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아이들 입학시즌인 이 날이 친정아버지의 기일..
어지간하면 엄마의 딸 다섯은 다 모인다.
비록 제사 지낼 아들은 없지만 딸 다섯은 아들있는 집 못지않게
아버지 제사를 지낸다.


올해는 서울사는 막내동생만 아이들 학교 문제로 내려 오지 못하고
모두 모였다.
제사를 지내고 보니..
팔순을 넘기신 엄마가 많이 늙어 보인다.
이젠 검버섯도 제법 보이고..
기력도 떨어져보이고..

연례 행사처럼 엄마의 쪽 진 머리위로 손이 간다.
동백기름 바르고 빗질하고 땋고 쪽지고..


아낙의 기억속에 딸을 위하여 머리를 만져 준 적 없는
늘 바쁜 엄마였지만 ..
초등학교시절 다른 엄마들처럼 세련된 파마머리가 아닌
한복에 쪽진 엄마의 머리가 싫어..
아니 다른 엄마보다 늙어보이는 우리 엄마가 싫어서..
늘 <엄마 머리 파마 하자>라고 졸랐던 네째 딸이
마흔을 훨씬 넘기고 보니
이렇게 비녀로 쪽 진 엄마의 머리가 훨씬 이쁘다는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엄마가 파마 머리였다면 이렇게 엄마의 머리를 내가 만질 수있었을까?
어느날부터 삼단머리 같은 엄마의 머리카락은 흰머리가되고 숱도 많이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비녀가 흘려 내려 딸들이 해준 금비녀도 할 수가 없고
잃어버려도 될 수있는 은비녀가 엄마의 머리 위에서 빛났다.

팔십년이 넘는 해를
딸들의 욕심으로 엄마의 머리를 자르고 볶고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자르지 않고 간직한 엄마의 머리카락..
아마..힘든 시집살이에서 든든한 버팀목이셨던 아버지에대한 사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하늘나라에서 아버지가 어머니 파마머리를 몰라 보실까보아...)
그리고..
어머니의 시어머님에서 그 윗대의 시어머님께 물려 받은 반닫이 옷장..
100년도 훨씬 넘긴 이 옷장 속에서 우리 다섯자매의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