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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수다,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

술독에 빠져서 살던 친구 이야기

| 조회수 : 2,001 | 추천수 : 10
작성일 : 2007-03-26 10:17:11
15년전쯤 양재를 배우러 갔다가 한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다들 결혼하신분인데 이 친구와 저만 미혼이라서
저절로 서로 말을 주고받게 되었어요

양재수업이 끝나자
친구로 지내자며 갑자기 '낮술'을 마시러 가자고 하네요
술이란게 일단 어두워져야 마시는건줄 알던 제게
'낮술'이란 단어는 좀 생소했어요...

몇년째 놀고먹던 시절이라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아서 좀 신경은 쓰였는데
그 친구가 가자고 하는거라 그냥 따라갔어요
물론 친구가 술값 다 냈구요

먼저 생맥주집을 들어갔는데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말 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어찌 그리 잘 통하는지...^^

저는 술을 잘 못 마셔요
하지만 술자리는 무척 좋아합니다
술마시면서 편안한 분위기로 대화하는게 즐겁잖아요

이 친구 얼만큼 마셨는지는 잘 생각이 나질 않지만
아무튼 그 날 술집 서너군데를 간것 같아요
술값도 꽤 많이 나왔는데 밥값도 아니고 술값이 그리 나오는걸 제 눈으로 확인한건 처음이었어요
술 자리가 8시간정도 되었는데 이렇게 오래 마시는 사람도 처음이었구요
전 그냥 잔만 받아놓고 이 친구가 다 마셔버린거였습니다

술 한잔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 술자리도 싫어한다지만(오히려 괴롭다고 하지요...)
저 같은 경우 술자리에선 술마시는 친구보다 더 취한 사람처럼 재미있게
이야기를 받아주고 분위기를 잘 띄워준답니다~

서울에서만 살다가 지방으로 내려와서
정을 붙이지 못하여 툭하면 서울로 올라갔던 이 친구가
저를 만나면서 서울로 가는 발길을 뚝 끊었답니다

친구가 제 이야기를 집에가서 부모님께 했더니
일단 제가 술을 마시지 않는게 무척 마음에 드셨는지
아무튼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어 기쁘다고 말씀하시더랍니다

어찌어찌하다가 서로 집안이야기를 했는데
친정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이 친구의 외갓집에서 며칠 일을 하신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가 꾀 같은거 밝히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시는 스타일인데
친구의 외할머니께서 30년이 지났는데도 기억을 하시며
아주 반가워하시더랍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딸이라는 말에 더 믿음이 갔다고 하더군요

저는 날마다 날마다 이 친구의 술친구가 되어주었고
밤늦은 시간이 되면 집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의 엄마께서 제게 전화로 만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절 보자마자 친구와 친하게 지내주어 고맙다며
딸을 잘 부탁한다고 하시더군요
나중에 세월이 흘러 친구의 부모님이 계시지 않게 되더라도
꼭 평생친구로 남아 달라고까지 하셨어요

이제까지 친구는 제대로 한게 없었다는 이야기도 하셨구요
대학다니다가 술 마시느라 학업도 그만두고
직장도 사나흘 다니다 그만 두고
취미생활도 마찬가지로 시작만 요란하게 하고 며칠 안가서 시들시들해지고...

아무튼 저와 함께 양재을 끝마친 후 홈패션까지 배워서 수료증을 받았는데
무슨 박사학위증이라도 받는것처럼 기뻐하더군요 ㅎㅎㅎ
저와 이야기 하는게 재미있고 제가 술자리를 좋아하여
끝까지 마치게 된거라는 말까지 하면서요

허구한 날 술마시느라 제대로 한게 하나도 없었고
주변에 어울리는 친구들 또한 모두 술을 아주 많이 잘 마시는 친구였는데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도
친구와 마음이 맞아 서울로 올라가지 않으니
부모님 입장에선 무척 좋으셨던가 봅니다

이 친구가 대학에 낙방하여 재수하던 시절
모학원과 모학원의(그 시절 제일 큰 학원이었어요.ㅎㅎ) 재수생들중
제일 술 잘 먹는 학원생들이 모여 술먹기 시합을 했답니다
거기서 이 친구가 여러 남학생들을 제치고 일등을 했구요
체격도 작고 아주 여려보이는 여학생이 끝까지 남아서 술을 마시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하더군요...
.
.
.

