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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라는데 올려도 되나요? 좋은글이라..

지윤마미.. 조회수 : 889
작성일 : 2004-01-09 15:31:27
'미숙아, 오늘 하루만이라도... 응?'  



[오마이뉴스 박희우 기자]어제 우리 가족은 대형 할인점에 갔습니다. 그곳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저는 머리가 아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만 가면 머리부터 아파 옵니다. 다행히 할인점에는 놀이방이 있었습니다. 저는 놀이방에서 아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잘 놀았습니다. 자동차를 타기도 하고, 미끄럼틀 위에서 몸을 거꾸로 한 채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작은아이는 놀이방이 만들어놓은 작은 동굴 속에서 웃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작은아이는 어디에 내놓아도 잘 놀았습니다.

문제는 큰아이였습니다. 이놈은 잘 놀다가도 수시로 내가 옆에 있는지 확인하곤 했습니다. 큰놈은 겁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니 저는 녀석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아내는 두 시간 남짓 지나서야 돌아왔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저는 버럭 화를 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닙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가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습니다.

아내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4층 레스토랑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순간 아내는 머뭇거렸습니다. 저는 재빨리 아내의 손을 끌었습니다. 아내는 마지못해 저를 따라왔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아내는 메뉴판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금세 아내의 표정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저는 얼른 눈을 피했지만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 지하식당으로 가요!"

지하식당은 일반 음식점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가격도 이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곳에 가면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즐비합니다. 지금처럼 속이 허할 때는 우거지국이 그만입니다. 아니면 장터국수도 좋습니다. 조금 무리를 하면 아내가 좋아하는 삼겹살도 먹을 수 있습니다.

아내는 그걸 원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닙니다. 오늘 하루만은 제 방식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그냥 여기에서 먹고 가지 뭐. 아이들도 좋아하잖아?"

아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조금은 슬픈 표정이었습니다. 종업원을 불렀습니다. 서슴없이 비프커틀릿 두 개와 돈가스 두 개, 그리고 음료수 2병을 주문했습니다. 종업원은 부지런히 받아 적었습니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습니다.

아내는 슬그머니 음식 안내판을 들여다봅니다. 비프스테이크 1만원, 돈가스 5천원, 음료수 2천원, 합계 3만2천원이었습니다. 아내는 조용히 메뉴판을 덮었습니다.

종업원이 스프를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말없이 스프를 먹었습니다. 음식이 나왔습니다. 아내는 칼과 포크를 들었습니다. 쓱싹, 쓱싹. 칼질하는 소리가 상큼하게 들렸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였습니다. 10년 전, 아내와 처음 만날 때 들었던 바로 그 소리였습니다.

아내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찌 아내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내 집 마련을 위해 아내가 얼마나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가는지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 입었던 옷을 지금도 입고 다닙니다.

그런 아내이기에, 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아내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말입니다. 지금 아내는 제 반란에 분개하며 마음속으로 열심히 더하기 빼기를 했을 겁니다. 지하식당과 레스토랑에서의 음식 가격을 비교하면서 말입니다.

'지하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으면 정식 두 개에 공기 밥 2개만 추가하면 되는데…. 그럼 7천원이 될 것이고. 공기 밥이야 1천원이면 충분할 거고. 어떤 때는 서비스로 그냥 주기도 하던데. 하여튼 아무리 많이 잡아봐도 8천원을 넘기지 않을 것인데, 3만2천원이라니!'

저는 아내 모르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미숙아,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니?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야. 그때 기억하지? 레스토랑에서 서양음식을 먹던 날 말이야. 그때 너는 우아한 모습으로 칼질을 했지. 바로 오늘이 그날이야. 기억하지, 미숙아?'

저는 다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미숙아,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살아보자, 응. 미숙아, 응?"

/박희우 기자 (phwoo@yahoo.cor)
-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P : 221.158.xxx.6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김혜경
    '04.1.9 11:48 PM (211.212.xxx.31)

    맘이 찡해요~

  • 2. 이종진
    '04.1.10 1:18 AM (211.209.xxx.223)

    이렇게 사시는분들 많겠죠? 결혼한지 1년이 지나서야 나도 이렇게 살아야 되겠구나..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엄마처럼은 못할거 같은 생각이 드네요. 사고싶은거 다 사고, 하고싶은거 다 하고 어떻게 사느냐는 말.. 알고는 있는데 실천이 잘 될런지..
    돈 모으는거 참 쉬운일이 아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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