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삼아 시작한 목공일에 남편은 한 번도 토를 달아본 적이 없습니다.
일 주일에 두 번. 일곱시에 나가 열시까지 이어지는 수업도
돈이 얼마쯤 들어가느냐
지금 무얼 만드느냐
사람들은 어떠냐...
그게 무얼 뜻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저에 대한 배려이고 믿음이거니 그냥 가늠만 할뿐입니다.
그러던 사람이 거실장을 들어온 날 저에게 묻습니다.
-다음엔 뭘 만들꺼고?
-음 전화만 받으면 자꾸 화장실이냐고 묻는 안방에 침대 좀 들어놓을까?
-책상부터 하나 만들어오면 안되겠나?
-하는거봐서!
말은 그랬지만 일 주일에 두 번 수업이라 시간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목공소 친구 도움받아
이주일만에 후딱 급조해온 오크책상입니다.
다 만들어놓고 해야 하는 사포질은 정말 인내력을 시험힙니다.
대충 해도 별 표시는 나지 않지만 사포질 열심히 해놓으면 촉감이 달라집니다.
80방 120방 320방 400방 1000방
그렇게 다섯번의 사포질을 거치니 조직이 치밀한 오크만의 자연스러운 광택과
보드라운 촉감에 만족할만 했습니다.
왜 의자는 없냐고 하기 전에 두 개 얼른 공수해 왔습니다.
사실 책상보다 의자 만드는 게 더 복잡하고 힘들거든요
또 모르지요.
살다보면 저 플라스틱 의자가 쫓겨나게 될런지도.^^
목공소에 남아도는 자투리 나무로 소마큐스라는 걸 만들어봤습니다.
저런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를 훌쩍 넘은 아이들이라...저는
처음 봤습니다.
일곱개 조각을 맞춰 정육면체를 만드는 퍼즐인데
이틀 가지고 놀더니 푸대접이길래 필요한 집에 선물로 드렸습니다.
뭐든 때와 장소가 잘 맞아야 하는가봅니다.
딸아이 방을 청소하다가 문득 달력이 눈에 들어와서 살펴보니 아주 웃깁니다.
케잌 스티커 한장 달랑 붙어있는 날이 제 생일입니다.
아주 잔칫집 분위기입니다.
완전
날강도 딸입니다.
오른손엔 칼을
왼손엔 총을 들었습니다.
얼마전 중학교 입학하고 첫 시험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땐 시험날 아침에도 만화책을 보던 아이였는데...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나름 압박이 있었나 봅니다.ㅎㅎ
시련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알려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시련도 겪으며 자라야 더 튼튼하고 깊게 뿌리 박으며
향기로운 꽃도 피울 수 있겠지요.
그래서 시험 결과는 어떻게 됐냐구요?
ㅎㅎㅎㅎㅎ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 청소며 설거지를 하고
때마쳐 울어주는 세탁기와 화창한 날씨덕에 기분 좋게 빨래를 널어놓고
어머니와 집앞 공원으로 산책을 갔습니다.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시어머니와의 대화...
별거 없습니다.
열 번은 더 들었음직한 옛날 이야기들... 마치 처음 듣는양 맞장구만 쳐드리면 됩니다.
-어머니 시집온 날 이야기 좀 해보이소
-아이구 야야~ 말도 마래이~ 그때는 말이다.......
-오마나 그랬어예? 그래서 어무이는 우쨌는데?
-가마이있어봐라 내가 그래서....
울어머니는 저한테 거짓말 하면 다 들통납니다.
근데 글자하나 안틀리고 똑같은 말씀을 하는 걸 보면
그 고생담이 거짓말은 아닌 거 확실합니다.
5월은 정말 행사들이 많아 바쁘기도 하고...약간은 부담스럽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작년에 아버지를 보내드려서...첫 제사가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혼자되신 친정엄마는 가까이 살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정말 마음이 픕니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한달쯤 지나고 밤늦은 시간 엄마가 혼자 살고 계신 아파트를 지날 일이 있었습니다. 아직 불이 켜진 걸 보고 전화를 했더랬습니다.
-엄마
-응
-안자고 뭐해
-자고 있었다
-근데 왜 불이 켜져있노?
-너거 아부지 돌아가시고부터는 불을 못끄겠다 현아.
-왜?
-무서버서..
참 못난 딸입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사십년을 넘게 둘이 같이 자다가...갑자기 혼자 지내게 된 밤이 얼마나 무섭고 길었을까요.
엄마도 그냥 나이 먹은 여자라는 걸...
그냥 어린 아이가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된다는 걸...
나보다 어른은 나보다 더 강하다고 착각하고 사는 걸까요.
무슨 행사만 있으면 부부들끼리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근데 시댁이든 친정이든 부모님 문제에 있어서는...서로 한번만 더 생각하면 안될까요.
아버질 살아계실 적에 쓴 글이지만..
뒤늦은 후회가 되는 글이지만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저 같이 바보같은 후회하지 마시길요.
내머리속엔 마치 빛바랜 사진마냥 붙박혀있는 장면이 하나있어
내가 중학교 일 학년, 18평 조그마한 아파트에 살 때였어.
