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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기인가?

분아 조회수 : 485
작성일 : 2009-03-27 20:14:04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크리스마스 때,
내가 코바늘뜨기로 떠준 진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인형처럼 예쁘게 포즈를 취했던 꼬마 요정이,
대학 클래스메이트 하고 결혼하겠다며
청첩장 돌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결혼 3년차!

꼬마 요정, 큰 오빠 딸 수진에게 걸려온 전화.
250cc 오토바이도
조카의 빠른 말 속도는 따라잡지 못 한다.

처음엔
자길 죽기 살기로 쫓아다니는 인간이 있는데
키가 180L 냉장고 보다 작고
이도 완전 울퉁불퉁 비포장도로고
곱술 머리에...
하여튼 앞에 수식어 열 댓 개 늘어놓으며
지겨워 죽겠다고 난리더니...
눈에 꽁 깍지 씌고 난 다음부터
키만 크면 뭐해?
덕분에 자기 이가 얼마나 돋보이는지 모른다나?
평생 파머 값 안 드니 얼마나 경제적이냐?
순식간에 사람 돌변시키는 게 사랑의 마력인 가 보다.

“고모, 나 미쳐!”
“왜?”
“그 인간 꼴 보기 싫어서...”
“어떻게 매일 좋은 꼴만 보고 사니?”
“그게 아니라, 사람이 기본은 하고 살아야 되는 거 아냐?  
스탠드바나 나이트에 가도 기본이 있고,
고스톱에도 기본이 있는데,
이 인간은 기본이 없어. 고모 있잖아....”
이제 고모는 귀가 뜨끈뜨끈 해지도록
전화 수화기 붙들고 있어야 할 운명!
전화로 30분, 1시간 수다를 떨고도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줄게 하는 내 조카 수진이...!

“내가 챙피해서 말 안 할려고 했는데
아니, 결혼 전에는 화장 안 한 내 얼굴이 너무 예쁘다고 하더니
요샌 화장은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나?
그리고 주근깨 타령은 왜 하냐구?
연애할 땐, 주근깨도 너무 귀엽다고 야단 법석 이더니
없던 주근깨 새로 생긴 것도 아닌데
주근깨 신경 거슬려 죽겠다며 피부과에 가서 빼라나?  
돈이나 잘 벌어 주면서 그런 소리 하면 얄밉지나 않지.  

지는 뭐 그리 잘 났다고...?
키는 똥자루만 하고
(키만 크면 뭐하냐고 하더니...)
배는 뽈록 튀어나오고
(결혼하면 지가 쏘옥 들어가게 할 자신 있다고 하더니...)
울퉁불퉁 그놈의 이 때문에
밥만 먹으면 이쑤시개 2개 이상은 작살내고
(덕분에 지이가 돋보인다고 좋아하더니...)
그리고 볼일 볼 때, 화장실 문은 왜 열어 놓는지 모르겠어.  
연구대상이야.
‘뿌지직 뿌지직’ 어휴, 속이 울렁거려 미치겠어.
화장실 얘기가 나왔으니 방구 얘기도 할게.
밥상머리에 앉아서도 ‘빵빵’ 대포 발사하고
걸어 다니면서도 ‘뿡뿡’ 속사포 갈기고
이놈의 인간 이불 속에서도 껴댄다니까!
그놈의 방구 때문에 바지가랑이 실밥이 남아나질 않아요.
또 안개처럼 살포시 삐져나오는 냄새는 스컹크도 밀리지.
그렇게 잘 껴대는 방구, 연애 할 땐 어떻게 참았는지 몰라.

오밤중에 술 먹고 들어왔으면 그냥 조용히 씻고 잘 것이지
꼭 밥 차리라고 난리야.  
밥 없다고 하면, 라면이라도 끓여달라는 거 있지.
국물까지 다 삼키곤 ‘끄륵끄륵’ 트림하면서
이 화상이 씻지도 않고 그냥 자요.  
술 냄새 풀풀 풍기면서
빙초산 같은 발 냄새까지 진동시키면서...
또, 어설프게 술 먹고 들어오면 씻지도 않고 덤벼요.  
어째, 이리 추잡하게 변하는지 모르겠어.

아침에 출근하고나면
그 화상 하나가 어질러 놓은 게
전쟁터도 그런 전쟁터가 없어.
장롱 문 활짝 다 열어젖혀놓고
옷은 뱀 껍질처럼 아무데나 홀라당 벗어놓고
목욕탕엔 변기 어디 할 거 없이 온통 물난리 쳐놓고
칫솔, 치약 한 번도 제자리에 꽂아놓는 꼴을 못보고
샴푸 뚜껑 활짝 열어놓은 채 바닥에 뒹굴게 하고
샤워타월, 수건 할 거 없이 바닥에 그냥 내 팽개쳐놓고
지 몸만 쏙 빠져나간다니까!

지는 그러면서, 나한테 잔소리는 또 얼마나 해대는지...
정리 정돈을 안 하고 산다느니
다림질도 제대로 못한다고 핀잔을 주지 않나
내가 어린애 둘 데리고 예전처럼 어떻게 해주냐고?
반찬투정은 또 왜 그렇게 하는지...
누가 보면 임신한 줄 알거야.  먹고 싶은 것도 많아요.
돌아서면 먹는 타령이야.
배는 뽈록 튀어나와가지고....

고모, 요새 같아선 서방이 아니라 웬수라니까...!
곤히 잠자는 애들 이쁘다고
막 뽀뽀하고 볼 꼬집고 해서 깨워놓고
애들이 울면 지는 딴 방 가서 자요.  
싸가지가 바가지라니까.

모처럼 회사 안 나가고 집에서 쉬는 날
애들을 봐주던지
아니면 날씨도 좋은데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같이 쏘이면 좀 좋아?
피곤하다고 늦게까지 잠만 자고...
일찍 일어난 날은 조기 축구 한다고 기어나가고...
나 그 화상 꼴 보기 싫어서 미치겠어.
목소리도 듣기 싫어.  어쩌지?”

그냥 제풀에 지칠 때까지
실컷 고자질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다.
맞장구 쳐주면
‘빨간 머리 앤’은 명함도 못 들이민다.
그렇게 40분을 고모한테 상소하고 나서야
안부를 묻는다.
“고모는 요새 어때요? 세일이도 잘있죠?”
“그래. 잘 지내고 있어.
태혁이 음악 틀어주면 요즘도 그렇게 춤 잘 추니?”

“말도 말어요. 연예인 데뷔시킬까봐. 호호호.”
“태희 이제 잘 걷니?”
“걷긴 걷는데 뒤뚱대다 잘 넘어져요.”
“잠시도 눈 떼지 말고 잘 지켜봐.
애들은 순식간에 일 벌어져.”
핸드폰 벨소리 울리고...
“핸드폰 왔나보네, 고모 이만 전화 끊을게. 안녕!”
“그래. 다음에 또 보자. 안녕!”

지금까지 한 조카의 고자질은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3년차로 접어든 요즘, 그 상황을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태기인가?

가장 편안한 사이가 부부라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사이가 부부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고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IP : 122.44.xxx.40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에헤라디어
    '09.3.27 8:20 PM (117.123.xxx.242)

    고모랑 조카랑 사이가 좋네요.
    꼭 친정언니에게 하소연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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