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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어린시절..
밑으로 여동생.남동생 하나씩 있어요. 터울이 2살.3살터울이고.
지금은 다들 결혼해서 아이도 하나씩 있고. 다들 직장다니면서
사네요. 특히나 바로 밑의 여동생은 결혼하자마자 제부가 몹쓸병(간질병)이
생겨서 실질적인 가장이구요. 제부가 집에서 살림하고. 여동생이 돈을 벌죠.
씩씩한 동생이지만, 사실 마음이 항상 안좋죠. 볼때마다..
그런데 얼마전에 그 동생이 놀러왔다가 맥주한잔 같이 하는데.
제게 그러더군요.
초등학교 제가 5학년.동생은 3학년일때. 저는 일주일에 한번.
동생은 일주일에 두번... 미술수업이 있어서 크레파스를 가져가야 했답니다.
그런데 제가 미술수업이 든날이 동생과 겹쳤대요.
자기는 항상 일주일에 두번중에서 크레파스를 하루만 가져갈수 있었답니다.
제가 가져가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못가져가는 날은 준비물을 안해왔다고 선생님한테 항상 손바닥을 맞았다네요.
그 얘기를 담담히 하는데(저는 사실 그런부분은 몰랐어요).. 눈물이 찔끔하더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당시에도 크레파스가 얼마나 하길래.
학생이 셋인데. 크레파스가 하나밖에 없었을까..
엄청 못살긴했는데. 그래도 크레파스 하나 더 사줄정도도 아니었을까..
그거 하나 더 사줬다고 더 못살았을까..
친정엄마아빠... 말입니다.
솔직히 중학교때까지 아이셋과 엄마. 거기다가 돌아간 할머니까지 3대가
한방에서 살았구요. 누우면 딱 맞는 그런 방요.
그나마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다음에 지하셋방 2개있는곳으로
첨으로 이사간 어린시절이었어요.
남동생은 200원인가가 없어서 학교를 결석한적도 있고.
저는 고등학교때 수학여행갈때. 당시에 엄마가 100원짜리로 3천원을
주셨고. 주머니에서 쩌렁쩌렁하는 잔돈소리가 엄청 챙피하고..
하여간 나름대로 힘든 유년시절이었어요.
저는 중학교때 학교에서 항상 전교 탑이었지만, 상고를 갔었고.
고등학교 졸업이후에 직장생활하다가 대학갔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졸업하면서 말단 공무원이 됐구요.
지금은 그냥저냥 맞벌이로 평범하게 삽니다.
친정집은 여전히 가난하고. 이제는 두분다 일을 못하시니
초등학교 다니는 제 아이를 봐주시면서 제가 드리는 돈으로 생활비 하시네요.
문제는 오늘도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그러시네요.
본인은 젊었을때 우리 삼남매를 애지중지 어디하나 빠지지 않고 신경써서
키우는데. 나는 하나밖에 없는 아이한테 왜 이렇게 신경을 안쓰냐..는 말씀요.
전에도 가끔 그런 얘기하다보면.. 제가 기가막히기도 하고.
물론 그냥 넘어갈수도 있지만, 듣다보면 화가 나기도 하거든요.
오늘도 저 크레파스 얘길 했어요.. 엄마가 마음은 어땠는지 몰라도 우리 삼남매
애지중지 키우지는 못했다... 이런식으로 얘기했더니..
집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집에 가시네요.
저것뿐이 아니거든요. 저 초등학교 2학년때는 발을 몇달동안 닦지않아서.
학교 용의검사에서 반에서 제일 드러운 아이로 뽑히기도 했거든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제 스스로가 가엾기도 합니다.
초2... 당시에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제 생활기록부를 나중에 보니까.
제 몸무게가 초1때 14kg, 초2때 16kg였어요.
지금도 키도 작고 그렇지만,, 제 아이가 초1인데 23kg 나갑니다.
요즘 아이치고 작은편이지만,, 물론 그 당시랑 요즘 아이랑 비교할일도 아니지만,
하여간 아직도 엄마 손이 필요한 초2때 제대로 씻지도 않았고.
그런부분을 엄마가 챙겨주지도 않았어요.
물론 살기 힘들었으니 챙겨주지도 못했다고 하겠지만,
그걸 원망하는것도 아니고. 원망할 나이도 지났어요. 내년이면 마흔이니..
근데 가끔 엄마가 얘기하는걸 보면. 적어도 우리 삼남매 어린시절..
엄마도 그러고 싶지않았지만, 우리는 정말로 불우한 어린시절이었다는걸
왜 인정못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그 잘잘못을 따지는것도 아니고..