그 아파트조차 엄마가 파출부다니던 집에서 사주고 매달 얼마씩 월급에서
갚아나갔더랬지...
중학교 일학년..그러니까 열 세 살..
그날도 새벽같이 일나가시며 엄마는 날 깨우셨지.
-현아 엄마 지금 나가니까 일어나 밥도 안쳐놨고 밥상도 차려놨으니
좀 있다가 도시락 싸서 동생깨우고 준비해서 학교가거라 알았지..
쌀쌀한 겨울날씨에 뜨듯한 이부자리에서 못나올까봐 엄마는 억지로 날
일으켜세워놓고 집을 나가셨어
나도 잠을 깰까해서 베란다로 나가서 엄마가 버스타는걸 지켜보기로 했지
조그마한 네거리 모퉁이에 서있던 아파트라 버스정류장과 그리멀진 않았고
엄마는 새벽차를 놓칠까 막뛰어가고 계셨어
며칠전 후라이팬 기름에 발등을 데셔서 슬리퍼를 질질 끌며 절룩절룩..
뛰어가셨는데...마침 버스가 저만치서 오는거야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뛰어가다가 슬리퍼가 벗겨지고..
버스가 그냥 가버릴까봐 엄마는 그 슬리퍼를 집어들고 또 뛰시는거야
고맙게도 버스기사아저씬 천천히 엄마앞으로 다가왔고 엄마는 무사히
탈 수있었지...
난 이제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할 수 있어..
열세살 그때 난 눈알이 빠질만큼 울었었는데...
근데 말이야..
그때 엄마소원은 나와 내동생이 대학을 가는 거였어...
동생은 공부를 썩 잘했었지
초등학교 내내 반장 부반장 독차지였고..엄마가 한번 찾아가 본적도 없는
학교에서 그앤 전교회장자리까지 얻어오곤 했었는데 그런날이면
동생은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그랬어.
문제는 나였지..
늘 바람만 피고돌아다니며 생계며...자식문제는
내팽개쳐놓은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길은 내가 망가지는 길이라 믿으며
고등학교도 떨어져 2차를 가고..그러고도 엄마에겐 미안해서
3년을 속인체 다녔더랬지...
대학도 물론 떨어지고...
난 자신이 있었거든...
아무리 농땡이 학교를 나오고 그런 꼬리표가 평생을 쫓아다닌데도
잘 살아낼 자신이 있었어..
근데...아니더라구...
그 꼬리표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어
-넌 돌대가리에다 닳을데로 닳은데다 이미 싹부터 노랗게 말라버려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야....
그러던 어느날...밤에...문득 잠을 깼어
부엌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흑흑..흑흑...
나가보니 엄마였어
-내가..흑흑..내가 왜 살았는데...죽는것보다 못한 이세상에 내가..
내가 왜 살았는데...니가 ..니가 나한테 이럴줄은 몰랐다..
엄마...
엄마...
하루종일 일하고와서..또 집안일하고 지쳐쓰러져 자는 엄마를 깨워
밥상을 차려오라고 ..여자까지 데려와서..밥상차려오라고 하는 아버지를
난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었어.
근데 우리엄마..엄마는 아무소리안하고 밥상도 차려주고 커피도 끓여주고..
방까지 비워주고..여자를 죽이고 엄마로만 살았어
그런 엄마한테 나까지 가슴에 칼을 꽂았던 거지..
나 나쁜년이지..
아주 죽일년이지..
그래서 난 대학을 가기로..아니 엄마를 위해 가주기로 생각했어
재수학원을 등록하고 볼펜심을 많이 샀어
이틀에 한자루씩 작살을 내기로 결심하고 시험칠때까지 난
나자신과의 약속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어.
그리고는 지방대지만 4년 전면장학생으로 대학엘 갔어.
그제서야 꼬리표도 떼고...우리엄마 소원을 이뤄줬어
대학에 붙었다는 소릴듣고 엄마는 우황청심환을 먹어야했었는데..
내가 사는동안에 제일 잘한 일 같어...
난 아버지를 평생..죽을때까지 용서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여전히..용서는 안돼
근데 말이야
이제 나보다 더 약해진 종아리를 어제 봤어
왜 지금 그게 맘이 아플까..
왜 마음이 아플까
너도 아버지가 있고 엄마가 있겠지..
나같이 나쁜년되지말고
잘해드려...
병들고...돌아가시기 전에..
난 내일 아버지집으로 갈거야
엄마꺼..아버지꺼..보약 두재 내려놨거든..
그리고..용서를 빌거야..
더..늦기전에..
나 잘하는거맞지..
그치..
데코방 여러분..
기다려도. 혹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처럼
여러분들의 좋은 날도...꼬옥 오겠지요.
하지만 부모님은 정말 자식이 철들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 거 같습니다.
저렇게 미워한 아버지가...눈부신 요즘 ...얼마나 보고싶은지요.
저리 미워한 게 얼마나 죄송스러운지요.
한번도 따듯한 딸이 되어드리지 못했으면서...
다시는 불러볼 수 없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사뭇 그리워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