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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머니의 명절개혁...감동입니다.
마이클럽 게시판, 터놓고 하는 시댁이야기에서 얘기하고 퍼왔습니다.
저는 아들이 둘 있고 그러니 물론 며느리도 둘이 있지요.
그런데 오순도순 정겹게 명절 준비를 하면 좋으련만 그게 저의 바람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첫째 며느리는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이고 우리 내외와 한집에 살고 있지만,
둘째 며느리는 직장을 다니고 분가해서 따로 살고 있는 차이에서 오는 미묘한 갈등이 있다는 것을
재작년 추석 때야 알게 되었지요.
큰애와 장을 보고 음식 준비를 분주히 하다 거의 마무리를 지을 저녁 무렵 늦게야 둘째 내외가
왔습니다. 둘째 내외가 거실에 들어서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전을 부치던 큰애가 인사를
할 요량으로 일어나려다 다리가 저려 그만 기우뚱거리고 넘어지며 전 부칠 반죽그릇을 엎고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손까지 데는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큰 화상은 아니었지만 큰애는 민망하기도 하고 한편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진 듯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큰아들이 급히 구급약상자를 가져다 치료를 한 다음에 큰애를 다독이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지만 식구들은 물론 저의 마음도 결코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좀 거창한 말로 명절 준비의 다운사이징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인원은 줄이되 유휴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명절 준비 합리화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우선 추석과 설날에 번갈아 가면서 큰애 내외와 작은애 내외를 처갓집으로 보내
그곳에서 명절 준비를 하도록 했습니다.
딸자식도 자식인데 시집가면 시집 명절 준비하느라 고작해야 명절 다음날 인사나 드리러 가는 게
시대에 맞지 않는 불평등한 모습이겠지요. 그 대신에 명절 준비는 남편과 남은 아들이 도와주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당장 작년 설날부터 그렇게 시도를 했는데
며느리들의 반응은 물론, 가족들도 모두 찬성했고 결과도 대만족이었습니다.
작년 설날에는 큰애 내외를 일찌감치 처갓집에 보내고 차례상을 차릴 음식재료들은
저와 작은애가 함께 시장을 봐 왔지요. 작은아들은 도맡아서 뒷설거지며 정리정돈을 꼼꼼히 해주고
과일도 씻어주고 전 부칠 때 손이 부족하니까 옆에서 밀가루를 묻혀 주는 등 적극적으로 돕더군요.
남편도 전에는 명절이래야 지방을 쓰고 병풍을 꺼내는 정도였는데 처음에는 며느리 앞에서
체면 때문인지 뒷짐만 지고 쭈뼛쭈뼛하더니, 어느새 녹두를 간다니까 믹서를 꺼내 준비를 해주었고
운동 삼아 갔다 오겠다며 자전거를 타고 가서 가래떡을 찾아다가 썰기 좋게 굳도록
큰상에 가래떡을 가지런히 펴놓는 등 가족이 일사분란하게 준비를 하니 수월하게 차례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기왕에 명절음식 준비에 남자들을 참여시킨 김에 우리 여자들도 차례 지내는데 적극 동참하기로
했지요. 전에는 남자들이 차례나 제를 올리는 것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거나 뒷시중만 들었지만
이제는 제례의 모든 과정에 똑같이 참여합니다.
글쎄 차례를 지내려는데 손자 녀석이 자기 여동생한테 “너는 여자니까 절하는 거 아니야!”라고
하더라고요. 아직 어린 아이에게 이런 남녀 차별적 의식을 심어주는 차례를 지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여자들도 모든 제례에 남자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손자 녀석이 살아갈 세상은 완벽한 남녀평등의 사회일 텐데 이런 낡은 남녀차별의식을 키워서는
사회생활이 어려울 테니까요.
이렇게 명절을 지내는 방식을 개혁한 지 2년째가 되는데 지금은 가족들 모두가 잘 적응하고
호응도 좋아서 ‘진작 이런 식으로 바꿀걸…’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입니다.
차례는 이렇듯 두 며느리가 윤번제로 준비하지만 제사는 물론 두 며느리가 다 참여합니다.
둘째애가 분가해서 살고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큰애가 대부분 준비하던 것을 개선하기 위해
제사가 있는 달은 작은애가 미리 월차나 휴가 등을 내서 큰애와 처음부터 함께 제사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차례 및 제사 준비에 있어서 불평등한 여자들만의 혹사도 문제지만 며느리들간의 분명하고
공평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서 오는 갈등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집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명절은 선대를 위한 의례인 만큼 달라진 시대상에 맞게
변화시키는 개혁도 부모세대, 특히 시어머니가 주도적으로 나설 때 실효성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시어머니 입장에서 차라리 해오던 대로 명절을 보내는 게 수월할 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나서서 조금만 수고스러우면
가족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만들 수 있고 명절이 미풍양속을 떠나 부담과 갈등만 남다보면
자칫 명절폐해론 내지는 명절무용론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잘못된 명절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되었지요.
