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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을 씹다...
하늘은 끝없이 높고 티없이 푸른 날... 어두운 기색 하나 없이 눈 부신 햇살이 내리쬐던 오늘... 저는 아침나절부터 끝없는 우울을 하루종일 씹고, 씹고, 또 씹었습니다.
시험이 2주전으로 다가오면서 각종 수행평가와 실기시험에 치이고 또 치여서 스트레스 지수가 한참인 요즘... 바로 오늘 1교시 음악 악기 연주 실기시험을 봤습니다. 이게 우울의 발단이었죠... 악기시험 하면 가장 만만하고 별거 할 줄 모르는 애들이 선택하는 가장 손쉬운 악기가 바로 리코더... 저도 그 절차를 따라 아무런 생각없이 리코더를 들고 갔는데... 그동안 꿋꿋히 지켜오던 자존심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면서 상처도 무진장 많이 받았습니다.
중산층의 완벽한 소시민 가정인 저희 집... 초등학교 땐 몰랐는데... 중학교 들어오니 애들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일반 회사원도 아니고 무슨무슨 회사의 직책 높으신 분의 자제라던지... 사업가 자식이라든지... 한 학년 딸랑 3반 뿐이던 초등학교에서 순식간에 4배로 늘어난, 한 학년이 12반인 그런 중학교에 적응하기.. 몹시 힘들었고 또 아직까지도 그다지 학교에 대한 애정은 없습니다. 작년에도 리코더로 악기 시험을 무난히 넘겼건만... 하모니카에 클라리넷에 색소폰에 더군다나 오보에라는 교과서에서나 보던 악기까지 떡하니 애들 손에 놓여있는 걸 보자니.. 순식간에 3학년 때부터 써왔던 리코더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결국에는 오늘 시험 다음 시간으로 미뤄버렸습니다.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더군다나 정말 부끄러운 마음은 그런 터무니없는 열등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열등감을 버리지 못하는 제가 더더욱 싫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시간 내내 창밖 눈부시게 빛을 내는 운동장과 끝없이 맑은 하늘을 보며 우울을 씹고 씹고 또 씹었습니다.
정말 초등학교 6년을 보내면서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구나... 그저 나만 잘난줄 알았구나... 내내 열등감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나도 쟤네만큼 배우면 저만큼 할 수 있겠지... 어차피 그어져 있던 금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발버둥 쳐봤자 나는 겨우 싸구려 리코더고... 쟤네는 사진으로나 본 저런 악기고...
저 중학교 2학년, 15살입니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고 컸다면 큰 나이죠. 세상 돌아가는 게 조금씩은 눈에 보이고... 어른들 하는 얘기 심각하게 생각할 나이입니다. 제 또래 아이들 중 핸드폰 안 가진 애 있을까요? 저는 그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핸드폰 가지고 다니는 애들은 많았지만 저는 중학교에 들어와서 핸드폰 물결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 나이에 무슨... 하며 오히려 사주겠다는 부모님을 거절했습니다. 그만큼이나 애들의 행동에 열등감 따윈 느끼지 않았었는데...
하루아침에 제 생각 속에서 초라해져 버린 부모님의 모습 때문에 하루종일 우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부모님, 우리 아빠 엄마가 쟤네 부모님보다 못한게 뭐가 있는데... 더 노력했으면 더 노력하셨지 결코 덜 하진 않으셨는데 나는 왜 열등감을 느낀 걸까... 하루종일... 교실을 떠나서 틈만 나면 나가있었습니다. 돈 많은 부모 만나서 사립 초등학교 나와 온 몸에 메이커 칠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만 보면 끝없는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서 말입니다. 부모님께 한없이... 죄송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들고 있는 악기가 아니라 그 악기에 쏟아부은 노력과 땀방울일텐데...
생각은 하면서 정작 그렇게 마음먹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고 초라해보여서... 저녁 8시가 되어가는 이 시간에까지 저는 우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참... 우울한 날입니다.
1. 김혜경
'03.9.23 8:08 PM (211.215.xxx.186)소라님, 소라님의 우울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네요.
다만, 소라님 부모님은 행운남 행운녀라고, 이렇게 속이 꽉찬 따님을 두셨으니..2. 예술이
'03.9.23 9:25 PM (61.109.xxx.191)지금은 소라님의 생각과 느낌만이 세상의 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한 것이라서 그렇게 속상해 할 것 없답니다.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당당한 모습인 것이 아름답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해요. 지금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해요. 가지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이것이 세상에 있는, 가지고 싶은 것들의 정체랍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할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같으면 도통했게요. 누구나 어느 순간 순간 유혹받고, 자책하고 반성도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고, 그것이 인생이랍니다. 초라할 것 없어요. 소라님은 존재하고 있는 모습 그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나이랍니다.
