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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차 한심하고 우울한 직장녀의 넋두리

우울모드 조회수 : 1,856
작성일 : 2005-03-21 13:45:39
직장생활 15년차다.
90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시작했으니까.
휴~우 어찌 이리 긴 시간을 지나왔을까.
낯가림도 있고,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이리 오래 직장생활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자의반 타의반 하는 수 없이 다니겐 된 세월이 벌써 15년
이라니….

첨엔 보탬 안되는 부모를 두어 맨손으로 시작해야
하는 남편의 짐을 함께 지고자 맞벌이를 택했었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어느 정도 안정되는 시기에 그만
두리라 했었지만 방만하고, 야무지지 못한 남편 덕에
큰 빚을 떠안게 되는 바람에 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직장생활이 생리에 맞지 않아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하는 시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의 가세는 날로 기울고만 있었고,
연이은 남편의 실직.
그 이후의 세월이 벌써 5년째다.
그나마 남편 월급만으로라도 쥐어짜며 살아보지 뭐 하며
호기를 부릴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비빌 언덕도 없고, 한 여름 땡볕에 땀 식힐 그늘 한 점도 없이
달려온 세월이었다.

경제적 고통으로,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스스로 신뢰를 저버린
남편으로 인해 사랑도 시들어버린지 오래고, 난 그저 나와 내
아이에게 제대로 된 가장 역할만을 바랄 뿐인데도 그는 여적지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내가 직장에서 승승장구 하며 나름대로 깃발을 날리는
사람이면 이렇게 의기소침하고, 의욕저하에 의지상실까지는
아닐텐데 그 긴 직장생활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제대로된 타이틀 하나 거머쥐지 못했고, 늘 “명퇴”프로그램이 나올까
전전긍긍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동자일 뿐이다.

업무의 특성상 할 일도 많지 않고, 하루 9시간 중 거의 대부분을 인터넷
서핑이나, 개인적인 볼일, 사적인 공부 등등으로 때우고 있다. 그리
놀면서도 월급 받으니 좋지 않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진종일 어떤
자극도 없이, 어떤 동기부여도 없이 늘 그 자리에 머물고만 있는
느낌은 회색빛 우충충한 하늘을 바로 머리 위에 얹고 있는 것만 같다.

흐르지 않으면 썩는 법.  그 자리에 항상 머물고 있다는 것은 퇴보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런 재미도, 그 어떤 보람도,
어떤 성취감도 느낄 수 없는 무매력의 직장을 밥벌이를 위해
다녀줘야만 한다는 현실이 미치도록 답답하다.  

큰 돈벌이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따라오는 자리도 아니고,
열심히 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데체 내가 왜, 누구 때문에 이 따위 직장에 매여있어야
하는 것인지 미칠 것만 같다.

결국, 화살은 남편이란 작자에게 돌려질 수 밖에 없지 않겠나.
난 아이도 하나 밖에 얻지 못했다.  곧 동생을 보리라 했었지만
남편의 실직과 부채,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인해 틈이 벌어진
우리 사인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엔 사랑이 너무 부족했다.

어떻게 얻었는지 그 기억마저 아득한 하나뿐인 울 아들.
볼 때마다 가슴이 쓰린다. 이 험한 세상 함께 헤쳐갈 형제하나
만들어주지 못한 죄책감에…. 지금이라도 하나 더 얻고 싶은데
주제파악 안되는 남편이라는 작자는 자신도 친척하나 없이
없이 외롭게 살았으면서도 무조건 더는 싫댄다.

하나 더해지면 자신의 어깨를 짓누를 중압감이 싫은
모양이다.  기실 가족부양에 아이 양육은 나 혼자 다 했는데도
부담감은 저 혼자 다 떠 안고있으니 웃기는 놈이다.
어찌 그리 이기적인 성향으로만 똘똘 뭉쳤는지
열달 배불러 우스운 모양새로 다니는게 나지 저냐.

허구헌날 줄담배에 조금만 신경써도 스트레스 최고조로
자리보전하고 눕는 남편.  그러니 정나미 떨어지는 남편과는
백년해로할 일도 없을 것 같고, 벌써 슬슬 에미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 팍팍 드는 아들, 장성해서 배필 찾으면
당연스레 이 엄마를 잊을 텐데 그럼 난???  

아이를 더 얻고자 하는 주요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아이 키우며 그 아이에게 에너지 팍팍 쏟으면서 외로움을 느끼게
될 시간을 좀 더 뒤로 미루고 싶은….
더불어 지루하고 한심한 나의 일상에 새로운 생명이
활기를 불어넣어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그것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줄 것만 같은
확신 뭐 그런 거다.

이래저래 난 아이 둘 키우며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살림하는
여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한칸 짜리 방에 날마다
돈 걱정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한다 해도 하루 세끼 먹는 그
밥이 남편의 노동에 의한 것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간의 세월이 너무 힘들었던 탓일까. 나의 소망은 한없이 작고
소박한데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얻은 것이 없다.

