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가끔은.....

사노라면 조회수 : 414
작성일 : 2008-02-16 04:38:35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아이를 등에 업고서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 허위적 올라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헐떡이면서 땀을 흘리며 나타난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스러워 보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의 아내를 통해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만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 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우며 번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
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축의금 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형주가 어제 밤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이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에 서서......

----------------------------------------------------

행복한 고물상의 저자 이철환 님의 실제 이야기랍니다.

IP : 121.187.xxx.36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사노라면
    '08.2.16 5:01 AM (121.187.xxx.36)

    새벽 다섯 시를 바라보는 지금도
    잠 못 이루고 깨어 계신 82쿡 님들이 몇 분 계시네요....^^

    혹시라도 아픈 마음으로 서성이시는 중이라면
    밝은 아침과 함께 위로와 치유가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 2. 엘리제
    '08.2.16 2:31 PM (61.109.xxx.211)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런 친구를 두신 이철환님이 새삼 부럽습니다 그보다 더한 축의금이 어딨을까요 세상 살아가면서 참 부러운 인생이 몇 있는데요 오늘 이 이야기가 그 중에 하나입니다 두 분 모두의 가정에 행복한 날들이 항상 가득하기를 멀리서 기도해 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682221 자유게시판은... 146 82cook.. 2005/04/11 155,838
682220 뉴스기사 등 무단 게재 관련 공지입니다. 8 82cook.. 2009/12/09 63,039
682219 장터 관련 글은 회원장터로 이동됩니다 49 82cook.. 2006/01/05 93,350
682218 혹시 폰으로 드라마 다시보기 할 곳 없나요? ᆢ.. 2011/08/21 20,936
682217 뉴저지에대해 잘아시는분계셔요? 애니 2011/08/21 22,732
682216 내가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 사랑이여 2011/08/21 22,710
682215 꼬꼬면 1 /// 2011/08/21 28,433
682214 대출제한... 전세가가 떨어질까요? 1 애셋맘 2011/08/21 35,908
682213 밥안준다고 우는 사람은 봤어도, 밥 안주겠다고 우는 사람은 첨봤다. 4 명언 2011/08/21 36,251
682212 방학숙제로 그림 공모전에 응모해야되는데요.. 3 애엄마 2011/08/21 15,738
682211 경험담좀 들어보실래요?? 차칸귀염둥이.. 2011/08/21 17,981
682210 집이 좁을수록 마루폭이 좁은게 낫나요?(꼭 답변 부탁드려요) 2 너무 어렵네.. 2011/08/21 24,324
682209 82게시판이 이상합니다. 5 해남 사는 .. 2011/08/21 37,615
682208 저는 이상한 메세지가 떴어요 3 조이씨 2011/08/21 28,640
682207 떼쓰는 5세 후니~! EBS 오은영 박사님 도와주세요.. -_-; 2011/08/21 19,275
682206 제가 너무 철 없이 생각 하는...거죠.. 6 .. 2011/08/21 27,808
682205 숙대 영문 vs 인하공전 항공운항과 21 짜증섞인목소.. 2011/08/21 76,055
682204 뒷장을 볼수가없네요. 1 이건뭐 2011/08/21 15,408
682203 도어락 추천해 주세요 도어락 얘기.. 2011/08/21 12,363
682202 예수의 가르침과 무상급식 2 참맛 2011/08/21 15,237
682201 새싹 채소에도 곰팡이가 피겠지요..? 1 ... 2011/08/21 14,224
682200 올림픽실내수영장에 전화하니 안받는데 일요일은 원래 안하나요? 1 수영장 2011/08/21 14,442
682199 수리비용과 변상비용으로 든 내 돈 100만원.. ㅠ,ㅠ 4 독수리오남매.. 2011/08/21 27,142
682198 임플란트 하신 분 계신가요 소즁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3 애플 이야기.. 2011/08/21 24,511
682197 가래떡 3 가래떡 2011/08/21 20,643
682196 한강초밥 문열었나요? 5 슈슈 2011/08/21 22,761
682195 고성 파인리즈 리조트.속초 터미널에서 얼마나 걸리나요? 2 늦은휴가 2011/08/21 14,604
682194 도대체 투표운동본부 뭐시기들은 2 도대체 2011/08/21 12,679
682193 찹쌀고추장이 묽어요.어째야할까요? 5 독수리오남매.. 2011/08/21 19,315
682192 꽈리고추찜 하려고 하는데 밀가루 대신 튀김가루 입혀도 될까요? 2 .... 2011/08/21 22,766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