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에는 이러고 싶습니다
가을에는 긴 치마를 입고 싶습니다.
짧은 치마의 경쾌함이나 경박스러움보다는
코스모스가 바람따라 몸을 흔들듯
가을바람에 기인 치마를 제 멋대고 흔들고 싶습니다.
가을에는 면양말을 신고 싶습니다.
반짝거리고, 탄력있는 스타킹보다는
발바닥에 고운 감촉을 줄 수 있고
목화솜처럼 푸근함을 느낄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면양말을 신으면 그곳에 구름도 내려와 앉을것만 같습니다.
가을에는 핸드백에 체크손수건을 넣어다니고 싶습니다.
평소에는 주유소에서 흔하게 주는 휴지를 넣고 다녔을 뿐이지만
가을에는 노을에 한 번 헹구어낸
체크무늬 손수건으로
마음을 흠치고 싶습니다.
가을에는 훌쩍 떠나고 싶습니다.
나를 얼기설기 가두어 두었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서
털고 일어서기를 원합니다.
가을에는
차곡이 접어 두었던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거울에 끄집어 내고 싶습니다.
그곳에
내 얼굴도 겹쳐 놓고
같이 따뜻한 웃음을 흘리고 싶습니다.
가을에는 팔짱을 끼고 걷고 싶습니다.
다른 때같았으면 제 팔 제가 각자 흔들고 살았지만
가을에는 두 손을 겨드랑이에 옹골게 끼고
내 신발코만 보며 걷고 싶습니다.
가을에는 처마끝에
풍경을 하나 더 걸어두고 싶습니다.
나도 쉬고 바람도 쉬고
나의 산골친구들 모두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가을은,
가을은,
마음을 잠시 내려 놓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이 가을에
허허로운 가슴을 어디에 묶어두고 계신지요.
2001년 9월 1일
가슴이 시린 밤에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지나간 가을에 적어두었던 글입니다. 철이른 글이고 사진은 지금 산골에 한창인 등황색 원추리입니다.
원추리꽃처럼 밝은 날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