 및 독일어, 영어... 모두 수준급으로 구사하고, 독해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신 분이랍니다.
당시에 연대 인문학부는 독일어 철학 원전을 독일어로 강의하고 할 정도 였다고 합니다.6. 하늘을 날자
'09.10.9 12:50 PM (121.65.xxx.253)최병조 선생님께서 서울대학교 <법학>지에 실으셨던 글 중 각주 하나를 인용해 봅니다. 서울대학교 <법학> 제49권 제4호에 실린 <법과 문학 사이에서 - 키케로 <수사학> 국역본에 대한 촌평 : 법정연설 부분을 예증삼아 ->라는 논문의 각주 9번이고, 원문 전체는 http://www.cfl.re.kr/cgi-bin/XGIPage.cgi/sui/main.xht 여기서 자료실 -> 서울대 법학을 클릭해서 제49권 제4호를 찾으면 무료로 제공되며, pdf 파일 형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음부터 인용입니다. (보다 읽기 쉽게 띄어쓰기를 아주 조금 바꾸었습니다.)
이 기회에 2007년 5월 28일자 서울대학교 大學新聞, 11면에 실렸던 평자의 글 하나 (제목: “한글 전용과 문화 역량”)를 다시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한글의 창제는 오랜 한문생활에 침윤된 우리 문화에 즉물성을 회복시킨 쾌거(Restoration of the Reality)라는 의미에서 서양사에 있어서 로마법의 繼受(Reception of Roman Law), 종교개혁(Reformation), 문예부흥(Renaissance)과 더불어 4R이라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나는 당연히 한글 전용론자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글 전용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한 인간학 책에서 “무상성”이란 단어를 보고 無常性인가 했는데, “무상성(gratuità)”을 보고서야 無償性임을 괄호 속 이탈리아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비허(kenosis)”에 이르니 그리스어를 보고 우리말의 뜻을 헤아려야 하는 판이다.
요즈음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 하는 식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쉽게 이해시키려면 “正義의 定義”라고 하면 될 일을 한자를 금기시하는 ‘친절한 필자씨’께서 굳이 영어를 덧붙여준 것이다. 이런 식의 한글 전용은 우리 문화를 위축시키다 못해 파괴하는 저급의 한글 전용이고, 그래서 나는 결단코 반대한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한글 전용파 국어학자들의 기여가 지대하다. 그래서 나는 이들에게 유감이 아주 많다. 무늬만 한글 전용을 주장했지, 직무유기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근본적인 오류는 언어가 제대로 된 문화 역량의 擔持者가 되려면 자체 造語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무시하는 비과학성에 있다. 또 문화 역량은 축소 지향의 언어정책으로는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성급하게 우리 문화의 중추였던 한자를 배제한 그 저돌성에 있다. 한자어를 음만 한글로 표기하고 한글 전용이라고 우기는 것은 국어무식쟁이 국민을 양산하는 下之下策일 뿐이다. 배우기 어려우
니 한자는 그만 두자는 핑계는 그야말로 사이비 교리이다. 영어는 배우기 쉬워서 배우는가. 우리말의 대종을 이루는 한자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젊은 세대들이 개념의 이해에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우리의 말과 글이 그 사이에 얼마나 빈약하고 빈곤해졌는지 걱정되지도 않는가. 몇 가지 제언을 하겠다.
첫째로, 한자어를 대체할 고유어를 두루 개발하고(가령 ‘의성어’→‘소리시늉말’처럼), 그 사전을 편찬해야 한다. 또한 반대로 고유어-한자사전(가령 속이다-광 誑 誆; 괘 詿; 궤詭; 기 欺; 란 讕; 류 謬; 만 謾; 무 誣; 사 詐; 탄 誕; 태 紿 詫; 편 騙; 홍 哄; 휼 譎)도 만들어 신조어 개발에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로,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여 새 자모를 개발해야 한다. 나 자신 몇 년 전 서양어 f 및 v의 음가를 표기할 새 자음으로 立와 ∀를 제안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도 적극적으로 우리 한글의 문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셋째로, 꼭 필요한 경우 적어도 한자를 병기하는 지혜를 살려야 한다. 이런 때의 한자 사용에 대해서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의사소통이 최우선기능인 언어의 본령을 몰각하는 짓이다.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한 성경의 말씀(개역판 고린도전서 14,10-11)이야말로 소리글자인 한글에 특히 해당되기 때문이다. 우리 야만이 되지 맙시다.」
특히 번역을 하면서 한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또는 써야 하는가 고민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나라의 여러 번역물 중 가장 훌륭한 번역물은 아무래도 성경이 아닌가 합니다. 개역한글판 성경과 쉬운 성경 두 가지를 영어 성경과 비교해서 읽어보면서 번역에 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적어도 번역에 관해서, 그리고 우리 말에 관해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도 꼼꼼히 한 번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불경이나 코란 등은 제가 접해본 적이 없어서... 도덕경, 장자, 논어, 맹자 등은 한문이라 번역이 덜 문제되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최병조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의 동의합니다만. 최병조 선생님께서는 번역하시다가 신조어를 만드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도저히 새로 단어를 만들지 않으면 정확하게 번역이 안된다고 생각하신 나머지 라틴어 원전을 번역하시다가 신조어를 왕왕 만드십니다. 위 논문에서도 신조어를 여러 개 제안하십니다.;;; 가령, locus(topos)의 번역에 관해서 논의(論議), 논고(論庫), 토포스 등 여러 개의 역어가 이미 혼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아니 어쩌면, 그렇게 혼용되는 상황 자체가 여러 역어들에도 있어도 그 역어들이 본래의 뜻을 잘 드러내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런지도 모르지요.), 별도로 논상소(論想所)라는 단어를 제안하시는 거죠.
정확하게 본래의 뜻을 드러내시려는 의도야 훌륭하시지만, 공부가 일천한 천둥벌거숭이 입장에서는 최병조 선생님의 번역을 보다보면 오히려 더 헷갈리게 되고 뭔 소린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물론 이건 제 공부가 부족한 탓이 더 크겠지만요.
