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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vs 기생충, 20년 간격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 조회수 : 1,415
작성일 : 2019-05-31 12:53:09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20년 전인 1999년에 같은 상을 수상한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가 동시에 개봉되었습니다. 
벨기에 출신의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형제는 봉감독과 함께 2019년 이번 칸 영화제에서 '영 아메드'라는 작품을 경쟁부문에 내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1999년 칸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로제타'는 20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서 첫 개봉을 했습니다.

저는 어쩌다 수요일에 '로제타'를, 목요일에 '기생충'을 연달아 보게 되어, 의도치 않게 두 영화를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20년 간격을 두고 같은 상을 수상한 두(? 세?) 감독의 영화는 놀랍게도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간, 장소, 국가, 시스템, 사람이 달라져도 발생하는 동일한 문제와 상황, 그 속에서 거의 비슷한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놀랍도록 똑같다는 것에 정말로 깜놀...

그러나 같은 주제와 소재를 풀어내는 감독들의 스타일은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집요하게 주인공 로제타를 따라 다닙니다.
다큐인 듯 손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로제타를 따라다니는 덕에 처음 십여분간은 정신 하나도 없이 멀미가 날 지경으로 흔들흔들합니다.
스토리 자체도 피해갈 곳 없이 갑갑하고 답답한데, 러닝 타임 내내 주인공을 몰아대고 밀어부칩니다.
어느 감독이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숨이 차다'고 표현했는데, 그 표현에 무릎을 탁 쳤다는...
주인공 로제타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싶고,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일반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10대 소녀이지만, 그녀에게 그 작은 소망이 머나먼,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반복되는 상황이 관객조차도 힘들고 벅찹니다.
중간에 황당한 사건이 하나 작게 있는데, 실질적으로 이 영화의 반전포인트인데, 그 지점이 너무나 당황스러울정도로 놀랍고,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잘 안되지만, 이 영화를 보다보면 로제타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가 갈 정도로 설득이 됩니다.
결국 다 내려놓고 극단의 선택을 하려고 해도 짜증나게 맘대로 되지 않는 우라질 세상같으니라고...
벨기에에서는 이 영화가 발표된 이후로 청소년의 취업에 대한 '로제타법'이 생겼다고 합니다.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강렬하게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줬을 거고 그래서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큰 상을 주었겠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영화고,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주인공에게 의문을 가지고, 나의 이해수준을 시험당하기 때문에 큰 영화제 수상작들에게 마음을 주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봉 감독의 '기생충'은 '로제타'와 너무나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들었지만, 심지어 주인공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조차도 비슷했지만, 시종일관 관객이 즐길 수 있도록 판을 깔았습니다.
상징, 주제, 문제의식 같은 어려운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일단 그냥 재미있다는게 너무나 장점입니다.
봉 감독이 한국 사람이어서 편애가 아니라, 일단 영화가 재미있고 쉽습니다.
장면마다 관객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고 뒷통수를 날리는 스토리의 전개로 영화를 보는 내내 밀당을 하며 끌려가다가 클라이막스에서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맥 놓고 쳐다보게 만드는, 관객을 허탈한 충격에 던져놓고 갑니다.
이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해서 어떻게 이렇게 진행되지? 보면서도 황당하고 신기하게 전개되죠
상을 떠나서 그거 하나로도 좋은 영화다 싶었습니다

두 영화를 나란히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지독하게 '사실적'이라는 표현이 이렇게도 극명하게 반대로 표현될 수 있구나 하는 감탄?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는 자잘한 것들을 다 가지치고 로제타만을 추적하면서 그녀의 일상과 심리만 아주 사실적으로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화면과 사건이 매우 간결합니다.
그러나 봉감독의 '사실'적이라는 건, 현실을 삽으로 고대로 떠서 영화에다 집어넣은 것처럼 '사실'적입니다.
복잡하고 때로는 비상식적이고 때로는 부도덕하기도 하고, 이랬다 저랬다 뒤죽박죽이고 아이러니한 현실을 고대로 보여줍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던 찰리 채플린의 말이 봉감독 영화의 화면에서는 고대로 구현됩니다.
봉감독 영화의 대부분이 그랬듯이, '기생충'도 정확히 그 지점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습니다.
히히낙낙하면서도 뭔가 뒷통수가 서늘하고 갑갑하면서도 어이없이 웃음이 터지고...

그의 첫 장편이었던 '플란다스의 개'에서 보여준 똘기도 여전히 살아있고, 설국열차도 언뜻 느껴지고,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마더'에서 보여준 페이소스같은 것도 들어있고, 본인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것을 집대성한 느낌조차 들었습니다.

그래서, '로제타'는 두번 보기엔 너무 힘들지만, '기생충'은 두번 이상도 충분히 볼 수는 있겠다, 싶었습니다.
IP : 14.38.xxx.81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9.5.31 2:24 PM (175.116.xxx.93)

    다르덴 형제 감독은 칸에서 황금종려상 두번 받았고 총 6번의 상을 탄 거장입니다.

  • 2. 봉보로봉봉
    '19.5.31 2:50 PM (219.254.xxx.109)

    멋진 대비글이네요..저랑 비슷하게 보신거 같아요..첫댓글이 참으로 이해안가는 댓글이지만.원글님 글에는 추천드리고 싶네요

  • 3. 어머나
    '19.5.31 5:33 PM (119.70.xxx.55)

    글을 정말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기생충은 내일 예매해놨는데 로제타도 보고싶게 만드시네요. 대비 하면서 우열을 가린게 아니라 주관적인 감상을 적으신건데 거장 운운 하는 첫댓글 ㅋㅋ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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