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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살림노트] 신문에서 발췌.

경빈마마 조회수 : 915
작성일 : 2003-08-13 01:50:27



몇 년 전 직장생활을 할 때, 느닷없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하다방에 와 있으니 내려올 수 있냐고. 남편과 말다툼을 하곤 냉동실 안에 감춰뒀던 비상금 100만원을 들고 집을 나왔는데 막상 나와 보니 갈 곳이 없더란다. 몇 시간 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는 친구가 가지고 온 조그만 검은 비닐봉지를 보고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큰딸 운동화 한 켤레와 작은딸 머리핀.
남남끼리 만나 부부로 살다보면 크고 작은 일로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 요즘같이 불쾌지수가 높은 계절이면 사소한 말다툼이 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속을 달래려 뛰쳐나오게 되는데 막상 문 밖을 나서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가장 만만한 곳이 친정 같지만 친정은 절대로 가지 말 것. 사실 부부싸움 후 친정에 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이럴 땐 차라리 찜질방엘 가보자. 요샌 불가마 시설이 갖춰진 대형 목욕탕들이 동네마다 있다. 목욕비에 1000~2000원만 더 주면 이용할 수 있는 불가마를 들락거리며 화(火)를 열(熱)로 다스려 본다. 혼자 가도 어색하지 않을 뿐더러 간혹 인생 선배들의 대화를 귀동냥으로 들으면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도 있다. 입장료와 식혜 한 그릇 사 마실 수 있는 돈, 1만원 정도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어 더욱 좋다.

화났을 때 가면 좋을 곳 중 또 하나가 대형서점. 일단 시원한 에어컨 때문에 몸의 열이 식을 뿐 아니라 이런 책 저런 책을 펼쳐들다 보면 마음의 열도 식는다. 특히 역경을 딛고 일어선 평범한 사람들의 수기라도 한 권 사들고 들어오면 한동안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대형서점이 없는 작은 도시라면 도서관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화나면 쇼핑하는 주부도 적지 않은데 이때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 재래시장으로 갈 것. 어느 재래시장이건 시장 어귀에는 노점상 할머니들이 나와 앉아 있다. 뙤약볕 아래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호박잎이나 알타리 무, 쪽파 등을 다듬어 가며 통틀어봐야 몇 만원 되지도 않을 채소를 팔거나 아니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조개를 까서 파느라 손 모양마저 변해버린 할머니들을 보고 있노라면 웬만한 건 참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다.

이 밖에도 갈 곳은 더 있다. 볼링을 한번이라도 해봤으면 볼링장으로 갈 것. ‘그 누군가’를 핀 열 개에 대입시킨 후 공을 굴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 버린다. 아니면 놀이동산도 좋다. 평소 무서워서 타지 못했던 놀이기구를 타면서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나면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진다.

이러고도 풀리지 않는다면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뿐이다. 제3의 장소, 집 앞 놀이터든 동네 카페 등 집 밖에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남편과 조근조근 얘기해 본다

IP : 211.36.xxx.52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옥시크린
    '03.8.13 2:03 AM (220.74.xxx.100)

    저 역시 남편하고 싸우면 갈려고 찜질방 몇군데 찜 해 둔데가 있죠..
    근데, 아직 못가봤어요. 당췌~ 싸울일이 있어야죠.. 크크..

    재래시장은 심난한 일 있을 때 가끔 가요..
    여든은 더 되어 뵈시는 할머니들이 웃음파시며 장사하시는 모습 보면 깨닫는 바가 많죠..
    저 어릴 땐 재래시장은 왠지 지저분하고, 땅도 질퍽해서 가기싫어했는데..
    나이(?)가 먹어서 인지 정돈된 백화점이나, 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이 좋더라구요..
    정겹고, 물건도 좋구요..

    암튼, 글 좋네요.. 후후~~

  • 2. 김현경
    '03.8.13 1:03 PM (211.116.xxx.123)

    저두 어제 신문에서 이 글 보구 혼자 웃었는데,,
    혜경선배님,,하시는 말씀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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