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뒷담화> (3) 2006년 8월 29일
아, 이제야 컴퓨터 앞에 앉았네요.
(지금 시각 8월 30일 새벽 2시경)
저녁에는 KBS 열린 토론에 참여하고
대학원 야간 수업 마무리 짓고,
좀 차분히 앉아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리포트 작성합니다.
아까 낮에는 한 나이 많으신 청취자께서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알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본인 소개하시기로는 교육부에 오래 계셨고
학교 선생님도 하셨다는데,
이 방송 칭찬을 해주시고 아쉬움을 표현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얼핏 목소리를 듣기로는
한 70은 족히 넘으셨다고 여겨지는데
이 프로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듬뿍 담아 전해주셔서
황송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마음이 찡~하기도 했구요.
방송 할 때였지요.
언젠가는 어떤 할머니 한분이 전화를 주셨어요.
그리고는 당신의 작고하신 남편이 남기신 책들을
제게 전해주시겠다는 겁니다.
아, 얼마나 송구스러운지.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었어요.
이 방송을 통해서 여러분들과 만난 건축가 황두진씨,
책 소개 한 적이 있지요?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라는.
황두진씨가 어느 날 저를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신의 어머니가 이 방송을 열심히 즐겨 들으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출연했던 날 방송을 들으신 어머니가,
“어 너 어떻게 거기 나갔냐?” 그러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그 할머니와 통화하면서
작고하신 부군의 성함을 여쭤봤던 기억이 떠올랐겠지요.
그래 묘한 기분이 들어,
혹시 황두진 씨 모친 성함이, 부친 성함이?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지요.
안희나 다흘까!
(번역: 아니나 다를까)
황두진씨 모친이 그 분이셨어요.
결국, 함께 댁에 가서 책도 받고 식사대접도 받고
즐겁게 담소하고 나왔답니다.
아주 인텔리 할머니셨어요.
당신 친구들끼리 방송 들으면서
국제뉴스, 국내 정세, 역사, 대중문화 등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이 취미생활의 하나라고 하시더라구요.
와, 할머니들 수준 참 대단하다, 속으로 그랬답니다.
한편,
여러분들을 방송으로 만나지 못해
이러는 저도 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방송 종료 후에도
이렇게 청취자와 게시판을 통해 만나는 경우도 있을까 싶어
무척 행복한 진행자였구나 하고 혼자 슬쩍 웃습니다.
득의만면하게^^
(자뻑~: 이 말 다 아시기는 할 텐데.
김민웅 민중국어 사전에 의하면
“자기 혼자 제 잘난 맛에 뻑 간다.”라는 銀魚)
자, 이제 세번째 뒷담화 들어갑니다.
어떤 청취자분이 예상하셨듯이
오늘은 제가 헉헉거리면서 방송 시간 직전에
스튜디오에 들어섰던 이야기 들려드리지요.
별걸 다 기억하는 청취자....
2년 전 귀국하여
강남역 근처에 일단 작은 오피스텔을 잡았습니다.
교육방송국과 가깝기 때문이었지요.
학교는 매일 가지 않지만, 방송은 매일 하니까
방송국 근처로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그런데 지리 개념이 안 서니까 어디서 어떻게 차를 타야
제대로 빨리 가는지 처음에는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답니다.
여기서 타는 게 맞는지, 저기서 타는 게 맞는지.
제가 있던 오피스텔은 국기원 언덕 위에 있어서
사방에서 올라올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집도 제대로 못 찾았어요.
이리 가도 저리 가도 영 길이 헷갈려서 말이지요.
그런 판국에 방송국 가는 차를 타는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U 턴에 길 막히면 곤란합니다.
강남대로, 테헤란로 일단 막혔다 하면 장난 아닙니다.
그 날도 평소처럼 집에서 나왔다가
방향을 잘못 잡고 차를 타고 가다가
막힌 길을 넘고 넘어
방송 시간 직전에 방송국에 들어섰습니다.
스튜디오는 2층인데,
4시 정각은 됐고,
어쩝니까?
전화로 연결해서 그냥 즉석에서 시작을 알렸고
스튜디오 쪽으로 걸어가면서
생각나는 대로 즉흥 오프닝 멘트를 날렸고
그대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 마이크 앞에 앉았답니다.
다들 처음이니까 아, 현장감 있었다,
다이나믹했다 그렇게들 말했지만
당사자에게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답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없으리라 했는데,
사람 일 장담하면 안 됩니다.
어찌 된 일인지 그날따라 택시를 도저히 잡을 수가 없는 겁니다.
시간은 촉박해오고 초조와 긴장의 강도가 하늘을 찌르고.
마침 경찰차가 지나가
부탁을 했지요. 그런 경우 도와준다는 속설이 있어설라무네.
그런데 무슨 사건이 있어서 그리로 가는 바람에 안 되시겠다고.
그래 지나가던 택배 오토바이를 여럿 세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운이 맞지 않아 허사였습니다.
그런데, 짜짜짜짠~
지나던 택시 하나가 손님을 태우고 지나가다가
내가 그러는 모습을 보고 내 앞에 탁 서더니,
타라는 겁니다.
무언가 급하다는 것을 직감으로 아신 이 기사 선생님.
