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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기쁨
분아 조회수 : 389
작성일 : 2009-04-17 20:52:40
서산에 다녀왔습니다.
아침 9시 40분에 막내올케를 태우고
배 한 상자, 귤 두 상자를 차 트렁크에 싣고
김포를 출발했습니다.
짙은 안개가 희뿌옇게 깔렸지만,
그래도 배짱 좋게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시속 140KM로 고속도로를 질주했습니다.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얼마전에 다녀왔던 서해대교를 지나
서산 시내 한 복판 막내올케 친정집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사돈어른이 깜짝 반기며 막내올케와 내 손을 꼭 쥐어주는 순간
잠시 돌아가신 내 친정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엄마도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차 트렁크에서 배와 귤 상자를 내렸습니다.
"이런 걸 뭐하러 사온데유?"
"사돈어른, 맛있게 드시고 오래도록 건강하세요!"
사돈어른은
큰 며느리에게 차와 말랑말랑한 곶감을 내놓게 하고
이내 우리를 서산에서 아주 유명하다고 하는
'우렁이 쌈밥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어휴, 워째 바뻐서 경황도 없을텐데
우리 은숙이 생일 상을 다 차려주었대유? 우리 은숙이가
워찌나 감격해하는지... 아무튼 사돈, 참말로 고맙구먼유!"
"원,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아니여, 아니여, 고맙구 말구지!
워떤 시누가 올케 생일을 그렇게 챙겨준디야?
참, 욕 봤단 말 들었는데, 걱정 말아유. 틀림없이 복 받을기여!
암, 복 받지! 우리 젊은 사돈, 아무 딴 맴 먹지말구
하나님께 부지런히 기도해유!
우리 하나님이 월마나 좋은 하나님이신지 사돈도 잘 알잖유?"
정겨움과 구수함이 흠뻑 묻어나오는 사돈어른의 말투!
8 남매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의 토타운 손이
내 등을 도닥거려주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간 뒤
사돈어른은 우리를 서산 재래시장으로 안내했습니다.
싱싱한 해산물과 젖갈이 재래시장에 넘처났습니다.
사돈어른은 당신의 딸과 젊은 사돈인 나에게
살아 꿈틀거리는 쭈구미와 게, 그리고
싱싱한 굴과 우렁이와 김, 등을 똑같이 챙겨주었습니다.
밤길 운전이 조심스럽다며 저녁식사를 일찍 서둘렀습니다.
사돈어른은 모처럼 와서 하룻밤도 묵지않고
그냥 떠나는 딸을 못내 아쉬워했지만
젊은 사돈 눈치보느라 환한 얼굴로 이별을 준비했습니다.
차 트렁크에
한동안 김치를 담지 않아도 좋을 만큼
많은 김치를 큰 플라스틱으로 두 통, 싱싱한 해산물도
얼음 채운 아이스박스에 똑같이 넣어주었습니다.
"쌀은 무거우니깨, 택배로 부쳐줄테니
사돈 그리 알고 쌀 사지 말아유!"
"아니, 그러지 마세요. 식구가 없어 쌀 얼마 먹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면 섭하지유. 그냥 편하게 친정엄마처럼 생각하고
부쳐주면 받는 거예유. 요전에 은숙이네는 부쳤시유.
사돈, 밥만 먹으면 돼잖유. 뭔 걱정이래유?"
"밥이요? 그래요 밥만 먹으면 되죠 ㅎㅎ...!
괜히 와서사돈어른께 폐만 끼치고 가네요."
"원, 별 말을 다 하네! 폐는 무슨 폐?
이렇게 얼굴 봐서 너무 좋구먼!"
"그럼, 챙겨주신 거,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사돈어른, 안녕히 계세요!"
"잘 가유! 밥 잘 챙겨먹구 기운내유!"
"알았어요. 기운 낼게요. 어서 들어가세요."
"내 걱정 말고, 어여 가라니께"
그렇게 사돈어른은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던 자리에 당신의 두 발을 못박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서해대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막내올케랑 사돈어른의 자상함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헤드 라이트로 어둠과 안개를 걷어내며
까맣게 물든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아파트.
막내올케가 큰 김치통을 엘리베이터까지 끙끙 옮기는 사이
나는 사돈어른이 챙겨준 상자를 다시 풀어
막내올케 상자에 해산물 몇 주먹을 황급히 옮겨담았습니다.
그리곤 얼른 뚜껑을 닫았습니다.
막내올케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상자 속 해산물 무게는 가벼워졌지만
먹성 좋은 그집 식구들에게
싱싱한 해산물을 더 줄 수 있었으므로 기뻤습니다.
IP : 122.44.xxx.40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
'09.4.17 9:08 PM (117.20.xxx.131)참 예쁜 수필을 죽 읽은거 같은 기분이에요..
원글님도, 사돈 어른도 모두 좋으신 분들이네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2. @@
'09.4.17 9:33 PM (59.4.xxx.231)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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