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보안사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결과 / 12월26일 오후 7시40분 궁정동
1979년 12월 24일 국방부는 보안사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결과에 따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내란방조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총장공관에서 정총장을 강제연행한지 12일만의 일이다.
합수부가 작성한 정총장에 대한 혐의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당일인 12월26일 오후 7시40분 궁정동에서 자신을 영접하던 김정섭 중앙정보부 2차장보와 식사를 하다가 총소리가 나자 의아해 하던 중 김재규가 와이셔츠차림에 당황한 표정으로 나타나 {총장, 큰일 났다}고 말한 것을 듣고 대통령관련 위급사태가 발생한 것을 감 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 오후 7시50분께 김재규와 함께 차를 타고 육본으로 가던 중 김으로 부터 대통령 서거사실을 밝히면서 김이 무사히 탈출한 것, 김이 범인을 밝히지 않은 점, 계엄선포를 주장하면서 국가의 장래가 육참총장에게 달려 있다고 격려하는 점으로 미뤄 김이 대통령 시해범인일 것을 의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육본 벙커에 도착, 대통령경호실장 휘하에 있는 수경사에 연락을 취해본 결과 이상이 없어 차지철이 범인인 가능성이 배제돼 김이 범인이란 심증이 더욱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총장은 이후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수 시간 김을 방치해 두었다가 밤 11시50분 김계원으로부터 김이 범인이란 사실을 통보받고야 보안사 령관과 헌병감에게 김 체포지시를 내렸고 지시하면서도 {정중히 모시라}고 해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김의 범행을 방조했다는 것이다.
합수부는 여기에 덧붙여 정승화와 김재규는 62년 이래 가깝게 지냈고 재경 경북출신 장성모임과 3군단장 인수인계를 하는 등의 인연으로 교분이 더욱 두터웠고 79년 1월에는 김이 적극적인 천거로 육참총장에 보직되자 취임후 맨 처음 김을 방문, 감사 인사를 한 사실이 있으며 그 후 부부동반 초청 회식 등에서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지냈다고 밝혔다. 합수부는 또 김이 중정부장으로 막강한 조직과 전력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10.26직후 시해의 배후에는 방대한 배후조직이 있을 것으로 판단, 기회주의적 처신만이 자신의 공리를 위해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종합하건대 합수부는 정총장이 10.26사건 발생 직후 군 최고통수권자를 살해한 범인을 알았으면서도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내란을 방조했다는 것이다.
이미 계급장 없는 군복차림으로 조사받고 있던 정총장은 이후 12월30일 구속됐다가 80년 1월18일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되고 80년 3월5일 수번 105번을 달고 국방부 군법회의에서 첫 공판을 받았다. 적용 법규는 형법 제87조 (내란)관련 종범으로 징역 15년이 구형됐으며 3월13일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정총장은 닷새후인 3월18일 계엄 관할관인 국방부장관에 의해 7년으로 감형되었고 항소를 포기했고 옥살이 6개월만인 80년 6월10일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군 교도소에서 석방됐으며 이듬해인 81년 3월2일 전두환 대통 령 취임기념 특사로 사면 복권됐다.
그랬던 정씨가 긴 침묵을 깨고 87년 11월 당시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12.12는 권력을 노린 일부 군인들의 반란}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반란을 막지 못해 국민들이 지금까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유구무언} 이라고 말해 일대 파문이 일었다.
당시는 아직 전두환씨가 대통령에 재임 중이었고 노태우씨는 민정당총재로 차기대권을 인수받으려던 참이었으며 유학성. 장세동씨등 12.12주역들이 권력을 손에 쥐고 호령하던 때였던 만큼 정씨의 이 발언은 정치권에 일대 회오리를 몰고 왔다.
