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독립하고 남편은 시가에 살아서 혼자 지낸지 꽤 됐는데 어느 새 우울이 스멀스멀 스며들고 있었어요
더워서 집안에만 있어서 그런가싶어 외출 해 봤지만 너무 덥기만 해서 집에만 있는게 이유는 아닌가보다 했어요
지난달 우연히 알게 된 비구니 스님 두분이 따로 독립해서 충청도 산골에서 살게 되었다며 놀러오라고 농담처럼 하신 말을 덥썩 붙들고 무작정 찾아 갔어요
한여름 땡볕에 에어컨도 없이 텃밭 농사 짓고 동네 농사일 도우며 품삯 받은걸로 생계를 꾸린다는 데 너무 행복해 보이는거예요
텃밭 농사래도 두분이 드실 양보다는 훨씬 많아서 삼시세끼 옥수수 감자 호박 토마토 자두..남들 나눠주고 남은 못생긴 걸로 먹는데도 먹을만 하더라구요
다음날 점심때 에어컨도 없는 그 집에서 점심 먹을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혀서 제가 맛있는 점심 대접하겠다고 제일 맛있는 음식점 가자고 졸랐는데 집에 먹을게 넘쳐 나는데 왜 돈을 쓰려 하냐며 그냥 콩국수라도 해먹자 해서 콩국수 해 먹었어요
음식솜씨는 없어서 맛은 없었지만 그게 또 맛이라더라구요ㅎ
더워서 하룻밤만 자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때 그 자연의 맛이 입안을 새로 태어나게 했는지 매일 배달 음식 시켜 먹던 제가 그후로 배달 음식을 끊었어요
제일 맛있는거 골라서 찾아먹던 입맛이 그냥 조리 안해도 도,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먹을만하다고 깨달았던거 같아요
감자 에어프라기에 돌려서 쪄 먹고 단호박 옥수수 쪄먹고, 농협에서 토마토 복숭아 자두 시켜서 먹고 하다보니 점점 냉장고안에 방치됐던 식재료들이 생각나더라구요
냉장고에서 시어가는 김치 꺼내서 생선조림 해 먹고, 사놓기만하고 한번 먹고 남겨뒀던 만두, 돈가스, 어묵도 하나씩 다 먹으면서 처리했어요
시어머니가 주신 고추가루가 많이 있는데 고추가루는 냉장고에 두고 김치는 매일 사먹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우하나 사서 깍두기도 담았어요
미니멀 유튜브를 몇개 들으며 요리하다보니 집안 구석구석 다시 꺼내 손보고 싶은 생각도 올라와서 하나씩 정리하는 중이예요
오늘은 냉장고 야채칸 정리했네요
3일동안 책도 한권 다 읽고 다시 다른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는데 집안에만 있어 우울한게 아니라 집안이라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 잠깐 재활용 쓰레기버리러 나갔다 왔는데 그 사이에도 땀이 줄줄 흐르더라구요
우울할때 미니멀 유튜브 골라서 들어 보세요
며칠 보다보면 나중엔 나도 하고 싶어져요
시작이 어렵지 막상 시작하니 참 재밌네요
배달음식은 아직도 전혀 안땡겨요
생쌀을 씹어먹을지언정 다시는 그렇게 안살거 같애요
저도 참 희한한 일이야...라고 생각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