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을 하러 갔습니다.
위 내시경은 저에게 고난입니다.
몇 번을 했음에도 너무 힘들어 조형술도 해 보았지만, 그 역시 다신 못 할 검사였습니다.
수면 내시경으로 하기로 했는데, 수면용 주사를 맞고 '영원히 잔다.'는 기사를 가끔 본 게 많이 깨름칙했어요.
제 체질은 부작용 약물이 많아 걱정이 커서 의사와 상담 후 의사가 비수면으로 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안 되겠냐는 제 말에 의사는 자기가 부담을 덜 수 있는 '반수면(?) 검사'로 하자고 하더라고요.
보고 듣고 다 하지만, 정신이 몽롱해 고통은 없는 게 반수면 검사래요.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검사 준비를 했습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휴대전화 녹음을 하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하더라고요.
팔목에 차고 있는 탈의실 수납장 번호 열쇠도 사진으로 찍어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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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회복실에 들어와 한 시간 가량 잤다고 이제 괜찮으면 귀가하래요.
몸이 노곤하여 좀 더 쉬겠다고 했더니 간호사가 의사 설명 들었느냐고 묻더라고요.
자느라고 못 들었다고 했더니, 의사 퇴근 전에 들으라고 일어나래요.
(내시경 의사는 오전에만 근무해요.)
그런데 다른 간호사가 오더니 아까 설명 듣고 다시 잔 거라고 하는데.
기억에 전혀 없었어요.
그럼 다시 설명해주겠다고 의사한테 안내를 해주더라고요.
의사 - 아까 말했듯이 특별한 이상은 없어요. 다만....
나 - 아까 설명 못 들었어요.
의사 - 아까 설명 다 했는데, 기억에 없네요.
나 - ... ...
의사 - 지금 설명하는 것도 또 기억 안 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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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억에 전혀 없었어요.
수면 내시경도 아니고, 보고 듣고 다 할 수 있는 반수면이라는데 기억에 전혀 없어요.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자체에 없어요.
대충 정신을 차려 수납을 하고 집에 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병원에서의 일은 정말 까마득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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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식이 내 몸을 컨트롤하지 못할 때가 딱 이런 상황일 거라고 생각하니 겁이 나더라고요.
내가 정신을 놓고, 내 행동을 제어하지 못할 때 나의 본성이 드러나는 것이 겁이 났어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들을 말할 수 있고, 상스러운 말을 할 수도 있고,
폭력을 할 수도 있고,
본능에 충실한(?) 수치스러운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득해지더라고요.
약물로 인한, 혹은 병으로 인한 통제 불능의 상황은 인간이 살면서 가장 슬픈 일일 거 같아요.
오히려 본능에 충실해져서 당사자가 행복한 상황일 거라는 글도 읽었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에요.
정신은 또렷한데, 몸을 못 움직여 기본적인 위생처리마저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하는 수치감도,
신체 기능은 정상인데(?), 정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도
나에게는 용납이 안 돼요.
내가 용납하고 말고는 아니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내 신변 처리는 내 손으로,
내 정신과 몸이 한 날 한 시에 같이 수명이 다 하길 바랄 뿐이에요.
고작,
위 내시경 한 번에 이런 씁쓸한 민낯의 나를 보게 됨을 감사해야 할까?
평소에 건강한 생각과 바른 행동으로 나를 무장해 두어야,
행여나, 행여나,
만약의 상황에서의 내 민낯은 나를, 내 주변을 혼돈에 빠뜨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평소 언행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네요.