정씨는 이어 각 언론과의 회견을 통해 12.12당시의 상황을 상술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12월12일 그는 오후 7시 국방부 조사대장과 보안사처장 이라고 소개한 2명의 사복남자에 의해 강제 연행됐으며 연행과정에서 대통령 재가 여부를 묻자 그들이 총기를 사용해 불가항력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 중 보안사 처장이라고 밝힌 자는 곧 인사처장 허삼수 대령이었는데 그는 {총장님, 김재규한테 돈을 많이 받으셨더군요}라며 정총장의 동행진술을 요구했다.
후일 문제의 이 [돈]은 김재규가 79년 10월에 추석떡값으로 보낸 것으로 밝혀졌는데 정씨는 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79년 추석 무렵 [중추가절]이라고 적힌 봉투를 김재규 중정부장이 사람을 시켜 놓고 간 적이 있는데 안에는 10만원권 수표 30장이 있었다. 의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받았다}
후일 보안사 수사기록에는 김재규가 준 돈은 7백만원이었던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액수의 문제라기 보다는 합수부측이 정총장연행을 위한 구실로 삼았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정씨가 87년 11월에 12.12에 대해 [입]을 열자 집권당인 민정당측은 그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 악역을 전담한 사람은 유학성의원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정씨는 김재규 범행과정에서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고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내란을 방조한 자}라고 혹평했다. 게다가 그는 무인다운 표현법으로 {10.26당시 군최고 통수권자가 살해당한 걸 알면 육군참모총장인 그는 할복 자살했어야 옳다}고 까지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신군부측 정치권이 물고 늘어진 또 하나의 구실은 바로 정총장이 12일 밤 11시 김계원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이란 사실을 듣고 김 체포 지시를 내리면서 {정중히 모시라}고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씨는 {김을 안가로 정중히 모시라고 말한 것은 김이 외부에 노출돼서는 안 된다는 점과 대통령 시해범이라고 해서 너무 거칠게 다루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려해서 했던 말}이라고 해명했다.
어쨌건 정승화 육참총장의 강제연행과 그로 인해 성공한 12.12내란은 이제 그 실체적 진실이 밝혀졌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계엄사령관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진 그가 10.26이후 한달 이상 신군부의 음모와 동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속수무책으로 강제 연행한 사실은 그에게 단순한 [쿠데타 피해자]란 분류 외에 별도의 애국적 희생자란 칭호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서슬 퍼렇던 때라지만 항소마저 포기하고 감형. 형집행정지처분을 받은 그에 비하면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이름없는 영웅들이 우리의 현대사에는 숱하기 때문이다.
제 11회 신군부의 12.12거사가 혼미의 79년 겨울 崔圭夏 대통령
권한 대행이 혼란한 정국을 수습해 주길 바랄 뿐
신군부의 12.12거사가 혼미의 79년 겨울에 일부 핵심 군지휘관들의 전쟁으로 치러진 동안 계엄하의 언론은 입도 뻥긋 못하고 있었고 대다수 서울시민과 남한 주민들은 아직 쿠테타 발생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국민들은 20년 독재를 비극적으로 마친 朴正熙대통령의 죽음을 막연히 민주화의 신호탄으로 여긴 채 인자한 모습의 崔圭夏 대통령 권한대행이 혼란한 정국을 수습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崔대행은 예상대로 11월9일 오후 [시국담화]를 발표,
▲유가헌법을 대통령 발의나 국회발의를 통해 개정하고
▲잔여임기에 국한 받지않고 개헌에 의한 대통령선거를 조속 실시해 [평화적 정권교체]의 토대를 쌓으며
▲빠른시일 내에 계엄을 해제하겠다는 것이었다.
崔대행은 이어 11월14일 시정연설을 통해
▲헌정중단은 없으며 합헌절차에 따라 대통령선거를 실시하고
▲韓美공동방위체제를 공고히 해 한반도 전쟁억지를 견지하며
▲경제분야의 안정기조를 유지한다는 등 사회 각 분야의 시책을 발표했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조치였다.
게다가 崔대행은 각계인사들과 대화를 실시, 11월27일에는 서울 15개대학 총장들과 면담을 갖고 제적학생 복적. 복교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바야흐로 유신암흑의 희생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예고했다.