그런데 저와 함께 어울리면서
1년이 지나자 이 친구의 주량과 술 마시는 횟수가 팍 줄어들게 되었답니다

처음엔 소주를 5병반까지 마셨었는데( 술대회에선 더 마실수도 있지만...)
점차 줄어들어서 1병 반까지 줄었답니다
맥주 같은 경우 화장실만 드나들면 끝없이 마실수 있었는데
2000cc던가? 아무튼 주량이 무척 많이 줄어들었어요

술마시는 횟수도 점점 줄어서 10번 마시던걸 2번정도 밖에 마시지 않게 되었구요

친구도 기뻐했지만 친구의 부모님께서 더 좋아하셔서
가끔씩 고맙다는 전화까지 주셨어요~


비결이요?
다른거 없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술자리를 좋아하여
대화를 나누며 많이 마시라고 한것뿐이니까요...

물론 술을 그만 마시라고 한적도 몇번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땐 한잔만 더 한다고 말하며 오히려
더 오랫동안 많이 마시더군요

몇번 그 일을 겪은후 아예 많이 마시라고 잔에 술을 가득 부어주었답니다 ^^

이 친구를 자세히 살펴보니
처음엔 친구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지만
나중엔 술이 술을 불러들인다는 말이 딱 맞더군요

그리고 일단 술이 취한 상태에선
그만 마시라고 하면 오히려 더 마시려는 감정이 생기는것 같구요

30년전쯤에 '18세이상만 씹으세요'라는 껌 광고문구가 나오자 (라일락껌이던가???)
18세 이하의 아이들이 갑자기 그 껌을 사느라 판매량이 무척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이 친구는 저를 통하여 주량이 줄었다며 고마워했지만
저는 이 친구를 통하여 아주 큰 인생의 진리를 알게 되었답니다

누구에게나 남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가지고 있잖아요

이때 들이대어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서 뒤에서라도 하게 되어 역효과가 나지만
상대방의 심리를 알아주어 마음편히 하도록 두게되면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줄어들게 되지요

무조건 잔소리만이 능사는 아니지요
처음에 주의를 주었다가 그래도 자꾸 싫은 행동을 하게되면
한꺼번에 몰아서 감정을 섞이지 않게 조언을 해주는게 필요하지요
그리고 그것도 통하지 않는 사람은
제 친구처럼 그냥 두는게 더 나은 방법같아요
그냥 두든 말리든 어치피 자기 고집대로 할게 뻔한 사람에게는
이 방법이 아주 좋은것 같습니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7.3.26 10:33 PM

    참 따뜻한 글이네요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 특히 사춘기 남자 아이 키울 때 제 맘을 다잡을 수 있겠어요

  • 2. 내사랑해민
    '07.3.27 12:14 AM

    흠...어른에게뿐 아니라 아이를 키울때도 도움이 될것같아요...

  • 3. 가드니아
    '07.3.27 10:41 AM

    참으로 현명하십니다..
    저도 한때 술을 자주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좋은 친구 가 되어 주셨네요.

  • 4. 달구네
    '07.3.27 11:00 PM

    친구가 무언가 마음에 힘은 부분이 있어서 술을 찾았는데, 석봉이네님을 만나 그 힘든 마음의 짐을 덜어내어 술이 줄어든 모양이로군요. 그런데, 낮술도 많이 하실 정도면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알콜의존증 아닐까요? 술 마시느라 학교까지 그만둔 정도면요.. 마음의 치료가 되어 술을 덜 마시게 되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친구의 술을 그냥 그렇게 다 받아주고 마셔도 된다 된다 하시면, 일반적인 경우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알코클리닉에 가면 그냥 술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게 아니고, 왜 술을 찾게 되는지 스스로 자기 내면을 가만히 성찰해서 술 마시는 심리적 원인을 찾게 도와 준다고 해요. 그게 해결이 되어야만 술을 안 마실수 있다고 하데요. 아마도 원글님이 친구에게 그런 심리치료사가 되어 준 모양이네요.

  • 5. CoolHot
    '07.4.6 10:19 AM

    그 뒤로는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그 친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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