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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에 끌려...지름신

| 조회수 : 1,612 | 추천수 : 20
작성일 : 2005-09-14 07:23:48
[2030 세상 읽기] 지름신이시여, 이 가혹한 시험을 거두소서


그분이 오셨다! 심장이 거세게 고동치기 시작한다. 지갑을 쥔 주먹에 움찔 힘이 들어간다. 이럴 때면 배경음악도 경쾌하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 아아, 그분은 언제나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시어 우리를 가혹한 시험에 빠뜨린다. 그 이름도 위협적인 '지름신'의 대습격. 짜릿하고 매혹적인,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야 할 것인가. 지름신은, 물건을 충동구매한다는 속어인 '지르다'라는 동사에 신(神)을 합쳐 만든 신조어다. 인터넷 쇼핑이 보편화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이 단어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그녀-앗, 이 구두 예쁜데? 얼마 전에 산 초록색 원피스와 입으면 딱 어울리겠어.

지름신-(조용히 속삭이며) 그래, 예쁘다. 질러버려.

그녀-(의기소침하며) 지름신, 제발 날 유혹하지 마. 이번 달엔 보너스도 안 나온단 말이야. 엄마가 보시면, 또 샀느냐고, 신발가게 차릴 셈이냐고 잔소리하실 거야. 그래도 너무 사고 싶은데 어쩌지?

지름신-까짓것 얼마나 한다고 그래? 이 정도 가격이면 양호한 거야. 가죽도 좋고 색깔도 환상적이잖아. 기본형이라서 한번 사 두면 두고 두고 신을 수 있으니 오히려 경제적이지.

그녀-그래? 정말 그렇겠지?

지름신-당연하지. 지금 안 사면 금방 품절돼 버릴 거야. 너는 앞으로 영원히, 이것보다 맘에 드는 구두는 절대 발견할 수 없을 테지. 솔직히 인생 뭐 있어? 까짓것 즐기면서 사는 거야. 그냥 확 질러버려!

그녀-(단호히 신용카드를 내밀며) 이거 주세요. (조금 작은 목소리로) 삼 개월, 아니 육 개월 할부요.

당장 필요가 없는 물건일지 모른다. 그래도 상품을 앞에 두고 떨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유혹과 절제, 저항과 순응, 절실함과 후회 사이를 오가는 그 오만가지 감정의 퍼레이드는 정말로 격렬한 접신(接神)과 비슷한 느낌이다. '지름신'의 존재는 충동구매 소비자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기도 한다. 소비 충동을 펌프질해 대는 가상의 절대자를 만듦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솟구쳐 오르는 충동구매의 죄책감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왜, 쇼핑하는가. 우울하고 보잘것없는 일상을 벗어던지고 싶어서? 나에게도 이 정도의 구매력은 있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싶어서? 물건을 골라 값을 지불하고 마침내 품에 받아 안는 행위를 통해, 현실에서는 좌절되곤 하는 독립과 자율성의 느낌, 그 오롯한 성취감을 맛보고 싶은 건 아닐까? 그래도 한 달 뒤 꼬박꼬박 도착하는 카드 영수증을 받아들었을 때의, 그 후회와 자책감도 반드시 기억할 일이다. 지름신을 정신없이 맞아들이기엔 우리들 지갑의 두께가 너무 얇다.

소설가 정이현(ㅈ일보에서 펌)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wine
    '05.9.14 11:36 AM

    ㅎㅎ
    명절 앞에두고 더더욱 공감이 가네요
    지름신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들이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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