崔대행은 12월6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실시된 통일주체국민회의 제3차 회의에서 대통령단독후보로 출마한 제10대 대통령 보궐선거 결과 2천5백49명의 대의원 중 2천4백65표를 얻어 당선됐다.
崔대통령이 된 그는 12월8일을 새벽 0시를 기해 긴급조치9호를 해제하고 2백14명의 시국사범을 면소 또는 불기소처분하고 복역중인 93명에 대해서는 잔형을 면제했다.
그는 [새 국가건설에 동참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80년 3월초까지 개헌안을 마련한다는 정치 스케줄을 발표했다.
崔대통령은 12월14일 국무총리에 申鉉碻,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李漢彬, 내무 金鐘煥, 법무 白翔起, 국방 周永福, 문교 金玉吉 등 18개 부처 새 내각을 발표했으며 12월31일 대통령 취임에 맞춰 1천6백41명에 대해 특사.가석방조치를 단행했다.
특히 申총리는 12.12 이틀후인 14일 조각발표에 덧붙여 {12.12 사태이후에도 정치스케줄엔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언론들은 새 대통령 취임뉴스와 잇단 사면. 복권조치를 보도하기에 바빴으며 그 사이에 金載圭 등 내란살인 사건의 계엄 보통군법회의 수사발표를 통해 가끔씩 계엄사 합수부장이라는 머리 벗겨진 사람이 흑백TV에 비쳤다.
바햐흐로 朴대통령 사망사건은 다가올 민주화 시대를 열었으며 국민들은 이듬해 80년 봄이 여느 해와는 다른 봄이 될 것으로 믿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시국의 두꺼운 얼음장은 녹기 시작했다.
총선과 개헌에 이어 민선방식에 의한 대통령선거가 이제 남한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정계와 대학가에 넘실거렸다.
崔대통령은 이어 80년 연두기자회견에서 총리급 남북대화를 제의하는 한편 3월에 개헌심의회를 설치해 1년내에 개헌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당초의 스케줄을 지연시킨 셈이었지만 崔대통령은 {정치바람에 휘말려 서둘러 헌법을 개정한 결과 1년도 못가 헌정이 중단되고만 경험을 되살려 이제는 후회없는 헌법개정을 해야한다}고 전제하고 {이를 위해 전직 3부요인 등 각계원로가 참여하는 [국정 자문위]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그가 입을 열지 않아 개헌연기에 신군부의 압력이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당시엔 혼란한 정국의 정치스케줄에서 개헌에 신중하겠다는데 반대하는 여론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서울의 봄]은 대학가에서부터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엄동인 80년1월, 개학도 하기 전에 [복적생]신분으로 학교에 돌어 온 긴급조치위반 제적생들은 각 대학에 잔존한 시국서클을 규합, 나름의 시국집회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된 구호는 [학원자율화]였으며 이를 위해 당시의 학도 호국단제를 폐지하고 학생회를 부활해야한다는 주장이 가장 먼저 제기됐다.
신임 金玉吉 문교부장관은 이를 긍정 수용했다. 학생들은 비상계엄해제와 시국 사범 추가해금, 정치일정 단축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개학과 동시에 이 봇물은 터질 것이었다.
崔대통령은 2월8일 문교부 순시에서 {학생들이 본연의 자세를 잃고 정치 현실에 참여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므로 면학지도를 철저히 해줄 것} 을 당부했으나 이는 당랑거철에 불과했다.
3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인건 金泳三 新民黨 총재였다. 그는 2월 18일 崔대통령 초청으로 삼청동 총리공관에서(그때까지 崔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주하지 않았다) 오후 6시부터 밤11시까지 5시간동안 독대하며 민주화일정을 논의했다.
金鐘泌 共和黨 총재도 2월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시국사범에 대한 복권을 촉구했다.
