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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엄마가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엄마딸 조회수 : 4,747
작성일 : 2020-05-26 10:39:21

지지난주

시골 친정집에 다녀왔을 때였어요.

 

일흔셋인 저희 엄마는

가난한 집에 시집와  평생 농사지어

시부모와 자식 넷을 보살피셨어요.

 

물론  그곁엔 아버지가 함께 계셨지만

엄마 나이 쉰이 되었을때

아버지는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그 이후로도  혼자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자식들 챙기면서 사세요

 

평생을 힘든 농사일 하며 살아 온 몸이라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힘이 들어도  차마  농사일을 놓지 못하시겠나 봐요.

 

농사지어 자식들 챙겨 보내주는 일이

엄마에겐 큰 행복이고 

그것이 엄마의 또다른 버팀목인 듯 해요

 

그날은

연초록빛 산 허리에 안개가 가득한 아침이 지나고

양귀비 꽃잎에 이슬이 마르던

오전 11시쯤 이었던 거 같아요

 

마을회관에 잠깐 나갔다 올테니

쉬고 있으라며

바람든 호박고구마 한쪽을 입에 베어물고

마당을 지나 가시기에

 

"엄마~  뭐먹어?" 했더니

" 이게 뭐게~~"  하면서 손으로 흔들 흔들 하세요

" 엄마~  바람든 고구마는 왜먹어~ 맛 없는데..."

뭐 먹는지 모를 줄 알고 딸에게 장난치려 했는데 

제가 먼저 선수를 치니 

엄마는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 하하하 "  웃고 총총총 마당 앞 길로 나가셨어요.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나신 듯

고개를 갸웃 갸웃 하시다가

뒤돌아서 다시 집으로  사뿐 사뿐 뜀을 뛰듯

걸어 오시는데

그 순간이 정말 너무 너무 사랑스럽더라고요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살랑이는데  그 살랑이는 바람에

엄마의 머리카락이 나풀나풀.

한손으로 머리를 몇번 쓸어  톡톡 하시고

한손으론 고구마를 들고

갸웃 갸웃 하다가  

이내 생각이 났다는 듯 뒤돌아서

뜀뛰듯 사뿐 사뿐 걸어 오시는데

그 옆으로  화단의

양귀비 꽃이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는게

엄마도  꽃도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살짝 말괄량이 삐삐 느낌도 나고요

살짝 길어 풀어진 뽀글이 파마에

빨간 체크무늬 몸빼바지를 입고

한 손에 고구마를 들고 서 있는

일흔셋 엄마의 뒷모습이 그리 사랑스러울 수 있구나...

 

그때 엄마의 모습과 동작

그리고 그 위의 하늘빛과  살랑이는 바람이

순간을 만든 거겠지만

저한테 꽤 각인이 되었는지

계속 생각나요

 

그때 엄마의 그 모습이요.

 

 

 

 

 

IP : 121.137.xxx.231
2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20.5.26 10:42 AM (221.154.xxx.186)

    아이고, 들꽃같이 풋풋하고 상큼한 풍경이네요.

  • 2. ...
    '20.5.26 10:47 AM (59.15.xxx.61)

    원글님 표현력이 짱이세요.
    여전히 소녀같은 사랑스런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 3. ..
    '20.5.26 10:53 AM (211.215.xxx.107)

    무뿐 아니라 고구마도 바람이 드는군요
    우리집 고구마는 그냥 썩던데..

  • 4. ...
    '20.5.26 10:58 AM (112.220.xxx.102)

    양귀비 키워도 되요??

  • 5. ...
    '20.5.26 11:00 AM (59.15.xxx.61)

    윗님...요즘 개양귀비꽃 많이 피었어요.
    진짜 양귀비 아니에요.

  • 6. 시를 읽는
    '20.5.26 11:01 AM (115.140.xxx.66)

    느낌이네요
    사랑이 넘치는 모습 인 것 같습니다
    원글님 어머니도 그걸 보는 원글님도 모습이 상상이 되네요
    흐뭇~

  • 7. 엘리자
    '20.5.26 11:06 AM (39.122.xxx.58)

    글이 참 아름답네요. 어머님과 원글님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 8. 원글
    '20.5.26 11:08 AM (121.137.xxx.231)

    꽃양귀비에요.
    요즘 여기저기 많이 피었더라고요.
    시골도 도로 옆에 많이 심어놨고요.

    엄마는...
    사실 개구진 모습이 더 많으세요.ㅎㅎ
    개구장이 같이 그런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그날은
    정말 소녀같이 사랑스러운 모습이 가득했어요.

  • 9. 좋은글에감사
    '20.5.26 11:22 AM (122.36.xxx.146)

    어머니와 좋은 추억 많이 쌓으세요^^

  • 10. 헤세드
    '20.5.26 11:23 AM (211.46.xxx.169)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한폭의 수채화를 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요 ^^

  • 11. 좋은글 고마워요
    '20.5.26 11:49 AM (211.219.xxx.81)

    글을 잘쓰셔서 눈에 선해요
    어머니도 양귀비도

  • 12. 제라늄
    '20.5.26 12:03 PM (69.209.xxx.74)

    글 너무 잘 쓰시네요~ 엄마랑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 13. 그런데
    '20.5.26 12:36 PM (223.62.xxx.159)

    담백한 글이 더 좋아보여요.
    미사여구가 너무 많아요.

