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서양사 시간에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에 관한 발제를 맡았습니다.
새로 들어온 멤버도 있고 워낙 수업 준비에 철저한 멤버도 있어서
저도 이번에는 그냥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으로 발제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공부를 해보려고 도서관에 있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을 다 모아서
차례대로 읽어보았지요.
원래 읽어야 하는 교재말고도 이런 저런 책을 읽다보니
프랑스 혁명에 관한 그림이 그려지고 인간 나폴레옹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역사에서 그런 맥락이 잡혀서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예습하느라 하루,그리고 오늘 수업시간에 발제하느라 하루를 보내고 나니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을 제 머리속에서 지우고
내일 로마미술에 관한 발제로 넘어가기 전
그 시절에 대한 증언이라고 할 수 있는 다비드의 그림을 보고 싶어지네요.

이 그림은 화가의 자화상입니다.
재능이 뛰어났으나 일상생활에서는 경쟁심도 많고 약간 뭐라고 해야 하나
인간적인 면으로는 그릇이 작았다고 하네요.
그러나 자신이 시대를 담는 새로운 미술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는
평을 받고 있더군요,이 화가는

1789년
삼부회의 소집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이
1799년 총재정부의 성립으로 막을 내리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꺼려한 총재정부의 무능한 정치력으로 인해
군부와 손을 잡게 된 상태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이지요.
그가 총재정부의 요청으로 이탈리아 원정을 떠나게 되고
그 곳에서의 승리로 그는 국민적인 영웅으로 부상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그린 그림이 아닐까 싶네요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중에서 미완성인 그림인 모양입니다.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이 선수를 쳐서 3인의 통령이 통치하는 체제를 만들고
자신이 제 일 통령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여기서 다시 로마의 흔적이 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국민투표라는 형식을 거쳐서 종신 통령이 된다음
그 다음 수순으로 황제에 선출이 됩니다
이 과정을 읽고 있는데 어라,어디서 본 듯한 시나리오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대관식에서도 옛 역사의 흔적을 찾아냅니다.
800년 프랑크 왕국의 샤를먀뉴 대제가 교황에 의해서 황제의 관을 받았던 것을 흉내내어
당시의 교황 비오 7세에게 대관식의 의식을 치르게 하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교황이 4시간 이상 기다리게 만들었고
관을 씌워주려던 교황을 제치고 스스로 관을 쓴 다음
자신의 부인 조세핀에겐 자신이 관을 씌웠다고 하네요.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의 실세가 종교인이 아니고
바로 자신임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요?

이 그림의 연도를 보니 1812년
이 연도는 역사에서 잊기 어려운 연도중의 하나이지요.
바로 대륙 봉쇄령을 어긴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칼을 빼든 해이고
러시아에 가서 참혹한 패배를 당하게 되는 해이기도 하지요
결국 이 전쟁에서의 패배로 나폴레옹이 몰락하기 시작하는 해이기도 하지요.
1812년 서곡에서의 연도는 바로 이 시기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다루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시기의 전쟁터인 보로디노 전투를 다비드가 그린 것이네요.
그가 과연 그 전쟁터에 종군화가로 따라갔을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림 한 점씩 의미를 부여하면서 계속 보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군요.
목요일의 서양사 시간에 대한 after school은 오늘은 이것으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새롭게 읽은 책덕분에 그림을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으니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는 것이로군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