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명절 맞아 떠오르는 기억들

아즈나 조회수 : 637
작성일 : 2025-10-04 16:17:01

우리집은 종로, 할머니네는 광나루 건너였는데 어릴 때는 버스타고 할머니네 가는 길이 엄청 멀게 느껴졌어요.  버스타면 휘발유가 불연소 되면서 나는 냄새에 늘 멀미를 했었어요.  올해 91세이신 아버지는 멀미로 축 늘어진 저를 등에 업으셨었고 그 등이 참 따뜻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육남일녀 아버지 형제들이 다 모여서 수십 명이 북적였고 수틀리면 마당에서 떼쓰며 구르던 네째아버지네 딸, 밥먹다가 꾸벅꾸벅 졸던 순둥이 그 집 아들, 큰 눈에 겁이 많아 화장실 혼자 못가고 '언니, 언니' 부르던 세째아버지네 딸.  어느 해 명절이었나 열이 펄펄 끓어 어른들 애를 태웠던 다섯째아버지네 큰 딸, 그댁 작은어머니가 명절음식 하는데 투덜투덜 불평해서 동티가 난 거라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애기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꿈을 꾸셨다고 허공에 대고 잘못했다고 대신 비셨던 울엄마도 기억 한 켠에 있네요.  울할머니 6남매 데리고 '국제시장'에 나온 배타고 흥남부두에서 월남하신 함경도또순이로 불같았던 성정으로 동네에서 탑찍으셨던 분. 

 

할머니는 떡집을 해서 일곱 남매를 키우셨고 할아버지는 본인 내킬 때 돈을 벌어서 혼자 쓰셨던 반백수한량이셨어요. 할아버지 찬장이 따로 있었는데 미제통조림에 맛난 간식들을 거기에 두고 혼자만 드셨어요. 평생 가장이셨던 할머니는 환갑 전에 뇌졸증으로 쓰러지셔서 고생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셨고 한량할아버지는 94세까지 무병장수 하시며 자식들에게 돈걷어 온갖 나라를 유람하시다가 자는 듯이 돌아가셨습니다. 무슨 복이셨을까요! 

 

떡집 사장님이셨던 할머니댁에는 오래 길들여진 돌판과 떡메가 있었어요. 명절이면 언제나 시루에 찹쌀을 쪄서 돌판에 올려넣고 남자어른들이 돌아가며 떡을 쳐서 인절미를 만들었어요. 만삭에 마당 한 구석에 연탄불을 피워 생선을 굽던 막내어머니도 떠오르고 이부자리 밑에 오래 감춰둔 사탕과 백원짜리 지폐를 다른 아이들 몰래 쥐어주시던 저한테는 선물상자 같으셨던 할머니도 그립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추억하는 아이는 환갑이 되었고 어른들도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고 늘 산같았던 아버지는 기력이 쇠하셔서 봄에는 걸어 올라가셨던 산소에 올라가지 못하셨습니다.  아주 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이 찰나 같기도 합니다.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따뜻하고 넉넉한 명절이 되시길 빕니다. 

IP : 221.145.xxx.4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맥주한잔
    '25.10.4 4:24 PM (221.140.xxx.254)

    여긴 대체 박완서가 몇명이야
    저도 한잔 더마시면 함 시도할지도요
    모든것이 찰나
    눈물 찍..

  • 2. 50대
    '25.10.4 4:33 PM (222.108.xxx.61)

    원글님 글 읽으며 저도 어릴적 명절날 분위기가 기억 나네요 ....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일을 직접 할수밖에 없던 시절 우리엄마는 그걸 혼자 몇날 며칠 준비하셨죠 .... 옆에서 지켜보던 어린아이들은 그저 흥분되고 즐겁고 ...

  • 3. ㅇㅇ
    '25.10.4 5:38 PM (58.122.xxx.186)

    친가 8남매 외가 6남매.. 저도 어릴 때 명절 기억은 따뜻하면서도 소중하게 남아있어요. 좋은 기분으로 보낼 수 있게 준비된 음식, 잠자리, 놀이 다 큰엄마 작은엄마 우리엄마의 노력이 숨어있었던 건데.. 참 미안하면서도 감사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761075 이재명, 냉부해 촬영 중대본 회의 전에 했다 6 ... 18:09:40 363
1761074 첫만나고 패션쪽일할것같다고 하면 3 ㄹㄹ 18:09:03 109
1761073 LA갈비 그냥 팬에 굽나요? 4 ... 18:07:01 138
1761072 한 달 조금 지났는데 1.5키로 빠졌어요 1 ... 17:49:33 539
1761071 서울 습하네요.. 더워요 17:49:29 318
1761070 친정오빠에게 돈을좀 주고싶은데요 13 17:45:34 1,372
1761069 장관급 박진영은 일본가서 놀고있네 10 .. 17:45:07 711
1761068 본인이 암환자면 모든 가족이 맞춰야하나요? 5 17:40:01 807
1761067 캐나다에서 초보혼자 여행하기 좋은곳이 어딜까요? 8 캐나다 17:21:43 293
1761066 이재명 냉부해 출연은 엄청난 실기임 53 ㅇㅇ 17:17:35 2,605
1761065 냉부해 예고편 보셨어요? ㅋㅋㅋㅋㅋㅋ 21 ..... 17:17:13 2,307
1761064 겉절이 김냉에 넣어도 될까요? 1 ... 17:16:48 179
1761063 기억이 안나서 너무 슬퍼요 3 ... 17:00:57 1,018
1761062 딸이라고 다 공감능력 좋은거 아니에요 4 ㅇㅇ 16:54:31 793
1761061 동생이 싫은데요 8 ,,, 16:53:30 1,224
1761060 오만원과 오천원 4 추석맞이 16:50:05 1,057
1761059 시어머니가 제사지내지 말래요 6 제사노노 16:49:46 2,174
1761058 당근 알까기 16:43:35 216
1761057 균형을 못 잡겠다면서 병원을 안 가시는 부모님 5 ... 16:43:30 634
1761056 부모님 하와이 여행 몇월이 좋을까요? 6 하와이 16:34:37 618
1761055 사무직은 거의 경력 무관 뽑네요.. 커리어 될지 고민입니다. 7 16:30:05 1,121
1761054 나쁜 사람은 아닌데 6 ... 16:26:12 801
1761053 문희준 아버지 특이하네요 7 ㅁㅁ 16:24:44 3,184
1761052 시모에게 일일이 일러바치는 남편 16 16:22:44 2,166
1761051 오늘 방송한 매불쇼 추석특집 방송 2 몰래 16:21:35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