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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건빵...

| 조회수 : 862 | 추천수 : 7
작성일 : 2005-06-02 17:26:50

<< 건빵 >>


얼마전,
밀리는 길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길거리 상인들이 파는 간식거리중에서 특이한것을 봤다.
건빵이었다. 커다란 자루에 건빵을 하나 가득 담아놓고 작은 봉지에 덜어서 팔고 있었다.

차 창문을 내리고 천원어치 건빵을 샀다. 그리고 한알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코흘리게 어린시절, 아무런 의미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개똥아~ 대머리 깍아라~ 논산가면 건빵 준단다~'


*------------------------


이른아침,
용산역 광장엔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수많은 젊은 남여들로 북적거렸다.
유심히 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남자들은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이었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 남자들 앞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착찹한 기분으로 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여동생과 그녀가 내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광장 한 가운데 서서 뒤돌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짧게 깍은 머리를 어색하게 어루만지며 싱긋 웃었다. 그녀도 싱긋 웃었다.

여군이 양 옆에 서있는 개찰구를 지나 역 안으로 들어섰고 구내 육교의 계단을 오르며
광장 한가운데 그대로 서 있는 그녀를 얼핏 보았다.

여군들의 상냥한 안내를 받으며 논산행 군용열차에 올라 착찹한 심정으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잠시후 덜컹 소리와 함께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분위기는 살벌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이~ 쌔끼들 빠져가지고... 동작그만!!"

모자에 짝대기 두개 단 호송병이 군기를 잡기 시작했다. 다들 침울한
표정의 장정들은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군기를 잡혀갔다.
열차가 한강 철교를 건널때 한창 공사중인 63빌딩을 바라보며 군대의 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두어시간쯤 흐르자 다들 입 꾹 다물며 심각하게 창 밖만 바라보던 사람 들이 조금씩 표정이
풀어져갔고 서로의 신상이나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해 걱정스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전쯤 지날무렵 12시, 점심때가 되었다. 갑자기 호송병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큼지막한
국방색 종이 봉투를 하나씩 던져줬다. 건빵이었다.

정말 논산가니까 건빵을 줬다. 갑자기 어린시절의 그 노래가 생각나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러나 점심 대용으로 나누어준 전투식량 건빵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제 군대에 들어온지 몇시간밖에 안되 심란한 마음에 배고픔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판이니
건빵이 안중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다들 한알 두알 입에 넣어보곤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쌔끼들 빠져가지고... 건빵이 맛이 없다 이거지..."

호송병들이 가소롭다는듯이 웃었다.

열차는 완행열차처럼 쉬엄쉬엄 달려 어느덧 논산에 도착했다.
호송병들은 분주하게 다시 장정들을 군기 잡으며 인솔하기 시작했다.

"이~ 쌔끼들 빠져가지고... 똑바루 안서!! 느그들 내가 한마다 충고 하겠는데...
아까 나눠준 건빵 버리자 말고 다 챙겨가라! 내말 안듣고 버리는 놈이나
지나가는 동내 애들에게 던져주는 놈들은 내가 단언 하는데 3일안에 분명히 후회하게 될끼다!
알았나~!!"

줄 맞추어 부대까지 걸어가는 길가에 기다렸다는듯이 동네 아이들이 달려들며 소리쳤다.

"아자씨~ 간빵주세여~ 아자씨 간빵~~"

손에 무언가 들고 가는것이 번거로워 다들 호송병의 충고도 무시하고 기차에서 내릴때
은근슬쩍 두고 내리거나 동네 아이들에게 선심쓰듯 던져줬다.


그로부터 3일후...
아직 훈련은 시작되지 않았고 PX도 맘대로 출입 할 수 없는 바짝 긴장된 상태로 대기만 하며
먹을거라곤 하루 세끼 짬밥이 전부인 그때, 우리 장정들은 그날 호송병의 예언대로 무지하게
후회를했다.

다음번 건빵은 15일후에 배급 받았다. 한창 훈련을 받던때,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받은 건빵은
정말 하늘에서 내린 음식 같았다. 군용 열차에서 거들떠도 안보던 그 건빵을 다들 앉은자리에
후딱 다 먹어 치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군용 건빵은 그 양이 엄청나게 많다. 보통 사람이 한번에 다 먹기는
어지간히 걸신 들린 사람 아니면 힘든일인데 그때는 후딱 먹어 치웠다.

그 후 15일마다 건빵 배급을 받았고 점점 아껴먹는 사람들이 생겼다.
건빵 배급이 있는 날이면 건빵 도둑이 들끓기 시작했고 다들 자신의 건빵을 확보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취침 나팔 이후 어두운 내무반 침상에선 여기 저기 숨죽이며 몰래 건빵 먹는 소리가
와삭와삭 들렸다.


*------------------------


도로는 야외로 나가는 차들로 여전히 막힌채로 기어가고 있었고, 길가의 건빵 장사는 아직 백미러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과 지루함에 서너알 건빵을 먹자 갑자기 답답해졌다. 가슴을 치며 소리 질렀다.

"컥컥~! 무울~~ 물~~~ 물 좀줘~~~ "



(에필로그)

입대 전송 할 때 우는 여자는 고무신을 꺼꾸로 신는다고 하던데, 정말 그말이 맞는것 같아.
주위에 물어봐도 입대 할 때 여자가 울었다는 친구치고 제대 이후까지 계속 이어지는 경우는
한번도 못봤거든.
정말 옛 성현의 말씀(?)은 틀린게 없다니깐...

그럼 내 여자는 어땠냐구?
아까 말했자나... 울지 않고 그냥 싱긋이 웃기만 했다고...

그때 알아 봤어야 하는건데, 그때는 몰랐거든...
입대 할 때 여자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하지만 이제는 알지.

입대 할 때 여자가 웃으면 그 여자는 평생 밤마다 옆에 누워 코를 골게 된다는 사실을...

어휴~ 시끄러...


----강두선...

2002-02-15

강두선 (hellods7)

82cook에 거의 접속하지 않습니다. 혹, 연락은 이메일로...... hellods7@naver.com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샴펜&와인
    '05.6.2 7:28 PM

    정말루 재밌어요...ㅎㅎㅎ

  • 2. 미스마플
    '05.6.3 1:38 AM

    정말 재밌네요.

  • 3. 낮잠
    '05.6.3 1:53 AM

    글을 참 잘쓰세요
    맛깔스럽게^^..

  • 4. 강두선
    '05.6.3 10:09 AM

    와인님, 마플님 변변찮은 글 재미있게 읽어주시지 기쁘군요.
    묵은 글이라 좀 그렇지요? ^^;

    낮잠님, 감사합니다.
    맛을 내는것이 저의 취미이자 직업인데, 간이 맞았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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