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엣날에도 저 창에서는 저렇게 빛이 들어왔겠지.
camondo 라는 성은 현재 프랑스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성이다.
camondo 집안은 19세기 초반 콘스탄티노플에서 은행업을 하던 유태인 집안으로 엄청난 재력을 소유한 집안이다.
19세기 말 moise camondo가 파리에 정착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moise는 독자로 엄청난 집안의 재산과 명성을 물려 받았으며 미술적 감식안을 가졌다. 1911년 63 rue de monceau에 정착한 moise는 열정과 재력으로 18세기 프랑스의 오브제 아트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집이 진정한 콜렉션의 전당이 되길 바란 그는 베르사이유의 트리아농을 모델로 삼아 집을 개축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로 집들을 채웠다.특히 루이 16세 시대에 열정을 바친 그의 콜렉션의 방대함은 단지 돈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이렇게 화려한 camondo 집안의 불행은 20세기 초반에 시작된다.
moise camondo에게는 nissim 이라는 아들과 beatrice라는 딸이 있었다. 그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한 아버지 였다.미술 교육과 음악, 문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아들 nissim은 moise의 분신이 되어 자랐다. 그러나 시대는 일차 대전과 이차 대전을 앞두고 있던 매우 혼란하던 시절... nissim은 일차 대전시 공군에서 복역하다 숨졌다.
1935년 moise는 죽으면서 자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나라를 위해 죽은 그의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 이 박물관의 이름을 nissim이라고 붙여 아르데코 프랑스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그러나 이 집안의 불행은 nissim의 죽음에서 그치지 않았다.
moise와 nissim이 죽고 이 집안의 유일한 상속녀가 된 beatrice는 2차 대전 당시 나찌 치하의 프랑스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을 맞이 하게 된다. 이로써 camondo가계는 아무런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moise가 죽기 전에 집과 집안의 콜렉션 모두를 국가에 기증한 덕에 2차 대전의 포화속에서 그의 재산은 비밀리에 프로방스로 옮겨 졌고, 전쟁이 끝난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 문을 열게 된것이 바로 이 nissim camondo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안의 모든 가구의 배치와 구성은 그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서 이제는 사라져 버린 한 집안의 영화와 쓸쓸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집은 총 삼층의 구조로 일층은 손님들을 위한 리셉션 공간으로
이층은 손님들이 오갈수 있는 식당과 사무실이 배치 되어 있고
삼층은 가족들을 위한 침실등의 사적인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것은 이층 입구. 나무 문대신 문을 닫으면 문같아 보이지 않게 거울을 사용한 것은 18세기 프랑스 시대에 많이 쓰였던 문 가리기 수법.

이층으로 올라오는 손님이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인 살롱이다.앤틱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금방 눈치 채셨겠지만 안에 있는 가구들과 벽의 타피스트리 들이 모두 국보급의 콜렉션들이다.

의자 사이에 언뜻 보이는 책상은 oeben의 작품. 앤틱 딜러라면 이런 방을 가진 고객을 만나는 것이 거의 꿈에 가까운 일일 만큼 가득한 보물들이 있는 방.이방의 전체적인 컨셉은 벽에 걸린 목가적인 타피스트리에 맞춰 루이 16세의 살롱을 재현하는것.

살롱의 다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것은 식당이다. 멀리 보이는 벽에 포도주를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한 미니 분수가 보인다. 이방의 데코는 먹는것에 관련한 타피스트리와 은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식당의 옆에는 작은 도자기 수집방이 연결되어 있어서 살짝 숨겨진 보물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도자기 수집방의 아름다움을 보실 분들은 아래를 클릭
http://mm.intizen.com/technikart/3098688

나에게 이런 서재에서 책을 볼 기회가 주어 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서재만은 여성적인 풍을 따르지 않고 원목으로 마감하여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moise씨의 사무실. 탁자 양옆의 스탠드 부터 무엇하나 까지 더이상 건드릴 수 없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조화가 아름답다.이 곳에서 각종 서류에 사인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사람을 만났던 moise씨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여자 손님들을 위한 작은 살롱. 프랑스 가구들은 남성 가구와 여성 가구가 구분이 되는데 특히 바로 앞에 보이는 둥그리한 테이블은 십자수나 자수를 놓기 위한 테이블이다.벽에 액자를 리본으로 걸어 놓은 센스 역시 눈 여겨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beatrice의 침실.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굳이 올린것은.. 침대 옆의 그림때문이다. 마치 beatrice가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아도 이 침대가 누구의 것인지 말해주는 듯하다. 침대 바로 위에 작은 동그라미는 바로 시계. 실제로 이곳에서 잤던 사람들의 생활이 눈에 보이는듯..그녀도 저 자명종 시계가 울리는 소리에 아침을 맞이 했겠지?

이집 방문의 다른 즐거움은 당시의 실생활을 낱낱이 볼수 있다는 것이다.
드물게 남아 있는 19세기의 화장실. 요즘것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거 같은 도기 세면대와 비데.욕조가 있으며 전체를 타일로 처리 하여 쉽게 청소 할수 있게 했다.

찬물, 물빼기 마개 누르는것, 더운물이 오종종히 적힌 수도 꼭지. 거의 2세기가 넘게 차이는 나는 19세기 후반 것이지만 정말 멋스럽다.
부엌을 방문하실 분들은 아래 주소를 클릭!
http://mm.intizen.com/technikart/3101573

camondo 씨는 많은 수의 monet,manet, renoir의 그림의 소장가로 유명하기도 했는데 엣날의 이집 벽을 장식했던 그림들은 현재 오르세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오브제 아트를 전공하는 것은 때론 약간 서럽기까지 한 일이다.
순수 미술들이 보관된 박물관들은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지만 이 camondo박물관은 아는 사람만 알뿐,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박물관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사용하고 살았는지를 ,집안은 어떻게 꾸미고 어떤 것을 사고 모으며 살았는지 이런것을 느끼는 것이 진짜 체험이 아닐까?
이런걸 궁금해 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
나는 이 곳에서 사라져 간 camondo가계의 사람들을 본다.
아련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또한 너무나 아름다운 시절의 영화를 한편 보고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musee nissim camondo
63 rue de monceau 75008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