우선 ‘일하는 사람 따로, 노는 사람 따로’가 아닌 함께 일하고 함께 노는 공평한 참여의식의 확산이
필요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는 차례에, 남자는 가사노동에 동참하는 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명절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힘든 일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고,
그야말로 서양의 축제처럼 유쾌하고 행복한 가족축제가 될 수 있도록 일보다는
건전한 놀이문화로 분위기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남녀평등의 새로운 가족주의 기풍이 사회적으로 확산돼야 할 것입니다
1. 마마
'03.9.7 5:52 PM (211.169.xxx.14)어디 사시는 ,
어느 분의 시어머님 이신지요?
우리 시어머님 너무 잘해주시고 선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사고 방식에선 가끔 막막하지요. 남녀가 다르고 장자와 차남 다르다....
저희 서방님 설거지 동서 도와서 해주는건 좋고
어쩌다가 저희 신랑 당신의 큰아들이 주방에서 컵 하나 씻었다고 집안 뒤집어 졌지요.
뭡니까?
어쩔땐 그 그늘아래 혜택 받는거 더 많고 대접받는거 좋기도 하지만 -큰며느리로서.
하지만 이건 아닌데 할 경우가 더 많죠.
저도 윗글의 분과 같은 시어머니가 되기위해 많이 노력해야 할거예요. 나 혼자 할수있는
일이 아니라서 저희ㅣ집어른들과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 한 판 해야하지싶어요.
물론 한 이십년 후의 일이겠지만요.-어른들 너무 정정하셔서...2. shu
'03.9.7 9:03 PM (61.48.xxx.213)시어머니 입장에서 바라보니 신선하네요.
겉모습만 인텔리가 아닌, 속까지 꽉찬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시는
참된 지식인 시어머니네요.3. 단순한열정
'03.9.8 11:17 AM (218.153.xxx.39)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정말일까? 정말일까? 아~~~~4. 새벽달빛
'03.9.8 11:21 AM (211.219.xxx.58)음.. 전 아직 아기는 없지만 만약 아이들이 생겨서 키운다면 정말로 남녀 구별없이 키우고 싶다고 생각중입니다. 위에 계신 시어머니는 정말 멋진 분이시네요. 저희 시댁도 제사를 지내다 보니 여자들은 부엌데기 된거마냥 준비하느라 바쁘고요 남자들은 마루에서 tv보느라 바쁩니다.
더군다나 제가 막내며느리다 보니 은근히 큰형님이 젤로 일은 많이 하시구요. (아공 죄송해라..)
여러모로 깨닫게 되는 좋은 글이었어요. 감사합니다.5. 오로라
'03.9.8 5:55 PM (221.160.xxx.75)저두 신문 읽었는데요.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었어요.6. 딱풀
'03.9.8 6:51 PM (61.82.xxx.200)한.. 100년 후 모습 아닌가??!! @.@
100년후엔 다들 저렇게 살수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쩝..
저게 사실이라면... 멋지네요.
모든면에서 쿨~하게 행동하시려 하는 우리 시모도
울아버님의 '내년 명절엔 쟤 친정에 보내자'란 말씀엔 절.대. 한마디도 안하시던데.. 쩝..
멋지네요. 사실이라면... 히죽~ ^^;;;7. yoon
'03.9.13 5:46 PM (218.54.xxx.85)우리 큰이모 이야기같습니다. 우리 이모 딸 다섯 낳고 아들 둘 낳으셨는데, 아들 사랑이 끔찍하시죠. 그러니 며느리에게도 잘하시는 것 같아요. 순수한 사랑이든 욕심이든 간에요. 이미 여러해전에 큰 아들 내외를 추석 명절에 처갓집에 보낸다고 하시데요. 저는 친정 엄마께 전해 듣고 쇼크 먹었지요. 어쩜 그렇게 트인 생각하실 수가 있는지요. 지혜와 경우바름은 학식으로 얻는게 아닌 것 같아요. 생래적으로 체득되는 것인지요. 올해 우리 이모 일흔 아홉이거든요.
며느리 직장다닐때는 손자 키워주시고, 살림 도맡으시더니 며느리 사직하자 근처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시고 제사 다 가져가시고, 명절에 딸네들도 시간 맟춰 오게하십니다. 우리 사촌 언니들 당근 서운하지요. 저와 제 손아래 동생은 전화 통화말미에는 '이모 욕심이 너무 많으시다고.. 이모는 언니들한테는 받기만 하시더니 며느리한테는 주기만 하신다고... 우리 친정엄마도 이모 본받아 며느리 보시면 잘하실거라고...' 궁시렁거리지요.
우리 이모와 엄마 ' 사람이 오죽 모자라면 지 며느리도 챙길 줄 모르냐'입니다. 대단한 할머니들이지요. 사람 경영이 최고라는 거죠. 어디 리더쉽 강사로 나서도 될 정도입니다.
얄궂은 시어머니들도 숱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달라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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