번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차에 한글전용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 와중에 프리댄서님 글을 만나니 무척 반갑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7. 프리댄서
'09.10.9 1:32 PM (218.235.xxx.134)아, dma님. 횡성수설이라뇨!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도 대학시절에는 꽤나 열정적으로 ‘우리말 찾기’에 나섰던 전력이 있어요.ㅋㅋ 그때는 저만 아니라 많이들 그랬죠. 대학생이다 보니 더 극단으로 치우쳤던 것도 같구요. 음... 그때 평양학생축전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한창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전개됐었습니다. 꽃 파는 처녀니, 민중의 바다(피바다)니 하는 소설들도 비밀리에 돌려보고 그랬는데 저도 호기심에 그 소설들을 봤었어요. 그리고는 충격을 받았죠! 그 뻔한 서사구조에도 불구하고 ‘조선어’들이 주눅들어 있지 않은 진기한 풍경 앞에서. 정말 우리말로 차려진 풍성한 잔칫상을 받은 기분이었달까요. 그런데 그게 남쪽 작가들 중 순우리말 구사에 능한 작가들이 쓴 작품을 읽을 때와는 또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이문구 소설이나 김소진 소설을 읽을 때는 ‘아, 이 양반은 우리말 어휘를 상당히 많이 알고 그걸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시는구나...’, ‘야, 이 사투리 특유의 쫀득쫀득함 좀 봐...’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한국어 본연의 특성이 살아있는 문장이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어휘나 표현에서는 고유의 것을 많이 사용해도 그분들의 문장은 기본적으로 서구적 사유에 기초한 남한 교육의 성과(?)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뭐 그렇다 해도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미 우리가 사용하는 문장에는 번역체가 많이 침투해 있고 어느 정도는 체질화된 점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그런 문장들로 사유하죠. 중요한 것은 그런 문장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것으로 자신만의 관능을 발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배수아 소설도 무척 좋아한답니다.^^
그런데 북한소설은 문장의 바탕부터가 남쪽보다는 좀더 조선어(남북의 언어를 아우른다는 뜻에서..)에 가깝달까, 넓게 얘기하자면 확실히 ‘탈외래적’인 것이 강했어요. 그 맛이 참 새롭더라 이 말이죠. (물론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으면 느낌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저는 정말 꽃 파는 처녀, 민중의 바다 등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금도 그 소설들을 떠올리면 내용보다는 진짜배기 조선어 문장들로 차려진 풍성한 잔칫상을 받은 것 같았던, 그 전체적인 느낌이 더 생생하게 살아나곤 해요. 벽초의 <임꺽정>과 비슷하지만 특유의 ‘사회주의적 낙관성’ 때문에 분위기가 더 ‘선한’ 느낌이었죠. 그러고 보니 참 묘하네요. 내용에는 잔인한 것들도(일제에 복수하고 뭐 그런..) 적잖이 들었었는데 전반적인 느낌은 꼭 누군가가 넉넉하게 웃고 있는 듯했으니.^^
‘국어순화운동’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어느 민족, 국가 할 것 없이 근대의 길목에서 한번쯤 거쳤던 통과의례였던 것 같습니다. 근대국가로의 기틀을 잡는 데 있어서 언어의 정비는 꼭 필요한 요소였으니까요. 독일도 마찬가지여서 쇼펜하우어가 살았던 시절에 독일어를 더 간략히 만들고 라틴어로 된 학문용어들을 독일어로 ‘순화’시키는 캠페인이 활발하게 일어났었죠. 그걸 가지고 쇼펜하우어는 막 화를 냈었구요. 다 같이 멍청해지자는 거냐, 라틴어만큼 학문의 개념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게 어딨다고! 이런 식으로라면 앞으로 독일에서는 라틴어로 강의할 수 있는 선생들이 사라질 텐데, 그렇게 되면 나라꼴 참 자알 돌아가겠구나! 이러면서..ㅋㅋ 그 중에서 조선처럼 명백한 약소국의 위치에 있었던 나라들은 그 캠페인을 좀더 열정적으로 전개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지키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존망과 직결되는 것이었으니...
그리고 ‘국어순화운동’이, 극단으로만 흘러가지 않으면, 대중들로 하여금 정보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 성과도 낳았던 것 같아요. 100% 들어맞는 예는 아니지만, 갈릴레이가 그처럼 큰 ‘파괴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논문을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썼기 때문이니까요. 또 군산(群山)이라는 지명이 원래는 ‘뭇뫼’였다는 말을 들으면(저는 고은 책에서 봤었는데) 꼭 우리말의 아름다움, 뭐 그런 게 아니라도 재밌어지죠.
그런데 ‘하제 또 하제’ 에피소드는 진짜 재미나네요. 님 댓글을 읽고 아, 그래 ‘하제’라는 단어도 있었지... 라고 무릎을 쳤어요.ㅋㅋ 암튼 똘똘한 학생이셨네요.^^
‘잘 읽었습니다’님. 제 생각엔, 우리가 한국어와 한글을 혼동하면서 사용하는 게 정부방침(혹은 그 어떤 책략이 있어서)이라기보다는 한글이 그만큼 독창적인 체계인 데다 한국어도 우리만, 한글도 우리만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혼동이 빚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시 말해 그런 혼동이 ‘자연스럽게’ 빚어질 수밖에 없기도 한 거죠.^^
그리고 헉! 점 세 개님. 혹시 저번에도 비슷한 댓글 쓰신 분인가요? 그때는 님께서 그냥 독자적인 게시물을 올리신다는 걸로 받아들였었는데 오늘 댓글 보니 혹시 저와 관련한 게시물을 쓰시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럴 리는 없으시겠지만^^ 만일 그게 맞다면 오 노~~~(JFK가 총에 맞았을 때 바로 옆에 앉고 있었던 재키 여사가 저렇게 절규했다고 하더라구요)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발 참아주시어요.^^ 부디 이 생각이 저의 착각이어서 비웃음을 살 수 있기를.;;;;;8. 프리댄서
'09.10.9 1:47 PM (218.235.xxx.134)faye님. 우리가 그간 쌓은 정이 얼만데 ‘낯선’다고 하다니... 라고 하고 싶지만, 농담이구요. 음, 저는 고종석을 참 좋아하는 한편으로는 저와 맞지 않는 부분도 꽤 느끼곤 합니다. 뭐 하지만 저한테서 고종석의 향기가 난다면 고종석 선생님의 체취가 좋은 것이기를 바랍니다.^^ (50대 아저씨들한테서 나는 특유의 꼬랑내가 난다면 좀 곤란... 전 지하철에서도 50대 아저씨들 옆자리엔 될 수 있으면 안 앉아요. 어제 마신 술이 올라오는 냄새, 아이들 등록금 걱정, 세 번째 허리 수술을 받으셔야 한다는 시골 어머니 전화, 갱년기 증후군으로 우울해하는 마누라, 이제 곧 다가올 퇴직, 강원 산간지방에 내렸다는 첫서리 소식, 그 소식이 달갑지 않은 노화하는 신체. 에구, 좋은 냄새가 날 리가 없죠. 그래서 되도록 젊은애들(?) 옆에 앉는데 걔네들은 또 저한테서 그런 냄새가 난다고 생각할지 모르죠. 아니, 나겠죠. 미안하다, 아그들아!)
