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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산골편지 -- 아버지의 그림자

| 조회수 : 1,565 | 추천수 : 20
작성일 : 2004-10-13 09:05:52
별이 그리워 바깥 마당에 섰다.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전에 찔러넣었던 손을 꺼내 벌써 얼어버린 코를 자꾸
부빈다.
우리 구들방만큼이나 위풍이 세다.

하늘엔 언 별이 뎅그랑 뎅그랑 걸려 있다.
바람이 좀더 세게 불면 곧 떨어져 내려와 살얼음깨지듯 깨질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바람을 피해 아주 저만치서 트미하게 박혀 있다.
아버지가 계신 나라에도 첫눈이 왔을까?



**********************************

추석에 서울갔을 때 들고 갔던 가방을 빨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사진 몇 장이 손에 들어왔다.
선산에 아버지가 묻히는 것을 박은 것이었다.
추석에 언니가 가방 속에 넣어준 것을 모르고 있다 지금 꺼낸 것이다.

그랬다.
그 때 아버지를 그런 모습으로 땅에 묻었었다.

내 아버지는 시골에서 태어나셨지만 도끼질 한 번 변변히 못하는 종가집 맏
아들이었다.
그러니 그 큰 농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의 몫이었고 아버지는 공무원이
셨다.

여섯인 자식을 완전 스파르타식으로 키우셨다.
우린 재밌게 놀다가도 아버지 퇴근 전까지 각자 맡은 청소구역과 맡은 동물
들의 저녁먹이를 다 완수시켜 놓아야 나중에 점호 때 종아리세례를 면할
수 있었다.

추운 겨울 시골집에 어디 목욕탕이 있으랴.
마당 한 켠에서 덜덜 떨며 씻어
야 했다.
내 아주 어릴 때 기억으로는... 코흘리개...

그러니 꾀를 내서 걸레에 대충 발을 문지르면 점호 때 영낙없이 걸
려 종아리 얻어맞고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들 걸레 대주었다고 덤으로 야단
을 맞아야 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오빠를 포함한 남자들은 할아버지 방의 네모진 상에서,

자들은 엄마방에서 순서대로 둥근 상에서 먹었고 머슴들은 뒷방에서 먹었
다.

그 잘난 누릉지를 먹을 때도 순서대로 부엌으로 줄서서 가야 했고 손님이
오셔서 인사를 할 때에도 순서대로 하지 않았다가는 점호 때 또 지적을 받
아야 했다.
그 놈의 순서가 무에 중요한지 그 때는 꼭 그래야 하는줄로 알았다.

옷장도 손수지어주셨다.
책꽂이처럼 되어 있어서 어떤 놈이 제대로 옷을 개놓지 않았는지 당신 스스
로 점검하기
쉽도록 말이다.

그렇게 딸들을 관리하시더니 자식들 머리가 커지면서 그 족쇄도 서서히 풀
어주셨고 단지 자식들 공부 많이 시켜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면서 교복처럼 완전 자율화
되었다.

아버지는 딸들과 장난도 잘 치시고 유모스러우셨으며 가정적이셨다. 나중
에 왜 어릴 때 그러셨냐니 여섯이나 되는 자식 게다가 딸이 다섯이다보니
기본부터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더란다.

그런 아버지가 당뇨병에 걸려 근 15년을 고생하셨다.
병원 입,퇴원을 밥먹듯이 하셨고 좋다는 기계는 다 사서 훈장달 듯 몸에 달
고 다니셨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 귀농 전 당시 읽던 이해인 수녀님의 '꽃삽'을 꺼내
보았다.
그 책 여기 저기에 퍼렇게 박아놓은 사연들이 눈에 서로 달려든다.

1999.10.3.

다른 이들은 어떤 때 비참해지는가?
난 지금 이 순간이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다.
몇 시간 후면 한 생명이 예고된 죽음을 맞이한다.
더 이상은 가는 자에게 고문이라는 이유로 죽음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것도 모른채 중환자실에서 침대 하나 차지하고는 희미한 삶을
부여잡고 계신다.
-여의도 성모병원 계단에서-

1999.10.16.

