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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왕가의 삶..

technikart 조회수 : 901
작성일 : 2004-03-28 19:54:55








Diego velazquez, les menines,1656

17 세기의 유럽에서 가장 엄격하고 정제된 예절과 예식의 궁정이 어딜거 같냐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다들 독일이나 프랑스를 들겠지만 놀랍게도 그곳은 바로 스페인이다.

오늘날의 플라멩고와 작열하는 태양의 스페인을 생각하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이 사실은 기나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싸움뒤에 신교와 구교의 긴 전투로 유럽이 암흑에 물들 무렵 굳건히 가톨릭을 지지했던 스페인의 자세를 생각하면 좀 이해가 갈 것이다.

1656년의 필립 4세의 마드리드 왕궁, 그 안에서도 왕실 전속 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아틀리에를 우리가 방문 해볼수 있는 것은 이 한 장의 그림 덕분이다.

큰 화폭을 앞에 둔 벨라스케스의 모습이 왼쪽에 보이며 가운데로는 당시 5살이었던 마그리트 공주의 모습, 막 문을 나서는 듯한 궁정 관리의 모습, 초상화 그리는 지루한 순간을 참아 내기 위해 동원된 난장이의 개의 모습이 오른쪽에 보인다. 문 옆의 거울에서는 희미하게 그려진 필립 4세와 마리 왕비의 모습이 초상화를 그리던 중 공주가 구경온 순간을 절묘하게 표착했음을 우리에게 설득 시켜주고 있다. 마치 사진으로 한 템포를 잡아 놓은 듯이 펼쳐진 화면에 숨겨진 뒷 이야기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이 그림에서 한가지 놀라운 점은 벨라스케스가 위 그림 이외에는 필립 4세와 마리 왕비의 부부 초상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왕가 전속의 화가 이면서도 --당시의 왕가 전속 화가란 당연히 왕과 왕비, 왕족의 초상을 위해 기용되었다 -- 이 그림 이외에 단 한점의 초상을 남기지 않은 이유는 당시 스페인의 상황과도 매우 관련이 깊다.

당시 스페인은 합스부룩 가문의 5대가 내리 통치 중이었는데 필립 4세에 이르러 재정상황은 날로 악화 일로를 걷게 된다. 1656 당시 필립 4세의 나이 51세, 왕은 병중에 있었고 궁정의 형편은 좋지 못했다. 더구나 왕비 마리는 당시 나이 21세. 두 부부의 사이에 무려 30세의 나이 차이가 났으며 실제로 마리는 독일 합스부룩 황제의 딸로 필립 4세와는 사촌간이 되는 사이다.

합스부륵 가문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략 결혼에 선택된 마리가 스페인으로 시집온 것은 나이 13세 때.  일화에 따르면 마리를 환영하기 위해 마드리드의 상인들이 선물한 100개의 신발을 마리가 신어 보려 하자 궁정에서 이를 제지하고 공식 발표를 통해 '스페인의 여왕은 다리가 없다" 고 선포했다 한다.

이는 왕과 왕비가 평민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이야기. 즉 감히 평민이 가진 다리를 왕과 왕비가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정도로 권위에 집착한 왕실에 의해서 마리는 그야말로 수족이 잘린 인형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당시 왕가의 가장 큰 역할은 '보여지는것'. 즉 왕가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잠자기 전에도 20가지가 넘는 절차와 예의를 갖추어야 했으며 연회와 파티는 매일매일 열렸다.

이 그림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은 혼자서만 환한 빛에 노출된 마그리트 공주의 모습이다.
화가나 난장이나 심지어 왕과 왕비 부부까지 어둠속에 묻혀 희미하게 노출된 것에 비하면 공주는 전면에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있다.
1656 년 당시 이 그림이 그려지던 시절 이 왕실의 적실 혈통은 마그리트 공주가 유일했다.

그러나 공주의 탄생은 비록 왕자는 아니었으나 마리왕비가 출산이 가능하다는것을 입증했고, 이는 곧 미래에는 왕자가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의 신호로 해석이 되었다. 즉 공주의 건강함과 영민함이 곧 왕실의 희망이 되었던 것. 실제로 마리는 이 그림이 그려진뒤  왕자를 낳으나 그녀의 세 아들중에 두명은 어릴 때 병으로 죽었으며 나머지 한명이 미래의 필립 5세가 되나 그는 어릴 때부터 정신박약이었다 한다.

