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 그 애잔한 경이로움에 대하여. 쓰신 분: 뎡의
아내의 출산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아기가 좀 큰 편이라 예정일 보다는 1주 정도 빠르게 제왕절개 날짜를 잡았다. 혹시나 그 전에 진통이 오면 자연분만을 시도하자 생각했지만, 말랑이는(태명) 꽤나 느긋한 딸이었다. 아마도 내일 오전과 오후의 경계 즈음, 카이사르가 태어난 방식으로 제왕처럼 세상에 나오겠지.
직업 특성 상, 그리고 그 직업 내에서도 분야 특성 상 산모들의 출산을 많이 보았다. 나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이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산부인과 의사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산모를 보고, 출산을 많이 겪는 의사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역시나 산부인과 의사 다음으로) 산모의 신체 변화에 대해 잘 아는 축에 속하는 의사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임신과 출산이란 과정은 상당히 여성에게 있어 큰 신체적 변화이자, (감히 표현하기 조심스럽지만) 큰 위험이라고 느낀다. 임신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두 가지 방향성을 갖고 변화가 생긴다. ‘아기를 받아들이는 변화’와 ‘아기를 내보내려는 변화’.
먼저 엄마의 몸은 ‘아기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변한다. 아기는 엄밀히 말하면 엄마에게 있어 ‘이물질’이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는 ‘자기-비자기(self-nonself)’ 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자기(self)’로 인식하는 대상은 공격하지 않고, ‘비자기(nonself)’로 인식하는 대상은 공격하게 된다. 이를 ‘면역’이라고 한다. 문제는 임신 과정에서 이러한 ‘자기-비자기’ 작용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면 아기를 공격하게 되고 임신이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엄마의 면역 체계는 대폭 변화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신체적 변화가 동반 되는데, 호르몬의 변화와 합쳐져 정말 별의 별 문제들이 튀어나온다. 가벼운 소양증 부터, 심한 두드러기, 돌발성 난청, 자가면역 갑상선염이 있던 산모는 심화되기도 하고 하여튼 우리끼리 우스갯 소리로 아무 증상이나 임신성을 붙이면 나타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면역 체계 변화에서 가장 무섭고 문제가 되는 합병증이 바로 ‘임신 중독증’이다. ‘자간증’과 ‘전자간증’을 통틀어 부르는 ‘임신 중독증’은 면역 관용, 즉 태아를 이물질로 받아들이지 않는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생기는 질병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아기와 엄마를 연결해주는 태반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게 된다. 태아에게 혈액을 보내는 혈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태아 혈류가 줄어들게 되고, 이 과정은 산모의 몸에 염증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이 반응의 결과로 혈압이 상승하고, 신장은 필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소변에서 단백질이 나오고, 몸이 붓고, 지혈이 잘 되지 않으며, 심하면 간, 신장, 뇌 등 장기가 손상되기도 한다.
면역체계 뿐 아니라 심혈관, 호흡기계의 변화도 생긴다. 아이에게 더 효과적으로 혈류를 보내기 위해 혈액의 양은 많아지는데(40~50% 증가) 더 묽어지게 되는(적혈구는 20~30%만 증가) ‘생리적 빈혈’ 상태가 된다. 심장은 더 열심히 뛰어 심박출량은 50%까지도 늘어나고, 말초혈관은 넓어져 혈관 저항을 낮춘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산모의 혈압은 마취 과정에서 널뛰기 좋은 환경이 되어 마취과 의사에게 있어 약간의 (때때론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또한 산소를 태아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호흡량이 늘어난다. 한 번에 마시는 숨의 양이 늘어나 전체 호흡량이 약 50%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호흡 시 폐에 남는 공기량(기능적 잔기용량; Functional Residual Capacity)은 줄어들어, 숨을 참거나 무호흡 시 산소 부족이 빨리 올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변화들은 산모 자체가 저산소증에 빠질 위험성을 높인다.(자연 분만 과정에서 힘을 줄 때, 혹은 전신마취 과정에서 무호흡 시간에서의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어서 만삭이 다가올 수록 엄마의 몸은 ‘아기를 내보내려는 변화’ 또한 겪게 된다. 출산 시 통증에 대비하여 산모의 뇌는 우리 몸 속의 자연 진통제, 엔돌핀에 민감해진다. 이 영향 때문인지 마취제에 대한 민감도도 함께 올라가기 때문에 산모 마취 시에는 약제 선정에 좀 더 주의해야 한다.(보통 용량을 적게 한다.)
출산 후에 생길 출혈에 대비해 산모의 혈액은 과응고 상태로 전환되게 된다. 쉽게 표현하면 피가 빨리 멎도록 변하는 것이다. 피가 멎는 과정은 결국 피가 응고되는 과정이다. 문제는 이 피가 응고되는 과정이 과활성화 되어 있어 출산 후의 혈전 및 색전의 위험성이 증가된다. 특히 제왕절개 산모들은 수술이라는 스트레스가 신체의 응고체계를 자극하기 때문에 혈전 및 색전을 예방하는데 신경써야 한다. 압박 스타킹을 신고, 조기 보행을 시도할 수록 좋고, 고위험군은 다리 마사지기를 활용한다.
