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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온몸으로 실천하다!

도란도란 조회수 : 888
작성일 : 2003-06-08 21:39:11
어제 한번 썼다가 실수로 다 날려먹고 다시 씁니다.
한 얘기 또 하는 거 같아 김빠지지만, 아무도 들은 사람 없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꿋꿋이 써 봅니다.

지난 현충일 저희 식구들은 뜻깊은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목포 경실련이 무안군의 한 농촌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유기농 논에 오리를 방사하는 행사를 가졌는데,
목포시민 약 10여 가족이 함께 다녀왔거든요.

이제 막 모를 심은 논에 오리들을 던져 넣었는데, 주로 아이들이 그 일을 맡았지요.
저희 아기는 아직 어려서 혼자 힘으로 오리를 들기가 어려워 제가 함께 잡아 주었어요.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노랑 병아리 사서 들고 오던 이후로 처음 날짐승을 손으로 잡아 본 거였는데,
그 뭐랄까, 뜨뜻하고 오톨토톨한 감촉, 파닥파닥 뛰는 심장 박동 때문에 들고 있기가 즐겁진 않았어요.  
계속 버둥대면서 발톱으로 할퀴어 대는 녀석을 당장에 내려놓고 싶었지만, 아기가 놀랄 것 같기도 하고  방송사 카메라도 있었던 까닭에 웃는 얼굴로 한참을 들고 있었지요.

잘박잘박한 논 물에 풍덩풍덩 내던져진 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장구치는 모습을 보면서,
저 녀석들 때문에 올 가을엔 유기농 쌀을 먹을 수 있겠구나 하며 뿌듯해 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남자분 왈,
"저눔들 올 가을엔 제법 살 올라서 묵을 수 있겄제? 작년 거 못 먹어서 을매나 섭섭했다고..." 하니까,
어떤 분이
"작년 눔들은 너구리가 물어갔다지라..." 하셨어요. 그 말에 앞서 분이
"아 그럼 올핸 그 너구리들을 잡으문 되겄네. 유기농 오리 먹은 놈들잉께 그도 괜찮겄어..." 하셨지요.
허걱~~

원래 그 날의 행사는 오리와 우렁이를 아주 대규모로 방사하도록 예정되어 있던 거였는데, 최근 한 방송사에서 우렁이 농법의 폐해를 지적한 문제로 우렁이 방사가 취소되면서 행사 규모도 축소되었다고 해요. 유기농 논에 뿌려지는 우렁이들을 주로 열대 지방에서 수입해 왔는데, 기후 차이 때문에 한해만 살고 죽을 줄 알았던 우렁이들이 나름대로 우리 환경에 적응하면서 동면을 하는 경우가 생겼답니다. 그리고는 번식에까지 성공해서 닥치는대로 풀들을 뜯는 바람에 환경에 끼치는 피해가 꽤 커졌나 봐요. 게다가 정확한 연구를 더 거쳐야 하겠지만, 외래종 우렁이가 우리 생태계에 미치는 혼란 역시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지요. 그래서 우렁이 방사가 취소된 거라고 들었어요. 아무 생각없이 들여 온 황소개구리 한마리, 베쓰 한마리, 붉은 귀 거북 한마리가 우리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조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리를 넣고 나서는 마을 회관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콩이 들어간 새까만 현미밥, 상추, 케일, 치커리, 비트잎 등의 각종 쌈채소, 김치, 된장, 풋고추, 양파가 식단의 전부였지요.
콩도 싫어하고 채소도 싫어하는 제겐 정말 실망스러운 밥상이었어요. 삼겹살이라도 있어야 그나마 구색이 갖추어질 것 같았는데, 고기를 너무 늦게 사오는 바람에 밥부터 먼저 먹고 고기는 나중에 막걸리랑 함께 구워 먹자는 걸로 중론이 모아져서 결국 고기 한 점 없이 순 채식으로만 점심을 먹게 되었지요.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밥상인데, 거기다가 마을회관 뒷편에 자리잡은 우사에서는 또 어찌 그리 냄새가 풍겨오던지... 더워서 활짝 열어 놓은 창으로 "그 냄새" 찐하게 실린 바람이 불어 오니까 정말이지 참기 힘들더군요.
코로 숨 안 쉴려고 애쓰면서 저 밥 한 공기 어떻게 다 비우나 하는 생각만 했어요.
근데 참 이상하죠? 채소 맛이 그렇게 고소할 수 있다는 거, 저 그날 처음 알았어요.
맨날 고기랑 먹으니까 채소 고유의 맛을 느끼지 못했었나 봐요.
밭에서 금방 뜯어낸 채소들의 싱싱함도 한 몫 했을 거구요.
아무튼 그 채소맛 즐기느라고 나중엔 그 고약한 냄새도 참을 만해지더라구요.
저 뿐 아니라 그날 함께 온 아이들 모두가 평균 1.5공기씩은 너끈히 비워냈지요.

밥 먹고 나서 설거지가 끝나자, 남자들은 양파를 뽑고 여자들은 각자 가져 갈 채소를 뜯기로 했어요.
적상추, 청상추, 치커리, 케일, 비트잎 등을 김장 비닐봉투 한 가득 욕심껏 뜯고 나니, 온 몸에서 땀이 흘렀어요. 그거 짊어지고 양파밭에 가보니까, 우리 아기 아저씨들 틈에 끼어 옷에 흙 잔뜩 묻혀 가며 열심히 양파를 뽑고 있더군요. 42개월 평생에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을 테니 마냥 신이 난거지요. 양파 쭉 뽑다가 엉덩방아를 찧고도 깔깔거리고 웃더군요.

집에 돌아와 채소를 먹을 만큼만 남기고 이웃에 사시는 선생님께 나누어 드렸어요. 무공해 유기농 채소라니까 무척 고마워하셨어요.
사실 유기농 쌀, 채소를 좋아한다면 그런 쌀과 채소가 생산되는 환경에도 애정을 가져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한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도시의 아파트에만 익숙해져 있는 탓이겠지요.
아무튼 단 하루나마, 온 몸으로 유기농을 체험하고 온 것이 보람있게 여겨집니다.

아직도 손에서 오리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IP : 211.198.xxx.211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김혜경
    '03.6.8 10:11 PM (211.201.xxx.29)

    정말 좋은 경험 하셨네요.
    건강한 먹거리 잔뜩 장만하셔서 뿌듯하시겠네요.

  • 2. 쭉쭉
    '03.6.9 7:35 AM (61.84.xxx.227)

    제 고향인 홍성군 홍동면에서도 매년 이맘때면 오리방사하는 행사가 있는데.. 혹시 거길 다녀오신 건지요. 그곳에선 여성민우회 등이 관광버스로 대규모로 방문해서 오리도 방사하고 밥도 함께 먹고, 각종 행사도 하곤 하는데 내용을 보니 거긴 아닌것도 같구요.
    저도 작년까지는 매년 그 행사에 갔었는데 올해는 만삭에.. 상황이 안되네요.
    즐거우셨겠어요.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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