  • 14.
    '20.5.26 12:36 PM (61.74.xxx.64)

    서정적인 글 오랜만이라 반갑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에요. 시골 생활하시는 어머니와 바라보는 따님 모두 싱그러운.소녀 감성... 예뻐요.

  • 15.
    '20.5.26 12:51 PM (58.140.xxx.7)

    사진찍으시지.

  • 16. ..
    '20.5.26 12:56 PM (218.155.xxx.48)

    엄마딸님 시인이나 수필가이신가요?
    넘넘 수채화같은 글이네요.
    자주 와주세요..

  • 17. 아름다운 글
    '20.5.26 12:59 PM (219.251.xxx.164)

    저 갱년기 맞나봐요;; 글이 너무 아름다운데, 왜 눈물이 ㅠㅠ

    원글님 글 너무 잘 쓰세요!

  • 18. 원글
    '20.5.26 1:11 PM (121.137.xxx.231)

    제 표현력이 좀 부족해서 그날 엄마에게 느낀 모습과 감정을
    100% 다 표현하지 못했어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문 앞에 앉아서 엄마가 마을회관에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있던 터였는데
    그때 엄마가 잠깐 보이신 행동에서 진짜 소녀같다는 느낌을
    받을 줄 생각도 못했지 뭐에요

    시골 다녀오면 늘 엄마랑 사진 찍어야지. 해놓고
    막상 시골 가면 깜빡해요. 저도 매번 아쉽네요.

  • 19.
    '20.5.26 1:31 PM (121.135.xxx.105)

    수필집 하나 내세요~글 재주가 아깝네요

  • 20.
    '20.5.26 1:47 PM (39.7.xxx.131)

    수채화같은 글 너무 좋네요.
    파란 하늘과 살랑거리는 바람속에 있는 느낌 들어요.

  • 21. ...
    '20.5.26 2:16 PM (1.242.xxx.144)

    저도 왜 눈물이 나는 거죠ㅜㅜ
    일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씩씩하신 분이네요
    항상 행복하시길...

  • 22. 원글
    '20.5.26 2:58 PM (121.137.xxx.231)

    기분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이런 얘기 여기에다 글로 쓰지
    일상에서 이런 대화 하기 힘들잖아요
    서로 정서적인 면이 좀 비슷해야 이런 얘기 했을때 어색하지 않은데
    그런 사람 만나기도 어렵고요

    주변에 대화할 사람은 있어도 그냥 가벼운 수다 정도에요
    시골 갔다가 엄마의 소녀같은 귀여운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아직도 생각이 난다...라는 말은
    여기 82에나 쓸 수 있어요.ㅎㅎ

    제가 느낀 것에 같이 공감해 주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고
    이런 글 큰 고민없이 올릴 수 있는 82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

  • 23.
    '20.5.26 3:07 PM (211.186.xxx.68)

    엄마한테 그 감정을 설명하세요. 그리고 꼬옥 안아주세요 ^^ 꼬옥!!!!!!

  • 24. 원글
    '20.5.26 3:21 PM (121.137.xxx.231)

    꼭님... 그렇잖아도 제가 늘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시골에 가면 엄마랑 사진도 많이 찍고
    엄마를 많이 안아야지~ 하고서는
    막상 시골가면 엄마따라서 밭에 가고
    풍경 구경 하고 바람냄새 맡고
    그러다 엄마가 해주시는 맛있는 음식 먹는 거에
    정신 팔려가지고
    다짐했던 걸 까먹어요. ㅎㅎ

    그래놓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짐하죠
    다음에 시골가면 꼭 ~~해야지...하고요

    사실 제가 오빠들 틈에서만 자라서 좀 남성적이라
    감성적이긴 하지만 애교가 많다거나
    겉으로 막 표현을 잘 하거나 하진 못해요.
    애교 많아서 평소에 애교 막 부리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한데
    그래도 예전보단 표현도 하고 엄마한테 장난도 잘 치고 그래요. ㅎㅎ

    다음에 또 시골집 다녀오게 되면
    그땐 꼭 사진도 많이 찍고 엄마 많이 안아주고 오리라 다시 다짐합니다!! ^^:

  • 25. 어머
    '20.5.26 4:53 PM (110.70.xxx.213)

    질투나요.

    순간순간을 잘 포착하고
    그걸 잘 표현하는 능력이요.

    이런 건 글로 전달하는 게 더 낫다에 동의해요.

  • 26. 나야나
    '20.5.26 5:12 PM (119.193.xxx.176)

    소설가 이신가봅니당...와우~

  • 27. ...
    '20.5.26 6:43 PM (222.239.xxx.231)

    따뜻한 모습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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