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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든 탑도 무너진다.- (산하님 글)

조회수 : 718
작성일 : 2009-05-14 02:03:24

http://www.mediamob.co.kr/sanha88/Blog.aspx?ID=233454

+ 공든 탑도 무너진다. - 썸데이서울


속담들은 종종 기가 막힌 절실함으로, 무릎을 칠만큼 절묘한 현실과의 결합으로 우리 앞에 도드라지곤 합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는 때가 어디 한 두번이고, 설마가 사람 잡는 기억이 누구에겐들 없겠어요.  또 가는 날이 장날일 때는 어찌 그리 많으며, 업은 애 삼년 찾는 아픔은 왜 그렇게도 반복되는지......  


속담 몇십개 적어오기 숙제를 하고 있는 아들 녀석을 도와 주다가 청어 가시처럼 입천장과 목구멍을 껄끄럽게 하는 속담 두 개에 잠시 멈칫했어요.   "아니땐 굴뚝에 연기 나랴"와 "공든 탑이 무너지랴" 는 말들이 그것입니다.    교과서에 따르면 '인과 관계'를 설명하고 '정성의 중요함을 뜻하는' 이 속담들이 왜 꿀꺽 삼키기 어려웠을까요.  그건 일종의 공포 때문이었어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이 대관절 왜 무섭냐구요.   그건 그 말 자체라기보다는 그 말이 쓰여져 온 내력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처녀 총각이 연애를 한다는 소문이 나면 둘이 아니라고 펄펄 뛰며 부인하고, 실제로 전혀 그런 관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옆에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고 키득거림 속에 순식간에 그렇고 그런 사이로 굳어져 버리잖아요.   처녀 총각 청춘 사업까지는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직장에서 팀으로 근무하는 유부남 유부녀를 대입시켜 보세요.  분위기 급 싸늘해집니다.  둘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명해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하는 쑥덕거림은 둘의 목에 올가미처럼 감기고, 발목에 칡넝쿨처럼 들러붙겠지요.  무고한 중년 남녀의 허파가 뒤집히든 말든.  그리고 팀장이나 본부장이 불러서 한 마디 하겠죠. "평소 처신을 어떻게 하길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냐"가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정상적인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본령의 뜻을 벗어나서 땔감을 근처에도 갖다 놓지 않았는데도 연기가 났다고 우겨댈 수 있고,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더라도 '연기를 낸' 사람들의 억울함이 풀리기보다는 "아니면 말고" 또는 "앞으로 잘해"의 적반하장에 피눈물을 흘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동네 아저씨 아줌마의 쑥덕공론 정도가 아니라 국가기관이든 언론이든 한 개인의 일상 쯤은 손가락으로 튕겨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축들이 저 속담을 들이댄다면 그만큼 모골이 송연한 일이 또 있을까요.  


간첩질은 커녕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사람도 몰아가고 꾸며대고 들쑤시고 조져대기에 따라 그럴 듯한 간첩으로 거듭났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한 번 그 올가미에 걸려들었던 이들은 피를 토하는 항변 끝에 무죄함을 공인받은 후에도 주위의 차가운 시선 속에 냉가슴을 안고 살아야 했었지요.  그들의 뒤꼭지에 대고 얼마나 많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 소리가 겨냥되었을까요.  연기는 커녕 행여 아지랭이라도 올라갈세라 얼마나 조심조심 하며 여생을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요.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무서운 이유는 '아니 땐 굴뚝' 처럼 그 말 자체에 회색빛 공포가 끼어들어 있어서는 아닙니다.  당연히 현실과 부합해야 하고, 일상 생활에 삶의 지혜를 빌려 주어야 할 그 속담이 날이 갈수록 오류가 되고 있다는 것이 두려웠던 거지요.   군홧발들이 들이미는 총검에 맞서서 "맨주먹 붉은 피로" 맞선 사람들의 면면을, 죽음보다 더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해 보고자 노력하다가 스스로 몸에 불을 당기고 옥상에서 떨어져내린 사람들의 명단을 굳이 되새김질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오늘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이 들어갔습니까.  