金大中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76년 3.1 明洞사건으로 복역중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가택연금상태에 있던 그는 崔대통령 취임특사로 2월29일 시 국사범 복권조치로 정치에 복귀한다.
그러나 그는 2金과는 달리 군부를 경계하는 성격이 다분히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했다.
5년동안 투옥.연금을 당했던 사람답지 않게 그는 복권 다음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정부가 국민이 원치 않는 일을 성급하게 추진하려 하거나 국민전체가 원하는 바를 짐짓 늦추려한다면 이것 자체가 정국을 불안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 순간에 있어 나의 1차적인 관심은 민주제도의 차질 없는 재확인이지 대통령후보가 되는 것이 아니다}며 {대통령 후보 경쟁에 열중한 나머지 민주주의의 소생을 원하지 않는 자들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또 그는 {민주주의 파수병의 한사람으로 국민들과 더불어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도록 감시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목소리는 일간지마다 대문짝만하게 실린 대규모 사면복권 기사와 3金 대권경쟁체제를 예고하는 남한의 3월 기류속에 [기우]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제 12회 {K공작계획} / 민간정보수집을 위해 보안사내에 정보처를 부활
12.12로 군권을 장악한 직 후 全斗煥보안사령관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측은 육본 측 장성들을 대거 숙청하고 80년 2월 민간정보수집을 위해 보안사내에 정보처를 부활시키는 등 정권찬탈을 향한 내부 정지작업에 착수했다.
全斗煥은 유신시절 직제가 폐지되었던 보안사내 정보처를 이때부터 부활시켜 민간정보 수집분석 활동에 착수했고 정보처를 중심으로 언론통제계획인 소위 {K공작계획}을 수립, 계엄사의 보도 검열업무를 강화해 나갔다.
全斗煥은 또 관련 법규를 무시한 채 申鉉碻국무총리 등 각료들 대부분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현역 장성으로서 같은 해 4월 14일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함으로써 신군부의 영향력을 정계 등에까지 대폭 확대했다.
全斗煥은 정권찬탈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마무리한 뒤인 5월 4일 께 權正達보안사 정보처장 등 핵심 참모들과 수시로 만나 정권장악 방안을 논의하는 등 내란모의가 본격화 됐다는 게 검찰의 발표 내용이다.
검찰은 특히 全斗煥은 權正達 등과의 논의를 통해 비상계엄확대 조치를 수단으로 초헌법적 비상기구인 국보위의 설치, 민주화 일정등이 논의, 임시국회의 조기해산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시국수습 방안}을 확정한 시점을 내란의 시작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무튼 全斗煥은 80년 3월 중순 보안사에서 {K공작계획}을 수립해 언론계 중진들과 개별접촉을 시도하는 한편, 5.17비상계엄전국확대 조치 직후에는 보안사에 언론통폐합계획을 입안하도록 지시했다.
全斗煥은 또 같은 해 6월 許文道 당시 국보위 문공분과위원등이 작성. 보고한 {언론계의 정화. 정비 계획}중 언론인에 대한 숙정을 단행, 언론사 자율정화 형식으로 언론인 9백33명을 같은 해 10월까지 해직시켰다.
全斗煥은 이후 같은 해 11월12일 이상재 당시 보안사 언론대책반장이 작성한 {언론건전육성 종합방안보고서}를 토대로 허문도 당시 정무 제1비서관이 작성한 언론통폐합계획서인 {언론창달계획}을 승인하고 45개 언론사 대표들을 보안사로 불러 강제로 언론사 포기각서를 작성토록 해 64개 매체를 18개 매체로 통폐합했다.
검찰이 全斗煥. 盧泰愚 등에 대해 내란수괴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 밝힌 {K공작}의 확인된 내용들이다.
검찰은 그러나 K공작을 80년 5월 {시국수습방안}과 함께, 단순한 언론통폐합 차원이 아닌 全斗煥일당의 집권시나리오로 파악했다.