말씀하신 대로 한국어와 한글이 많이 혼동되는 건 그런 이유들 때문일 거예요. 그런데도 잘난 척해보는 게 저의 특기랄까요?--; (점심 드신 거 체하시면 안 될 텐데..^^)
그리고 푸른, 푸르른, 퍼런, 시퍼런, 푸르퉁퉁, 푸르스름... 과 같은 어휘들. 거기다 ‘조사의 발달’ 등이 역으로 이두와 같은 변종 한자 표기 체계를 낳게 했으며(그것이 굳어진 형태가 일본의 가나겠죠) 궁극적으로는 한글 창제를 낳은 것일 수도 있겠죠. 아, 그런데 참 이쁘네요. 푸른, 푸르른, 퍼런, 시퍼런, 푸르퉁퉁, 푸르스름....^^ 그러니까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예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터키 유학생이 한겨레신문에 그런 글을 실은 적이 있답니다. 외국인 학생들인 ‘한국어 강좌’를 들을 때 제일 신기해하는 표현은 단연 ‘시원하다’. 그래서 한국어 선생님이 무슨 말만 하면 외국인 학생들이 ‘시원합니다!’라고 대답하고는 까르르 웃었다는.^^ 그리고 한국어 표현 중에서 자기가 제일 재밌었던 게 ‘우당탕쿵탕’이라고 하대요?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내는 모습을 그리며 ‘우당탕쿵탕’이라는 의성어를 사용하는 게 정말 신기하고 재밌더래요. 그게 또 자기한테 다가온 한국어의 ‘전체적인 인상’이라고도 하구요. 저는 그거 읽으면서 아 우리말이 ‘우당탕쿵탕’이라는 인상으로 다가가기도 하는구나, 하면서 신기해했었죠.^^
물론 우리 조산들이 한자로 이룩한 문화의 성과가 크긴 하지만 그에 비례해 한계도 많았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근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고대 그리스인이나 이집트인들, 혹은 거북이 등껍질에 간단한 한자를 새겨놓고 점을 치면서 우주와 인간살이의 법칙 등을 논하던 고대 중국인들과 비교했을 때 현대인들이 과연 더 진보한 인간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뭐 그런 문제로까지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쨌든 현대는 ‘권력’을 소수가 독점하는 시대가 아니고, 저는 그것이 바람직하게 보이기 때문에 언어사용에서도 그 점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성서번역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왔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개화기 때의 작업을 두고 한글전용화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가, 아니면 ‘번역’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정확한 답변을 하기가 그렇습니다만, 짐작건대 개화기 이전까지는 한문으로 번역된 것(그러니까 중국어 번역본이 되겠죠)과 언문(훈민정음)으로 번역된 것이 양립하지 않았을까 싶구요, 그랬다면 개화기 때의 작업은 후자의 것을 근대적 문법체계를 수용한 당시의 조선어로 다듬는 작업을 했던 것이겠죠. 표기는 오롯이 한글로만 하고. 그것이 맞다면 한글전용의 수용, 한글전용화라고 해야겠네요.^^
덧붙여 게시판에 퍼올려진 한자혼용 주장론 중에는 ‘한글은 한글이라는 명칭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훈민정음이라는 원래의 명칭을 되찾아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섞여 있던데, 저는 그것도 마냥 ‘흰소리’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에선 한글이라는 명칭이 이미 널리 전파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현실 외에도 훈민정음과 한글이라는 명칭 사이에는 근대적 문법체계의 존재 유무가 삼팔선처럼 버티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봐요. 물론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언문 혹은 훈민정음으로 쓰인 글이라고 하면 춘향전이나 심청전처럼 대략 어떤 식으로 쓰인 글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죠. 그것도 한글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출현하면서 얻게 된, 일종의 효율성이라면 효율성일 텐데 그런 것까지 없애가면서 한글을 훈민정음으로 되돌린다....는 건 좀 재고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저 펌글들을 통해 한자혼용론자들도 참 끈질기다는 걸 알게 됐네요. 그리고 왜 한자혼용론자들 중에는 정말 근사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 없을까, 하는 의문도 새삼 해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맞습니다, 외솔 선생이 그런 분이셨고 그때 공부하셨던 분들 가운데는 ‘르네상스적 인간’들이 많았더랬죠. 음... 그것이 또한 수월성 교육을 옹호하는 주장의 근거로 쓰이기도 하는데,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시는 선택받은 자들만 공부할 수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라고요. ‘선택받은 자들=재력 빵빵 or 가난하지만 머리 하나는 진짜 좋음’이라는 구도가 가능했던 시절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음... 그것과 관련한 이야기는 얘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해보도록 하죠. (아, 근데 제가 지금 이렇게 댓글 쓰고 있을 때가 아닌데 말임다--;)9. 프리댄서
'09.10.9 2:49 PM (218.235.xxx.134)하늘을 날자님. 일단 저도 시간이 없어서 링크해주신 글은 다음에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하여, 지금은 인용해주신 ‘각주 하나’만 보고 얘기를 할 수밖에 없겠네요.^^
최병조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는’ 동의합니다. 특히 한국어 사전을 다양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는 200%, 막 500%까지 동의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저런 식의 주장이 자칫 한글전용론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그것이 가져온 성과를 본의 아니게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도 생각합니다. (뭐 안타까움이 크다 보면 저도 저처럼 ‘과격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만...^^)
한글전용론, 번역... 그런 문제들도 그것이 독자적으로 변화, 발전하기보다는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발맞춰 변화, 발전하는 것이죠. 그간 우리가 사회가 양적인 팽창에 중심을 두면서 발전해왔다면 지금은 ‘질’에도 눈을 돌리고 있잖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양적인 팽창의 전제는 근대화의 완성이었고 근대화는 어쩔 수 없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체질화시키는 것이었구요..우리는 그걸 빠른 시간 내에 해야 했죠. 뭐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한글전용론 또한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 저는 애초 한글전용론을 주장했던 국어학자들을 연민(혹은 그 맥락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그들을 위해 일종의 ‘변호’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 왔다 갔다 하면서 댓글을 쓰려니 쉽지 않네요.--;)
제 생각으로는 한글전용론이 이제까지 크게 네 단계의 절차를 밟으면서 대두해왔고 변화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어의 근대화 작업(문법체계의 정비, 사전 편찬 등등), 두 번째는 조선어말살 정책에 맞서 조선어를 지키는 것, 세 번째는 근대화라는 사명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것, 네 번째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올바르게 반영하는 것....
문제는 세 번째 단계에서 한글전용론 속에 교묘히 개발독재의 그림자가 삼투해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글전용론이 완고한 모습마저 띠게 되었다고, 저는 추측합니다. 한글전용론과 개발독재, 두 테제는 다른 듯하면서도 서로를 자양분 삼아 발전해왔습니다. 하여 한국어도 완고한 한글전용론 때문에 속박을 당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그것에 대한 반성이랄까, 회의랄까... 그런 것이 이루어지는 단계인 것 같구요. 한글전용론이라는 양적인 팽창을 이뤘으니 그것의 질을 따져보는 단계에 진입한 거죠.