친정부모님은 본인들이 경황이 없어서 적어도 신경못쓰신부분은 인정을 해야 정상이 아닌가요?
비가 온다고 우산을 가져다 주신적도 없었고.
저 중학교때 학교에서 공부를 탑으로 했지만, 문제집 한번 제대로 사주신적 없어요.
오죽하면 담임선생님이.. 제게 문제집을 따로 주시기도 했습니다. 불쌍하다고..
그냥 그래요. 이제와서 부모님을 탓하는게 아니라.
그냥 그 사실자체는 인정을 하시길 바라는데.. 절대 아니랍니다.
본인들은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했고. 신경을 엄청 썼다고.
그러면서 아빠는 한술 더 떠서 자식을 여섯을 낳을껄 그랬다고 후회하신다네요.
제가 그랬네요. 여섯?? 여섯 낳았으면 그나마 초등학교만 나와서 다들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꺼라고..
그냥 어차피 지난일이지만, 엄마아빠의 저런 행동을 이해하고 싶지않아요.
불우한건 불우한건데..당한 사람은 불우하다고 생각하나,
부모님들은 유복하게 키웠다고 생각하시니.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절대 그런적 없다고 하며 집에 가는 엄마의 모습보면서.
씁쓸합니다.
1. ..........
'09.11.23 10:24 PM (118.216.xxx.69)맞아요...
절대 인정 안하시죠...
인정하기 싫으신거죠...2. 저도
'09.11.23 10:56 PM (211.245.xxx.40)아..저도 정말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서...정말 원글님 심정 이해가되요..
원글님은 몇년생이신가요?저보다는 나이가 좀 있으실것같은데...전 78년생이구요.
저희는 연년생 3자매였는데...엄마가 뭔가를 챙겨주신 기억이없어요.
초등 6년내내 아침에 비와도 그냥 우산도없이 등교하기 일쑤였고(우산들고 마중오는일도
당연히 없었죠.우산이 없었으니까요)그렇다고 엄마가 일하느라 바쁘신것도 아니고 그냥
전업주부였는데도 그랬어요.전 초등 5학년때 아마도 선생님이 저때문에 그러셨던것같아요.
겨울즘에 발바닥 검사한다고 하시면서 다들 양말 벗어보라고...저보고 까마귀라고하시면서
남자인 짝보다 더 더럽다고...너대신 짝꿍을 대신 때리는거라고....
제친구는 저보고 더럽다고 너 몸에는 벌레가 우글우글 거릴것같다고 말한적도 있었고...
하나뿐인 운동화를 정성껏 빨아서 가마솥뒤에 올려놨는데 밤새 불을 뗐었는지 신발이
흔적도 없이 타버려서 찾다찾다 못찾고 울면서 쓰레빠신고 학교갔던기억...
실내화 갈아신을때마다 구멍난 양말이 창피해서 항상 급하게 실내화 신었던 기억...
물론 가난하긴 했지만 엄마가 조금만 신경써주시고 우리자매들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충분히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인데...
아...구두가 찢어졌는데...제가 말을 안한건지....찢어진 구두 한참 신고다닌적도...
그 구두를 신고 찍은 6학년 졸업사진도있더라구요. 책가방 어깨끈이 끊어져서
가방을 매지못하고 항상 손을 들고 다니기도 했고...
엄마...너무 원망스러워요. 엄마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구요...
이런기억은 왜 잊혀지지를 않는건지..넘 괴로워요..3. ...
'09.11.23 11:06 PM (211.194.xxx.172)글을 읽고 있으니깐 맘이 아리네요
4. .
'09.11.23 11:20 PM (59.24.xxx.55)맞아요. 초등 1학년, 2학년이면 아직은 엄마가 가끔씩은 머리는 더럽진 않은지 , 손톱, 발톱은 길진 않은지... 챙겨줘야 할 나이죠.
제 아이도 1학년인데 제가 머리 감자 하지 않으면 1년가도 감아달란 말 하지 않을거예요.
그 당시의 부모들은 왜 그랬을까요? 사는데 경황이 없어서라고 이해할 수 밖에요.
저도 아버지가 공무원이셔서 먹고는 살만 했는데도 초등1학년때 그 당시 처음 나왔던 자석필통이 갖고 싶었는데 끝끝내 사 주시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갖고 싶었던건 아직도 기억이 남네요.
그래서 저도 제 아이가 간절히 원하는건 사 주게 되요.
