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성토했으니 이제 북돋워줄 차례인가요?
사실 그동안 올라온 글들, 전 남편 못 읽게 했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에 혹시나 회의(?)라도 느끼게 될까 걱정되서요.
아닌게 아니라, 예전에 남편분들에 대해 서운한 점들 올리신 거 몇 개 읽더니만
'거 봐라, 나같은 남편이 어디있나, 난 최소한 남편들 중 최고는 몰라도 팔부능선 이상에
올라있다' 운운하며 기고만장하더군요.
그래서 '일부를 전체로 확대하지 말아라, 당신보다 더 서비스정신 투철한 남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 아침 식탁 위에 비타민 알약까지 챙겨주는 분들(나혜경님인가?)도 있더라'하고
얼른 눙쳐주고 사태 수습했지요.
사실 울 남편, 집안일로는 별로 불평할게 없어요.
저보다 아마 남편이 아마 4:6 정도로 많이 할 걸요. 그나마도 임용되고 나서가 그렇고,
예전 대학강사시절엔 거의 3:7에 육박했지요. 청소, 빨래, 쓰레기 버리기, 밥 안치기, 설거지,
시장보기 등등 안하는 분야가 거의 없어요. 단 한가지, 음식은 잘 못해서 안시켜요.
신혼 때랑 입덧할 때는 국도 끓여서 밥 차려주곤 했는데, 그게 먹을만하지가 않아서 웬만해선
시키지 않죠. 아기 낳고 난 후에도, 목욕시키기, 우유 먹이기, 아기빨래, 젖병삶기, 기저귀 갈기,
밤에 일어나기 등등 모든 육아에 참여했어요. 아기 조금 크고 나서는 거의 대부분 남편 혼자
아기 목욕시켰어요. 씻겨서 내보내면 제가 닦아서 옷 입히고 그랬지요.
지금은 집안일이 버릇이 돼서, 아주 바빠서 정말 시간내기 힘들거나 몸이 아플 때 빼고는
등한시하는 적이 없어요. 제가 일하고 있을 때 아무 일도 안하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요.
그래서 같이 일하고 같이 쉬는게 불문율처럼 지켜져요.
설혹 시댁 식구나, 친정 부모님이 계실 때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죠.
남편은 저랑 9살이나 차이나는데, 결혼할 때 저희 집안에서 허락받느라 무척 애먹었어요.
그래서 결혼만 하면 몸바쳐 잘해주리라는 다짐을 무수히 했더랬지요.
게다가 남편은 자기가 한 말은 꼭 지키는 스타일이라 그 다짐들이 정치인들 공약처럼 날아가지 않았어요.
또 하나는 제가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결혼할 때 우리 부모님이 '쟤는 공부하는 아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를 중단하거나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으셨죠.
친정 부모님이 결혼하고 나서도 제 박사과정 등록금 계속 대주실 정도로 제 공부에 신경쓰시니까,
안그래도 같은 전공이라 잘 도와줄텐데, 정말 많이 도와주었어요.
요즘 제가 박사논문 준비중이라 스트레스 쌓여서 막 남편한테 히스테리 부리고 그러는데
그것도 잘 받아주고, 시간나면 바람쐬면서 긴장도 풀어주고, 논문에 대해서 같이 얘기도 하고 그래요.
마지막 하나는 제가 남편을 의도적으로 길들인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남편이 이거 읽으면
곤란한데... 전 사실 4남매 중 장녀인지라 엄마도우면서 웬만한 집안일 다 커버하는 수준인에요.
물론 여기 들어오시는 고수님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겠지만요... 그래도 시집와서는 할 줄 안다는
내색 거의 안했어요. 시댁에 가서도 그렇고, 집에서도요. 할 줄 알아도 잘 못하는 척 할 때가 많았어요.
결혼 전에 누가 그러더라구요. 너무 처음부터 잘 하려고 애쓰고, 할 줄 아는 거 눈에 띄게 하면
나중에 고생한다고요. 어른들이나 남편들, 집안일에 막힘없이 잘하면 처음엔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기면서 칭찬하지만, 나중엔 그게 당연해지고,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면 인상 찡그리게 되잖아요.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내숭 좀 떨었지요. 지금은 뭐든 한가지라도 잘해 놓으면, 전 엄청 생색내고,
남편은 엄청 감동해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지만, 남편이 해준 일에 대해 불평 거의 안해요.
청소기 밀었다는데도 책꽂이에 먼지 수북하고, 설거지 하고 나서는 씽크대에 물기가 흥건,
화장실도 제가 손 안대면 물때가 꼬질꼬질하지만,
그런 거 타박 절대 안해요. 가끔 '솔질도 좀 하지. 먼지가 너무 많네'하며 별거 아니라는 투로
심상하게 말하고 지나가요. 그럼 아주 귀찮을 때 빼곤 '그러지 뭐' 해요.
물론 이렇게 말하면 정말 아무 고민없이 무슨 걱정으로 살겠냐 하실지 몰라도,
그래도 어려움이 왜 없겠나요? 다른 분들처럼, 시댁 일, 자질구레한 습관의 차이들, 말투로 인한
오해 등등 싸울 거리가 무궁무진하죠. 다만 싸우더라도 상처가 크지 않고, 그래 포기하고 말자
하는 부분이 별로 생기지 않는 점에서 큰 위안을 얻습니다.
집안일 말고도 우리 남편 자랑거리 많이 있지만, 진짜루 돌 맞을 것 같아서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장황한 자랑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re] 남편자랑..^^
도란도란 조회수 : 906
작성일 : 2003-06-18 12:27:56
IP : 203.234.xxx.82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부산댁
'03.6.18 1:14 PM (211.39.xxx.2)돌 맞습니다,, 맞고요~~.. ㅎㅎ 너무 행복하시겠어여...많이 도와주고 챙겨주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참 든든하시겠어요~
2. 여진맘
'03.6.18 1:29 PM (211.251.xxx.129)저도 돌하나 던지구요.
그런 남편도 있다는거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요. 대한민국 남자도 구제가능성이 있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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