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전태일 어머니 조회수 : 291
작성일 : 2009-02-13 09:21:56

[2009 특별기획](17)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
ㆍ견딜수 없는 소식 ‘용산 참사’

설을 앞두고 반가운 사람들이 이소선을 찾아왔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랜드 해고노동자들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장을 봐와서 매운탕을 끓이고 전을 부쳐 잔칫상을 차렸다. 이랜드 노동자들은 이십 년을 입어 목이 축 늘어지고 칙칙한 이소선의 셔츠를 벗기고 눈처럼 새하얀 스웨터를 입혔다. 이소선은 가슴둘레에 달린 반짝이는 구슬 장식이 못마땅한지 거북스러워했다. 어머니 얼굴에 잘 어울리겠네요. 주변의 성화에 이소선은 못이기는 척하며 옷을 걸쳤다.

“난 요란스러운 거 못 입는데…. 요거는 참 가볍고 따뜻해 좋다. 얇은데도 이리 따뜻하네. 비싼 거 아니냐?”


유가협으로 이소선을 만나러 온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있다.
반가운 사람들이 찾아온 설이었건만 이소선은 끙끙 앓아누워 설을 맞았다. 허리가 쑤셔 찜질팩을 등에 받치고 누웠다가 화상을 입었다. 당뇨가 있다 보니 감각이 무뎌져 살이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만 잠이 들었다. 어이없는 변을 당한 이소선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더 울화통이 터진 일은 용산 철거민들의 참사 소식이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이 드러누워 뉴스로 이 사건을 접한 이소선의 심정은 자신이 입은 상처보다 시리고 아팠을 것이다.

“독재 시절에도 죽은 사람을 가족 동의 없이 부검한 적은 없었어. (유족의) 넋을 빼앗든 협박을 하든, 가족에게 알리고 부검을 했지. 이건 뭐냐?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가족한테 알리지도 않고 시신을 난도질한다는 게 말이 되냐? 그라고 불에 타 죽었는데 무슨 부검이냐.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냐.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야.”

마음 같아서야 당장 방구들을 걷어차고 용산으로 달려가고 싶은데 일어나 허리를 펼 수조차 없으니, 울화가 치받쳐 견딜 수 없어 했다.

철거민의 심정을 이소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960년대 중반 남산 판자촌에서 살 때 세 든 집에 화재가 나서 이재민이 되었고, 도봉동 하천가로도 쫓겨나보고 쌍문동 공동묘지에 천막을 치고 살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쌍문동 208번지가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들어설 때는 아들 전태일의 숨결이 깃든 무허가 집을 지키려고 혼신을 다해 싸우기도 했다.

“세입자들이 그곳에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겠냐. 재개발하면 건설회사랑 있는 사람들 돈 버는 거지 서민들은 죽으라는 거 아니냐. 그 사람들 죽을 심정으로 옥상에 올라간 거 아니냐. 그 심정 안 되어보면 모른다, 몰라. 그란데 경찰특공대가 가서 그 지랄을 한 거는 죽이겠다는 거 아니냐. 그라고 사람이 죽었는데 진상규명이고 뭐고 떠나 유족들 위로하고 사과해야 하는 게 순서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들을 잡아다 구속시키는 것이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일이냐.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도둑놈 소굴 만들어 놓고 힘없고 지식 없고 가진 거 없는 사람들 다 죽이겠다는 거잖아. 제대로 독재하겠다는 거 아니냐.”

한참 열을 올리던 이소선은 물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켜더니 큰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내가 이리 아파서 사람이 죽어도 가보지도 못하니 남들이 나한테 뭐라 하겠냐. 잠자다가 화상을 입어 못 간다고,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몸의 상처에 울화통까지 치밀어 올라서 그랬는지, 설이 지난 뒤 상처에 덧이 났다. 4주 정도 고생하면 되겠다던 상처가 앞으로 두 달은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상처부위에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도 받았다.

“엄마, 딴 거에 자꾸 열 내지 마. 화상 입었는데 자꾸 성내니까 상처가 더 심해지잖아.”