초등1학년에 15kg인 아이를 알고 있는데 정말 유치원생보다 더 작고 마르던데...
걔는 3달을 인큐베이터에서 살고 나온 미숙아였다고 하던데 님은 얼마나 약하셨을지 가늠이 되네요.
원글님 저라도 위로해드리고 싶네요. 아픈 기억은 부디 잊으시길...5. 나역시
'09.11.23 11:25 PM (211.51.xxx.107)너무가난하게 살아서 그런지 지금도 생생합니다 .. 정말 서럽고 ....
6. 인정
'09.11.23 11:30 PM (98.248.xxx.81)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고 아마도 속마음은 다 느끼면서도 그걸 인정하는 게 너무 가슴아파서일 거에요.
그래서 아마도 원글님의 아이 얘기를 하시나 봅니다.
대개 부모들이 자기의 과오를 인정하기 어려워해요.
실제로 기억을 못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조금 깊이 얘기하면 그걸 인정하는 게 두려운 거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믿고 싶은 거에요.
그게 무너지면 너무 비참해진다는 그런 두려움이에요.
우리도 아이들 기르면서 그런 생각 들 때 있잖아요.
한없이 자책감이 올라오고 내가 왜 이랬을까 하다가 그게 너무 힘들어지면 그래도 내가 이런 건 했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나 하고 돌이켜 올라오는 거요.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이지요.
이런 마음이 이기심이기도 한데...
저도 부모님 얘기하면 정말 마음에 쌓인 부분들이 많았는데...나이가 들면서 나는 어떤 부모인지 생각하면서 그냥 가슴이 아파요.
저도 그다지 좋은 부모가 못되고 있어라구요.
그리고 저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고 했는데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늘 부족한 부분들이 있더군요.
부모 노릇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드네요.
님의 부모님들도 아마도 그 당시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믿고 그렇게 했는데 자식들에게는 가슴아픈 게 된 일들이 많은 걸 거에요.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보니 자식들은 다 불만이 있나는 걸 알게 되면서 세월을 돌이킬 수도 없고 너무 마음 아플 것같아요.
우리 아이들은 이다음에 그런 얘기 안하게 키우고 싶은데...저도 부모이기에 겁이 나네요...7. 그래도
'09.11.23 11:37 PM (59.3.xxx.222)그런 부모님이 살아계신 원글님은 행복한 겁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휑 하니 찬바람불어 가슴이 더 시립니다.8. 어쩌면..
'09.11.23 11:41 PM (218.237.xxx.69)다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어릴적 기억해보면 여유롭지 못한 환경땜에 가슴한쪽이 서늘해지기도 하지만
예뻐해주셨던 기억도 나거든요..
내게 풍족하게 마음껏 해주지 못한것이 엄마에게도 좋은 기억은 아닐테죠..
비록 삶에 지치고 쫒겨살아왔어도
널 항상 그렇게 방치해둔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으셧던 걸수도 있어요....
널 예뻐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날들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으셨을꺼예요...
엄마에게도 아픈 기억이잖아요. 자식에게 넉넉히 못해준것이...9. 전
'09.11.24 12:03 AM (220.117.xxx.153)더 비참하네요 ...
저희 집 진짜 잘 살았어요,,피아노에 그네도 있는 집...
근데 저는 준비물 제대로 해간적 없구요,,체육끝나면 목에 때가 줄로 꼈어요,,저 60년대 중반 출생인데 수세식 화장실에 목욕탕도 있는 집인데요 ,,,
우산 같은건 제대로 쓰고 다닌적 없구요,,저도 초등때 15kg전후,,우리언니는 그런 몸무게가 어디있내고 하네요 ...
지금 우리애들 키우다보니 뼈가 저려요,,정말로,,왜 엄마는 나를 그렇게 방치했을까...이해가 안가요...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제 상처를 확인하는 과정같아요...10. 겨울은
'09.11.24 12:11 AM (76.29.xxx.11)제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입니다.
씻지못해 때낀발에 항상 동상까지 걸렸거든요.
항상 언니가 신던 낡은 신발을 물려신어서 발이 항상 시렸구요.
친구가 없는 제게 친구가 생겼는데 그건 우리둘만 다른아이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이 없었어요. 저는 두툼한 천으로 만든 가방을 들고 다녔고요.
그 친구가 어느날 빨간 새털신을 신고왔는데
제가 한번 신어 보도록 해주더군요.
처음으로 느껴본 그 따뜻함, 아직도 그 느낌을 기억해요.
그런데 그 친구는 집도 없이 철로근처의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었어요.
