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벌렁 거림을 한 참 만에 가라 앉히신 어머니는 늦게까지도 숨을 몰아 쉬시더군요.
늘 ~그랬습니다.
좋은 일 즐거운 일엔 언제나 미숙하셨던 어머니...
늘 폭풍이 휘몰아 치는 일이 있어야 자식 얼굴 보셨던 분이기에 그럴만도 했습니다.
우리 그냥 맛있는 밥 사 드리려고 왔다라고 했더니 어린이 날인데
아이들 놔두고 왔냐며 대뜸 데려오지 그랬냐 그러시더만요~
허리는 더 굽으시고 오른쪽 다리는 절룩거리고 머리는 더 백발에 가까우신
두 분 얼굴이 그래도 싫지 않는 표정이십니다.
아버지 고향인 함평에 가 보시지 않겠냐~했더니 뭐하러 가냐? 하시면서 혀를 차시네요.
어머닌 두 오빠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미 절에 가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더군요.
두 오빠 이야기에 금새 어머니 눈이 글썽 글썽해 지십니다.
눈물 샘을 달고 사시네요~
일단 우리 부부는 함평 나비 축제장에 들러 나주 절로 가자는데 의견을 합치고
두 분을 모시고 출발했습니다.
차로 1 시간 거리지만 한 번도 가 보질 않았다는 말씀에 자식 많음 뭐하나 싶었지요~

저 멀리 나비 산이 보입니다. 많은 인파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어요.
두 분은 어찌 어찌 200 미터도 못 걸으시고 저 정자 위에 주저 앉아 버리셨어요.
절뚝 거리시며 걸으시는 어머니 모습이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서 걸으시는
아버지를 보니 언제 저렇게 늙으셨나 싶더군요.
늘 그 자리에 계신 분인 줄로만 알고 살았네요~
정말 그렇게 약해지신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못 걷겠다시며 우리 보고만 둘러 보고 오라네요~ 할 수 없이 대충 둘러보고
캔맥주 하나, 번데기 한 컵, 옥수수 두 개, 닭꼬치 하나 이렇게 사들고 두 분 앉아계신
정자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곳에서 군것질은 한 번 해봐야 왔다간 기분이 들잖아요~^^
옥수수가 연하니 맛나다며 반쪽은 드시네요~
번데기는 오래 된것이라 맛이 없으며 거무죽죽 하다고 하시구요. (우린 봐도 모르는디...하여간에~)
닭꼬치는 넷 이서 나눠 먹었어요.^^
드시는 것도 나이가 드니 맘대로 못드시더라구요~
부모님이 그래도 조금 젊으셨을때 많이 사드려야 겠더라구요~
혹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조금 젊으시다면 맛난거 많~이 사 드리십시요!

저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줄이 너무 길어 보기만 했네요.
유채꽃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이 꽃들이 여기 저기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유채꽃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으시더만요~~ 사진을 제대로 담지 못함을 용서하세요.

이 나비 축제가 함평을 알리는데 한 몫을 했다며 대단히 성공적인 이벤트라고
다 들 한 말씀씩 하시더라구요~
그러게요~ 덕분에 저도 와 보게 되었네요.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 오늘 미어 터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저 어디메 쯤에 7천원을 내고 들어가서 봐야만 나비 축제 왔다갔다고 말할 수 있다 했는데
우린 그냥 왔습니다. 두 분을 내버려 두고 갈 수가 없었으니깐요~
부모님께 드리는 효돈지 우리 부부의 나들인지 조금 헷갈리지요? ^^*

자운영 꽃 밭이 참 평화로워 보이고 ....

보리이삭도 싱그러움을 더 해 주었습니다.

저 안에 뭐가 있을까? 지금도 궁금하네요~ 함평 나비축제 완전히 수박 겉핧고 온 셈입니다. 이궁~

도로 바로 옆에 차를 세워놓고 찍은 사진입니다.
아버지 고향동네 입니다. 어머니와 결혼하자 마자 3일 뒤에 6.25가 터졌다고 하시네요.
전쟁이 나니 아버지는 온데 간데 없이 실종되었고
그 때 부터 어머니 마음 고생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네요.
총알이 귓볼을 지나가 다행히 살 수 있었다고 하시면서 다들 죽은 줄로만 알고 계셨던
아버지래요~ (저 처음 이런 이야기 들어봤네요.)
죽은 목숨 아슬아슬하게 살아
이러고 사나? 하시며 한 숨을 쉬시더라구요~ (그 옛날 도청에 근무를 하셨다지요~)
잘 나갈땐 고향엘 오셨었는데 이런 저런 일로 당신이 잘 안풀리니
고향땅과 인연을 끊으셨다 하더라구요.
감회가 새로우신지 먼 산을 한 참을 바라 보셨습니다.
함평 고향 땅을 밟아 본지 50년 만 이랍니다. 무슨 그리 먼 곳도 아니건만...
왜 그랬을까 싶더만요.
저 나무는 어머니 아버지 결혼 전에도 있었던 나무라네요~
지금은 백발의 노인이 되셨지만 ㅡ그래도 꽃다운 시절이 분명 두 분에겐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변한게 별로 없으시다면서 예전 기억에 또 한 번 기~인
한숨을 내 쉬십니다.
나주로 다시 차를 몰아 어머님이 가시는 절에 가서 두 오빠 이름을 쓴
하얀 연등을 두 개 달아주고 광주로 돌아 왔습니다.
어머닌 더 많은 눈물을 머금으시고 하루를 잘 참아 주셨어요~
지금까지도 피곤함에 절어 있지만 우리 부부 효도 잘 하고 왔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