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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명박'은 둘이다.

카후나 조회수 : 297
작성일 : 2009-01-10 09:35:02
이념은 그게 뭐든지간에 삶을 사는 많은 도구들 중 하나일 뿐이고 진실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우리 모두가 일관되게 추구해 나가야 하는 진짜배기 이념이 아닐까?

스스로를 'B급좌파'로 규정하는 김규항. 글로 접한 그의 생각은 온건사회주의에 가까웠던 기억이 크다. 가장 평화롭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 그의 글에 묻어있었다. '조중동'이란 말이 생기기도 전에 강준만, 김정란, 유시민, 진중권 등과 조선일보의 폐해에 맞장뜨던 그의 글은 완전한 상식이었다. 자기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 진정한 좌파.



<한겨레> 8일자에 실린 김규항씨 칼럼
[야!한국사회] 사람의 일이란 / 김규항

2009년 오늘 한국에서 이명박씨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범주는 꽤 넓다. ‘자본주의 이후’를 소망하는 좌파에서부터 ‘상식의 회복’을 말하는 자유주의자들까지, 최소한의 양식을 가졌다 자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얼굴만 봐도 진저리를 친다. 그들에게 ‘이명박’이라는 이미지는 ‘악’이라기보다는 ‘추’에 가까운 듯하다. 그런데 이명박씨에게 진저리를 치는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는 다른 사람들일까?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거창한 이야기 말고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자.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고 0교시, 우열반, 보충학습 따위를 실시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이 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고 들고일어났던 걸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암묵적으로 혹은 공공연하게 해온 것들이다. 고등학교 아이들은 8시 이전에 등교하지만 1교시는 8시40분에 시작한다. 그 40~50분이 0교시다. 영어·수학은 ‘수준별 수업’ 따위 이름으로 우열반이 공식 운영되며, ‘방과 후 특기적성’이라 포장한 보충수업은 상위권 반이 따로 있다. 일 년에 네 번 보는 교육청 모의고사는 바로 일제고사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 가운데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스스로 오랫동안 용인해온 일을 이명박씨가 하려 하자 그리 정색을 하고 들고일어난 걸까? 그러나 사실 이건 우리가 ‘교육문제’라 하는 일 전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명박의 교육정책을 성토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가운데 제 아이의 실제 교육에서 이명박의 교육과 차이를 보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차이라면, 그들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이명박 쪽은 흔쾌한 얼굴을 한다는 정도인데,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그건 차이가 아니다.

사람이란 참 약한 존재라서 어떤 사회체제 속에서 살아갈 때 그 체제에 조금씩 감염되는 속성이 있다. 그 체제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비판적인 사람도 완전히 그 체제를 거부하지 않는 한 다르지 않다. 민주화 이후, 혹은 김대중 정권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광풍이 가져온 여러 사회변화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건 거의 모든 한국인이 자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정직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이어져 온 행복의 기준과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파괴되었다. 아이들이 사람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키워지는 풍경이나 이명박씨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으로 뽑힌 건 그 자연스런 결과들이다.

결국 오늘 이명박과의 싸움은 두 이명박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내 밖의 이명박과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이명박. 두 이명박과 동시에 싸우지 않는 한, 아무리 뜨겁고 거대한 싸움을 벌인다 해도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내 안의 이명박이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명박씨를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한다고 해도, 결국 수많은 내 안의 이명박들이 모든 걸 되돌려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이명박 전선에 선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적이 한가하게, 혹은 맞지만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과의 싸움이 너무나 긴박하기 때문이다. 그 긴박함을 당연히, 전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 긴박함이 내 안의 이명박과의 싸움을 생략해도 좋을 만큼, 그래서 이 소중한 싸움을 헛수고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당연히, 함께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일이란, 참 간단치가 않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IP : 119.70.xxx.187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지당
    '09.1.10 11:12 AM (121.159.xxx.71)

    지당하신 말씀.
    현재의 맹박이는, 맹박이의 현실은 우리 사회 본질의 총화이죠. 내 밖의 반 맹박이와 내 안의 맹박이가 공존하는.......

    입시교육에 대해서 게거품 무는 사람들, 내 자식은 게거품으로 키우는 현실. 그러면서 하는 변명은 "남들이 하니까 어쩔 수 없다..."

  • 2. 자기성찰..
    '09.1.10 11:14 AM (58.236.xxx.22)

    전적으로 공감하며 동의합니다.
    보다 더 자기자신에게 정직한 시선을 비추면 느낄 수 있지요..

    저 아랫 글에 보면, 도우미를 두고 육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이 있는데,,
    대체로 그런 삶의 방식을 부러워함이 묻어나는 글들을 보고 약간 갸우뚱 합니다.

    그런 삶을 지향 하려면 거의 철저히 경제적 성취가 이뤄져야하는데,
    그렇다면 정직하게 살면서 그러한 삶을 갖기는 대다수의 주부들에게는 요원한 실정이지요.

    부러워함에서 묻어나는 가치체계의 모순성..
    힘들어도 육아하면서 얻는 각별한 기쁨이 있고, 살림하면서 얻는 수고로움에 대한 보람도 있는데,
    그것을 언급한 댓글이 전혀 없어서 놀라웠습니다.

    다들 가치체계의 전복이 일어난 것인지 문득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군요.
    어쩌면 멏백억 자산가인 명박이의 능력을 암암리에 부러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상상력이..
    그럴만큼 경제적 삶이 암울해서 무조건적인 경제적 부만을 지향해야하는 정신의 타락이 일어난 걸까...싶더군요.

    할 말은 많지만, 여기까지만,, 쓰고 싶네요.. 많이 공감하는 글을 만나서 반가움에 댓글 답니다..

  • 3. ,
    '09.1.10 8:20 PM (220.80.xxx.207)

    나의 적은 바로 내 안의 또 다른 나,
    해서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해서 세상은 끝없는 혼돈의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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