햇살이 가득한 따뜻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놀던 생각이 나네요.
그 친구는 눈이 사시여서 못된 남자아이들이 자주 때리기도 했구요.
어릴때 힘든 기억도 많았지만 이 친구와의 기억은 항상 따뜻해요.
어디서 잘 살고 있으면 좋겠어요.11. 어린 시절
'09.11.24 12:47 AM (119.149.xxx.105)기억이 묘하게 상처로 남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이건 지워지지도 않아요.
전 겨울을 참 싫어라 했는데, 이유가 맨날 추웠거든요.
넘들 다 입는 오리털 잠바를 입어보길 했나, 비닐로 창문 가린 방은 정말 말할수 없이 추워서...
단칸방 문하나 열면 바로 달린 화덕에서 나는 연탄가스 냄새는 맨날 무섭기도 하고..
근데, 어찌저찌 공부는 좀해서 직업갖고 결혼 웬만큼 하고나니..
이젠 겨울이 무섭진 않아요.
난방틀면 집은 따뜻하고, 추운 날은 따뜻한 옷으로 막으면 되니까.
대학때 친구가 겨울이 왜 싫으냐고?
추운거야 뜨신 옷 입음 되고, 부츠도 신을수 있고, 모자도 예쁜게 많고
겨울이 멋내기 좋아 좋다나요.
참 이해 안되던 그 말이 이제서야 이해돼요.
추위는 그렇게 따뜻한 옷과 따뜻한 집이 있으면 두려운 게 아니더군요.
우리 부모님도 그런 말씀하세요.
그때 니들은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 진짜 손톱이 닳도록 죽을 힘 다해서
학교보내고 도시락 싸보내고, 그렇게 키웠다고.
난 학교가면 공부 잘하고 뭐별로 빠지는 것도 없는데
행색은 초라하고 꾸질꾸질한 아이였지만,
그래서 맨날 집에 불만이 많았지만..
우리 부모님한텐 그것도 최선이었다는 것도 알겠어요. 이젠...
자식은 셋이나 전부 학교 다니는 나이,
남편 사업 실패해서 집안 살림은 나몰라라(그래도 자식들한텐 참 선하고 따뜻한 아버지였어요)
혼자 온갖 일 다 해가며 애 셋 키우고 먹이고 입히고..
그리고 다들 어지간한 직업갖고 시집장가가서 그래도 따뜻한 집에서 뜨신 밥 먹을 정도로 살면
이젠 부모님 스스로 돌아봐도 그리 잘못 살아온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드실 것 같아요.
님 상처 크셨을 거 짐작해요.
어린 마음에... 씻을수 없는 상처인 것도 많죠.
나이 사십이 돼도 잊혀지지 않을
근데, 부모님이라고 그 세월 헤쳐오면서 왜 상처가 없었을까요?
나이든 부모님, 살아갈 날도 그리 많지 않을 부모님(수십년이 남은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부모니까 따뜻하게 품어드리면 어떨까 싶어요.
엄마... 그렇게 힘들때도 어떻게 맨날 도시락 싸가며 등록금대고 생활비 만들고
그거 다 했냐고.
부모님도 진짜 힘드셨을 거예요.
전 제가 그때 부모입장이라면 어디 도망을 가면 갔지
그렇게도 못살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하곤 비교가 어디 되나요?
그땐 어려운 아이들, 어렵게 사는 사람... 지금보다 훨씬더 많았지요?
많이들 그랬잖아요?12. 에구
'09.11.24 1:05 AM (122.34.xxx.175)전 40대 중반으로 달려가는 나이인데도 힘들고 아팠던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저려옵니다.
원글님 부모님과 저희 부모님이 거의 같은 분이시네요.
다른점이 있다면, 저희 부모님은 식모처럼 일을 시켰다는 점이요...
삼남매중 저는 언니 남동생 사이의 둘째였구요.
늘 언니 물건을 물려받아썼습니다...심지어 교복까지두요.
언니는 저보다 키가 많이 작고 뚱뚱했고, 반면 저는 날씬하고 키가 컸는데도
완전 무시하고 언니의 그 말도 안되는 사이즈의 교복을 입고 다녔으니
한창 예민할 사춘기에 얼마나 자존심에 금이 갔는지 모릅니다.
어린시절부터 제 외모가 참 출중한 편이였어요.
다른반 남학생들이 허구헌날 구경을 올만큼 괜찮은 편이였지요.
공부도 1~2등을 했고, 오락을 하던지 학예회를 하던지 늘 리더를 하는 아이였어요.