“야, 니 뭐라 했냐. 딴 거? 니 정신이 제대로 박힌 거 맞냐? 나는 등짝 쪼금 데었는데도 이리 아픈데, 용산 그 사람들은 불길 속에 갇혀 죽었단 말이다. 내가 아프다고 이리 누워 있는 게 부끄럽고 죄 짓는 거 같은데, 넌 지금 농담이 나오냐.”

평소 같으면 그냥 ‘어휴, 건달 놈!’하며 지나쳤을 텐데, 정색을 하고 호되게 꾸지람을 한다. 이소선의 가슴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죽음을 대할 때마다 늘 아플 수밖에 없는 이소선. 올 한 해 이소선은 얼마나 아플까? 겁나는 2009년이다.

<오도엽|시인>
IP : 119.196.xxx.1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은혜강산다요
    '09.2.13 9:54 AM (121.152.xxx.40)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아프지 말아야 할텐데 큰일입니다...ㅠㅠ

  • 2. 촌아줌
    '09.2.13 5:56 PM (59.6.xxx.28)

    더 늘어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682136 자유게시판은... 146 82cook.. 2005/04/11 155,951
682135 뉴스기사 등 무단 게재 관련 공지입니다. 8 82cook.. 2009/12/09 63,089
682134 장터 관련 글은 회원장터로 이동됩니다 49 82cook.. 2006/01/05 93,403
682133 혹시 폰으로 드라마 다시보기 할 곳 없나요? ᆢ.. 2011/08/21 20,995
682132 뉴저지에대해 잘아시는분계셔요? 애니 2011/08/21 22,814
682131 내가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 사랑이여 2011/08/21 22,783
682130 꼬꼬면 1 /// 2011/08/21 28,512
682129 대출제한... 전세가가 떨어질까요? 1 애셋맘 2011/08/21 36,024
682128 밥안준다고 우는 사람은 봤어도, 밥 안주겠다고 우는 사람은 첨봤다. 4 명언 2011/08/21 36,374
682127 방학숙제로 그림 공모전에 응모해야되는데요.. 3 애엄마 2011/08/21 15,793
682126 경험담좀 들어보실래요?? 차칸귀염둥이.. 2011/08/21 18,042
682125 집이 좁을수록 마루폭이 좁은게 낫나요?(꼭 답변 부탁드려요) 2 너무 어렵네.. 2011/08/21 24,434
682124 82게시판이 이상합니다. 5 해남 사는 .. 2011/08/21 37,749
682123 저는 이상한 메세지가 떴어요 3 조이씨 2011/08/21 28,758
682122 떼쓰는 5세 후니~! EBS 오은영 박사님 도와주세요.. -_-; 2011/08/21 19,347
682121 제가 너무 철 없이 생각 하는...거죠.. 6 .. 2011/08/21 27,916
682120 숙대 영문 vs 인하공전 항공운항과 21 짜증섞인목소.. 2011/08/21 76,293
682119 뒷장을 볼수가없네요. 1 이건뭐 2011/08/21 15,472
682118 도어락 추천해 주세요 도어락 얘기.. 2011/08/21 12,411
682117 예수의 가르침과 무상급식 2 참맛 2011/08/21 15,294
682116 새싹 채소에도 곰팡이가 피겠지요..? 1 ... 2011/08/21 14,284
682115 올림픽실내수영장에 전화하니 안받는데 일요일은 원래 안하나요? 1 수영장 2011/08/21 14,500
682114 수리비용과 변상비용으로 든 내 돈 100만원.. ㅠ,ㅠ 4 독수리오남매.. 2011/08/21 27,252
682113 임플란트 하신 분 계신가요 소즁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3 애플 이야기.. 2011/08/21 24,593
682112 가래떡 3 가래떡 2011/08/21 20,713
682111 한강초밥 문열었나요? 5 슈슈 2011/08/21 22,846
682110 고성 파인리즈 리조트.속초 터미널에서 얼마나 걸리나요? 2 늦은휴가 2011/08/21 14,653
682109 도대체 투표운동본부 뭐시기들은 2 도대체 2011/08/21 12,732
682108 찹쌀고추장이 묽어요.어째야할까요? 5 독수리오남매.. 2011/08/21 19,403
682107 꽈리고추찜 하려고 하는데 밀가루 대신 튀김가루 입혀도 될까요? 2 .... 2011/08/21 22,856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