12.12와 5.18이 치밀하게 짜여진 연속된 쿠데타라면, 보안사가 마련한 {시국수습방안}과 {K공작}은 이 집권시나리오의 일환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신군부측이 12.12를 일으키고 집권시나리오에 따라 光州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뒤 崔圭夏대통령을 하야시켜 집권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全斗煥의 중앙정보부장 겸직. 5. 17 비상계엄확대조치 경위등도 {연속된 쿠데타}임을 증명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K공작 계획}에 관해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 그 목적. [단결된 군부의 기반을 주축으로 지속적인 국력신장을 위한 안정 세력을 구축함에 있다]는 데 검찰은 주목하고 있다. 단결된 군부란 바로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며 안정세력 구축은 곧 정권장악을 달히 표현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한 탓이다.
검찰은 또 이 계획이 80년 3월 중순이전에 작성돼 全斗煥의 결재를 받았고 시행기간을 1단계 3월24-5월 31일, 2단계 6월1일-6월30일, 3단계 7월1일 -공작 종료시까지로 {특정일정}에 맞춰져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7대 중앙일간지와 5대 방송사, 2대 통신사의 사장, 주필, 논설위 , 편집-보도국장 등 총 94명을 회유공작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도 검찰의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즉 이들에 대한 접촉을 통해 협조가능성 여부를 따진 뒤 구체적으로 체제 홍보에 이용하려 했다는 풀이다.
실제로 신군부측은 1차 접촉대상 18명의 3김씨에 대한 지지성향을 분석했던 것으로 드러났 다. 라서 검찰은 {K공작계획}이야말로 12.12를 통해 군 최고실력자로 떠오른 全斗煥이 신군부 핵심과 함께 정권을 탈취하기위해 만든 밑그림일 가능이 높은 것으로 봤다.
5.18관련 사건 고소-고발인들은 신군부가 치밀한 사전 집권계획을 갖고 이를 행동에 옮겼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핵심시나리오로 {K공작}을 지목했다. 대언론 공작을 통한 민간정보 장악, 비상계엄 전국확대, 국회점거 및 봉쇄, 정치인-재야인사의 체포 등 정치활동 금지, 광주유혈사태 유발, 崔 圭夏대통령 강제하야 등 향후 수순이 사전에 구체적으로 준비됐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사전 지시나 허락없이 이미 80년 5월초 全斗煥보안사령관이 權 正達 정보처장에게 비상계엄확대, 정치활동 규제, 비상기구 설치 등을 골자 로 하는 [시국수습방안]을 만들도록 했으며 李鶴捧 보안사 대공처장에게는 정치인. 재야인사. 학생대표 들에 대한 검거를 준비하도록 한 사실을 근거 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처장은 대통령은 계엄을 재가하기도 전인 5월 16일 전국보안 부대 대공과장 회의를 열어 [5월 17일 자정부터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 되니 일제검거에 나서라]는 지시를 하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군 병력 역시 5월 14일부터 확대 배치돼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全斗煥등 피고소.고발인들은 사전음모를 전면부인하고 있다. 이들은 [80년 일련의 조치들은 사회혼란을 수습하고 국정안정을 도모하 기위해 계엄업무 또는 대통령의 재가,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며 [이 과정에 서 주도적 인물로 부상한 全보안사령관이 자연스럽게 대통령으로 뽑혔을 뿐 정권장악 계획은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신군부측은 또 [K공작계획은 담당자가 역할과시를 위해 존재를 부풀렸을 지 모르나 집권시나리오는 결코 아니다]고 주장했다. K공작계획이란 보안사 정보처 언론반이 언론계 지도급 인사들에게 군의 역할을 이해시키고 국가 안보와 사회안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입안한 언론 반의 운영계획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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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역사를 인식하여야 현재와 미래가 있습니다(Ⅲ) -전두환이 정권을 잡는 순간-
-용- 조회수 : 177
작성일 : 2009-08-30 14:37:05
IP : 218.39.xxx.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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