음.. 해야 할 일 때문에 일단 여기까지 써야겠네요.-_-; 그리고 성경은...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번역한 텍스트가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현재 한국 기독교의 파워?를 생각할 때 그 정도도 못해내면 체면치레가 안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끝내다 보니 얼핏 또 떠오르는 게, 대중과의 괴리가 심한 학문 분야일수록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는 것이 그 괴리를 좁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물리학에서 물리학 용어들을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한창 진행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비행기->날틀’처럼 억지스러운 것도 있지만 ‘회절(回折, diffraction)’을 ‘에돌이’로, ‘대류(對流, convection)’을 ‘엇돌이’로 순화시킨 것 등은 ‘좋아’ 보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물리학을 한층 더 가깝게 여길 것 같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물리학 서적을 한번쯤 뒤적이고 싶게 만들기도 합니다.^^ 용어들을 순화시키는 당사자들도 재미가 있을 것 같구요.^^
나중에 또 이어서 답글 쓰도록 하죠. 에구에구. 급하게 쓰느라 정신이 없네요...10. *
'09.10.9 3:41 PM (96.49.xxx.112)자게는 왜 추천기능이 없는 것일까요??
맘속으로 추천 백방 누르고 갑니다.
아까 무슨 기사 보니까 맹뿌가카가 G20개최하면 한국어가 세계어 된다고 하던데,
한글날에 왠 뻘소리냐.. 그랬거든요.
오죽 자랑거리가 없으면 한글날에 G20까지 들먹이면서
한글도 아니고 한국어 어쩌고 저쩌고.. 암튼, 좋은 글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11. 고독은 나의 힘
'09.10.9 5:39 PM (202.31.xxx.174)우와.. 신문에 그대로 옮겨 싣어도 될만한 우리말. 우리 글에 대한 건설적인 담론이네요...
12. 프리댄서
'09.10.9 11:54 PM (218.235.xxx.134)낮에 쓰던 댓글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근데 뭐 급하게 쓰고 나가느라 쓸데없이 소리를 잔뜩 늘어놨네요. 저건 취소하구요,--;, 어쨌든 전 국민의 비문맹화를 가능하게 하는 한글전용론은 불도저식으로 뻗어나가길 원했던 개발독재 이데올로기와 배가 맞는 측면이 있었죠. 거기다 개발독재가 내세운 기묘한 민족주의와도 또 묘하게 손발을 맞출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정권 때 한글로만 적힌 교과서가 등장하면서 이른바 한글세대가 출현하게 되죠. 그 한글세대가 자라서 성년이 되자 민족주의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70년대까지는 다소 순박한 모습이었던 민족주의가 거대한 낭만성을 띠면서 사회변혁 이데올로기로 전면 부상하게 된 거죠. 80년대 운동권의 주류는 싫든 좋든 그런 민족주의에 기반한 세력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것 찾기’의 절절한 열망으로 이어졌구요, 국어순화운동을 포함한 ‘완전한’ 한글전용론이 더욱 힘을 얻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87년 6월 이후에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면서 ‘한자’를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여기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한자를 배척한 한글전용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수용하게 됐다는 말이죠. 그 평등성, 우리를 지난하게 구속하던 어떤 족쇄로부터 벗어난 듯한 해방감. 분명 한자를 배척한 한글전용론은 그런 느낌을 전해줬었습니다. 이오덕 선생의 책들이 대학가의 필독서 중 하나로 통하기도 했구요. 그래서 87년 6월 이후(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출판물에서 한자혼용이 사라지게 된 것 같아요.
그 양상이 어느 정도 지속되다 보니 지금은 그에 대한 부작용이 조금 나타나는 듯싶구요...
그래서 저도 원글에서 언급했다시피 한자교육과 한자병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확실히 한자는 엘리트적이에요. 제가 아주 잠깐 서당을 다닌 적이 있답니다.(켁) 한문을 좀 배워보고 싶어서. 연대에서 하는 무악서당이라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했었어요. 수업료가 한 학기에 3만 원이니까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였죠. 근데 뭐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서 털썩, 한 네 번 나갔었나?--; (아.. 재밌었는데.^^) 그때 느꼈어요. 한자가 정말 매력적인 문자지만 기본 속성은 참 그렇구나. 그렇지만 배우기에 어렵지도 않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도 됐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 재밌게 배울 수도 있는 거죠. 표음문자가 단순한 조합에 그치는 데 반해 한자는 그 글자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 이치 등을 알아야 하므로 학습적 재미가 더 있달까. 저도 중학교 때 한자를 배우면서 줄 수(授), 받을 수(受) 외울 때 주는 건 뭐 가지고 있어야 줄 수 있으므로 손수 변이 있는 거, 받는 건 그 반대로 없는 거....이렇게 외웠던 기억도 났고 말이죠.
뭐 잠깐 옛날 생각 나서 떠들어봤구요, 암튼 그래서 저는 초등 아이들이 한자 배우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런 식으로 현재의 한글전용론을 개선(?) 하는 것에는 찬성이지만 최병조 교수처럼 새로운 한글자음을 만들어내자는 의견에는 반대합니다. 최병조 교수만이 아니라 가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배경에는 원음주의 표기를 ‘완벽’하게 실천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죠. 그런데 저는 일단 원음주의 원칙 자체에 회의적이에요. 외국어를 현지인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기한다는 게 어떤 것일까, 그게 가능할까... 그런 의문이 들어서요. 그리고 file과 pineapple의 첫 자음을 지금처럼 일괄적으로 ‘ㅍ’으로 표기하는 것이 우리가 정확한 정보를 얻는 데 정말로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물론 최병조 교수의 경우는 단지 원음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의 어떤 정치성(精緻性)이랄까... 당장 적당한 말이 안 떠오르는 데 뭐 그런 것에 대한 욕망의 문제로 보입니다. 그것이 번역을 하면서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열성^^으로 외화되는 것 같구요.
그런데 또 지나치게 그런 입장에 경도되면 하늘을 날자님이 경험하신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죠.^^ 그것이 또한 제가 생각할 때는 한자가 지닌 결점인 것도 같습니다. 한자는 정말로 조어성이 탁월하고 의미를 세밀하게 분화시키는 데 적절하기 그지없는 문자지만, 그러한 장점 때문에 듣보잡 용어들이 마구잡이로 탄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저는 뛰어난 문장가, 뛰어난 번역가라면 어리둥절한 신조어를 만들면서까지 문장을 짓고 번역을 하기보다는 기존에 번역된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여기서는 어떻게 다르게 쓰였는지를 알아들을 수 있게 문맥 속에서 잘 풀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많이들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중요한 용어라면 차라리 원어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보구요. 전적으로 제 경험에 의지한 것인데, 특히 번역에서는 문맥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참 중요한 것 같더라구요. 어리둥절한 신조어를 등장시키더라도 문맥을 매끄럽게 풀어낸 번역문에서는 그 용어가 다소 서걱거리긴 해도 그 때문에 독서가 방해되는 일은 없었던 듯싶어요. (대체로...) 오히려 그 용어를 되새겨보게 될 때도 있고. 그렇다 해도 그런 일이 난무한다면....^^;;;
그런가 하면 어떤 번역서는 또 역자가 필요 이상으로 순우리말로 순화시켜 번역하는 바람에 읽으면서 진도가 안 나갔던 일도 있었네요.
