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와 만두에 얽힌 사연, 기억하시죠?
저를 가져 만삭의 몸인 친정엄마가, 오빠를 데리고 몸풀러 친정에 가셨대요.
겨울이면 으레 김치만두를 해드시던 외할머니는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어서 만두를 준비하셨대요.
돼지고기가 많이 든 만두 먹고 힘내서 아이를 쑥 낳으라고...
만두소 준비하고, 밀가루 반죽하고, 할머니랑 이모들이랑 둘러앉아서 만두를 빚다가, 어머니는 그만 진통을 하셨고, 애써 빚은 만두는 드셔보지도 못하고 그날 밤 절 낳으셨대요.
그런 '만두의 추억' 때문인지 제 생일이 돌아오면 어머닌 늘 만두를 빚으셨지요.
속 털어서 잘 다진 다음 국물을 쏘옥 짜낸 김치에 숙주나물이랑 돼지고기랑 두부랑 넣고...
수동 이탈리아 파스타기계까지 장만하셔서 손수 피까지 만들어가면서 만두를 빚으셨어요.
피를 찍어내던 전용 스텐공기가 눈앞에 선하네요.
정말 많이 만두를 빚었는데..., 몇백개씩 빚었어요. 우리 삼남매가 엄청나게 먹었을 뿐 아니라, 두고두고 먹고 싶어해서 냉동실에 얼리기까지 했거든요. 그래도 엄마는 힘드는 줄 모르고, 즐겁게 하셨던 것 같아요.
자식들 다 짝채워놓으시고도, 겨울이면 한두차례 만두를 빚어놓고는 아들 며느리 몽땅 불러 먹이시는 게 엄마의 연중행사죠.
먹는 것 뿐인가요, 먹고 나서는 몇십개씩 싸주시고...
만두 빚는 날, 저만 빠진다고 아쉬워 하면서 냉동했다 몇십개씩 주시곤 했는데, 작년에는 어머니가 골절상을 입으셔서 못했고, 그 전해도 웬일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암튼 안하셨던 것 같아요.
어제 오후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잠시 친정에 들렀어요.
너무 잘 쒀진 도토리묵, 저희만 먹으려니 맘에 걸려서 싸가지고 갔죠. 제가 쑨 묵 드신 후부터는 도토리묵 못 사드시겠다잖아요.
가보니 부엌은 만두 준비로 어지럽더군요. 벌써 김치는 다져두셨고, 두부를 짜시려고 하시더라구요.
"엄마 만두, 하는구나"
"그래, 먹고 갈래?"
"아냐, 가야지"
"그럼 언제 올래? 남겨놓을께..."
"글쎄"
묵만 전해드린 채, 부엌에 일거리가 잔뜩 널려있는 걸 보고 돌아서려니 발길이 안떨어지는데, 어머니는 제 맘을 읽으시곤 "만두피 샀어, 일도 아냐, 그리고 이제 애들 올텐데,뭐. 빚으면서 먹으면서 하면 돼, 괜찮아" 하시네요.
아버지는 "저녁에 다시 와. 와서 만두 먹어"하시구요.
그렇다고 갈 수 있나요? 매인 몸이...
오늘 아침에 한의원에서 침맞고 전화를 걸어봤더니, 어제 저녁, 오빠네 식구들이랑 동생네 식구들이랑 모두 와서 빚어가며 삶아 먹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저희 몫은 냉동실에 넣어두셨구요.
그래서 잠시 들러서, 얌체처럼 만두만 싹 집어가지고 잽싸게 왔죠.
무임승차죠, 엄마 만두 빚는데, 하나도 보탬은 안드리고...
저흰 만두를 이렇게 먹어요.
아주 큼직하게 빚어서, 물에 삶아서 초간장에 찍어먹죠.
삶기 전에 엄마가 주문을 받아요, "혜경이 몇개?"
그런 저희 삼남매는 먹기 내기라도 하듯, 10개, 20개, 25개 막 이렇게 욕심을 부리죠.
다른 집들은 만두국을 끓인다고 하는데 저흰 한번도 만두국으로는 안먹어봤어요.
원래 엄마가 만두피를 만들어서 빚으면 더 만두가 커지는데, 기존의 찹쌀만두피를 사다가 빚은 탓에 평소 '김원옥 스타일'보다 사이즈가 훨씬 작네요.
오늘 점심에 만두를 제 양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먹어뒀어요.
왜냐하면요, 엄마가 자꾸 늙어가시니까, 이제 몇해나 더 엄마가 만두를 해주시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팔목도 시원치 않은 노인이, 자식들 먹이겠다고...그래도 그게 다 엄마 마음이겠죠?
만두피를 사다가 빚는 만두라면 저도 할 수 있을텐데..., 내년에는 제가 해서, 엄마 좀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아니, 생각해보니, 연중행사로 만두를 빚는 건, 엄마가 드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모두 모여서 북적이며 같이 빚고, 같이 먹는게 즐거우셔서 하는 거니까, 제가 대신 해드릴 수 있는 일도 아니네요.
아, 점심에 만두를 잔뜩 먹은 탓에 아직 배가 안 고픈데...그래도 나가서 저녁을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