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된 이야기같군요.
그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박혜정씨가 수업시간에 아일랜드라는 드라마에 대해서
열광적으로 이야기를 하던 때가
그리고 게시판에 대사를 줄줄 올린 적도 있었지요.
처음에는 그것이 윤정모의 아일랜드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아직 디브이디를 열렬하게 보던 시절
드라마를 빌려서 다 보았습니다.
참 특이한 연기로구나
잊혀지지 않던 배우였는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문유정역를 맡았다고 하길래
관심이 갔었지요.
그런데 보람이가 어느 토요일날
집으로 전화해도 받지 않아서 걱정하던 날이 있었는데
와서 물어보니 친구랑 바로 이 영화를 보고 왔노라고
엄마도 꼭 보라고 권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시험보는 아이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마두 도서관 자리를 맡긴 어려울 것 같다고
그냥 집에서 공부하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제 머리가 갑자기 돌아가면서 그렇다면
일요일 조조 프로로 영화를 볼 수 있겠구나
늦게 일어나는 승태를 깨워서 함께 아침 먹고
학원가는 것 보라고 부탁한 다음
길을 나섰지요.
빛이 좋은 시간에 걸어서 천천히 영화관까지 갔습니다.
영화속의 음악선곡도 좋았고요
카메라를 따라가는 제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드디어 서당개가 아직 삼년도 되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면서 스토리이외에도 촬영의 기법을 따라가면서
보고 있더라는 겁니다.
눈이 역시 같은 것이 아니로군
서서히 변하고 있는 제 눈이 신기합니다.

워낙 알려진 이야기라서 내용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같아요
다만 영화대사중 한 신부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윤수가 영세를 받는 날 하신 말씀인데요
물고기가 사람이 되는 것은 마술이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 기적이라고요.
그렇구나
이렇게 한 마디로 명쾌하게 기적을 정의하다니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이 머릿속에서 울리더군요.

내일이면 다 읽게 되는 don't blame mother에서
엄마와 딸사이의 다양한 문제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만났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유정이가 윤수의 사형확정 소식을 듣고
병실에 있는 엄마에게 가서 용서한다고
기적을 바라면서 용서하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15살 딸이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프다고 울면서 호소하러 갔을 때
음악을 취해서 듣고 있다가 딸의 말을 들은 첫 반응
네가 어떻게 처신했길래
오빠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그치라고 하는 엄마의 말에 크게 상처입은 아이는
자살을 시도하는 상황에 대해서
자꾸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해도
우리가 갖고 있는 통념이나 잘못된 생각으로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존재하고
있을까 하고요.

자신의 딸을 죽은 청년에게 용서한다는 말을 하러 간 할머니
아이들이 찾아왔을 때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남자가 두려워서
어여 고아원으로 가라고 말하고 엄마도 살자면서 창문을 닫아버리는 엄마
엄마도 나라도 버린 아이가 애국가를 부르면서 위로를 삼는
눈물겨운 장면
한동안 머릿속을 떠다닐 대사들이 흘러넘치는 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