뭐 지금도 정신이 없어서 얘기가 막 왔다리 갔다리?입니다.--; 음...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노래를 듣고 있는데, 말러는 들으면 들을수록 참 심란한 사람입니다. 아무튼 말러나 바그너를 들으면 모차르트나 하이든을 들으면서 머릿속을 헹궈줘야 할 것 같아요. 아, 심란하네요.
하늘을 날자님께서도 무척 바쁘신 것 같은데 주말 잘 보내시고 짬이 나시면 애기엄마랑 꼬맹이들이랑 같이 근처 공원에라도 가서 점점 짙어가는 가을빛을 느껴보시길.^^ (아직은 그런 걸 할 정신이 없나요?^^;) 그리고 과학소년, 법률청년, (강력하게 잠재되어 있던) 문학 애아범이 멋지게 합체를 하시길. 과학소년+법률청년+문학 애아범=데이빗 E. 켈리? 혹은 남자 이태영? 심히 궁금하네요.^^13. 프리댄서
'09.10.9 11:57 PM (218.235.xxx.134)*님 그리고 '고독은 나의 힘'님.
에구,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이 글을 괜히 쓴 것도 같아요. 한글판이나 한국어판이나... 엎어치나 메치나...
이마나 마빡이나.. 괜히 길기만 길고. 그런 생각이 드네요.^^
님들도 주말 잘 보내시구요, 이 가을에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14. 프리댄서
'09.10.12 1:37 AM (218.235.xxx.134)막 최병조 교수의 글을 다 읽었습니다. 저 위 댓글들도 이 글을 읽고 나서 썼다면 좋았을 것을. 참 쓸데없이도 길게 주절거렸네요. 뭐 암튼지간에요, 먼저 드는 생각은 참 재밌으신 양반이구나... 더 나아가 귀여우신데?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분이 이걸 보실 일은 없을 테니 해보는 소립니다.) 그리고 정말 꼼꼼이 읽고 꼼꼼이 지적을 하시는구나... 제가 역자라면 고마울 듯싶어요.^^
음.. 그런데 전반적인 느낌은 한글세대와 한자세대가 '충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글전용의 교과서로 공부한 한글세대는 한자세대와는 감수성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단지 일반적인 세대차이가 아닌 문어체와 구어체, 만연체와 간결체 사이의 간극이랄까, 차이랄까 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수사학>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 하는 건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지만 최병조 교수의 글을 읽고 난 느낌은 일단 그렇네요. 그분은 문어체와 만연체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학문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할 때에도 의외로 한자세대에 속하는 분들이 적절하고 재미난 우리말 단어를 잘 '찾아'내곤 하시더라구요.^^ 그게 또 그 세대 분들이 지금보다 우리말이 외래어에 훨씬 덜 '오염'됐을 때 성장하셨기 때문에 그러실 수 있는 듯싶구요...
그리고 세부적으로 들어갔을 땐 최병조 교수는 지나치게 전문가의 입장에서 코멘트를 하시는 게 아닌가 싶네요. '요구'를 '청구'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 같은 건 법에 대해 문외한인 제가 들어도 고개가 주억거려집니다. 하지만 그 외의 많은 지적들은 넘 '전문가'틱한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네요.^^ (제가 느끼기에는) 안재원 씨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대중들이 보다 쉽게 키케로를 읽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그 대중들이란 최병조 교수가 아니라 저 같은 사람들이겠죠. 그랬을 때 표현들을 조금 '완화(?)'하거나 보다 쉬운 의역으로 바꿔서 번역할 필요도 있을 텐데.. 물론 그렇다고 오역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요. (책을 안 읽은 상태에서 뭐라고 하려니까 참 거시기하네요) 그와 관련해 영어판에서는 어떤 느낌으로 했을지 궁금하네요. 영역은 옛날 하고도 한옛날에 이루어졌을 테니 영어판에는 키케로 원저에 아주아주 충실한 번역, 그걸 조금 부드럽게 다듬은 번역 등이 있을 듯한데... 그래서 최병조 교수가 지적한 용어, 표현 등을 영역으로는 어떻게 했을지.^^
또 이래서 '골치 아픈 책'을 번역할 때는 역자들이 후기에서 일어판을 참조했다는 고백을 심심찮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음.. 전문적인 분야일수록 번역은 전공자가 해야하는 것 같아요. 국내에 번역된 이집트 상형문자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도 절실히 느꼈던 바랍니다. 그 책들은 적어도 언어학 전공자가 했어야 했어요. 하지만 또 그럴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가 전공자들은 그 분야의 용어나 개념 하나하나의 차이를 꿰뚫고 있고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그 차이들을 드러내는 데 많은 공을 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본의 아니게 더 중요한 걸 손가락 사이로 흘려버리게도 되구요.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저 글 한 편만 읽고도 최병조 교수가 번역한 책들은 어떨지 짐작이 간다면 넘 건방진 소린가요? 쿠쿠. 그래도 참 재밌네요. '노학자의 꼬장꼬장함과 열정'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그 분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제멋대로 노학자라 상상했네요?) 고마워요~~~15. 하늘을 날자
'09.10.12 1:47 PM (121.65.xxx.253)사실 저는 최병조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포기했어요. <수사학>을 읽고나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무튼 저도 댄서님 말씀처럼 영역본과 일역본이 궁금합니다. <수사학>. 친한 형이 대학원에서 로마법을 전공해서 최병조 선생님께 지도를 받았는데, 그 형에게서 전해들은 바에 의하자면, 최병조 선생님은 참 '독일인' 또는 '로마인' 같으시다고 합니다. 그래서 댄서님께서 샹폴리옹의 별명이 '이집트인'이란 말씀을 하셨을 때 최병조 선생님이 떠올라서 혼자 살짝 웃었답니다. ㅋ
글고, 노학자 맞으세요. 최병조 선생님. 굉장한 분이시죠.
고하 송진우 선생의 손자로서, 현재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이시자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이신 송상현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역대 경기고 출신 3대 천재를 꼽자면, (순서대로) 송상현, 최병조, 강구진(이 분이셨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3명을 꼽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송상현 선생님은 원래 자기 잘난 맛에 사시는 분이라 남 칭찬 하려면 일단 자기 자랑이 기본으로 들어가야 하는 분이셔서... 물론 원체 훌륭하신 분이시기도 하지만요...;;; 아무튼 그런 송상현 선생님께서 인정하실 정도이니까요.
