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이사와서 친구따라 도서관에 오게 된 분이 있습니다.
얼굴에 순박함이 그대로 살아있는 그런 사람인데요
아이가 역사교실에 오게 되어서 처음 만난 사람입니다.
저도 모르게 이야기를 걸었지요.
(그 분이 공대 출신이란 말을 듣고 선입견이 작용한 탓도 있을 겁니다.)
어른들이 오전에 하는 모임이 있는데 한 번 참여해보실래요?
그랬더니 본인은 공대 출신이라도 하수도 처리 시설 그런 쪽 공부를 해서
제가 하는 수업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자꾸 고사를 하더군요.
그래도 이상하게 마음이 당겨서 그 다음에 만나서도 다시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제가 모든 학부모에게 다 수업에 참여해보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일년에 서너 차례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것인데
한 사람보고 두 번씩이나 거듭 권유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아직은 친구가 수업에 빠질 일이 생기면 혼자서 나오기에도 약간 망서릴 정도로 수줍어 하는 분인데
지지난 주부터 책을 빌려가서 읽기 시작하더니
지난 주에는 두 권을 읽었다고 어린애처럼 즐거워 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곤 오늘도 새로 한 권을 들고 가면서 기대에 가득찬 표정이어서
아,사람의 느낌이란 우연한 것이 아니네 싶었습니다.
사실 제겐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지요.
과거형으로 쓰고 말았지만 사실 지금도 있다고 해야 하는데
아마 생각이 바뀐 것이 그대로 과거형으로 튀어나오나 봅니다.
그러니 무의식은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물론 손으로만이 아니고 마음이 우선이겠지만) 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들에게
열등감이 있고
봉사활동을 마음을 바쳐서 잘 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도 있지만
제겐 너무 먼 당신같은 느낌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아는 분이 말하더군요.
선생님이 이렇게 어른 모임을 만들어서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고
한도 없이 책을 사서 나누어 보는 일로 아마 복받을 겁니다.
그래요?
저는 이 일을 봉사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하는 공부보다는 함께 하면 더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고
책도 음반도 혼자서 읽고 들으면 재미가 덜 해서 나누는 것일 뿐인데
그러고 보니 나도 중요한 일을 한다고 자부심을 갖고 살아도 되겠네요.
그런 대화를 한 뒤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누구나 다 똑같을 수 없으니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누면 된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나서는
마음속을 누르고 있는 복잡함이 많이 사그러드는 느낌이네요.
수업을 마치고 여럿이서 분식집에 가서 다양하게 음식을 시키고 골고루 먹는 즐거움을 누린 다음
집에 오니 제목에 적은 말을 보내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쪽지로요.
혼자서 간직하기엔 너무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서
모네의 그림과 더불어 글을 한 꼭지 쓰게 되는 시간입니다.
제게 모네는 이상하게 즐거운 일이 있으면
혹은 기분이 좋으면 보게 되는 화가거든요.
사람의 눈이 얼마나 선택적일 수 있나를 그림을 보면서 실감을 합니다.
오늘 오전에 네덜란드의 화가들에 대해 공부를 했다고
그림의 제목중에서 그런 그림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군요.
모네가 네덜란드 여행을 하면서 그린 그림인 모양입니다.
여러 점이 눈에 띄네요.
좋은 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따로 답을 하겠지만
쪽지로는 그림을 선별해서 고르고 보내는 그런 즐거움이 어려울 것 같아서
조금 한가하게 즐길 수 있는 목요일 오후
말러의 교향곡을 크게 틀어놓고 모네를 고르고 있으니
공연히 제가 더 즐거운 기분이 드네요.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에게도 비 오는 하루 빗물 수 만큼 행복하시라고
대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