요즘 사람들은 올 때는 생생하게 왔지만, 털고 갈 때는 겨울도 아닌데 얼려
서 간다.
영안실 냉동실에서 아버지를 꺼냈을 때, 하얀 천 아래로 오른 발이 삐쭉이
나왔었지.

그 색은 크레파스에 씌여 있는 그 살색이 아니라 마네킹색에 가까웠다.
머리도 빗겨지고 15개이던가 세상의 매듭을 가슴에 나란히 박고, 몸보다 훨
씬 큰 옷도 입으시고 버선도 신으신다.

평소에 지니셨던 나무묵주 하나 달랑 갖고 이 생에서의 마지막 단장을 끝내
셨다.

선산에는 몇 년 전에 당신이 겨울에 하늘나라로 가게 되면 땅이 얼어 자식
들 고
생한다고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놓으신 '가묘'가 아버지 키만큼 파여져 있었
다.
아버지는 그 곳에 마춤처럼 스스로 찾아들어가셨고 살아있는 자는 이불덮
어주듯 흙을 덮었다.
그러고 손을 털고 내려오면 그 뿐!
-11층 아파트 한 쪽 구석에서-

그 메모를 보니 그 때의 가슴애림이 전해져 와 파도로 부서진다.
그 파편은
주책 없이 눈으로 들어와 그렁거린다.

일전에 병든 엄마가 오셨었는데 그 때 하신 말씀 생각났다.
막내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너희들 귀농한다는 얘기 들으시고 마
음 많이 아파하셨다. 그러니 아버지 마음 녹여드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행
복하게 살아야 한다.

신달자 시인의 '임종 앞에서'라는 시 중에는

"워워어어 짐승의 비명만 흘러나왔다.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만 보고 있는 자는
짐승이 되는가 "

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랬다.
살아있는 자는 모두 짐승이 되어 늑대소리만 낼 뿐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그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2001년 12월 1일
까만 밤을 하얗게 새고 싶은 밤에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쫀드기
    '04.10.13 1:04 PM

    사진만 보군 단순한 풍경인가 했더니

    아버님의 사연과 의미가 담겨진 추억의 한장 이네여.

    잘 간직하시기 바래여! 무서웁기만 하셨던 울아버지 생각이 났더랫슴다^^

  • 2. 포이보스
    '04.10.13 2:12 PM

    갑자기 흘러 내리는 눈물에 그냥 또 씨~~익 웃어봅니다.
    어릴때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토막 토막 생각나는 아버지의 얼굴....
    ........................................................................................
    가끔 일찍 떠나버린 아버지를 원만도 해보지만 그또한 그리움의
    또다른 마음 인가봐요.

    한장의 사진속에 많은것을 느끼네요

  • 3. 하늘마음
    '04.10.13 10:35 PM

    쫀드기님, 세월이 흐를수록 부모생각이 나니 이제야 철이 드는가 봅니다.
    일찍 철들면 좋으련만
    부모님 떠나봐야 철이 드는지...

    이제 남으신 엄마에게 잘해드려야겠습니다.
    지금 산골에 잠시 다니러 오신 엄마...

    허리를 있는대로 꼬부리고 무언가를 도와주시려 하십니다.

    좋은 밤되세요.

  • 4. 하늘마음
    '04.10.13 10:37 PM

    포이보스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군요.
    얼마나 그리우실지 알 것같습니다.

    가끔 아버지 꿈을 꾸면 바로 성호를 긋습니다.
    그저 하늘나라에서도 평안하시길 진정으로 바라기에 그렇습니다.

    부모란...
    내가 부모가 되고 아이들이 커봐야 그 정과 사랑의 깊이를 아니...

    날이 찹니다.
    늘 평안하소서.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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