'본의 아니게 더 중요한 걸 손가락 사이로 흘려버리지' 않도록 주의하기, 그리고 '대중들이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게 참 중요한 것인데, 역시 어려운 문제죠. 위에서 언급한 친한 형이 석사논문 주제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중 한 장(chapter)을 택했었는데요. 라틴어 번역이라는 게 참으로 어렵다고 하네요. 천주교에서도 무척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도 <신학대전>은 완역판이 나오지 못한 상태라고 합니다. 역시나 위 어려운 문제 때문이겠죠.
'노학자의 꼬장꼬장함과 열정'을 느끼셨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할 입장은 아닌 것도 같지만, 링크건 사람으로서...;;;
제가 시나리오로 꼭 전달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법학공부의 재미, 법학공부에의 열정'이에요. <슬램덩크>가 독자들에게 '농구의 재미, 농구에의 열정'을 멋지게 전달했듯이요. 물론 현재 이런저런 사정으로 전혀 진척이 없지만요. 에고...;;;
뻘소리만 잔뜩하게 되었네요. 에공. 도그마로부터의 자유에 관한 글도 잘 읽었습니다. '불덩이'가 속에 오래도록 있으셨군요... 함석헌 선생님의 글도 꼭 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함석헌 평전>도 사놓았었는데... 꼭 한 번 들춰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16. 프리댄서
'09.10.12 4:54 PM (218.235.xxx.134)저어기 점 세 개님. 이리로 와보세요.... 그냥, 와보세요.
와락~!
저 얼굴 빨개진 건 보지 마시구요!
무조건 한 번 더 꼬옥.
그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다니. 엉엉엉, 창피창피...17. 프리댄서
'09.10.13 1:45 AM (218.235.xxx.134)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또 자작 댓글 답니다.--; (술 마실 때도 자작 잘해요)
언어학자 중에 게. 이. 람스테트(G. J. Ramstedt)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핀란드 사람으로 이름을 풀어쓰면 구스타프 욘 람스테트(Gustaf John Ramstedt)예요. G와 J를 핀란드어 발음으로는 '게', '이'라고 한다는군요. 그래서 이니셜로 적은 이름은 게. 이. 람스테트.
1873년에 태어나 1950년에 타계하셨는데 한국어가 포함되는 알타이어학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이 바로 저 분입니다. 핀란드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람스테트는 1919년에 주일대사로 임명돼요. 그래서 29년까지 10년 간 일본에 살았죠. 일본에 사는 동안 일본어 연구는 물론 휴가 때마다 조선으로 건너가 당나귀를 타고 조선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조선어 연구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만나기 위해 조선인들이 거주하는 천민 부락에도 서슴없이 드나들었다고 하구요.
그래서 나온 책이 <한국어 문법>(1939), <한국어 어원 연구>(1949) 등입니다. 일본에서 핀란드로 돌아간 뒤에는 유럽에서 최초로 헬싱키대학에 한국어강좌를 개설하기도 했구요.(1930년대에...) 한국전쟁 당시 미군 중에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병사를 양성하기 위해 미 국방부는 한국어 문법책을 급수배했는데 그때 그들이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람스테트의 <한국어 문법>이었다고 하네요? 그 외에는 구할 수가 없었다나?--; (한국어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타계 후인 1982년에 한국정부로부터 훈장도 수여받은 바가 있습니다)
아무튼 람스테트는 직접 답사를 해서 언어 연구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가 관심을 가졌던 동양어, 그 중에서도 알타이어를 연구하기 위해 1898년부터 1912년 사이에 7번 학술 답사 여행을 하게 됩니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몽골, 중국을 오가는 것이었죠. 그 결과 람스테트는 근대 몽골어학의 체계를 마련했고 알타이어 비교연구에서 지워질 수 없는 족적을 남기게 됐어요.
그 여행의 내용을 기록한 책이 <일곱 차례 동방여행>이라는 책이랍니다. 그걸 고송무라는 분이 1986년에 번역을 해서 민음사에서 출간을 했는데요, 고송무 씨의 이력이 흥미로운 게 대학을 바로 헬싱키대학으로 진학했답니다. 헬싱키대학에서는 '핀-우르그' 언어학을 전공하셨구요. (핀란드어가 '핀-우르그어'에 속합니다)
하여간 번역자가 그런 분인데 그 분이 그 책에서 '번역하다'를 '뒤치다'로 순화해서 사용하세요.따라서 '역자'는 '뒤친이'가 되죠. 초판은 '첫박음', '재판'은 다시 박음.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다시 박음'한 책이에요. (헌책방에서 구입한 후 처박아놓기만 하고 아직 읽어보진 않았네요.-_-;;) 그래서 초판 역자서문은 이렇게 변해요. '뒤친이의 말 - 첫박음 머리에'. 재판의 역자서문은 '다시 박음 머리에'.^^
그렇다고 본문도 저런 식으로 다 순화해서 번역한 것 같진 않구요, 저 표현만 그러신 것 같애요. 처음엔 '뒤치다'는 표현이 생경했었는데 기억엔 콕~ 박히게 됐죠. 그리고 몇 번 보다 보니까 재밌더라구요. 뒤치다... 걍 생각나서 한 잔 또 자작해봤습니다.--;18. faye
'09.10.13 7:37 AM (209.240.xxx.152)모든 학문은 결국 '언어학'으로 귀결된다.
모든 철학은 '언어학'의 다름 아니다...
심지어 공학, 과학 까지도 결국은 공학용어, 과학용어... 변수의 정의 및 활용.... 을 비롯하여...
수학적 해석까지도 '언어학'의 일부로 볼 수 있다....
현대학문의 사조가 최근에 그런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을 잠시 느꼈었는데요...
특히나 언어학에 정통한 이들의 생각의 근원에 저런 베이스가 흐르더군요.
그도 그럴것이 실제로 외국생활을 해보면, 한가지 확실한것은....
'인종주의자는 없다. 단지 언어주의자만 있을뿐'이란 사실을... 체감하게 되곤 합니다.
어린아이들과 대화를 하면 뚜렷이 드러나는데, 아이들이 생긴게 다른것(인종문제)에 대한 거부감보다 언어의 다름에 대한 거부감을 훨씬 강하게 표출합니다.
특히, 온갖 잡종이 다 모여사는 북미 문화의 경우,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지을 수 있는게, 영어(미어)를 사용하는 시민이라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을 들 수 있을지... 생각하면 그 말이 설득력이 있기도 해요.
헐리웃의 황당한 미래영화나 에얼리언 영화를 보면, 엉뚱하게 이런 대화가 나오죠.
"Can you speak english?" 그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지구상에서 영어( 영국영어는 더이상 영어라고 부르기 뭐해요. 영국 사투리 영어라는 말이 맞을거예요. 일반적인 영어는 미국어를 말한다고 하고..) 가 전 세계적인 공통어가 된게 고작 200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런 대사를 넣었을까 하고 궁금해 한적이 있어요.