IP : 218.156.xxx.155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4년차
    '05.3.21 2:00 PM (211.35.xxx.162)

    전 이제 4년차인데,,,왜 이렇게 공감이 가는지.
    학교에서 너무 과하게 교육을 받았다 싶기도 하고
    양성평등이니 자아실현이니 하는 장밋빛 청사진을 순진하게 받아들인 자신이 씁쓸하기도 하고.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것 같아요...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그렇게 밀고 나아가고 싶다는~~

  • 2. 우와
    '05.3.21 2:07 PM (220.85.xxx.220)

    좀전에 친구 고민 쓴 사람인데 님 맘 너무 잘 이해되요 저도 친구들이랑 멀어진게 내가 왠지 그들에게 경제적으로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거든요
    직장다닐땐 집에서 애들캐우며 살림하는 여자가 그리 부럽더니 내가 놀다보니까 직장다니면서 애 키우는게 어찌나 대단해보이고 럭셔리 해보이던지요
    사람은 남의 떡이 항상 커보이나 봅니다
    참 돌파구로 둘째 낳지는 마세요
    돌파구가 아니라 족쇄가 될거 같아요
    특히 님같은 상황에서는요
    애한테 힘들어서 스트레스 받고 그것이 기존 스트레스에 더해지면--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 3. 달려라하니
    '05.3.21 2:11 PM (218.51.xxx.212)

    절대 한심하지 않습니다.
    기운 내세요!!!
    원글님 보다 부족한, 또는 부러워하는 분 들도 계실겁니다.
    자식은 크면, 독립적 성향을 띄는게 정상이잖아요.
    하나건 둘이건 마찬가지죠.
    힘들고 지친 생활이지만, 작은 활력이 될 만한 일들을 찿아보세요.
    힘내시구요...아자아자!!

  • 4. 우울모드
    '05.3.21 2:14 PM (218.156.xxx.155)

    그새 리플이 세개나 달렸네요.
    위로의 글 감사히 받겠습니다.
    조금 기운이 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당~

  • 5. 안개꽃
    '05.3.21 2:52 PM (218.154.xxx.212)

    힘내세요.
    원글님. 글솜씨가 아주 좋으신 것 같아요... 스스로를 너무 낮추지 마세요.
    이런 글 솜씨 그냥 놔두지 마시고 라디오 또는 잡지책 같은 곳에 보내보면 어떨까요?
    생활의 활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 6. 사랑화
    '05.3.21 2:52 PM (61.31.xxx.1)

    저는 일년도 안된 직장에서 가끔씩 그런 느낌을 받을때도 있어요...
    편하지만 뭔가 뒤처지는 느낌...ㅠ.ㅠ
    아직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수 있는 나이에 그런 느낌을 벌써 받으니..
    참 난감하고 허무하드라구요...
    그럴수록..스스로 변화를 추구하고 활력을 불어넣어야겠지요...
    힘내시구요~!!!
    우울모드님 그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임을 잊지마시고...
    긍정적으로 생활하시길 바래요~^^*
    파이팅~!!!

  • 7. 사랑화
    '05.3.21 2:54 PM (61.31.xxx.1)

    앗...마져요~!!
    글솜씨가 정말 좋으세요~~!!
    저도 글읽으면서 그런 생각했었어요~^^

  • 8. 동감
    '05.3.21 3:19 PM (211.207.xxx.88)

    정말 특출한 영점몇퍼센트의 계층이 아닌 이상.
    교육많이 받고 가방끈 길대로 길어진 여성들이 누구나 맞게 되는 딜레마인것같습니다.
    선이 악이 된다. 저도 문득문득 이 생각 들곤 합니다.

  • 9. ^^
    '05.3.21 3:42 PM (220.93.xxx.149)

    티비 드라마처럼 고급빌라에서 디자이너들이 만든 옷 입고 살림이나 양육은 도우미들에게 맡기고
    우아한 여자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요? 직장여성은 직장여성대로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힘들고 팍팍하죠.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게 제일이지요.

  • 10. 소금별
    '05.3.21 5:15 PM (218.53.xxx.180)

    윗분들 말씀처럼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굉장한 흡입력이 있습니다.

    빨리 소망하시는대로 이루어가시길 바랍니다..

  • 11. 봄&들꽃
    '05.3.21 5:54 PM (219.240.xxx.62)

    '노동자'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아요.
    휴...
    저도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생각하는 단어랍니다.
    힘없는 노동자...
    근데... 우울모드로 적으신 것인데 이런 말씀 드려서 모하지만...
    엄청 글 잘쓰세요!!!
    무지 부러워요...
    위에 리플 말씀대로 어디 기고를 함 해보시면요?

  • 12. 느껴요.
    '05.3.21 8:40 PM (211.44.xxx.206)

    정말 정말, 힘드시겠어요,
    용기를 가지시구요, 정말, 열심히 사시면 좋은 일들이 꼭! 올겁니다.
    저역시, 그렇게 기대하며 살고 있답니다.
    힘내시고, 항상 좋은 미래를 생각하시면서 사세요,
    꼭 이루어질겁니다.^^

  • 13. ....
    '05.3.21 11:23 PM (61.83.xxx.152)

    그래도 내힘으로 사랑하는 아이를 보살필수 있는 엄마라는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아주 훌륭하십니다.
    '노동자'는 아주 숭고한 단어입니다. 일이 아무리 무가치하고 단순해보여도
    모든 노동은 신성한 것이니까요.^^

  • 14. 동감
    '05.3.22 11:55 AM (220.81.xxx.113)

    님글 읽으면서 무척이나 동감있는말씀을..잘 표현하셨네요..
    그게 님의 재주가 될수도 있을것 같아요..
    남자라는 인간(,,)들은 여자를 속썩이려고 나온자들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저도 이리저리 남편때문에 경제적으로 고생하고 있고..그에따르게..
    이리저리 맘이 많이 아프게 살고 있답니다.
    전 생각에 그럴때 일수록 내일을 찾아야지 그런생각 많이해요..
    가방끈이 길지 못해..지금이라도 공부하고 싶은데..쉽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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