증거 없이 체포될 수는 없고, 경찰관의 이유없는 불심검문을 거부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시정잡배이든 경찰서에 잡혀가서도 자신의 인권을 내세울 수 있는 공화국 시민의 권리를 이만큼이나 확보하기 위해서, 술김에 "차라리 김일성이 낫다"고 내질렀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적용받고 국가원수모독죄에 걸려드는 시대, 추모 리본을 달았다고 불법 부착물 부착 혐의로 뒷덜미를 잡아채는 나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헌법에 보장된 언론과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딱 이 정도나마 향유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들어가야 했습니까.  석가탑 다보탑에 댈 것도 아니고 금자탑이라고 부르기엔 쑥스럽지만 이 정도 높이의 공든 탑을 세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공든 탑이 허물어지는 게 눈을 감아도 보이잖아요.   국제영화제 대책위원회부터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까지 '폭력 세력'의 딱지를 살포해 대고, 외국인을 두들겨 패서 갈빗대에 금 가게 하고서는 "앞으로는 외국어 방송을 하겠다." (즉 외국인을 두들겨 팬 것이 문제이지 두들겨 팬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는 사고방식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경찰은 이미 우리의 선배들이 탑의 기반을 다지던 때로 원위치한 지 오래로 보입니다.   지축을 흔드는 굉음도 없이,그 치열한 공의 흔적도 없이, 우리의 탑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면목으로 아이에게 공든 탑이 무너지랴?의 뜻을 가르치며 앞으로 무슨 공을 들이라고 훈계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의 공든탑이 사라지는 판에.  


어제 인터넷질을 하다가 본 기사 하나에 저는 악착같이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 애쓰던 공든탑이 삼풍백화점처럼 붕괴하는 착각같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여의도의 밤, 한나라당사 앞을 지나던 사람이 술김에 "명박아 너 때문에 경찰이 개고생이다"라고 외쳤다는 이유로 수십 명의 경찰이 달려들어 팔 꺾어 연행하고 즉결에 넘겼다는 기사가 그것입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11182811§ion=0...


이 짓을 하고도 아마 경찰은 이제야 공권력의 권위를 세웠노라고 어깨를 으쓱하고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술 먹고 김일성이 차라리 낫지 않냐고 주사 부린 것에도 준엄한 법 질서를 구현하던 시절을 상상하며 대한민국 참 좋아졌지 예전 같으면 콱.... 하면서 경찰봉을 어루만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들과 드문 술자리를 가질 때 정말로 드물지 않게 들었던 말이 그것이었으니까요.  "대한민국 참 좋아졌지. 제기랄."


위장간첩(으로 알려진) 이수근 사건에 애매하게 연루되어 20년 감옥살이를 한 배경옥씨에게 온갖 고문을 가하던 중앙정보부 요원도 그랬다고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좋아져서 취조를 하고 재판을 하고 하는 것이지 너 같은 것들은 바로 없애버려야 된다"   수십 년을 사이에 둔 공권력의 한탄(?)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은 좋아져 왔을까요.  그 좋은 시절은 누구의 공으로 왔을까요.  그리고 정말로 대한민국의 공권력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시절은 대체 어느 시공간에 위치하고 있을까요.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너지는 걸 보고만 있는 게 괜찮은 일일까요.  속담 하나가 그 현실성을 잃는 문제로 끝낼 수 있는 것일까요?  그저 눈 내리깔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며 의심 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고 덜커덕 뭔가 잘못 보여서 경찰서에서 곤욕을 치루고 나오면서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난댔어 임마 처신 똑바로 해"라는 으름장에 네 네  머리 조아리는 시대로 양순히 돌아가는 것이 과연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바른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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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메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이런 세상이 될 것이란 경고도 많았건만.....
저만 일로 끌려가니 이제 영장없이 체포하는 세상이 되겠군요.
지금은 비록 모르는 누군가가 체포됐지만
내일엔, 내년엔, 바로 당신이 우리가
그 당사자가 돼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IP : 173.3.xxx.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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