(몇세기 후에 미래영화에서는 "너 한국말 할 줄 알어?"라고 외계인에게 물어볼 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조지훈의 승무의 아름다움을 한참 나이가 들어서 알게되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파르라니 깎은 머리...'라는 표현을 느낄 수 있게 될까 궁금해지더군요.
예전에 서정주가 친일은 했으나, 한국어에 대한 업적이 월등히 크므로 친일행적에 대해 사면할만하다는 논지를 폈다가 무진장 두들겨 맞은적이 있어요.^^
나라를 빼았긴 마당에 과연 지켜야 할게 있다면, 가장 지켜야 할게 있다면 무엇일까....
민족을 지키고자 한다면, 언어를 지키는게 최고우선순위 아닌가... 뭐 그런 거였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글로 일왕 찬양하고,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나가도록 부축인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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ㄸㅡㅇ금없는 얘기 주절이 했네요.
언어 라는 화두때문이예요...
근데, 요즘 생각은 칼이 팬보다 강한것 같아요.....19. 프리댄서
'09.10.14 12:08 PM (218.235.xxx.134)그러고 보면 역사란 게 참 그렇습니다. 사실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된 건 존 카봇이라는 탐험가가 북미에 도착한 뒤 영국 깃발을 꽂았기 때문인데, 그는 원래 이탈리아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영국으로 귀화해서 북미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구요, 그보다 앞서 남미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던 콜럼버스 또한 원래는 이탈리아 사람이었으니 글쎄... 콜럼버스와 카봇이 스페인과 영국의 힘이 아니라 베네치아나 피렌체 같은 이탈리아의 한 공국의 힘을 빌어서 탐험에 나섰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랬다면 현재 세계의 공용어는 이탈리아어가 돼 있으려나요?^^
그리고 영국 사투리.. ㅋㅋ 전에 케이블 채널에서 해주는 <셜롬 홈즈> 시리즈를 본 기억이 나네요. BBC에서 만든 거였나, 뭐 그랬는데 론돈(London), 포써블(possible), 좁(job), 하피(happy), 땅큐...ㅎㅎ 그 쫀득쫀득한 발음들. 급기야 '노태톨(not at all)' 같은 충격의 발음까지... 억양도 은근히 연변 사투리 비슷한 것 같구요?^^ (근데 전에 쓰신 어느 댓글에서도 본 것 같은데, 현재 외국에 거주하고 계신가요?)
서정주는 원래 자신이 구름 타고 대기권 위에 앉아있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겼죠. 일제 때는 그래, 강직한 지식인들도 결국 변절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고 이해를 해주다가도 전두환한테 아부 떨었다는 거 보면 원래가 몸 편한 거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부를 떨어도 부처님 미소네 어쩌네 하는 수준까지는 떨지 않아도 될 듯싶은데 말이죠. 그러면서 언제나 모시 적삼 깨끗이 다려입고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김지하처럼 잔뜩 오염된 대기권 언어로 도발이라도 하든가. 좀 그렇습니다.
근데 그 부분에서도 조심스러운 것이, 80년대라는 불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가 부지불식 간에 경직된 면도 많지 않았나 싶어요. 서정주는 그랬기 때문에 '무조건' 배척해야 하고 박몰월의 '나그네'는 일제시대의 궁핍함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배척해야 한다면 북한과 다를 게 무엇이고 월북, 납북작가들의 작품을 금지시켰던 군사정권의 행태와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자로 상징되는 앙시엥 레짐을 타파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문화혁명 식의 일괄적 타파는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은 개인적으로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를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자고 마음먹은 것과 관계있는 진술이기도 해요. 몇 년 전에 '낙엽을 태우면서'를 다시 읽었는데... 와... 감탄했잖아요. 참 뛰어난 수필이더라구요. 그 시대에 커피를 볶아먹고 목욕물 데워서 욕조 목욕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게 또 그런 것 같습니다. 원래가 귀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죠. 나이를 먹으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접하다 보니 출신성분이나 성장배경에 상관없이 '원래' 태어나기를 그런 성향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효석도 그런 사람이었다고 이해를 했구요, 해서 그 글에 드러나 있는 뛰어난 멜랑콜리를 편하게 받아들이기도 했어요.^^
저도 뭐 또 한 번 횡설수설해봤어요.^^
예...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10년 간 어떻게 참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또 요즘 하는 거 보니까 정말 저 사람들이 첨에 민예총 출신 사람들이 이런저런 국가 문화기구의 장으로 임명되고 민변 출신들이 국정원장에 임명되는 것 등을 보면서 상당한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겠구나.. 하고 짐작하게 돼요. 그 사람들이 생각할 때 민예총 출신 등등은 언제나 너저분한 옷차림으로 문화운동 한답시고 장외에서 천방지축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라고만 여겼을 텐데 어느 날 갑자기 장내로 들어오는가 싶더니 문화부 장관, 예술의 전당 사장 등으로 임명되더라 이 말이죠. 거기다 장내로 들어와서 하는 거 보니 예상보다 잘 해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더욱 그 시절들이 비정상적인 시절이었노라고 선전에 열을 올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문화 부분에서는 '좌파'들의 활약상이 대단하니까요. 좌팔들이 없으면 현재 대한민국 문화는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근데 그러다 보면 저 사람들이 인사청문회 및 국정감사에서 고영구 국정원장,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 이종석 통일부 장관, 이창동 문화부 장관 등에게 행했던 패악들이 떠올라서 좀 불이 나기도 해요. 지금 타계하신 서동만 교수도 참 많이 시달렸죠. 사상이 의심된다고... 한명숙 총리는, 찾아내도 찾아내도 건수가 없으니까 군대 간 아들이 행정병으로 임명된 걸 가지고 트집잡고. 치사한 시키들!
저도 '뜬금없는' 주절거림이었습니다.^^20. fyae
'09.10.14 12:33 PM (216.183.xxx.241)시간이 좀 나고, 할일도 없고 해서 위의 댓글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조상의 유산이라고 한 것과 한글전용이 가져다준 '민주'라는 환상, 독점권력의 분배에 대해서 좀 부연해야 할거 같아요.
리쭝우의 '후흑학'이라는 책이 있어요.
'중국정치학'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중국 정치사의 적나라한 모습을 담고 있으며, 사실 세계 모든 정치사를 관통하는 책이라 할 만 해요.
그 책에서 말하는 정치의 세계, 중국의 역사는 말그대로 낯짝두꺼움(후)과 시커먼 속마음(흑)을 가진 이들의 세계입니다. 짐승의 세계죠.
저자 리쭝우가 깨우친 사실은 이런거예요.
자신은 중국의 역사에 나오는 영웅처럼 되고 싶었대요. 그래서 그들 영웅(유방, 조조, 유비 등등등)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었길래 그렇게 되었을까.... 그들은 리쭝우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슨 특별한 도나 특성이나 어떤 탤런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그 특별한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을 한참동안 연구하다 어느날 홀연히 발견합니다. 그것은 두터운 얼굴(면후)과 시커먼 마음(심흑)이라는 거예요. 뻔뻔함과 속을 알 수 없는 야비함....
