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
무식하면 왜 용감해질까?
코넬 대학의 Dunning 교수와 Kruger 교수는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체스 게임, 테니스, 운전, 독해력 등등 여러 분야의 능력을 테스트 해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과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어떤 생각과 반응을 보이는지를 평가했다.
놀랍게도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자신이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반면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자신이 생각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1999년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77(6): 1121-1134)에 발표한 논문에서 왜 이런 비 상식적 결과를 가져 왔는지를 설명한다. 소위 더닝-크루거 효과다.
한 마디로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역 메타인지가 역설적으로 자신이 안다고 믿게 한다. 또한 안다고 믿는 인지편향 때문에 자신이 지금 가진 능력이 최상위라고 생각한다. 결국 잘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근거없는 편향된 자신감의 기반이 된다. 실제로 능력이 있는 학생은 자신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회의하고 과소평가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실제로 아는 범위가 넓어지면 이 아는 것을 둘러 쌓고 있는 외연에 존재하는 모르는 세상은 더 커진다. 결국 알수록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벼는 익을수록 더 고개를 숙인다," "빈수레가 더 요란하다," "모르면 용감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속담은 모두 더닝 크루거 효과가 우리 일상에 편재해 있는 보편적인 현상임을 설명한다. 이런 속담은 배울수록 겸손하라는 윤리적 명령이 아니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메타인지 상 왜곡이 더 잘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라"라는 절대언명으로 철학의 문을 열었다. 찰스 다윈은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는 생각에 대항해 진화론을 과학으로 발전시켰다.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고 리더로 나서는 것을 주저한다"고 정치에서 나타나는 시대적 아픔을 꼬집었다. 한 마디로 무식한 사람이 근거 없는 용기로 더 만용을 부리니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동양철학에서도 더닝 크루거 효과를 경고하고 있다. 논어 위정편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경고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知者不言 言者不知"고 설명한다. 예기에는 더닝 크루거 효과를 "제대로 배훈 연후에야 부족함을 안다 學然後知不足"는 말로 설명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학습이 멈춰선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왜곡된 인지 편향이다. 학습이 멈춰지면 자신이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이것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 기반해서 용감하게 행동한다. 행동이 실수로 연결되어도 이것이 실수라는 것을 모른다. 인지편향이 만든 근거 없는 자신감이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한 때 공부 좀 했다가 성공한 후 공부를 멈춘 사람들에게 더닝 크루거 효과는 반드시 찾아온다.
많이 알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인지편향을 겪는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메타인지 때문에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해가며 근거 없는 열등감을 가진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자신보다는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닝 크루거의 공동 실험결과에 따르면 능력과 지식에서 상위 5%에 해당되는 친구들은 자신의 능력과 성적이 다른 평균 학생보다 못 미칠 것이라고 판정한다. 특히 능력이나 지식이 뛰어난 여성이나 소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근거 없는 열등감에 더 많이 시달린다. 이런 열등감이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능력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리더로 추대되면 그 조직은 집단적 더닝 크루거 효과의 비극을 겪는다. 리더는 자신의 능력을 항상 과대평가하고, 다른 능력이 있는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실수와 곤경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솔직하게 피드백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방호기제를 사용해서 자신의 능력있음을 변호하다가 그래도 지속적으로 피드백하면 이 사람에게 역정을 낸다. 결국 주위에는 비슷한 능력과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로 포진되고 이들은 리더의 능력과 식견에 대해 자화자찬을 일삼다가 결국 집단사고로 조직과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기고 해체된다.
세상을 잘 모르는 리더가 신념을 가지면 가장 큰 불행이 몰려온다. 이들 리더가 사람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이유는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뭔가를 안다는 착각이다. 이들은 착각에 근거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동원해 잘못된 행동을 지속해가며 주변을 엄청난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남들이 고통을 호소해도 인지하지 못한다. 같은 맥락에서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단 한권의 책밖에 읽은 적이 없는 인간을 경계하라"고 충고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조금 얻은 지식에 대한 확신을 지키는 과정에서 학습의 본질인 피드백 고리가 끊어져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세상은 모두 연결된 전체이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아는 것을 감싼 바깥 모르는 세계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결국 학습이란 죽을 때까지 모르는 세계로부터의 피드백을 받아들여 아는 세계의 경계를 확장하는 일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의 인질로 사로잡혀 살다보면 어느 순간 끝이 없어 보이는 고단한 학습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을 건넨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용기부족 현상도 결국은 더닝 크루거 효과로 설명된다. 지식에 대해 겸손한 것과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의 진위를 행동을 통해 검증하고 확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부조리를 인지하고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모토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주문한 행동하는 지식인은 결국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해가며 세상이 바뀌면 여기에 맞춰 자신의 존재를 다시 세우는 양심과 의식이 있는 지식인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혼란스런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자신감은 자신의 존재목적이라는 안테나를 세우고 이 존재 목적을 검증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아가며 행동하는 학습자들이다. 무식이 만용을 낳는다면 반대로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한 자기인식이 근거있는 무조건적 자신감의 기반인 셈이다. 존재목적이라는 나침반을 가진 사람들은 불확실성의 망망대해에 자신 있게 뛰어드는 용기와 자신감을 획득한다. 나침반이 있어서 길을 잃을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코넬 그린피크 스터디는 똑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결국 글로벌에서 존경받는 포춘기업의 CEO로 낙점된다는 것을 밝혔다. 이 연구를 토대로 C Level이 리더십 교육은 리더의 자기이해 능력(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능력)을 찾아주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리더는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초뷰카 시대에 가장 위험한 시한폭탄이다. 나방처럼 모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블랙홀로 뛰어드는 만용을 부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