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나이만큼 생일을 세봤죠. 대부분은 별다른 일 없는 무난한 기억이지만…
어릴 때 생일날 크게 혼난 적이 있어요. 별다른 사고를 친 것은 아니었어요. 내가 사고칠만한 그릇도 안되고… 하지만 전 공부에 소질이 없고 성적이 늘 안좋았는데, 부모에게는 그거만큼 죽이고 싶은 자식이 없죠. 우리 70년대생들은 다들 기억할거예요. 성적 안 좋고 공부 못 하는 아이는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걸요.
그때도 뭔가 이야기하다 성적으로 옮겨가고 정말 심하게 계속 혼났던 것 같아요. 그렇게 내 생일은 나혼자 '오늘이 내 생일이네'라고 싱글벙글하다 그렇게 하루종일 깨지고 넘어가버렸구요.
고등학생때였나에는 생일빵이 유행이었어요.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에게 내 생일 이야기를 했더니, 얘가 다른 애한테 그 얘길 했나봐요. 내 생일이라는 소문이 나더니, 쉬는 시간마다 날 괴롭히러 여러 애들이 오더라구요. 다른 반에서도요. 저는 괴롭히기 만만하고 때리거나 쥐어박거나 해도 아무 대응 못하는 애다보니, 누구나 와서 재미있게 괴롭히고 가도 되는 무료게임기였거든요. 쉬는시간마다 와서 쥐어박고 가고, 때리고 가고, 욕하고 가고, 칠판지우개도 맞고… 그래도 다음날 내 생일을 얘기하고 다닌 애가 미안했나봐요. 자기가 여기저기 얘기한게 이런 일로 돌아올줄은 몰랐나봐요.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을 어떻게 기억했나 이곡 저곡 섞어서 녹음한 테이프를 주면서 "생일축하한다" 하더라구요. 생일은 어제였는데, 아마 생일날 하루종일 당하는거 보고 집에가서 직접 녹음했나봐요.
대학가서도 비슷했어요. 그땐 생일이면 케이크를 갖다 머리에 처박아버리는게 유행이었어요. 다들 유쾌하게들 하던데, 나는 정말 싫었어요. 갑자기 가만히 있는 내게 케이크 조각 가져와서 얼굴에 박아버리던 스무살 때의 기억이 지금도 몸서리쳐져요. 애들 둘이서 '하나둘셋' 하기에 뭐하나 했더니 일제히 조각케이크 들고 내 얼굴에 박아버렸어요. 화내면 성격 이상한 사람 될까봐, 심하게 몸이 떨리는데도 참아야만 했어요. 다른 아이들 생일때 보면 케이크 처맞고서도 함께 웃는거보면 내가 유난떨었던거 맞는거 같기도 하고…
그뒤로 생일은 잊고살았어요. 생일을 밝히는걸 극도로 꺼리고 생일이란 말만 들어도 싫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누가 생일 축하해주면 좋기는 하더라구요. 애인이 생일축하케이크 준비해서 카페에서 음악틀어주고 할땐 창피해서 고개 계속 숙이고 있었지만 눈물날뻔했구요. 여기서 밝혀봐야 읽을 리가 없지만 HJ아 나 그때 창피해서 고개를 못든 것보다, 눈물 몰래 닦느라고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 내가 헤어지자고 안했으면 아마 너에게 생일축하 또 받을 수 있었겠지.
결혼 이후 생일에는 끔찍했던 것같아요.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생일도 비껴가지 못했어요. 그렇게 못견디고 집에서 나와있었는데, 세상 아무도 내 생일인지 알지도 못하더라구요. 그런데 생일축하한다는 문자가 안경점에서 왔어요. 그날 유일하게 내 생일을 축하해준 곳이에요. 프로그램이 보낸거든 뭐든 어때요. 내가 받은 유일한 생일축하인데. 다음날 바로 선글라스 하나 사러 갔어요.
이혼후 혼자 고시원에서 살면서 처음 맞이한 생일은 그냥 이대로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숙소 주변 시장에 가서 프라이드치킨을 사고 편의점에 가서 초코파이를 사와서 혼자서 배터지게 먹으면서 생일축하노래 부르면서 나 자신에게 축하했던 기억이 나요. 마치 창고에서 혼자 생일축하하던 해리포터가 된것 같았어요.
홀로 사회생활을 하고 이런저런 삶의 파고를 겪으면서 내 생일 찾는건 그냥 사치였고, 내가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누가 내 생일 알까봐 카카오톡에도 생일옵션 꺼놨죠. 내 생일 그냥 모르고 넘어가고 싶어도 여기저기 회원가입한 곳에서 보내줘서 내가 알게 되긴 되더라구요.
오늘도 여기저기 세군데나 되는 곳을 다녀야해서 늦게 들어왔어요. "집에 언제와?" 딸아이 카톡에 그냥 "지금 지하철 내렸어"라고만 답했죠. 현관문열고 들어와보니 딸아이가 케이크에 초를 밝혀놓고 서있다가 날 보며 노래를 불러주더라구요.
정말 내 생애 이렇게 행복한 생일을 맞이할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살아보라고 하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