세계의 모든 정치사를 보면 결국 음모와 배신과 야비함과 간사함과 비열함을 빼고 남는게 없잖아요. 전쟁이라는 고도의 인류활동에서 부터, 정권유지와 쿠데타와 식민통치와...
어찌보면 춘추전국이라는 아비규환의 전장속이 인류사의 가장 중요한 인문학의 출발을 이루어 냈는데, 사실 중국의 경우 그 인문학 전통을 이어가지 못해요. 이민족의 침략으로 식민지화 되었기 때문인데요. 이민족의 침략에 의한 식민지화는 아리안의 인도, 유럽침략, 유럽의 아메리카, 아프리카 침략 처럼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납니다.
식민지화된 땅에서 인문학이 발달할 리가 없잖아요.
( 서양의 인문학은 인문학으로 볼 수가 없어요. 그것은 서양인들 자신이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이유를 아직도 자신들이 모르는 거라고 보면 되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그 화려한 인문학이 발달했는데, 왜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러야만 했을까요?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이 말하는 인문학이 전쟁을 막는데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는 거죠. 결국 그래서 해체주의로 가지만...)
전 인류사를 통틀어 그나마 조금 - 아주 쬐끔 - 인문학의 불씨가 남아있는게 바로 한반도예요. 지리적, 기후적요인이 가장 결정적이었고, 그 때문에 다른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장기간의 평화시기를 가진게 가장 큰 요인이죠. 물론, 결국 세계사의 소용돌이에 휩슬리고 말지만...
세계가 다시 요동치고 있는데요
다시 짐승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데요..... 폭풍전야의 세상이 참 이렇게 고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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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가져다 준 민주화.....
정보의 민주화는 권력의 민주화라는 말이 맞아요.
한글로 인해서 정보의 민주화가 되었고, 그것이 권력분산을 한 면도 있을거예요...
지난번에 '제왕적'이라는 타이틀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썼는데....ㅎ
한국사회만 놓구 볼때, 가장 제왕적 타이틀이 어울리는 집단과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요?
미국사회를 보면?
유럽사회를 보면?
어제 '프로포즈'란 산드라 블록 나오는 영화를 봤는데요.
민주사회라는 미국에서 흔히 벌어지는 내용이예요.
한마디 말로, 부하직원을 해고하고, 3년동안 휴가도 안보내고, 머슴처럼 일시키고...
대통령은 제왕적이 될 수가 없어요. 그것은 권력이 없기 때문이예요.
한국에서 가장 제왕적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이는... 당연히 경주이씨가문의 이*희 아닐까요?
우리가 민주화랍시고, 중앙정부의 힘이 약화됨을 민주주의의 발달이라고 착각하는 동안, 철저하게 자신의 파워와 권력을 키워온 이가 있으니, 이름하야 '자본가'라...
한글로 이루어놓은 민주화는 자본의 파워에 굴절되어, '기만'과 '사기'로 점철되었어요.
한글의 민주화는 민주화가 아니라, 우민화이고, 감각화이고, 선동화가 되어버렸죠.
뭐 단지 한자로 돌아간다고 그게 해결될것은 아니겠죠. 한자, 한글의 문제만은 아니니까...
현재의 교육을 바라보세요. 교육은 국가가 하는 것이고, - 근대국가의 출현 - 모든 교육의 정책과 사안에 그 국가의 현실이 투영됩니다. 현재의 철저하게 자본가의 입맛에 맡도록 타락한 교육을 보면, 이 나라의 실권이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 잖아요.
참여정부때, 로스쿨을 시작하다니... 맙소사...
권력은 전보다 훨씬 더 '소수'에게로 집중되었어요. 한글화가 이루어 졌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제 의문의 시작입니다.....21. 프리댄서
'09.10.15 8:11 AM (218.235.xxx.134)크...'낯짝 두꺼움'과 '시커먼 속마음'.
<후흑학>이라는 제목부터가 참 매력적이네요. 면후와 흑심이라.. 근데 그걸 <중국정치학>이라는 밋밋한 제목으로 옮기다니.--; 나라면 <두꺼움과 까맘의 역사 : 중국정치학> 내지는 <낯짝 두꺼움과 시커먼 속마음의 파노라마 : 중국정치학> 뭐 이렇게 옮기겠구만.ㅋㅋ (더 골 때리나요?ㅋㅋ)
아닌 게 아니라 저도 faye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현대는, 겉으로는 권력 분산을 지향한다지만 실상은 소수에게로 더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본의 힘은 이미 통제나 조절의 수단이 무용해질 만큼 막강해진 것은 아닐까.
어제 앙드레 고르의 책을 읽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오더군요. 인간을 위해 생산이 이루어져 하는데 지금은 생산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시대라구요.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채플린이 명철하고도 재기발랄하게 통찰했던 것이 어쩌면 지금 적나라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단순조립을 하던 채플린이 점점 톱니바퀴의 나사 하나처럼 변해갔던 상황이 무소불위의 자본이랄까, 낯짝 두껍고 속 시커먼 신자유주의의 탐욕스러움 앞에서 적나라한 현실로 변하는 느낌이에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여기 게시판만 봐도 사는 게 진짜로 점점 빡빡해져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 게시판에서 읽은 글 중에 제일 충격적이었던 게 자면서 욕을 한다는 남편 이야기였습니다. 삼성맨이었고 저랑 같은 나이였죠. 그래서 더 마음이 스산해지더라구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삼성 들어가서,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가... 나이 마흔에 자면서 욕하게 되는 상황이라. 너무 원론적인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뭘 위해 우리가 이렇게 버둥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어제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 기다리면서 그 생각했어요. 면목동 쪽 그 어수선한 동네에서... 우린 참 뻑뻑하구나, 나뭇잎들은 지혜로운 노인처럼 물들었는데 우린 참 그렇구나...
저는,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요즘 들어 아담한 단층 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바닥만한 마당 있구요. 거기에 빨랫줄 매달아서 햇볕 좋은 날은 빨래도 널고, 담장에 능소화도 심고... 음식하는 건 즐기지 않기 때문에 텃밭엔 흥미가 없고. 뭐 꽃이나 좀 심어야겠죠. 비오면 마당 풀에서 풀비린내가 풍겨오고 비 내리는 소리도 잘 들리고. 방 하나엔 마당 잘 보이게 창문 크게 내서 그 창문 바로 앞에 내 책상 놓고. 인생 뭐 있나? 싶어요. 문제는, 그러려면 관리실이 없으니까 알아서 집 다 관리해야 되고 벌레나와도 놀라지 않아야 하고... 간혹 쥐가 출몰해도 경기 일으키지 말아야 하고, 도둑에 대비해... 에구, 쉬운 일이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암튼 스트레칭이라도 좀 할까 봐요. '활기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 하하. faye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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