마그리트 공주가 고작 나이 5세이었지만 그녀의 뻣뻣한 듯한 자세는 궁정의 예절을 엄격하게 습득했음을 보여준다. 공주는 그녀에게 건네주는 작은 잔을 보지도 않으며 자신의 양옆에 선 자신의 하녀들을 보고 있지도 않다. 그녀의 눈은 그녀 앞에 펼쳐진 자신의 부모-즉 왕과 왕비에게 고정되어 있다.

이는 그녀가 벌써 오랜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단정히 선 자세를 유지할 수 있으며 곧 '보여지는 것'이 왕가의 의무임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는 아마도 왕과 왕비는 절대로 대중앞에서 웃지 않는 궁중의 철칙 또한 배웠을 것이다.실제로 필립 4세가 다른 이들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 단 두번 뿐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마그리트 공주의 양옆 시녀들은 당시 귀족의 자제들로써 왕가의 시녀가 된다는 것은 당시 귀족들에게 엄청난 영예의 표시였다. 왼쪽의 하녀는 공주옆에 있으면서도 무릎을 굽히지 않고 있는데 이는 오른쪽 하녀보다 왼쪽 하녀의 직위가 낮음을 보여준다. 당대의 예절은 왕족에게 무릎을 굽힐수 있는 영광을 가장 측근에게만 허락했기 때문이다. 고로 왕족에게 무릎을 굽혀 잔을 전해줄수 있는 위치라면 엄청난 왕족의 측근이라 보아야 한다. 또한 왕실의 예절은 왕족에게 식사나 음료를 건네줄 때도 최소 이 이전에 8명이나 10명의 손을 거쳐 전달 된 것을 최측근 하녀가 무릎을 굽히고 전해주는 것이었다.

이 뻣뻣하고 경직된 예절의 세계가 단지 스페인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엄격한 태양왕인 루이 14세 또한 절대로 경어가 아닌 말을 아무리 낮은 신분에게라도 쓰지 않았으며 귀족들은 앞다투어 루이 14세의 침실에 촛불을 켜는 역할을 하려고 달려들었다.

이러한 왕실의 뻣뻣한 삶은 당시 왕족들에게 인간의 자유로움을 포기토록 강요했고, 이러한 강요를 이겨가며 살기 위해 왕족들이 즐거이 가까이 했던 것은 바로 그림 오른쪽의 난장이와 어릿광대 그리고 애완동물이었다. 유일하게 궁정에서 예절에 구애받지 않고 살수 있었던 것은 단 이 세 부류였다.

놀랍게도 그림에서 애완동물인 개와 난장이와 어릿광대가 동시에 등장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당시의 사회에서 난장이와 어릿광대는 애완동물과 동일한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왕족들 앞에서 온갖 쇼를 할 수 있었으며 실제로 그들이 천박하고 야비한 모습을 보여줄 수록 그들의 값어치는 올라갔다.

난장이와 어릿광대와 거의 대칭되게 그려진 벨라스케스 자신의 초상을 보자.
첫 눈에 보이는 것은 그의 가슴에 빨간 십자가. 이것은 산티아고 기사의 표지로 당시 화가는 귀족 기사의 지위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직 기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3년후 그는 귀족 작위를 결국 하사받게 된다. 기록은 그가 단지 돈을 위해 화가를 한 것이 아니라 왕의 즐거움을 위해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기사 작위를 하사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그가 왕의 즐거움을 위해 한 일은 아틀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은 아니었다. 당시의 왕실 전속 화가란 오늘날로 집안 장식 담당 같은 업종이라 그는 왕의 침대보가 오래되었는지 부터 궁정의 카페트가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궁정 청소의 감리와 나무와 석탄의 조달, 왕이 귀족과 함께하는 식사 때 뒤에서 의자를 붙들고 있는 일까지 엄청난 양의 일을 해야했다.

1657년의 기록을 보면 벨라스케스가 이 업종에 종사하여 60000 레알을 벌었으며  궁정 청소와 각종 연회 담당 하인들이 벨라스케스 아래에 있었음이 명시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어릴때부터 누구나 평등하고 누구나 자유로이 사고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할수 있음을 배운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뒤돌아 보면 이러한 사상을 얻기 위해 왜 피를 흘리고 기나긴 싸움을 해야 했는지, 그리고 지나간 역사 속에 그들은 어떤 사고 방식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배울 수 있다.