탔지요. 사정 설명을 했더니
타고 있던 손님에게 양해를 구해요.
그냥 역삼역 근방에 세워줄테니까 전철 타고 가라고.
나 원참, 이런 분도 계세요.
그리고는 그때부터 아, 신나셨어요. 이 분.
경적을 울리고 차도의 방향을 거꾸로 달리고,
차 사이로 곡예를 하고
그러면서 마침내 4시 1분전에 딱 도착해주셨어요.
우, 그래 거기서부터 그냥 냅다 층계를 황비홍처럼 날아 뛰어
현관을 지나니 4시 정각 신호가 들리고
스튜디오에 들어가니 방송 시작 알리는 음악이 끝나면서
오프닝 멘트가 시작되는 순간.
아 그래도 늦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저는 목소리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워낙 급하게 뛰어올라오니까
숨이 차 말이 제대로 되어 나오지 않는 겁니다.
기억하시는 분들 계실 거예요.
그거 무슨 방송을 그리 했는지.
외계인이 암호방송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들어도 제 귀에는 제 목소리가 아니더군요.
그렇게 현장감을 “지나치게” 발휘한 방송도 있었답니다.
그리고 또 마지막 사건.
월드컵 때였어요.
여의도 쪽에 약속이 하나 있어
일을 끝내고 널널하게 출발했지요.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국립 현충원 쪽으로 가는 길이 완전히 주차장이 된 겁니다.
도저히 예상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뚫고 나갈 수가 없는 것이었어요.
기사 선생님은 좀 나이가 있으신 분이었는데,
저는 사실 운전 경력이 꽤 되시는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딱 3일째 되신 날이었습니다.
여차 저차 해서 반포대교로 연결된 예술의 전당 쪽으로 갔는데
거기도 막혔고.
이 분이 그러면 터널 쪽으로 가면 된다고 하시길래,
잘 아시는 구나, 했습니다.
아 이게 오산이었어요.
오산 평택이 아니라...
터널을 빠져 쭉 나가고 보니까
이 분이 생각했던 길이 아니었던 모양이예요.
완전히 헤매시는데,
사실 거기서 5분이면 가는 길이었지만
저도 잘 알지 못하니 같이 방황하는 나그네가 된 겁니다.
3일 째 운전대를 잡으시는 분이
안타깝게도 서울 지리에 깜깜하셨던 거지요.
스튜디오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결국 그렇게 방송국까지 10여분을 독일 통신원과
방송국에 도착할 때까지
전화로 시작하고 끝맺었습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던 순간이었는데,
그 기사 선생님, 사실 마음이 참 안 되었더랬습니다.
연신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달리 도리가 없었던 상황에서
이럴 수도 있네 했답니다.
요즘 사실 이렇게 택시 운전하러 나오시는
나이 드신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마음 아픈 현실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5분이면 갈 거리를 몇 십 분을 헤매고 헤맨 그날,
방송이란 그냥 스튜디오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여러 세태가 결합되어 제작되는 성과물이라는 것,
묘한 방식으로 머리에 꽉 입력되었답니다.
오늘날 방송은 어떤 사회적 구조 위에 있을까요?
달리 말하자면,
소통의 구조를 가로막는 것들이 더 많을까요?
아니면 그걸 최대한 용이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들이 더 많을까요?
방송인이 그날 하루 마이크 앞에 앉기까지
참으로 많은 사회적 관계들이 작동합니다.
그것이 때로 방송의 발전을,
때로는 방송의 퇴보를 가져오지요.
결국, 사회와 방송은 같이 갑니다.
우린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방송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일까요?
좋은 방송은
좋은 사회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의 노력 속에서 탄생할 겁니다.
다른 누가 아닌,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주체가 아닐까요?
내일 또 뵙겠습니다.
김민웅의 뒷담화였습니다.
------------------------------------
지금 Ebs 어느 게시판에서는
방송이 종영되고
1주일의 시한부게시판에
진행자의 애청자들에 대한 마지막 배려로
따뜻한 방송 뒷담아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물론 애청자들은 너무 너무 아쉬워하는 가운데 큰 위로가 되고 있지요.
아~ 슬퍼요.
그건 그렇고.. 서명 좀 부탁드립니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습니다.
http://agoraplaza.media.daum.net/petition/petition.do?action=view&no=19412&ca...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김민웅의 방송 뒷담아(3) -펌
월드센터 김민웅입니? 조회수 : 1,722
작성일 : 2006-08-30 16:07:45
IP : 59.21.xxx.228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월드센터 김민웅입니
'06.8.30 4:34 PM (59.21.xxx.228)Ebs 방송게시판
http://www.ebs.co.kr/homepage/?category=A02B06C02D01E00&progcd=0002422
아고라 서명하기
target=_blank>http://agoraplaza.media.daum.net/petition/petition.do?action=view&no=19412&ca...2. 세상에
'06.8.30 6:32 PM (218.236.xxx.112)그리고는 그때부터 아, 신나셨어요. 이 분.
경적을 울리고 차도의 방향을 거꾸로 달리고,
차 사이로 곡예를 하고
그러면서 마침내 4시 1분전에 딱 도착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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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도 를 거 꾸 로 달 리 고??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이게 뭐랍니까?
도대체 김 민웅 이라는 이 분 뭐하는 사람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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