결혼하기 전 마취과 수련의 시절, 나는 이러한 산모의 변화들을 공부하고, 직접 출산을 겪으며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주관이 형성됐다.
‘임신은 정말 큰 일 이구나. 남자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결혼한다고 해도 임신과 출산을 당연시 여기면 안되겠구나.’
그래서 나는 결혼하고서도 자녀 계획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아내의 뜻을 따르고자 했다. 아내는 자녀를 낳고 싶어했고, 오히려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 망설임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위와 같은 신체적 변화를 겪는데에서 생기는 걱정도 한몫 했다. 뜬금없지만, 대한민국의 저출산이 걱정된다고 여성들에게 출산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임신과 출산을 결심한 여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더욱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생각한다.
마취과 의사 입장에서 아내의 출산 방법에 대해선 무엇을 선호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일단 마취과 의사로서 나는 제왕절개의 출산만 겪어 보았다.(자연분만에는 마취과 의사가 동반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제왕절개의 장점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는 출산 과정에서 산모를 신경쓰는 의사가 두 명이 있다는 점이다. 제왕절개 과정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아이를 꺼내고, 산모의 수술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마취과 의사는 산모의 활력징후를 도맡는다.
임신이라는 과정도 큰 변화와 위험이 따르지만, 출산이란 과정 또한 마냥 안전한 과정은 아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모성사망비가 20.0이었다. 출산 10만 건 당 약 20명의 산모가 사망을 했다는 의미이다. 그 이전에는 더욱 높았을 것이고, 30년이 지난 지금음 모성사망비가 10.0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이다. 만 명당 한명 꼴로 사망을 겪는 것인데, 이는 사망을 집계한 수치이니 합병증과 같은 질병 상태를 고려하면 더 많은 수의 산모가 건강의 위험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산모를 담당하는 의료진이 더 많은 것은 어찌되었든 이로운 일이니까. 또한 진통을 기다리거나 유도해야 하는 자연분만과 달리 제왕절개는 스케쥴을 잡아서 진행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예측 불가능한 응급한 상황 보다는 예정된 시각에 진행하는 의료적 처치들이 더 안정되게 진행되는 느낌이랄까. 불확실성이 많이 걷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제왕절개의 단점은 어쨌든 몸에 칼을 대는 행위라는 것이다. 의료가 정말 많이 발전했지만, 수술에 있어서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유착(adhesion)’이다. 쉽게 생각하면 흉터 같은 개념인데, 피부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복강 내 장기들과 복벽에 생기는 흉터이다. 수술이 아무리 잘 되어도 이러한 유착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게 왜 문제냐면, 첫 번째로 장기의 기능부전이 생길 수 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할 장기들이 유착으로 인해 제한이 생기면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심한 경우 장폐색이나 장천공 같은 심각한 합병증도 생길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그런 일이 있어선 안되겠지만, 훗날 다른 이유로 복부 수술을 해야되는 상황이 생기면 이렇게 유착이 있을 경우 난이도가 올라간다.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굳이 유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으면 안 만드는게 좋긴하다.
산부인과적으로는 두 방법의 위험도는 크게 차이가 없어, 산부인과 의사들 끼리도 어떤 방법이 좋은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냥 담당 의사가 선호하는 방식이 있을 뿐인 느낌이다. 그리고 이렇게 장단점을 열거한게 무색하게, 많은 산모들에게 그러한 선택지를 고를 기회가 없기도 하다. 제왕절개 날짜를 잡아두었는데 그 전에 진통이 와서 자연분만을 한다던지,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진행이 안되어 제왕절개를 한다던지. 우리 부부도 끝까지 출산 방법에 대해 고민했었다. 원래 계획은 예정일까지는 진통을 기다려보고 그때까지 진통이 없으면 제왕절개를 택하는 계획이었지만, 앞서 언급했듯 아기가 커서 자연분만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 상황이 왔다. 이래저래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으니 긍정적으로 장점만 생각하려고 한다.
임신 초기부터 오늘의 만만삭까지. 아내의 몸의 변화를 옆에서 직접 보며 겪어보니, 임신이란 과정이 더 애잔하고 경이롭다. 식사 후에 쉽게 더부룩해 하고, 밤에 쉽게 잠 못들지 못하고, 자고 일어나면 관절 마디마디를 아파하고, 다리가 부어 신발은 맞지 않고. 정말 아기 낳기 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다. 그래도 크고 작은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만삭까지 와주어서 너무 고맙고 그러한 마음에 비해 잘 챙겨주지 못한듯 하여 미안한 감정이 든다. 이제 내일 마지막 출산까지 건강하게 마무리 하고 둘이 아닌 셋의 삶을 함께 살아가보자. 둘만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