17세기에 태어난 난장이와 황태자 중에 과연 누가 더 행복했을까?
이 그림을 보면서 문득 드는 의문이다..
IP : 80.11.xxx.15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크리스
    '04.3.28 9:50 PM (218.53.xxx.187)

    이런 자세한 얘기를 들으니...정말 왕가나...귀족들이 부럽지 않군요^^;
    잼나는 얘기 또 잘 들었습니다~~~

  • 2. 국민학교
    '04.3.28 11:12 PM (211.242.xxx.21)

    기사의 표지인 십자가는 그림완성당시에는 안그렷던걸 뒤에 그려졌다는 설도 있어요
    이그림은 여러사람의 시선의 엇갈림속에 누가 주인공인 무척 헷갈리는 작품인데요
    제목또한 여러번 바뀐걸로 알고잇습니다
    최종제목은 시녀들 로 알고있는데[그냥 시녀들인지 누구와 시녀들인지 좀 헷갈립니다]
    필립4세부부의 거울모습으로 추정되는 것도 거울이라면 각도가 이상하다하여
    그림일것이다라고 하는 주장도 잇어요
    거울이면 밸라스케스의 큰 캔버스가 비췰것이다라는거고요

    또 밸라스케스가 누구를 그리느냐.
    공주를 그리느냐. 그러기엔 화폭과 공주사이 거리가 가깝고 이상하죠?
    아니면 거울에 비추이는 왕부부를 그리느냐.
    어떤이는 전면에 큰 거울이 잇어 모두가 그거울을 본다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래저래ㅡ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입니다

  • 3. Anna
    '04.3.28 11:43 PM (24.130.xxx.245)

    글 잘 읽고 있어요^^

    근데 이런식으로 명화를 재미나게 설명해준 책은 없나요? 이게 딱 제 취향인디...(원래 그림엔 관심도 지식도 없는데 테크니카 님 글 읽고 흥미진진- ^^)

    추천해주심 감사~
    아님 테크니카님이 한권 쓰실때까지 기둘려야한다는...

  • 4. 이론의 여왕
    '04.3.29 12:34 AM (203.246.xxx.216)

    아, 참 재미있는 그림이군요.
    요즘은 밑의 글을 읽기 전에 저 나름대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저는 모두가 앞을 보고 있길래, 화가가 거울을 통해서 이 그림 장면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위의 '국민학교'님 글을 보니 정말 보는 재미가 있는 그림이네요.

  • 5. 아라레
    '04.3.29 3:20 AM (210.221.xxx.250)

    예전에 친구가 이 그림을 보여주면서 몇명이 나오는지 알겠느냐? 고 물어봤을 때
    전 저 거울속의 왕과 왕비는 보지 못했어요.
    차근차근 설명들어가면서 그림을 보니 정말 재미있군요. ^^

  • 6. 솜사탕
    '04.3.29 5:14 AM (68.163.xxx.62)

    히야~~ 정말.. 그림에 대해선 문외한인 솜.. 미술관에 가도.. 넘 지루해 하던 솜이였는데요..
    이렇게 그림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그림이 좋아질라 합니다.
    하긴, 그림 하나 하나.. 모두 이야기가 있겠지요?

    Anna님 말씀대로 이렇게 재미나고 맛깔스럽게 설명한책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테크티나님께서는 반드시 책 한권 내셔야 겠어요!!!
    넘 재미있네요~~ ^.^

  • 7. 다시마
    '04.3.29 10:03 AM (222.101.xxx.98)

    테크니카님 , 공부 틈틈이 영양가 높고 재미있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림이 커져서 보는이도 즐겁네요.
    그림도 좋지만 엔틱도 무지 궁금하거든요. 그림과 문화와 엔틱이 별개는 아니겠지요?
    다음번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8. 카푸치노
    '04.3.29 12:38 PM (211.192.xxx.204)

    저도 너무나 재밌게 잘 보고, 읽고 갑니다..
    감사드려요..

  • 9. technikart
    '04.3.30 3:38 AM (81.51.xxx.240)

    제가 위염으로 시름 거리는 동안 고새 리플이 많이 늘었어요..늦게 답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잼나다고 말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국민학교님 이야기 잼나네요.
    근데 거울설은 좀 문제가 있는것이 루이 14세때 베르사이유의 거울의 방 만든거 아시죠?
    컴의 17인치 화면 만한 거울가격이 당시 노동자가 1년 일한 봉급하구 맞먹었다고 하는데
    루이 14세보다도 이전인 저 시기에 그만한 거울이 있었으면 아마도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실제로 앤틱가구나 그림 연구를 할때 왕가나 귀족들의 재산목록을 찾아가면서 연구를 많이 하는데요 재산목록에 보면 테이블 보가 몇개인지도 나오거든요..근데 그렇게 비싼 거울이 안나올리가 없다는게 재 생각입니다.

    안나님 미술사 책은 한국어로 된건 곰브리치 미술사 추천드리구요
    제가 일루 온 뒤에 한국에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다고--미술관 기행 등등등
    그러던데 그건 제가 못본지라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여튼 잼나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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