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순간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주인공들이 사는 시대로
돌아가는 경험을 종종 하지요.
이번 읽은 소설 리심은 19세기말이 배경입니다.
주인공이 한양에서 고베와 도쿄,파리를 거쳐
탕헤르로 거기서 다시 파리로 와서
다시 한양으로 공간적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3권의 소설속에 잘 녹아있는데
아직 다 읽기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 나들이를 가니
갑자기 그 시기의 정동을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지도는 소설속에서 만난 1890년대의 정동 지도입니다.
아마 이 지도를 본 것이 마음에 남아서
원래의 목적지를 확 바꾸어 정동으로 간 것이 아닐까 싶네요.
역사박물관에서 정동길로 접어드니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바로 이 깃발입니다.
드럼이라,늘 마음두근거리게 만드는 소리
내 안에 이런 열정이 있었나 싶게 몸을 뒤흔드는 소리
바로 드럼인데 드럼 페스티벌이 있다고?

일단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니 경향갤러리에서
일본 사진작가의 사진전이 열리네요.
들어가서 한 번 쭉 둘러 보았습니다.
그는 일본국내의 사진만 찍은 것이 아니라
훨훨 멀리까지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더군요.
'
그 중에서도 가우디의 고향에 가서 찍은 사진이
눈길을 끌었고
이방인의 눈으로 본 다른 지역의 풍광이 좋았습니다.
아,나는 어떤 사진에 유독 끌리는가에 대해서
새롭게 느낀 날이기도 했습니다.
참 재미있게 느낀 현상중의 하나는
이 길이 늘 어딘가로 가기 위해 지나던 길인데
제대로 구경하면서 천천히 가 본 것은 처음이란 점인데요
그래서일까요?
내가 다니던 그 길이 맞아? 하고 느낄 정도로
느낌이 달랐습니다.
길거리에 어서각터라는 표식이 있더군요.
영조가 즉위했을 때 그를 반대하던 세력들이 집결하여
난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 난에서 공을 세운 최뭐라나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공이 기록되는 것을 꺼려해서 영조가 이를 승낙하고
대신 다른 일을 하도록 시켰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터였습니다. (이런 곳을 다 사진으로 남겼는데
집에 와서 작업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 사진이 잘 올라오지
않아서 그저 기억으로만 담고 있는 중이지요)
표식을 읽고 나서 맞은 편을 보니 시선을 끄는 담들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건너갔지요.
돌담길에 초록색 테두리가 있는 매표소 같은 곳이
보입니다.
특이하네,무슨 돌담에 저런 매표소를 해놓았나 하고
다가가보니 바로 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이네요.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았습니다.
박물관까지 들어갈 시간은 없어서 일단 마음에
새겨놓았지요.
언젠가 이 길을 지날 때 다시 와서 찬찬히 보자고

그곳에서 나와서 바라본 맞은 편에 보이는 예쁜 카페가
눈길을 끌어서 다시 건너갔지요.


시간 여유만 있으면 들어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그런 공간이네요.
여기서 조금 내려가면 러시아 공사관이 있었던 터가
나오겠구나
지척에 경운궁을 두고 러시아 공사관에서 일년동안
지냈을 고종의 심사가 과연 편했겠나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이 부인의 살해사건이후에
그렇게 도망간 것이 옳았을까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와글와글하네요.

러시아어 통역이 가능하다는 이유 하나로
당대를 풍미했던 김홍륙,발이 유난히 빠르다는 이유로
발탁되었던 사람 *(아름이 가물가물합니다.
이용익인가?)
홍종우와 서재필의 대립,
더 크게는 독립협회와 보부상의 대립
한 나라의 위기상황에서 그 안에서 살아가던 민초들의 삶
이 거리를 거닐면서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을 사람들
오늘따라 이 길이 영 새로운 맛으로 다가옵니다.

서울 시립미술관에 들어갔습니다.
두 가지 전시가 있더군요.
하나는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화가들의 전시와
국제 판화 비엔날레
우선 일층의 전시장에 들어갔습니다.
참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진 그림들앞에서
낯설지만 재미있는 경험을 했지요.


그래서 새로운 감각에 눈을 뜨려면
이미 기성의 인정된 작품들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자신의 시선으로 사물을 보는 사람들의 작품을
볼 필요가 있구나
다시 한 번 생각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아스팔트 키드란 서브 타이틀이 있는 곳에 가니
길거리에 물웅덩이가 생긴 곳에 작은 연꽃이 한 송이 피어
있고 그 자리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다양하게 담아놓고
그것을 동영상으로 담은 것과
어떤 가게앞에 조그만 화단이 있는 곳에 멈추어 서서
그 장소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놓은 것도 있었습니다.
아하,아스팔트 키드에게도 생명에 대해서 저렇게 반응하는
면을 끌어내고 싶었나,아니 아스팔트 키드라서 더욱 더
그런 공간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작가가 그 곳에 있었더라면 이야기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작품도 있었고
우리가 흔히 미술작품을 걸어놓는 프레임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일상에서 흔히 먹는 불량식품에 해당하는 것을
그대로가 아니라 포장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꽉 채운
기발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신세한도라고 이름붙인 어떤 화가는
우리들 가정의 풍속도를
예를 들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란 제목에서
엉뚱하게도 전혀 수신이 되지 않은 풍광으로 채운다던지
어린이는 가정의 보배라고 했지만
아이들을 티브이앞에서 넔을 잃고
어른들은 다른 공간에서 화투판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잡은
그림도 있더군요.
그런데 주제는 그렇게 풍자적이지만 그림을 그린 형식을
수묵화식으로 해서 오히려 더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에서도 참 신선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전시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가
정동으로 발길을 옮긴 덕분에 만난 전시라서
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3층의 판화전은 국제 판화전인데 특이한 것은
이미 구매된 작품이 상당히 많고
구매자들의 직업과 이름을 명시한 것이 많더군요.
특히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즐비해서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나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이 많은 작품들중에서 내가 살 기회가 있다면
무슨 작품을 사고 싶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
작품을 보러 다니니 더 몰입이 잘 되더군요.
제가 마음에 드는 작품앞에 아무런 표식이 없을 때
왜 이 작품을 선택한 사람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이미 구매된 작품앞에서는 이 그림을 택한 사람의
취향에 대해서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본 판화전시는
그 나름의 독특한 경험이 된 전시였습니다.

오래 보았다 싶어서 시계를 보니
벌써 다섯시를 넘기고 있습니다.
이번 금요일은 다시 일산으로 들어가서 도서관에 가야 하는 날이라
밖으로 나왔습니다.
덕수궁쪽으로 가보니 그동안 잊고 있던 뭉크전시를
알리고 있네요.
아참,이 전시를 궁금해하다가 완전히 잊고 있었네

기간을 기억하려고 사진을 찍으면서
혼자 피식 웃게 되네요.
아이들에게 책을 소개하면 너나 없이
휴대폰을 꺼내 글자를 새기는 것이 처음엔
참 신기했거든요.
메모장이 아니라 휴대전화에 저장하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웃었었는데
요즘은 저도 사진에 저장해서 기억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시대의 조류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참 어려운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려고 남대문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청계천 복구 일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알리는 팻말이'
여기저기 나부끼고 있네요.
벌써 일년이 지났다고?
세월이 가는 소리가 출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