기운내세요. 이름도 이쁜 소라님.3. 화이트초콜렛모카
'03.9.23 9:37 PM (220.121.xxx.176)소라님 글을 일고 내 15살이 생각나요
15살이 뭘 알아 하겠지만, 그 때 생각 하니 꼭 그만큼의 인생을 더 산 지금도 그때 느끼던 감정이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아마 제 생각에 파파할머니나 파파할아버지가 되도 노인정 다니면서 또 누군가와 나를 늘 비교하겠죠. 다만 제가 조금 더 인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느낀점이 있다면...
사람의 모습이 늘 같지 않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살면서 어떤 모습으로 또 변해 가는거죠
소라님의 눈에 부러움으로 비췄을 그 사람들도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오늘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 졌던 내 자신도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거예요
그리고 정말 겉모습이나 물질적인것 정말 정말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한 번 살아보세요
진실하고 따뜻하고 순수한 게 정말 그리운 세상이예요
그런 사람들... 생각보다 많아요
소라님도 분명 그렇게 더 예쁜 모습으로 변해 가리라 믿어요
힘내세요 정말 이름도 이쁜 소라님
화이팅!4. 기쁨이네
'03.9.24 1:14 AM (217.229.xxx.62)소라님! 지금 씹고 계시는 우울, 인생에서 좋은 약이 되리라 믿어요.,
윗분들 참 좋은 말씀 해주셨지요?!
저도 딸 둘 키우는데, 내가 해주지 못하는 많은 것에 대해 맘 아프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 가족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걸 알고 표현해주어서 언제나
고마워한답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 하려고 해요.
힘내세요!!! 우울한 소라님을 한 없이 사랑하시고 계실 엄마와 가족에게
따뜻한 미소 지어보세요! 분명 다시 밝아지실 거예요!!!5. 레아맘
'03.9.24 1:16 AM (81.51.xxx.65)소라님은 다른 친구들이 풍족함에 쌓여 보지못하는 정말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을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소라님처럼 이미 출발선이 다르게 그어져 있어 노력해 봤자 따라가지 못할거란 생각 많이했었습니다. 소라님이 우울해 하는거 이해합니다. 오히려 좋은 사색의 기회로 삼으세요. 많이 생각하시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잃지 마시구요. 제가 보니까 어떤 환경에서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 사람만의 행복을 찾더군요.
자신을 사랑하는건 물질적으로 되는것이 아니예요. 오히려 너무 물질에 풍족해 있으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닭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소라님처럼 꽉찬 생각을 가진 소녀를 만나게 되어 참 기쁘네요.
힘내시구요. 언제나 당당하세요. 화이팅!!!6. 구름
'03.9.24 9:06 AM (211.119.xxx.119)소라님, 열심히 사십쇼. 나중에 그 있는 놈들이 어떤 면으로든 소라님 부러워 할 정도로요.
7. 현승맘
'03.9.24 9:11 AM (211.41.xxx.254)아!!! 우리 아들도 예쁘고 밝게 커야 할텐데.........
소라님!! 힘내구요..지금은 무진장 우울해도 나중엔 웃으면서 그 일을 추억할지 몰라요..8. 세훈엄마
'03.9.24 9:31 AM (211.228.xxx.234)소라학생, 나는 고3짜리 아들을 두었는데 그애한테 플룻도 가르쳤고 미술도 선생님 붙여서 해보고 다 했지만 그애 자신이 아니올시다인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소라학생 글 읽으니 한국의 중3학생이 이렇게 글을 반듯하게 쓸 수도 있구나 싶은 게 대견하고 그 부모님이 어떤 분일까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생각합시다. 20년후 지금의 내모습을 돌이켜볼 때 지금 소라학생이 당면한 문제가 과연 지금만큼 심각한 것일까 하구요.
절대로 아닙니다. 소라학생은 멋지게 성장해서 훌륭한 일에 능력 발휘하며 살고 있을 거예요.
그때 세훈엄마라는 사람이 했던 말 기억하시고 웃어주세요.
20년후 나 과거에 오보에로 음악수행평가시험 봤었다고 이마에 스티커 붙이고 다닐 것 아니쟎아요? 소라학생, 힘내세요.9. 손샘
'03.9.24 10:41 PM (218.157.xxx.169)이쁜 딸이네요. 자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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