전 아나운서나 방송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원글님처럼 제 의지와 관계없이 상고를 갈수밖에 없었습니다.
참고서 한권없이 늘 어렵게 공부했고 어쩌다 참고서 얘기만 꺼내면
난리가 났었지요. 돈이 없어 못사줄수는 있지만 그리 당당한 부모님이
진저리가 처질 만큼 싫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리 힘든 일일까요.
상고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전 늦게라도 대학을 가려고 했습니다.
헌데, 그마저도 허락이 안되더군요.
결혼할때 100프로 네가 벌어서 가야한다고, 우리는 단 10원도 보태줄수 없다고
그래서 넌 절대로 대학에 가면 안된다고...정말 이 사람들이 친부모가 맞는지...
언니도 저도 그래서 끝내는 대학에 가질 못했습니다...ㅠ
몰래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맞아서 죽기 일보직전까지 가고 좌절당했지요.
남동생만 대학을 보냈습니다.
어렵고 힘들게 산것이 상처가 아니라
그걸 너무 당연히 당당히 여겼던 부모님이 저에게도 가장 큰 상처로 남아있네요.13. --
'09.11.24 1:08 AM (119.149.xxx.79)그러게요~ 정말 가난해서 어쩔수 없어서 그런건 이해가가지만 아니었음에도
부모님의 무관심 아님 학대로 인한 상처는 정말 오래가는것 같아요.
오늘도 동생과 전화통화에 이런 얘길 했어요.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공감이가냐구
슬프냐구 이상하게도 우리 세자매는 전혀 슬프지 않았어요. 단지이런 엄마 밑에서
자랐으면 정말 좋았겠다라는 생각뿐...
윗분중의 말씀데로 아이키우면서 더욱더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더 괴롭더군요.14. 전
'09.11.24 2:12 AM (220.117.xxx.153)엄마한테 그 책을 보내주고 싶습니다,한번 읽어나 보시라구요 ㅠㅠ
15. 어려도 자존심은 있
'09.11.24 9:00 AM (121.178.xxx.164)ㅎㅎ 초등학교 졸업사진에 맨 앞줄 가운데에 앉아서 발가락 뿡 삐져나온
너덜한 운동화 신고 사진 찍혔어요.
바지는 사정없이 짧은데 앉으니 바지끝이 종아리 중간까지 올라가서리... 어린 마음에도
이런 제모습이 부끄러워 뒷줄로 가려했지만 키가 작아 앞줄로 끄집어 땡겨졌고.
떨어진 운동화와 드러난 발목을 감추려고 자꾸 의자밑에 발을 넣는다고 선생님께 매까지 맞고
민망한 얼굴로 큰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바른자세를 하고 앉았네요.
동창카페에 사진 떠있는데,,16. 엄마를 부탁해
'09.11.24 9:12 AM (119.198.xxx.116)저도 그 책을 읽고 그 주인공이 참으로 부러웠다는...저도 제 엄마의 이기심에 서러웠던 어린 시절을 겪었어요. 준비물도 제대로 못챙기고, 친구 생일 잔치 초대 받으면 핑계대고 안갔어요. 선물 살 돈이 없어서...지금 저는 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헌신해봤자~라는 말들 요즘 많이 하지만, 전 제 아이들 위해서 성심껏 잘 하고 싶어요.
17. ㅎㅎ
'09.11.24 3:39 PM (211.222.xxx.197)울 엄마는 절 그렇게 때리고 혼내셨는데
한번도 자식을 때린적없이 키우셨다고 남들한테 자랑 하시더군요...
기억이 하나도 안나시나봐요...
중학교때 옷이 없어서 엄마 옷을 입었네요..
키가 커서 중학교때 엄마랑 키가 비슷했거든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어른블라우스 그것도 자수블라우스를 입고간날...ㅋㅋㅋ
뭣때문인지 몰라도 칠판앞에 서게되었는데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들던 그날...
다행히 고등학교땐 교복을 입어서 옷걱정은 없었어요... 소풍땐 친구옷을
빌려입기도 하고... 그렇게 힘들게 살지않았는데 왜 제 옷을 안사주셨는지
잘 모르겠어요..18. 공감
'09.11.24 3:44 PM (58.225.xxx.95)누구나 지난 시절에 아픈 기억은 있다고 생각되네요.
불완전한 인간이 인간을 키운다는 것부터 얼마나 모순인지........
이젠 다 돌아가시고 ㅠㅠ
미화하며 살고 싶지만........
다 내몫이려니~~ 합니다.
저는 이렇게 털어놓는 것도 잘 안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